얼마 전 북한으로부터 귀순한 오창성씨가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왔다. 그는 남쪽으로 귀환하며 판문점에 다가 왔을 때 북한 경비병들로부터 다섯발의 총을 맞았다. 뛰어 도망가는 그를 향해 쏜 총알들은 그의 옆구리와 온 몸에 박히고 엉치뼈로부터 상체를 헤집은 총탄은 내부 장기를 훼손하고 그의 생명이 담보될 수 없는 위기 상황으로 몰아갔다. 집도한 베테랑 의사가 아니었다면 가히 그는 다시금 남한 땅에서 햇볕을 보고 TV에 나와 생의 기쁨을 감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의사는 생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출혈이 있었고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거의 기적적인 회복이 이루어 졌다고 말했다.
사람의 몸에 들어 있는 약 20리터의 혈액보다 몇 배의 수혈을 했는데 이제 그의 몸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 생명을 얻게 된 것에 대한 감사와 새로운 대한민국에서의 삶에 대한 남다른 다짐이 화면에 잡힌다. 그러면서도 예능이 가진 재미를 더하려는 지 수술 중 한가지 특이한 것이 있었는데 그의 내장에서 너무 나도 많은 기생충이 몸에 들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군인들과 민간인들사이에 기생충이 발견된다고 한다. 채소를 키우는데 인분을 사용하는 후진성에서 벋어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다.
우리 어릴적의 옛날 이야기이지만, 우리도 과거에 학교에서 단체로 기생충 약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같은 반에 코흘리개 친구들 중에도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얼마되지 않는 육성회비를 내지못해 결석하는 가정이 있었다. 반의 임원인데도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이유가 돈이 없어서 였던 것을 나중에 알게된 경우도 있었다.
오랫동안 생각지 못했던 기생충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의 어린시절과 흡사한 삶을 살아가는 북한 주민에 연민이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생충은 우리의 가난을 연상시킨다. 가난한 시절의 순수한 삶에 대한 소박한 꿈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발전한 삶과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
며칠 전 한국 영화 100주년 기념일에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은 프랑스 칸느에서 열린 72회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작품과 감독이 최고의 영예인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국 영화 사상 첫 쾌거다. 칸느 영화제 전체를 흥분시켰고 영화가 주는 감동과 획기적인 발상들로 찬사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감독과 배우가 보여주는 신뢰와 우정도 훈훈하지만 감독의 이름이 곧 이 영화의 장르이다라는 말은 당사자인 봉준호 감독에겐 더 할 나위없는 영예이며 뿌듯함이 되었다. 그 화제의 영화의 제목이 ‘기생충’이다.
아직 개봉이 되지 않은 ‘기생충’은 백수인 한 가정의 장남이 고액의 과외 면접을 위해 부잣집 가정에 들어가면서부터 일어나는 블랙 코디디라고 한다. ‘기생충’ 이라는 단어는 건강한 몸에 기생하는 나쁜 벌레를 말한다. 이 두 가족 간에는 기생충과 같은 관계가 얽혀 있는가보다. 제목 만으로는 알 수 없는 기대만 가득한 스토리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기생충은 가난을 연상시키고, 건강한 몸의 양분을 빨아먹지만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암적 존재로 남아있다.
돈을 가진자와 없는자, 권력과 명예를 가진자와 소외되고 힘없는 자들이 얽혀사는 세상에는 정권이 바뀌면 권력에 기생하고 고고한 자긍심을 자랑하던 선비들이 자리에 연연하며 팽개친 타협의 변명들이 즐비하게 마련이다. 돈을 벌면 어떻게 살았던지 상관없이 갑 행세를 하며 부러운 시선을 능멸할 수 있다. 자랑하고 존재감있게 살고 싶은 세상 욕심은 기생하는 삶을 거침없이 미화한다.
북한 병사는 기생충을 몸에 담고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고 간신히 생사의 고지를 넘었지만 건강한 소망을 품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기성세대의 어린 시절엔 비록 가난했지만 소박한 꿈으로 아름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소망이 있었다. 험한 세상 속, 비록 기생이었지만 기개있는 논개와 황진이는 그리고 성경의 라합같은 인물은 그들의 신분과 사뭇다른 기백있는 삶을 살았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영예가 되고 자부심이 되었다. 세상은 알맞게 기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숨쉬고, 영화는 ‘기생충’ 이라는 징그런 이름을 달았다. 마치 기생충들로 가득한 것 같은 세상 속에서도 진정한 평화와 사랑의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아가는 장면들로 채워지는 기발한 반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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