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부터 안작데이까지 짧은 방학이 있었다. 어른 학생들도 어린 학생들처럼 방학을 좋아했다. 선생인 나도 방학이 좋다. 한가한 오후, 책장에서 눈에 띄는 ‘A Place in the Sun’ (Cope and Kalantzis, 2000)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17년전, 빅토리아와 타즈마니아 주총회에서 다문화 선교 사역을 시작하며 읽었던 책 중의 하나였다. 호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던 내게 이 땅의 역사, 지리, 문화 등을 가르쳐 주었던 책이다. ‘재창조되어 가는 호주인들의 삶의 방식’이라는 부제는 책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책 제목을 왜 ‘A Place in the Sun’이라고 붙였는지, 또 그 제목을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아직 모르겠다. ‘태양안에 있는 나라’로 직역하면 그 의미가 낯설고, ‘해 아래 있는 곳’이라 의역하면 무언가 빠진 것 같은 싱거운 느낌을 준다.
이 책은 식민지 역사를 거쳐 1901년에 새로운 국가로 출범한 후 100주년을 맞으며 출판되었다. 이민, 원주민의 토지권, 폴린 핸슨, 공화국 제안등 수 많은 갈등과 논쟁의 요소들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여러가지를 성취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 가령 호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지만, 노인연금제도, 출산 보조금, 생명의 전화, 자동차 안전벨트 등을 세계에서 맨 처음 시작했다. 여성의 투표권도 세계에서 두번째로 주어졌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에 긍정적인 기대를 함축하고 있다.
이민과 다문화주의가 기여한 것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적고 있다. 가령 캥거루와 이뮤가 그려진 호주의 문장(Coat of Arms)은 호주 국가를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다. 이 문장은 원래 1871년 크로아티아에서 이민 온 다벤이쟈 (Darveniza) 형제가 빅토리아주에 정착해서 포도원을 짓고 포도주를 생산하며 그 상표로 사용했던 것이다. 호주 정부는 이것 보다 더 좋은 문장을 찾을 수 없어, 큰 돈을 지불하고 그 상표권을 사려고 했으나 거절 당했다. 다벤이쟈 형제는 특허권 사용료를 지불하겠다는 제안도 거절했다. 대신 그 상표권을 호주 정부에 자신들의 선물로 그냥 기증함으로써 호주의 문장이 될 수 있었다. 호주인들이 토착음식처럼 사랑하며 즐겨 먹는 고기 파이( Meat Pies)도 실상은 레바논계 이민자가 처음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많은 호주인들이 그런 사실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발견한 것은 이 책이 Stephen Paul Shortus(1946-1992)를 추억하며 그에게 헌정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두 저자는 그를 호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자신들의 선생이요 친구였다고 적었다. 그것을 읽으며 난 순간적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서 내게 선생이 되었던 두 저자의 선생은, 실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였다. 그가 죽은 1992년에, 나는 뒤늦은 나이에 낯선 땅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나이와 전혀 상관없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자세로 계속 배우는 학생이 되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과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젠 방학이 끝났다. 돌이켜보니 일과 쉼, 기쁨과 아픔이 함께 한 기간이었다. 부활주일까지 이주간 계속 설교를 했다. 그것은 부르심이요 기쁨이지만, 언제나 부담스러운 책임이다. 주총회에 보고할 한인노회 리뷰를 위한 모임이며, 보고서 초안을 점검하고 수정하는 일도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다. 노회 안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고, 노회 밖에서도 다양한 시각과 견해들이 있어 이것들을 적절히 수용하고 반영하기가 힘들었다. 하루는 과제물로 제출한 학생들의 저널을 읽으며 도움말을 적었다. 한나절 강의 준비도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 아래 있는 모든 곳, 모든 보통 사람들이 사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의 표현처럼, 지난 이주간의 모든 일과 수고한 것들도 ‘다 헛되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무익한 것’이었을까? 전능자의 판단은 혹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은 쉼과 즐거운 시간도 있었다. 한 친구 내외와 함께 하루 바닷가를 다녀왔다. 학생들과 함께 감 농장에 놀러갔다. 직접 단감을 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으나1-2주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대신 홍시로 먹을 수 있는 감들을 사고, 감 밭에 들어가서 가까이 구경하기로 했다. 크지도 않는 감나무에 그렇게 많은 감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찢겨져, 감과 함께 땅에 떨어진 것도 있었다.
지난 여름 그렇게 무더운 날씨와 큰 장마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풍성한 열매를 맺은 것이 기특하다. 물론 감 농장 주인과 일꾼들의 수고가 많았겠지만, 해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을 살피시는 전능자의 선한 손길 때문인 줄 안다. 그래서 감사했다. 그 감을 보며 행복했다. 감 농장과 가까운 백조 묘목원(Swan Nursery) 안에 있는 한 까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은 나무 두 그루와 흙을 사왔다.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되돌아 오는길에, 가까운 지인 한분이 돌아가셨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해 아래 있는 곳에서는 언제든지 그런 갑작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분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는 초창기 이민 1세대로써, 성실한 가장, 좋은 이웃 그리고 교회의 충성스러운 장로였다. 지난 몇년간, 지병으로 고생하셨고 양로원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그날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눈부셨다. 그처럼 아름다운 가을날에, 그의 육신의 몸은 몇줌의 재가 되어 가족들에게 주어졌다. 그간의 질병 등 모든 무거운 삶의 짐들을 벗고 자유로운 영혼이 본향으로 돌아 갔으니 그분께는 오히려 기쁜 날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분의 아내와 자녀들의 젖은 눈물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아직 내게도 그 아련하고 슬픈 여운이 남아 있다.
해 아래 있는 곳, 땅의 것들은 모두 일시적이다. 지나가는 것이다. 무익한 수고와 괴로움도 있다. 죽음과 눈물도 있다. 그러나 위의 것은 영원하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참 쉼과 평안이 있다. 생명과 기쁨이 있다. 묘목원에서 사온 나무 두 그루를 뒷 정원에 심었다. 이 가을에 어린 나무를 심어도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 인생의 계절이 가을임을 잘 안다. 그래서 위의 것을 생각하며 겸허하게 살기 원한다. 어느날 갑짜기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도, 해 속의 한 곳처럼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필요없는 주님의 나라에서 깨어 날 것을 소망한다.
최정복 (호주연합교회 은퇴목사)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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