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 처럼 출장을 다녀 오는 길에 장모님의 집에 들러 며칠을 묶었다. 86세가 된 장모님은 지난 번 만났을 때 보다 눈에 띄게 노쇠해 지셨다. 여느 남자 이상으로 대장부같았는데, 어깨와 허리가 굽고 팔 다리가 가늘어지고, 갸름한 미인 형의 얼굴엔 늘어진 주름과 검 버섯으로 노인의 모습이 역력해지셨다. 허리와 무릎이 약해서 의자에서 일어나려면 주위 사람이 거들어 주지 않으면 거동하기가 어렵다. 화장실을 자주 가야하는데 그 때마다 힘들게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밥을 차려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돌아서는 가녀린 뒷 모습을 보니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무정한 법칙 앞에 서글픈 마음이 든다. 다음 번에 뵐 때면 더 거동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하니 아무 것도 도울 수 없는 나의 무력감이 허탈하기만 하다. 내가 아침에 집을 나서면 처남 가정이 돌보는 시간만 제외 하고는 저녁이 될 때까지 줄 곳 혼자 집에 계신다.
‘인생을 생로병사’라고 말했다. 인간은 태어나고 늙고 병이 들고 나중에 죽는다는 말이다.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돈이 많아도 학문과 명성이 있어도, 위대한 업적과 막강한 권력이 있어도 모두 늙고 병들고 죽어 가기 마련이다.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의 모습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다. 화려한 인생의 수려함이 있었어도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인생은 없다. 혼자 올 곧이 직면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외다리 길이다. 아마 이번이 장모님 댁에 머무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혼자 있기 싫어도 함께 있어 주기를 부탁할 수 없는 것은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움만큼 안타깝다. 만나는 것이 반가와도, 도울 길은 없고 오히려 노인에게 부담만 드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혼자 다니는 여행은 때로 바쁜 현실을 벗어나는 일탈의 자유를 맛보게 하지만, 혼자 다니는 길은 줄 곳 외로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이 담겨진 장소는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결혼 초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결혼 준비를 하느라 옷이며 살림살이들을 챙겨 주고, 집엘 가면 사위가 왔다고 한 상 그득히 저녁을 차려 준 무뚝뚝한 것 같은 장모님의 진심은 세월이 지나도 늘 마음에 남는다. 함께 웃으며 순박하게 보낸 그 순간들의 소중함은 혼자 남았을 때 더욱 그 진가를 깨닫게 한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흘러간 음악을 들으면 젊은 시절의 단편이 추스려지듯, 우리는 혼자 다니는 길에서 옛 향기를 기억하고 옛 추억을 생각한다. 그리고 없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잘 해 주지 못한 것을 끔찍이 후회한다. 장모님에게 저녁마다 새 과일을 사 들고 들어가는 것은, 좋은 것이 뭔지 둔한 내가 할 수 있는 그나마의 후회 방비책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아픈 것이 서글프다. 인생의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 같은 소외됨이 섭섭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죽음을 생각하면 슬프고 두렵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3:16)”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세계, 더 이상 죽음이 없는 세상을 예수가 우리에게 주었다는 약속이다. 예수가 선물하는 하나님의 세계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크고 놀랍다.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는 비밀이 예수에게 있다.
장모님이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새 길을 가신다고 생각하니, 어둡고 슬픈 마음은 사라지고 ‘축하드릴 날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밝고 기쁜 소망의 빛이 내 마음에 비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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