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
월요일 아침. 이번 주 칼럼의 화두를 잡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쇼킹한 뉴스가 떴다. 한국의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의 자살 소식이다. 정말 놀랐다. 내가 좋아하던 정치인이셨다. 혼탁한 정치판에 오래 몸 담아 왔으면서도 진정성 있는 자기 성찰과, 초심대로 살지 못함에 대한 공개적 참회를 할 줄 아는 분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현행법을 어기게 되었고, 실수를 감추다가 거짓말을 하게 되었으며, 그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남겨 놓은 유서를 읽었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해 주십시오.”
아쉽다. 어리석었던 선택을, 죽음이라는 또 다른 선택으로 종결지어 버렸으니 정말 아쉽다. 이제는 그 분을 추모하는 것 외에 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다음 인용하는 기사에 내 마음을 얹는다.
“노 의원이 잘못을 깨끗하게 시인하고 사과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합당한 처벌을 받은 뒤에 그 법의 현실적 개선에 앞장설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한때의 비난은 있었겠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와 한국 정치에 더 큰 기여를 하는 길은 아니었을까?”
2. 연약함
고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 계실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추기경님은 여러 나라 말을 다 잘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느 말을 가장 잘하십니까?"
추기경은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말? 내가 가장 잘하는 말은 거짓말이지."
물론 거짓말을 장려함이 아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어찌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어찌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선 자리를 알아야 한다. 너무 높은 곳에 자신을 올려 놓으면 바람 잘 날이 없고, 그러다가 떨어질 뿐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낮은 곳에 내려가 하늘의 자비를 구할 뿐이다.
3. 회복
요새 한국의 예능프로 ‘도시 어부’를 재미있게 본다. 왕년의 최고 인기배우 이덕화씨가 대표 선수로 나온다. 이경규씨나 마닷에 비해서는 물고기를 많이 잡지 못하지만 오랫동안 낚시를 해 왔으니 그가 대장이다.
이 프로가 많이 뜨니까 또 다른 예능 프로에도 초청되어 인생 사부로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최고로 잘 나가던 전성기 시절 25살 때, 신나게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났다. 3년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매일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는데, 그를 구해 준 여성이 있었다. 한 동네 친구일 뿐, 미래를 약속한 사이도 아니었다. 생사도 미래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녀는 병실에서 먹고 자며 간호했고 결국 살려냈다. 둘은 결혼했고 평생의 동반자가 된 그녀에게 이제는 66세가 된 이덕화씨가 이렇게 고백한다.
“지금까지 산 게 다 사랑 덕이다. 사랑은 천국의 일부분이다. 3년 동안 병상에 있는 나를 하늘에서 아내가 내려와 살렸다.”
죽다 살아난 인생 사부의 진솔한 고백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기 절정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4. 미완성 교향곡
요새 반복해서 계속 듣고 있다. 슈베르트가 26살에 쓰다가 그냥 방기해 버린 교향곡이다. 그럼에도 세계 3대 교향곡 중 하나다. 수십 번 반복해서 들어도 전혀 흠 잡을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좋아진다. 그래서 역설을 발견한다. 미완성의 인생도 버티다 보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고. 그러니 오늘의 결론이다.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고.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리는 왕이나, 물이 나올 때까지 우물을 파는 인부처럼, 죽을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래야 회복할 기회가 온다. 그러다 보면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다.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담임 목사) holypill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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