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오락가락이다. 그래도 날씨에 대해 감히 뭐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위와 습기,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잘 참아낸다. 날씨는 변하기 마련이며, 날씨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지구를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국의 정치 상황 역시 오락가락이다. 작년 12월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이후 3개월 동안 일들이 많았다. 다시 두 달을 더 기다려 새 대통령 뽑는 일에 더욱 몰두해야 한다. 조국을 떠나온 우리들이지만 뿌리가 그 곳에 있기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뉴스를 통해 대한민국헌법에 대해 많이 들었다. 제1조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의 조국은 이 헌법을 명문화하고, 현실화하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피 흘리며 고생했다. 현 시점에서 이 보다 더 좋은 헌법은 없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역시 이 헌법에 의해 선출된다.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는 것은, 헌법에 나오는 대로 국민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주고, 행복한 삶을 이뤄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도 헌법과 그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4년을 지내오며 국민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물론 각자가 느끼는 행복감은 주관적이라 모든 사람들을 다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 다만 헌법대로만 해 주면 된다. 사실 우리는 이런 요구가 대단히 무엄한 일일 수 있는 시대를 살아왔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번 탄핵사건에 원인이 되는 국정농단 정도는 문제가 될 수도, 문제 삼을 수도 없었던 일들이다. 그러나 감당하지 못하도록 빠르게 새 시대가 도래했다. 고도의 인터넷 시대가 되었고 국민들의 윤리와 사회의식, 그리고 경제적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신변의 별 위험 없이도 감히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문제는 헌법에 명시된 통치 권력의 위임자인 ‘국민’이 누구냐는 것이다. 박 전 박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앞 시멘트 바닥에 누워 버린 뾰족구두의 임자가 대표하는 ‘태극기 국민’인가, 아니면 탄핵인용 축하불꽂을 높이 올리는 세종로의 사람들이 대표하는 ‘촛불 국민’인가? 이 둘의 이해는 예리하게 대립한다. 나라를 잃어봤고 동족산장의 비극을 경험했던 분들은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질까 하여 불안하다. 어느 정도 자유를 제한하는 대가를 치루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그런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반대로, 독재정권 밑에서 인격적 삶이 망가지는 피해를 봤던 분들의 경우는, 그 사무치는 원한을 풀어볼 기회를 찾는다. 이렇게 국민들은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로 나눠져, 자신의 입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조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세계는 바야흐로 커피의 전성시대다. 날이 갈수록 카페는 늘어나기만 한다. 집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60년 된 거대한 커피공장이 있다. 새벽에 커피를 볶는지 아침이면 커피향이 온 동네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이 황홀한 커피 향은 자연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커피의 유래를 들어보았으리라. 6~7세기 경,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한 목동이 있었다. 염소를 풀어놓고 먹이던 중 한 마리가 흥분하여 날뛰는 것을 보았다. 붉은 색 열매를 먹었기 때문임을 알고는, 목동도 씹어 보았으나 별 맛이 없어서 불에다 그냥 던져 버렸다. 그런데 조금 후 그 열매에서 기막힌 향이 피어나는 것을 발견했고, 1,300년을 지나면서 그 향기는 온 세상을 정복해 버렸다.
헌법은 커피 원두를 뜨겁게 볶아내는 용기와 같다. 원두 자체는 아무 맛도 없고 단단하기만 하다. 그 무미한 원두를 한가득 넣고 열을 가해 볶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렇게 볶이는 원두는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내재해 있던 기름이 표면으로 올라와 자르르한 윤기와 향기를 뿜어낸다. 이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원두지만, 또한 중요한 것은 그 원두가 용기 안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무리 최고의 원두라 해도 볶아지지 않으려고 용기 밖으로 뛰쳐나가면, 그 원두는 아무 소용없어 버려질 뿐이다.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좋은 국민이 되려면, 헌법이란 단단한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답답하고 뜨거워도 꾹 참고 그 안에서 이웃과 부대끼며 견뎌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최고 품질의 국민을 볶아내는 과정 속에 있다. 조국을 사랑하는 동포로서 오직 당부하는 것은 헌법이란 용기 안에서 싸우라는 것이다. 지금의 헌법을 만들어 내기 위해 조국은 얼마나 오랫동안 피 흘리며 싸워왔던가? 헌법은 있어도 오직 명목으로만 존재하는, 세습독재 3대 째의 북한과는 얼마나 다른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헌법의 소중함을 알고,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적대적인 배심원들이 결정한 헌법을 존중하여, 독주를 마시며 죽었다. 악법도 법이니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그의 제자 플라톤은 국민을 위한 법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었다.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 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특권은, 소크라테스가 헌법을 지키기 위해 흘렸던 피의 자취를 따라 2,500년을 꾸준히 걸어온 덕분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견딜 수 없어, 할 수 없이 시민불복종 운동을 펼칠 때에도, 헌법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려 내리는’ 조국이 될 것이다.
김성주 (새빛장로교회 목사) holypill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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