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단상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무엇을 써야할지 어떤 주제나 감정의 실마리 등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당혹스러웠다. 단상 때문이 아니다. 삶속에서 생각을 추구하고, 그 생각이 삶을 이끌어야 된다고 다짐해 온 때문이다. 지난 두어주간은 분주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니, 그저 해야 할 작은 일들과 몇가지 약속 등으로 요약된다. 내 삶과 이웃, 세상을 보는 어떤 생각이나 깨어있는 의식없이 그냥 먹고 마시며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윤동주의 서시 가운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식민지 시대의 착취와 가난, 슬픔 등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는 부끄럼없이 살다 간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과 선열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깊이 고뇌했던 감성이 그런 시 속에 흠뻑 배어나고 있다.
내가 자신과 이웃, 그리고 친구들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그런 수준의 삶 살기를 기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피곤한 목표가 될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과 다른 삶의 가치와 스타일을 대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적당히 느슨해지고 관용적인 태도를 배우게 되었다. 다만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규범에서 벗어나는 부끄러운 삶이나 현상 등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선교의 열정이 없는 호주교회들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너무 개신교회 중심적이고, 인간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서, 양적 부흥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인교회들이 안타깝다. 그것은 주님의 몸이요, 순교자들의 피가 씨앗이 된 교회의 모습이나 기품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시드니에 있는 한인 천주교회와 개신교회 중에서, 독립예배처가 있고 교인수며 재정 등이 많은 몇개의 큰 교회 중에서 금전 문제, 여자 문제, 규정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다. 직접 관련있는 사람들에게 들은 것이 아니므로, 왜곡되고 과장되어 전해진 것도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이런 유감스러운 일들에 목회자들이 직접 간접으로 연관되었으며 그 중에는 이미 호주 법정까지 고소되었다니 법에 따라 최종 시비가 가려질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교회도 보통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돈이나 여자, 규정 문제 등이 전연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에 그러했듯,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 중의 하나이다. 그런 와중에서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직접 관련된 교회와 목회자와 그 가족들이다. 또한 모든 논쟁의 진위는 부분적이나마 세상 법정에서 밝혀질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어느날엔가 주님께서 친히 투명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공평하게 판단해 주실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거나 누구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연 없다.
다만 한가지, 관련된 목회자나 교회가 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부끄럼 자체는 부정적인 의미가 크다. 그래도 부끄러움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비정상이요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럼을 덮고 변명하려는 것은 세속 문화와 풍속을 따르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형태의 치유도 소망도 없는 줄 안다.
은퇴자이지만 아직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로서 그리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선생으로서 개인적으로 부족함이 많은 자임을 고백한다. 어느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한국에 사는 외국 이주민들과 유학생들이 우리말을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솔직히 나보다 훨씬 더 잘해서 부러웠다. 고국을 떠나 산지 오래 되었다고, 모국어 어휘들을 잊어가며, 단순한 표현들도 어눌한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러웠다. 반면에 영어로 말하고 사역한 연수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영어가 불편한 자신을 보며 또 다른 부끄러움을 느낀다.
미국 휴스턴의 허리케인과 홍수 피해가 심각하다. 어제 밤, 그곳에 사는 아들과 통화했다. 아직 집이나 전기, 수돗물도 괜찮지만 학교며, 직장, 수퍼마켓이 문을 닫았고, 2-3일 비가 더 오리라 예상된다고 했다. 아침에 인터넷 뉴스를 보니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이 속보 기사로 나온다. 휴스톤에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와 사진을 보았다. 홍수난 자기집 거실에서 물고기를 잡은 한 남자에 대한 것인데, 제법 큰 물고기를 들고 환히 웃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다. 홍수로 인한 시름보다는 호탕한 웃음과 여유가 넘치는 그의 표정이 너무 좋다.
아침 해가 뜨기전, 뒷마당 울타리 너머 숲속에서 한 무리의 새 떼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며 소란을 피웠다. 무언가 흥겨운 일이, 신나는 뉴스가 있는 것일까? 지금은 그 해가 조금씩 더 높이 떠오르고 있다. 새들은 어디론지 다 가고 없고, 바람 한점 없이 햇살만 가득하다. 늘어진 야자수 가지와 잎들까지 작은 흔들림도 없다. 그 풍경 뒤로 하늘과 구름까지 끼어들어 하나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 숙연한 고요함과 평화를 보며 문득 내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금 내 안에, 자연이 보여주는 그런 고요함과 기쁨, 평화가 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교회와 목회자들이 연관된 그런 풍문, 한국의 불안한 정세, 그리고 휴스턴의 홍수 등으로 인해 내 안에 작은 바람이 일렁이고, 밝은 햇살 대신에 무거운 구름이 끼어 있는 탓인가 보다.
“주님, 부끄럽습니다. 저에게 그리고 필요한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최정복 (호주 연합교회 은퇴목사)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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