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심의한 한국 헌법재판소가 결국 그녀에게 파면 선고를 내렸다. 한때 절대적인 권위로 특별 대접을 받아왔던 그녀에게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아마 31일경 구속 여부가 결정될 것이며 이제 곧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성숙해 있음을 증명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참 부끄러운 일이다. 불행한 일이다.
먼저 박 전 대통령에게 얼마나 큰 부끄러움이 되겠는가! 아니 그것은 사치스러운 표현이다. 정상의 자리에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의 참담한 심경을 나는 감히 추측할 수도 없다. 그녀는 아마 가장 불행한 사람 중의 한 명이라고 느낄 수 있으리라. 나 자신도 용서와 치유가 필요한 자로서, 피고인이 될 그녀를 더 이상 판단치 않으려 한다. 다만 그녀의 사람됨을 분별치 못하고, 유권자의 다수가 잘못 선택한 것은 더 큰 부끄러움임을 말하고 싶다. 그로 인해 오랜 국정 혼란과 국민 간의 갈등과 아픈 상처를 준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 투표일이 5월 9일로 공포됐다. 대선 후보로 나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대통령이었던 까닭에 지금은 너무 수치스럽고 불행한 처지에 있는 것을 지켜 보면서 말이다. 대통령이라는 그 직책이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유혹이 된 것일까? 어쨋든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은 대선 후보자들이나 국민 모두에게 숙연한 교훈과 다짐을 주는 기회가 된 줄 안다.
이젠 선거일이 40여 일 밖에 남지 않았다. 대선 후보자들은 다양한 정책과 공약들을 선전하고 있다. 그들은 국민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새로운 변화를 이루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어떤 공약들을 대하며 조금은 씁쓰레한 기분이다. 너무 달콤해서 의심이 가고, 너무 거창해서 그저 ‘포퓰리즘’으로 포장된 덩치만 큰 빈 상자 같은 인상을 준다. 나는 투표권이 없고, 선호하거나 열광하는 후보도 없다. 그러나 실현 가능한 공약을 내건 후보자가 더 좋을 듯싶다. 그만큼 거짓 약속이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들이 지혜롭게 검증하되, 말로 내건 어떤 약속보다, 후보자의 인격과 삶 등을 고려해서 투표했으면 싶다. 지금 행복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무책임한 비판과 청치공방들이 난무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출처도 모르는 야비하고 분별없는 정보들(가짜뉴스)이 떠돌고 있다. 또 하나는 대립과 분리를 조장시키는 흑색선전이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작은 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누인 것도 아픈 일인데, 그 안에서 다시 지방이며 정치 이념 등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보면, 얼마나 정이 많고 재주가 뛰어난 한국인들인가? 더불어 함께 나누는 행복한 삶이 목표라고 하는데, 먼저 선거전이 그렇게 변화된다면 얼마나 신명 나고 아름다운 조국이 될 수 있을까!
금년 여름은 유난히 길고 무더웠다. 더위가 가시려나 했더니, 사이클론 ‘데비’가 시속 250Km의 강풍과 폭우로 퀸즐랜드 북부 지역을 강타했다. 국가적 재난으로 사탕수수, 바나나 산업 등 50% 정도가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도, 집 정원에는 코스모스와 연산홍 등이 꽃을 피웠다. 꽃은 말없이 그러나 때를 따라 행동으로 그 성실함과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검은 구름에 가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으나, 태양은 매일 제 자리에서 빛을 발했고, 지구와 달 또한 자신의 궤도를 지키며 공전과 자전을 계속했음을 안다. 그런 것이 오늘 꽃들을 피우게 한 에너지와 변화의 원천이 된 것을 생각하며 마음에 감동을 느낀다. 중요한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 다수가 말없이 그러나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으로 투표해서 새로운 변화를 이루었으면 참 좋겠다. 정치나 정치가들의 수준은 결국 다수 국민들의 수준이라고 본다.
엊그제 미국에 사는 아들 가족과 화상통화를 하다가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손주의 말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말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했더니, 미국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보며, 그도 언뜻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의 자격은 반드시 미국에서 출생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어린 아이지만 그런 꿈을 꾸며 말할 수 있는 것은 기특한 일이다. 그가 나중에 중요한 직책을 맡고, 널리 알려진 사람이 된다면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러나 편안한 인생이든 혹은 모험과 도전이 가득한 삶이든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산다면 무미건조한 삶이라고 본다. 나는 그가 어릴 때부터 자신보다 큰 삶의 가치를 추구하며, 이웃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먼저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어떤 직장,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유익을 주는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되기를 기도한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 행복을 위해서 더 큰 집과 더 많은 돈, 더 명예로운 직분을 얻으려고 경쟁하며 바쁘게 산다고 말한다. ‘행복의 과학(Science of Happiness)’ 연구로 유명한 심리학교수 류보머스키에 의하면, 명예나 소유, 젊음과 아름다움 등 현재의 환경이 주는 행복은 10% 정도라고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뜻이다. 난 그런 과학을 잘 모르지만,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저 살아온 세월이 내면을 향해 던져주는 평범한 깨우침이다.
우리 모두는 내일의 일을 모르고 산다. 한 번에 한 가지씩 보람있고 즐거운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오늘의 행복이다. 나는 오늘 내 자신에게 솔직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웃을 배려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곁에서 조용히 손을 내미는 작은 친구가 되고 싶다. 그 무엇을 바라거나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연습의 하나로 말이다. 그런 연습을 통해서, 단 한 번뿐인 내 삶의 시간을 행복으로 채우고 싶다.
최정복(호주연합교회 은퇴목사)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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