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건강식품을 제조하는 A는 3년 전 한국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 식품 박람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한국인 바이어 B를 만났습니다. B는 한국에서 소규모 화장품 유통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호주산 건강식품도 추가로 취급하고 싶다며 A가 호주에서 가져온 샘플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후 호주로 돌아온 A는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B와 구체적인 수출입 조건에 대해 논의했고, 그 결과 우선 소량으로 5천개 정도의 건강식품을 한국으로 수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한국으로 수출된 A의 건강식품은 예상 외로 불티나게 팔려나가 B는 주문량을 계속 늘려갔고 이렇게 1년 간 A와 B는 소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B는 물건을 수입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운송료와 통관료가 아깝다며 아예 1년 치 주문할 물건을 한꺼번에 보내달라고 A에게 요구했고, 대신 결제 대금 중 절반은 물건을 팔아서 3개월 내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B와의 사업 관계에서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다고 판단한 A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1년치 주문량에 해당되는 물건을 한국으로 한꺼번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B는 물건을 받고도 3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차일피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대금 결제를 미뤘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A는 B에게 대금지급을 즉시 완료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통보했는데, B는 적반하장 격으로 A가 보낸 상품이 한국에 제때 도착하지 않아 한국 내 소매상에게 납품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상품 중에 불량이 많아 판매에 차질이 있었다며 오히려 손해 배상을 해 달라고 생떼를 썼습니다. 결국 A는 B를 상대로 소송을 하기로 결심하고 B회사의 소재지이자 보낸 물건의 대부분이 보관되어 있던 인천의 지방법원에서 물품대금 지급 청구소송을 시작하였습니다.
A와 B 간의 소송은 A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는데 문제는 법원의 판결을 받고 난 후였습니다. 법원은 B에게 체납된 결제대금액에 더해 지급 지연 이자까지 A에게 지불하라고 명령했는데 정작 B는 법원의 명령을 이행할 기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강제 집행 절차를 알아보던 중 A는 B가 이미 본인 재산을 오래 전에 해외로 다 빼돌렸고 한국에는 자신 또는 회사 명의로 된 재산이 거의 없음을 알고 망연자실했습니다. 당연히 B가 한국에서 건실한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소송을 했는데 소송 시작 전 B의 재산 조회를 철저히 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평소 B와 사이가 좋지 않던 B 회사의 직원 중 한 명이 A에게 귀뜸해주기를 B의 아내와 아이들이 수년 전부터 호주에서 유학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보를 접한 A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B명의로 된 재산이 호주 내 있는지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조사 결과 5년 전에 호주로 유학을 떠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A가 본인과 아내 공동 명의로 시드니 외곽에 집을 구매했던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마침 B는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시드니에 들어와 체류하고 있었고, A는 변호사의 조력을 얻어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을 NSW 대법원에 등록하는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법원은 A의 변호사가 제출한 서류를 검토한 후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을 호주 내 등록해주었고, 이후 A는 이 판결을 근거로 B와 B의 아내 소유의 집을 압류하는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A의 압박이 계속되자 B 는 결국 계속 버티지 못하고 A에게 판결 금액 및 이자, 법률 비용까지 모두 지불하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이렇듯 소송에서 이겼다고 해도 법원 판결이 내려진 국가에 상대방이 유의미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 경우, 판결 금액을 받아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외국법원의 판결을 재산을 은닉한 국가에 등록하여 강제 집행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호주 법원은 많은 국가의 법원 판결을 호주에서 승인, 등록해주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그 근거가 되는 법령이 외국판결등록법 (Foreign Judgments Act 1991 (Cth))과 외국판결등록시행령 (Foreign Judgments Regulations 1992 (Cth)) (FJR)입니다. 현재, FJR 상으로는 한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호주에서 판결을 인정해주는 국가이며 미국이나 중국 등은 아직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금전적인 판결 외 비 금전적인 판결 (예를 들어, 특정 행위를 유지하라는 명령 등)은 호주 내 등록이 어려우며, 외국 판결은 반드시 최종적 (불가역적) 이어야 합니다. 외국 판결의 호주 법원 등록은 외국 판결일로부터 6년 내 호주 각 주/준주의 대법원(supreme court)에 신청해야 하며 제출 서류가 사안에 따라 상이하고 법원의 판단 기준이 까다로워 반드시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면책공고: 본 컬럼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필자 및 필자가 소속된 법무법인은 상기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로 인해 발생한 직/간접적인 손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상기 내용에 기반하여 조치를 취하시기에 앞서 반드시 개개인의 상황에 적합한 법률자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문의: H & H Lawyers Email: Noel.Kim@hhlaw.com.au Phone: +61 2 9233 141
김현태 (H & H Lawyers 변호사/상표변리사) Noel.Kim@hhlaw.com.au
(02) 8876 1870
info@hanhodaily.com
http://www.hanho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