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곳의 오월
시원하고 맑고 아름다운 오월의 가을이다. 지나갈 가을이 아까워서 밖으로 나갔다. 지난 주는 불루마운튼 산자락에 있는 감 농장으로 갔고, 오늘은 시드니 항구로 나가 가을 쪽빛에 물든 단풍을 보려 한다. 교회 어른들을 모시고 간다. 우리들의 수요예배다. 파라마타강을 따라 릴리필드쯤 왔을 때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산불 방지를 위해 태우고 있는 맞불(back-burning)로 인해 시내까지 스모그가 가득하니 가능한 한 외출하지 말란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바로 우릴 두고 하는 말이지만 이제 돌아설 수는 없었다.
목적지를 변경 했다. 시내를 관통하는 터널로 들어갔다. $5.77, 혹은 $11.55의 전광판이 보였다. 교회 버스가 보통차인지 대형인지 잠깐 헷갈렸지만 어차피 나중에 계산서가 날라올 것이니 괘념치 않았다.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올라 나와 더블베이와 로즈베이를 찍고 왓슨스베이에 도착했다. 아직 아침 10시라 공용 주차장은 널널했지만 그 중에서도 장애자 표시가 그려져 있는 가장 편한 자리에 주차했다. 함께 가신 분들이 다 허가증이 있기 때문이다. 시야가 좁으시고, 걷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시지만, 사실은 그분들이 우리를 도우신다. 우리는 그 분들에게 붙어 있는 껌이다. 붙어 있기만 하면 못 가는 데가 없다. 시내 가장 복잡한 곳을 가도 전혀 걱정이 안된다. 호주는 그렇게 좋은 나라다. 서로에게 덕을 끼치며, 감사하며 산다.
2. 수호천사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수호천사다. 서로 돕고 산다. 한 부부는 우리가 호주에 왔을 때부터 우리 가족을 섬겨 주셨다. 교회 일로 바쁜 우리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해 주셨고, 갓난 아기 봐 주시며 키워 주셨다. 또 한 부부는 교회를 개척할 때 전도편지를 받아 들고 스스로 찾아오셔서 어른 노릇을 해 주셨다. 그렇게 각각 30년, 16년이 지났다. 여전히 함께 하신다. 처음에는 그 분들이 우리와 교회를 지켜 주셨고, 이제는 우리가 그 분들을 좀 더 섬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수호천사들이다. 함께 이곳에서 시원하고 맑고 아름다운 오월의 가을을 즐기고 있다.
3. 선거
지난 주 연방선거가 있었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넉넉한 승리를 예상했던 노동당이 참패를 당했다. 23일(목) 현재 67(노동당)대 77(연립)이다. 오늘 아침 신문을 펼쳐 다음의 제목을 봤다.
4. 조국의 오월
조국의 오월은 힘들다. 가정의 땀과 사회의 눈물로 얼룩진 잔인한 5월이다. 5.1 노동절, 5.5 어린이날, 5.8어버이날, 5.15 스승의 날,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5.18 광주민주화항쟁.
1950년의 6.25를 지나면서 파괴되었던 가정과 학교와 사회를 다시 살려 보려고 기념일을 정했으나, 바람대로 되지가 않았다. 오히려 무참히 짓밟혀졌다. 그래서 이곳에서 시원하고 맑고 아름다운 오월의 가을을 보내는 나는 너무 죄송하다. 중국 발 먼지와 산업화 잔재로 뒤 덥힌 조국의 금수강산. 핵폭탄 맞은 사람처럼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는 나의 형제 자매들. 언제나 그 곳에도 아름다운 봄이 되돌아올까? 천우의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서로에게 수호천사가 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조국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담임 목사) holypill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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