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이 금주 어렵사리 한국 국회를 통과했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할 뿐더러 그간 잡음도 많았으니 성급히 축하할 수는 없으나 모처럼 의욕적으로 출범하는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봐 일단 잘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간의 사정에 대하여는 보도가 많았으니 따로 쓰지 않겠다. 이 글은 그에 대한 해외 한인 한 사람의 여적(餘滴)이라고나 할까?
그의 총리 자질을 놓고 야당 쪽이 내놓은 시비 사항은 (1)위장전입, (2)부인의 그림 강매, (3)재산신고 누락, (4)동아일보 기자 시절 12.12 사건을 주도한 전두환씨를 위대한 영도자로 보도했다는 비난이다.
그간 국회에서와 언론의 찬반 논란은 앞 세 가지에 집중되었고 마지막 언론인으로서의 전력은 뜨거운 감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그 마지막에 더?있다. 나라를 멍들게 하는 기회주의의 한 사례로서, 언론을 발판으로 정치에 입성한 전직 언론인들을 비판한 글을 과거 여러 번 썼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의 서두 부분을?먼저 인용해야겠다.
- 누군가 과거 자료를 모아 조사, 연구를 하면 확인되겠지만, 한국에서처럼 역대 정권의 정치인, 고위 행정각료, 고위 기관장과 단체장 직책에 학자와 언론인이 많이 등용(?)된 나라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혹자 왈, 그거야 이들 학자와 언론인의 지식과 경륜이 뛰어나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특히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학자와 언론인은 뛰어나지 못해 한 길을 걷는 것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학자와 언론인이 정계와 관계(官界)에 들어가는 것이 왜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나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에 맡겨두면 되는 직종이 있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는 후자에 속하는 언론인과 학자에 대하여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은 사회가 나갈 길을 밝히고 정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권력과 돈에 맛을 들이는 순간, 그런 숭고한 역할과 책임과 이상은 증발하고 만다. 어느 나라에서든 정부는 정권에 삐딱한 인사를 밖에서 영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원래 직업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닌 사람이 아성(牙城)에 들어가겠다면 그 쪽을 향하여추파를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부터가 벌써 그들의 책임과 본분을 망각하고 언론의 독립을 저버리는 행위다.
이번 정권에도 학자(교수)들이 기다렸다듯이 대거 좇아 들어갔지만 그 이슈는 일단 접어둔다. 언론의 기능 가운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게 정권에 대한 감시다. 미국의 언론학계와 언론계는 이 점에서 매우 철저하다. 그래서 ‘감시견(watchdog)’이란 말도 만들었다.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크게 봐 갈등 아니면 협조인데 미국 언론은 대체적으로 전자를 택하는 편이다. 한국 언론의 과거 패턴을 보면 정권 초기는 밀월여행을 하다가 레임덕이라고 하는 말기 현상이 오면 일제히 헐어 내리는 식이다.
그간 매번 새 정권 때마다 그 많은 언론인이 변절을 한 데는 중간 간부를 지나면 장래가 막히는 편집국 내부 사정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정권을 향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마저 불러대며 발탁되어 가는 기회주의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새 총리에 바라는 것은 어렵게 재상 자리에 올랐으니 과거야 어찌 되었든, 아니 과거 허물을 벗는다는 아픈 심정으로 나라를 위해 남기는 새로운 기여와 공헌이다. 대통령 중심제 아래에서는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뭐라 적혀있든 총리의 권한과 역할은 실제적으로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모든 걸 손수 다 지시하거나 처리하지 않는다.
특히 밖에 나와 사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국의 재외동포정책 같은 경우는 구체적 수행은 대통령은 물론 총리도 잘 알지도 못하고 주무 관청의 입맛에 따라 구태의연하게 이어져가는 게 현실이다.
관존민비(官尊民卑)란 말과 의식구조는 해외에 나와 있는 1세 한국인들에게도 그대로다. 그와 가까운 말이 관숭배(官崇拜)다. 말이 좋아 관숭배지 실은 관에 밉보여 좋을 건 없다는 체험에서 배운 지혜가 아닌가 한다.
재외동포들은 고국의 관할 밖이며 현지에서 생계를 마련하고 또 호주 같은 맑은 사회에서 비리로 해먹을 것은 없다. 그러나 고국은 멀리 하겠다면 몰라도 뭘 하겠다면 공관이나 고국 정부에 우호적이어야지 아니면 불리하게 되어 있다. 이점 재외동포정책은 사각지대다.
사각지대는 고국에도 널려 있으나 거기에는 국내 언론이나 다른 방법을 통하여 정부의 관심을 끄는 길이 열려 있다. 해외 한인사회는 다르다. 고국에 목소리를 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총리는 이런 숨겨져 있는 영역도 눈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그 많은 중앙 행정 부처 장관과 고위 행정 고위직 자리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존재해야 할 한가지 이유가 아닌가 싶다.
김삼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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