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라는 존재는 자녀들에게 평생 동안 무료 아프터 서비스를 의무처럼 베풀며 살아간다. 그런 어머니들에게도 일 년 중에 단 하루,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당당해질 수 있는 ‘어머니날’이 있다.
올해, 나의 어머니날은 지난 어떤 해보다도 더 소중하게 내 머릿속에 새겨지는 시간을 가졌었다. 일요일,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집에 돌아오니 딸 부부가 점심식사를 예약해 놓았다면서 재촉을 했다. 선샤인 코스트의 누사 헤드(Noosa Head)에 있는 일본 식당인데 운전해서 가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서 그 먼 곳에 예약을 했으니 싫다는 내색도 못하고 그냥 따라갈 수밖에.
선샤인코스트는 브리즈번의 북쪽에 위치한 관광지로서 해변이 65킬로미터 정도 되는 아름다운 휴양 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반나절의 나들이로 끝내기에는 왕복 4시간이 넘는 자동차 여행이 아쉽기는 했지만 멋진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었다.
선샤인 코스트의 가장 위쪽에 위치한 누사 헤드의 팻말을 따라서 마을 안으로 끝까지 들어가니 하얀 색 페인트를 칠한 식당건물이 보였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지만 식당 안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서 빈 테이블이 보이지 않았다. 실내에 들어서니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어서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 둥실 떠있는 유리 상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전통음식 아홉 가지를 주문해놓고 칵테일을 마시며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바다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저 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몇 개의 섬들은 큰 조개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작은 보트를 여유롭게 노 저어가는 연인들의 모습, 제트스키를 타고 날듯이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음식의 양도 적을 뿐더러 간격이 너무 길어서 식사 시간이 거의 3시간이나 걸렸었다. 맛과 양보다는 멋을 보여주는 아홉 가지의 요리에 “음식도 예술이다”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어느 새 가을 햇살이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간을 맞았다. 황금색 빛살이 점차 옅은 오렌지 색상으로 변해가며 바다 밑으로 잠겨드는데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되는 이 오묘한 자연의 변화를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선 밑으로 잦아드는 석양을 보면서 신이 우리에게 보내준 놀라운 선물에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었다. 설레는 가슴 위에 가만히 손을 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받아 들였다. 창가에 다가가서 유리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다. 만져지는 것은 없었지만 어떤 힘이 가볍게 내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딸 부부를 바라보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찡해왔다. 친구처럼 토닥거리며 말다툼을 할 때도 있고,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기도 하는 딸에게 엄마를 대신해주는 든든한 한 남자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둡고 깜깜했지만 나는 등불을 손에 든 사람처럼 이미 환해져 있었다. 비록 7시간이나 걸린 식사 시간이었지만 딸은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 거리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된다. 가끔씩은 홀로되는 시간을 가지면서 지난 날 들의 기억을 끄집어 낼 필요도 있다. 내 딸이 추억을 만들어 준 것처럼 나도 자녀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는 엄마가 되고 싶다.
원하는 것을 모두 다 가질 수는 없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내 마음만이라도 잘 전달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추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보다 아름다운 감성을 통해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더 행복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에도 하나하나씩 추억거리를 쌓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에 눈을 떠서 창밖을 보면 눈부신 가을 햇살이 나를 향해서 손짓을 해준다. 힘을 내서 또 하루의 일을 시작하며 나 스스로에게 멋진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는 날이 되기를 기도한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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