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트니 차들이 질주하고 나무위에는 새들이 지저귄다. 그렇듯 뭇 생명들은 밝음의 기운을 받아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것이 살아있음의 일차적 현상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움직인 만큼의 대가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것이 충족되면 정서적 안정을 추구하려는 2단계를 지향한다. 코리안가든(Korean Garden) 건립목적의 경우, 그 2단계의 성취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벚꽃이 필 때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어번의 재패니즈가든(Japanese Garden)을 둘러보면서 우린 왜 이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을까하는 비교 하위적 아쉬움에 젖어 들곤 했었다. 그러한 마음이 함께한 바탕이 코리안가든의 건립을 희망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0년 전 2007년도에도 그 문제로 인해서 소란스러웠다. 그때 필자는 신병 치료차 한국에 가 있었다. 어느날 법등 주지스님이 내 처소를 방문했다. 그는 몇 장의 서류를 내어 보이면서 장황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코리안가든의 건립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어 왔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스트라스필드 카운슬(Strathfield Council)에서 부지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가 나왔고 그 규모가 3만평 정도 된다고 했다. 그 부지 중 일부에 정법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조건은 조계종에서 정원건립 비용을 전부 충당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면서 열변을 이어갔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그가 그렇게 힘주어 말할 수 있는 배경은 매우 간단했다.
그 당시 문광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와 구룡사 정우 스님과 상당히 친분이 있는데다가 며칠후 면담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 때에 문화정책 차원에서 코리안가든 경비를 건의해 보겠다고 말을 한 것이 전부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소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특정 종교 단체로 정부 돈을 지원 받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란 말만했다. 그 뒤에 시드니 현지에서 그에 대한 언론 보도를 알아보니 비슷한 상황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정우 스님에게도 전화를 해서 알아보니 그 장관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호주에선 거대 종단을 들먹이면서 그 큰 자금이 마련되어 있는 줄 알고 주도권 다툼으로 시비를 벌이고 있었으니 정말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기독교계에서 반대해서 그 사업이 무산되었다는 식으로 책임 전가를 하면서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꼭 10년 후 2번째의 시도에서는 자유당 시의원들의 지지로 다소 조직적으로 여러해 동안 애쓴 흔적은 있지만 최근 아쉽게도 또 다시 절망적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왜 두 번째의 실패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하긴 재수, 3수도 있고 7전 8기도 있다. 그렇지만 우린 그런 실례를 들어가면서 우리 교민 스스로를 위로만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은 의지력만 강화시키는 성실함만 있으면 다음을 바라볼 수 있지만 우리 한인사회는 도리어 무기력에 빠지면서 불신감이 조장되어 그에 대한 응집력이 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많은 교민이 희망하는 코리안가든 건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주에 발간된 모 월간 잡지에 이런 기사가 게재됐다.
지금 경영난에 빠진 코카콜라의 새 CEO로 입명된 제임스 퀸시(James Quincey)는 "실패하되 똑똑하게 실패하라"는 말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 멜론 머스크 역시 "실패는 하나의 옵션이다"라고 했다. 더 나아가 G&P라는 세계적인 회사는 실패를 통해서 깨달음을 준 직원이나 팀에게 영웅적 실패상을 수여하면서 직원들의 도전 정신을 키운다고 했다. "다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있다. 똑똑한 실패가 필요하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언급한 똑똑한 실패는 그 실패적 결과를 통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었다. 그 실례를 7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중에서 코리안가든의 경우에 가장 적합하게 느껴지는 것은 5번째의 것이다. "불확실성을 통제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시점에서 해소해야 할 불확실성의 수는 최소화될수록 성공의 비율은 높아진다"라는 부분이다. 이에 견주어 보았을 때 코리안가든 건립추진위가 구성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재원 조달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이에 대한 동포 사회의 우려에 대해서 그 불확실성이 얼마나 해소되었던가?
이 부분에서 애쓴 당사자들은 좀 서운해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건립기금 마련엔 무관심 하면서 잘 안 되면 뒷전에서 타박만 일삼는다고..
그렇듯 냉소적인 것은 우리 한인 사회가 그동안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책임을 그 어떤 대상에게 떠넘기기 바쁘다보니 서로간의 불신만 가중됐다. 이른바 ‘멍청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면 왜 그런 일이 반복되고 있을까? 일단은 주먹구구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이라는 점이다. 가령 2천만불의 소요 경비가 필요하다면 그 절반 정도라도 확보해 두고 시작해도 주민 반발 등 여러 저해 요소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거의 5년 동안 모은 기금이 5만불도 안 되는 소액으로 기천만불의 공사를 하겠다고 발표한 한인들이 아니었던가! 그저 막연한 생각만으로 정부 기관과 대기업과 연결하면 어느 정도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거나 명분뿐인 자매결연 도시에서도 얼마만큼의 보조가 있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계산으로 일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저 식당 머리에 앉아서 가상적인 관념에 사로잡혀서 그 큰일을 해 내겠다고 사진을 찍고 기사를 내 보내서 그 만큼 우려의 폭은 더 넓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에 대한 대안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필자의 생각은 건립 추진을 아예 그만 두는 것이 최고의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한인 사회의 현재 상황으로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 근거는 불신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신용을 상실한 사회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설령 그 어떤 일이 뜻대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곧 분열과 시비를 낳게 된다. 그 바탕이 불신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포사회에서 가장 유력하고 합심이 잘되는 곳은 종교 단체이다.
그곳에 가면 힘 닿는대로 상당한 성금을 낸다.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만일에 코리안가든의 건립에 우리 동포 모두가 공감을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되겠다는 신뢰가 형성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합심해야 된다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1만 세대가 1천 달러씩 1년동안 납부하면 1천만불의 기금이 마련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의 시드니 동포 사회에선 그런 일을 맡을 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신뢰지수가 낮아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일단은 개개인의 사업에 충실하게 일하면서 부를 축적하고 서로간의 신뢰를 돈독하게 쌓을 수 있는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래서 복, 덕이 많고 지혜있는 인사들이 출현해서 흩어진 동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남의 곳간을 넘어다보면서 우리 집을 지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접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코리안가든을 설계하는 당당한 한인으로서의 자세가 확립될 것이다.
그 언제쯤 3번째의 코리안가든 건립 움직임이 성사되어 무궁화 동산을 거닐면서 한인됨의 자긍심을 느끼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후 스님(정법사 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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