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은 교육 선교회 로뎀나무아래 김석원 목사의 강의로 시드니 영락교회에서 열렸던 ‘21세기 기독교가정의 신앙교육방향’ 세미나 내용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격변하는 문화속에서 자녀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독교가정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지만, 논의의 배경은 최근 일반 교육계의 전반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비 기독교인 가정에도, 현대 교육문제, 특히 가치관 교육의 방향에 대한 건전한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무엇이 문제인가 (3)
“사랑과 헌신 기독교적 가치보다 승리와 물질 세상 가치 더 중요해져”
로마서 12장 2절의 내용을 우리 식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창조자가 세우신 원래 창조 원리와 지혜를 따라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 자신이 주인이고 기준이라고 외치며 만든 세상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다른 대안들을 내세워 이 세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날이 갈수록 정상을 비정상이라고 조소하고, 비정상을 상식이라고 우기는 일들이 더 심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혼란스럽고 위축되고 도망가고 싶겠지만, 그게 답이 아니다. 도리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창조자의 지혜를 바탕으로 기준을 바로 세우고, 분별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여기서 키는 ‘분별력’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분명히 드러난 자리인 성경말씀을 가지고, 남들이 다 옳다고 하는 것 중에서도 문제점을 놓치지 않고, 나쁜 것 속에서도 좋은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갖추는 교육은 다른 말로 신앙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 가정이라면 이런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울까? 특히 이런 세상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세상에 더 많이 끌리고 있는 젊은이들을 향해서는 이런 교육의 중요성은 당연히 강조되기 마련이다.
상황: 세속화시대의 도전
그러나 우리 시대는 이러한 필요성을 전 시대보다 더 절박하게 경험하고 있다. 적어도 신앙가정의 경우는 그렇다. 챨스 테일러라는 캐나다 철학자는 현대사회를 ‘세속화 시대’라고 정의했다.
세속이란 말은 쉽게 생각하면 종교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사회가 덜 종교적이 되었다는 말이 뭐가 새로운가? 개인, 사회, 역사를 보면 그런 경향이 전혀 없었던 적이 과연 있었나? 교회가 사회를 지배했다고 말하는 서구 중세사회에도 수도승이 숨어서 술 먹는 것 같은 세속적인 모습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서구 역사는 전반적으로 교회보다 왕이나 국가 같은 세속의 힘이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왔다. 그 결과, 학교나 정부 같은 공적 영역에서 종교적인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을 ‘공정하게’ 여기게 되었다.
종교는 공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꺼리는, 개인 문제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테일러는 현대사회가 이보다 한발 더 나갔다고 지적한다. 이제는 공적 영역뿐 아니라, 개인의 가치나 생활 속에서도 종교적 영향이나 기독교적 가치를 불편하게 느끼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호주 역사를 살펴보면, 호주사회도 원래 신앙적 영향력이 강한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사회, 가정, 개인의 이상형으로 받아들였고, 현실에는 적용하기 힘들어도 추구하면 좋은 모델로는 생각해 왔다. 그런 점에서 호주도 다른 서구사회처럼 ‘기독교 문화’를 가진 사회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이상과 형식조차 완전히 걷어차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호주사회도 보편적으로 기독교적 희생, 사랑, 양보, 양심, 정직, 헌신, 공동체 등 이런 가치나 이념을 당연하거나 이상적으로 보던 시대는 지났다.
희생보다는 철저한 보복을, 양보보다는 경쟁에서의 승리를, 정직보다는 사기나 악용을, 영혼보다는 당장 앞의 물질적 만족이 더 좋은 것이라고 찬양한다.
이제는 남녀가 가정을 이루는 대신 동성 관계를 건강한 혹은 더 낳은 관계로 보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서구사회는 북한처럼 교회를 다닌다고 탄압을 받지는 않지만,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특히 미디어를 통해서 조롱거리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바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이 말이다.
상황: 상업주의와 세계관의 홍수
그러나 테일러는 서구사회가 기독교없는 사회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기독교 대신 온갖 잡다한 새로운 신종교들이나 음모론 같은 유사 종교에 매여산다고 지적한다. 그 속에서 과거 기독교가 제공하던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기대를 포기한 대신, 현실의 필요와 만족에만 매달려 사는 사회가 되었다고 우려한다.
기독교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프랑스 문화평론가 길레스 레포핏스키도 한걸음 더 나아가, 여러가지 다양한 현대의 현상 뒤에는 결국 극단적인 개인주의만이 남아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이런 경향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런 추세를 극단적으로 더 만들어 버린 것이 바로 인터넷이나 핸드폰 같은 기술혁신, 미디어 문명이라고 지적한다. 불행히도 이 미디어가 우리 아이들의 주된 교육 도구가 된지 오래다.
(중간 캡) 과거 기독교가 제공하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대신해, 현실의 필요와 만족에만 매달려 사는 사회가 되었다.
2015년 호주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은 12-13세 까지 주중 평균 하루 3시간, 주말 평균 하루 4시간, 깨어있는 시간 중 30%를 스크린을 보면서 산다. 보지않는 사람도 있으나 보통사람들은 이보다도 훨씬 더 본다는 뜻이다.
실제로 집과 차는 없어도 모발폰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성인 세대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 세대를 우리는 아이젠이라고 부른다. 1995년이후 태어난 아이들, 다시 말해 청소년기를 인터넷과 모발폰을 달고 다녔던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되었고, 이들이 이제 자기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고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전 세대에 비해 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고, 사이버 공간을 통해 이름도 모른 채 만나는 수많은 ‘트위터’들의 인기에 민감하고, 주어진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기 힘들어하고, 실제로 사회와 직접 부딪히기 보다는 비쥬얼 리얼리티를 더 편안하게 느끼고, 사람과 만나는 수고보다는 문자로 하는 간접적 대화를 더 좋아한다. 동시에 우울증과 자살율도 높고, 위험을 무조건 피하고 사회적 불의나 압력 앞에서도 수동적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인터넷 기업의 수장들이나 미디어 엘리트들은 자기 자녀들에게는 인터넷이나 모발폰을 ‘절제’하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도 자기들이 만든 도구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지배하려면, 먼저 지배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지배당하는 쪽에 가까운 우리로서는 마음이 편치않는 대목이다.
다음 시간에는 1. 무엇이 문제인가 (4)가 이어집니다.
김석원 목사
- 로뎀나무아래 디렉터,
- 전 호주동아 논설주간,
- 한호일보 편집 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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