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오늘 열쇠 건네받았습니다.” 그의 음성엔 기쁨과 함께 희망의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 온지 15년이 가깝도록 다섯식구와 함께 렌트 집을 전전 하다가 이제서야 자기명의의 집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그럴만한 일이기도 하였다. 속담에 '이발을 하면 하루가 즐겁고 새 옷은 한 달간, 새집은 일 년간의 행복감을 선사한다'고 하였고 '일생을 잘 살려면 마음을 잘 써야 된다'고 일렀으니 제집을 가짐은 그만큼의 상당한 수준에 다달았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이따금씩 자기 집이 없어서 불편함을 털어놓는 지인들에게 비 안 맞을 공간만 있으면 만족하고 고마워하면서 그저 건강해서 화합된 모습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니 내 집과 남의 집을 따지지 말고 잘 지내라는 격려의 말을 하곤 한다. 허나 그런 말은 머리 깎고 혼자 살면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뜨내기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지 일주일 수입의 절반이나 집세로 지출해야 되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겐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될 것이 뻔 한말이다. 그만큼 열쇠 속에 담겨져 있는 자기소유의 집은 당사자에겐 매우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심·신의 안정과 평화로움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곁들여 내 것이라는 주인의식과 특정 공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허용의 뜻도 함께 내포되어있다. 그런만큼 그 집의 사용자가 바뀌게 될 땐 정해진 바의 절차를 거친 후 마지막에 서로가 열쇠를 주고받음으로서 새 주인과 전주인의 관계가 끝을 맺게 된다. 그래서 열쇠를 주고받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으로써 새롭게 출발하는 기점이 되기도 한다.
개개인의 들고남은 그러하거니와 공공기관은 어떠한가? 인수인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최근 한국에선 인수인계 절차가 생략된 채로 신·구주인이 바뀌게 되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만일 개인이 열쇠를 받지도 않고 남의 집에 들어갔다면 무단침입 등의 범죄행위에 해당 될 것이며 공공기관의 경우는 그 위에 공무방해 등등의 또 다른 죄목이 더해질 것이다. 그렇듯 정해져 있는 합리적인 절차를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과정은 또한 그 만큼의 불합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거와 현재적 결과가 그러하다면 미래 또한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봐야한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적 연속선상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현상적 모습들은 미래라는 일치된 선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인연의 합리적 법칙이기도하고 또한 인과응보의 기운이기도하다.
그렇게 된 결과엔 그 만큼의 국민적 아픔이 있었으며 국가적 망신으로 국격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 모든 것들은 우리 국민 개개인의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서로서로 패거리를 지어서 권력집단에 대한 찬·반으로 인한 증오와 찬탄의 기운을 얼마나 축적해 왔던가? 그런 비합리적 사고로인한 언행과 감정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 바로 지난해의 탄핵정국이다. 우리 국민의 저급한 정치수준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너나없이 떼를 지어 방조해왔고, 국제적 망신을 더 당하도록 두 패가 되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됐다.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이며 우리 후손들에게 불신과 불만, 증오심을 키워주는지는 까맣게 잊은 채로 그저 삿대질을 해됐으니 민망스럽기가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일련의 아픈 과정을 거쳐서 이제 새 주인이 탄생했다. 그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국민통합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나왔다. 참으로 희망찬 구호이며 멍든 가슴을 어루만져줄 폭넓은 화합의 메시지다. 그렇다면 인수인계의 절차가 없어진 채 새 주인의 책임을 맡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간소화된 석상에서의 그의 감회를 들어 보려는 국민적 관심은 상당하였다. 그것은 그동안의 소란스러웠던 과정의 정점에 있었던 한 인간으로서, 또한 인계도 없이 새집에 들어가게 된 정치인으로, 더 나아가서는 국가를 책임지고 국리민복을 위해서 봉사하려고 애써왔던 그 동안의 여정과 앞으로 국민통합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소회를 깊이 잘 들을 수가 있었다.
여기에 매우 아쉬운 점이 하나 생각났다. 신임자로서 전임자에 대한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인간애에 대한 언급의 실종과 그녀의 현재적 모습에 대해서 안쓰러워하고 있는 절반의 국민들에게 대한 화합과 통합을 향한 그 어떤 심정적인 표현이 생략되었다는 사실이다. 죄는 지은대로 받으면 되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의 인간애까지 거두어선 안 된다. 그것의 원만성취를 위해 정치권력이 존재하고 수많은 종교단체가 전도를 위해 주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새 주인이 전 주인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뒤에 무슨 말이 그 집에서 흘러 나왔는가? 전 주인이 쓰던 방에 4면에 큰 거울이 붙어있어서 그걸 제거하고 새로 도배를 하느라고 이사가 늦었다고 언론에 알렸다. 너무나 저질적 행태이다. 물론 새 주인이 그렇게 시키지는 않았겠지만 발설한 사람은 새 주인이 몸담고 있는 정당인이라고 하였다. 그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곳에 오래산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체력 단련실 한 면에 큰 거울이 있었다고 했다. 밟히고 채이고 넘어져서 일어날 기운도 없는 전 주인에게 그렇게까지 저주를 퍼부어야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열쇠도 받은 적이 없고 인수인계도 없이 독신녀가 살 던 집에 두 내외가 미소 지으며 손 흔들고 들어간 그 집, 그의 주변에 멀쩡한 대낮에 멀쩡한 거짓말을 해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포진하고 있는지 자못 걱정스럽다.
그 큰 거울을 벽에 붙여놓고 그저 자신의 몸매만 바라보았기에 으스름달밤에 쫓겨나오듯 한 전 주인의 가련한 모습을 보아왔지 않았는가? 새 주인은 그것을 걷어냈다. 그러나 작은 거울이라도 하나 걸어두고 전 주인처럼 얼굴만 다듬다가는 또 다른 낭패를 불러올 수가 있다. 그 곳은 이미 들어갈 때는 웃고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울면서 나오는 곳으로 인정받은 곳이 아닌가?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마음거울을 자주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통합을 앞세운 배척은 없는지 정의를 말하면서 앙갚음은 도모하지 않는지 등등의 자기 성찰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런 간단없는 자기 살핌으로 인해서 웃고 들어갈 때도 큰 문을 이용하고 나올 때도 웃는 모습으로 더 큰 대문으로 나오길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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