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이 발생한지 일제의 식민지 생활을 했던 기간과 같은 세월이 지났다.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흐른 것이다. 국민을 학살하고도 아직도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살고 있으니 친일을 한 사람의 후손들이 당당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87년부터 호주로 오기 전까지 10년간 해마다 5월이면 부천에서 순례단을 조직하여 단체로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었다. 초저녁에 출발하여 한 밤중에 광주에 도착해서 어둠 속에서 히 끄무레하게 보이던 조선대학교 본관 하얀 건물이 인상 깊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몇 천 명의 참배객들이 강의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서 잠시 눈을 부치고 아침부터 끝없이 줄을 서서 참배를 했었다. (사진 참조)
참배하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어떤 사람은 광주항쟁에 참가했다가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적지 않은 보상금을 타기도 했는데 정작 총에 맞아 죽은 이들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목숨을 잃을 때까지 싸운 그들의 투쟁정신은 어떻게 되살아나며 그들의 억울한 희생은 어디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하는 생각을...
그러면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였던 에른스트 블로호가 혁명을 수행하다가 사라져간 희생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고민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제 아무리 혁명의 당위성을 목소리 높여 주장한다 하더라도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는 와중에서 죽어간 사람들에게는 혁명 이후에나 얻어질 수 있는 이상적인 가치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블로흐가 고민한 것은 기독교처럼 영혼불멸설을 믿을 리도 없는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혼불멸설에 대한 이론을 ‘연대정신’ 이라는 사회학적 의미로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혁명전선에서 죽게 되더라도 그것은 헛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혁명정신 속에 연대하며, 그 수평적 연대의식 속에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광주 항쟁은 학생으로부터 시작됐다. 1980년, 5월 14일과 15일 27개 대학 학생 대표들이 서울 광화문, 종로, 서울역 등지에서 학생, 시민들과 함께 계엄철폐, 민주화 추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전두환은 5월 17일, 5·17비상계엄확대조치를 선포하고 학살을 시작했다. 5월 18일 오전, 계엄군의 학살에 저항하기 위하여 급기야 시민들은 시민군을 조직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총을 들어야만 했다.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 총을 들어야만 했던 시민의 손에 촛불을 들 수 있게 되기까지 3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대한민국이 촛불시위를 통해서 정권교체를 이룬 사건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다.
1945년 이후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시민들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경험을 갖고 있다. 1999년 영국의 BBC 방송이 20세기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인민의 세기(People’s Century)'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처럼 지난 70년 간 네 번에 걸쳐서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나라는 없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부터 1979년 부마항쟁,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문제는 이전 세 차례에 걸친 시민항쟁이 정권 교체나 정권 몰락, 또는 헌법 개정에 성공했지만, 그 이후의 과정이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힘겹고 감격스럽게 승리는 했으나 앞으로도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해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5.18 정신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은 촛불 혁명도 할 수 있지만 황당무계 무지막지의 ‘준표급 보수’ 지지자들이 국민의 4분의 1이나 되는 안타깝고 기가 찬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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