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창에 ‘형제의 난’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롯데그룹, 현대그룹, 두산그룹 등 재벌 그룹들의 이름이 줄줄이 연관 검색어로 나옵니다. 과거 왕조 시대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들 간의 싸움을 빗댄 말이 근래 들어서도 재벌가 2세, 3세 형제간 경영권 다툼에서 꼭 맞게 쓰이고 있습니다. 옛말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돈과 권력 앞에서는 힘을 못쓰나 봅니다.
이번 칼럼에서 살펴볼 금호그룹의 경우도 형제의 난을 겪었는데 상표권을 두고 형제간 소송도 벌이는가 하면 현재 금호타이어의 매각 과정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금호석유화학 등 약 28개의 계열사를 가진 금호그룹은 창업주 故 박인천 회장의 타계 후 형제간 지분을 균등하게 갖고 공동경영을 하는 가풍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4대 회장으로 취임한 3남 박삼구 회장이 2006년 대우건설, 그리고 2008년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호석유화학을 맡고 있던 4남 박찬구 회장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두 회사를 인수한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국제금융위기와 맞물려 유동성 위기에 처했고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했습니다. 박찬구 회장은 유동성 위기가 금호석유화학으로 옮겨오는 것을 막기 위해 분리경영을 선언했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 격인 금호산업의 지분을 매각한 후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 모았습니다. 이에 격분한 박삼구 회장은 임시이사회를 열어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두 형제간 고소, 고발 등 난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단 호수라는 뜻의 ‘금호’는 창업주 박인천 회장의 호로, 1972년 금호산업의 전신인 금호 실업 시절부터 사용해왔다고 합니다. 이후 상표권은 금호타이어에서 금호산업으로 양도되었고, 2007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의 양대 지주회사로 출범하면서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와 소위 윙마크 ‘ > ‘ 의 공동 상표권자로 등록했습니다. 다만, 금호산업이 그룹 전체의 지주사 격으로 상표 사용료를 징수했는데 금호석유화학은 공동소유권자이면서 사용료를 내는 모양새가 이상해서 양사 간 금호 브랜드의 실소유권은 금호산업에 있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간 사이가 좋았을 적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형제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에 상표 사용료 지급을 거절했고 급기야 금호산업은 금호석유화학에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밀린 상표 사용료 261억 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로 금호석유화학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두 회사 간 명의신탁 약정이 있음을 인정할 수 없고, 두 회사 간 상표권 관련 합의서는 상표사용료 징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적 장치에 불과하다며 두 회사의 상표 공동소유권을 인정했습니다. 1심 판결 직후 금호산업이 항소했으나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사이가 화해분위기로 접어들면서 상표권 관련 분쟁은 조정 절차로 전환됐습니다.
한편,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그룹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근 알짜 회사인 금호타이어의 매각을 추진했는데 우선협상자로 중국의 더블스타 타이어가 선정되었습니다. 더블스타 측과 산업은행은 매각 금액 등에 있어서 일찌감치 합의하고도 상표 문제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인수 협상이 수개월 간 지체되었습니다.
더블스타는 중국에서 통하는 ‘금호’ 브랜드를 사용하고 싶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고려하여 향후 5년간만 금호라는 브랜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추후 15년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서 매출액 대비 0.2%를 로열티로 지급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문제는 해당 상표권이 금호타이어에 있지 않고 금호산업에 있기 때문에 산업은행은 상표권 이슈를 금호산업의 동의하에 처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은 상표 의무 사용 기간 최소 20년, 로열티는 매출액 대비 0.5%를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했습니다. 이에 신속한 매각을 원하는 산업은행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어 금호산업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고 더블스타가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 차액을 일시에 보전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초 산업은행이 더블스타로부터 받기로 했던 매각 대금 9,550억 원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면,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은 앉은 자리에서 향후 20년간 상표 사용 로열티로 약 3천억 원 (금호타이어 연매출액 3조 기준 가정 시)을 손에 쥐게 될 것이고, 중국의 더블스타는 헐값에 알짜 한국 회사를 인수하게 된 셈입니다. 결국, 손해를 보게 된 건 산업은행인데 기업 간 인수합병에서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상표권 문제를 사전에 확실히 해두지 않아서 이런 난감한 지경까지 온 것 같습니다. 즉, 금호산업이 금호 브랜드의 소유주로서 금호타이어 매수 시도 전 상표권 사용 관련 허용 의사를 밝혔다고 하나 산업은행 측이 구체적인 조건을 타결짓지 않은 채 섣불리 외국 회사와 매각 협상에 나선 탓에 결국 박삼구 회장의 벼랑 끝 ‘상표’ 전술이 통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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