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앞차와의 거리 100m’라는 간판이 많이 눈에 띄었었다. 실제로 달리고 있는 상대방과의 차의 거리는 10m 정도인데도 그 간판은 오랫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마다 현실과 이상과의 거리가 먼 한국의 법령이나 여러 현상의 모순점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 보다가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합리적인 듯한 이곳 호주에 와서 산지도 어언 25년이 되었다.
앞차와의 거리 확보를 100m 정도를 유지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보자는 뜻에서 나왔을 것이다. 처음 고속도로가 개통이 되어 차량수가 적었을 땐 그 경고 표지가 상당한 힘을 발휘 하였겠지만 차츰차츰 이용차량이 많아지다 보니 대형사고가 생기면 수십대 차량이 연쇄적으로 들이받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고 마구 내달으면서 설마 나한테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팽배한 주인공들이 오늘도 고속도로를 정신없이 질주하고 있다.
자동차와의 거리 확보도 그러하거니와 사람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로 두는 것이 안전하고 좋을까? 이곳에 와서 오랫동안 사는 과정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상담을 하다가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속거나 사기를 당한 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대부분은 처음엔 그들과 너무 친해서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친척처럼, 형제처럼 잘 지내다가 결국은 그러한 사달이 나서 원수처럼 되어서 쳐다보지도 않는 고약한 사이가 되고 만 것이다.
남남이 머~언 이국땅에서 만나서 친구가 되었을 때 그 거리를 몇 미터 정도 두고 지내야 안전할 수가 있을까?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좋은 인간관계의 거리를 네 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의 밀접한 거리는 0~45cm 정도의 거리라고 했다. 이 거리는 부모와 자식 또는 부부와 연인 사이처럼 신체접촉이 허용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근접된 개인영역을 말한다. 일상적인 사회적 접촉에서는 불가능한 관계이다. 두 번째의 개인적 거리는 45~120cm 정도의 거리다. 이 거리는 친구나 상당히 가까운 사이에서 마주침에 해당하는 개인영역이다. 세 번째는 사회적인 거리로서 120~360cm 정도의 간극이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나 인터뷰와 같이 공식적인 상호작용 상황에서 유지되는 영역으로 흔히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평상시 유지되는 개인적 영역이다. 네 번째는 공적거리로 360cm 이상의 거리다.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거리, 즉 남남과의 거리다. 길가에서 무심코 스치는 사람들, 또는 무대의 공연자와 관객 정도의 영역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국땅에 와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매우 소중하면서도 그 거리두기에 대해선 신중함이 요구된다. 좁은 한인사회에서 서로가 의지하며 살아야 되다보니 친척처럼 느끼게 되는 그 가까워진 거리에서 도리어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절 집안에서도 어떤 사찰주지로 처음 부임했을 때 제일 먼저 와서 인사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도 나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게 된 것은 네 번째의 먼 거리에서 거슬러 올라가서 첫 번째의 가까운 거리가 되어서 거리제로의 상태가 되어버린 상황의 결과가 아닌가? 처음 그렇게 가깝게 되었을 땐 서로가 얼마나 만족해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그러던 사람들이 또 얼마안가서는 가정법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반 이상이나 된다는 통계가 나온다하니 참으로 그 거리라는 개념이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래서 산과 사람은 멀리에서 바라볼수록 더 아름답다는 옛말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도 없다 보니 이젠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라는 말로 또 경고를 준다. 그 만큼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아름답게 지속되기가 매우 힘들다는 의미일 것이다. 위의 에드워드 홀의 이론대도라면 적당한 안전거리를 확보했는데도 형제간에 송사가 생기고 부부 지간에 이혼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과의 문제는 거리라는 떨어져 있음의 문제보다도 상대의 인격을 존중해서 관심과 배려로 바라보는 생명존중의 마음 씀씀이가 더 큰 부위를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그런 이론이나 말씀으로 매 주일 각자가 믿고 있는 성스러운 곳에 참석해서 고개 숙여 기도한다. 하지만 마음속에 탐욕의 세력이 싹을 틔우게 되면 형제자매처럼 30cm의 거리에 있다고 친한척하다가 나중엔 그 본색이 밖으로 튀어나와서 피ㆍ차가 상처를 주고받는다. 이렇듯 교민사회에 살면서 삶에의 안전거리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뒤늦게 멀리 남의 땅에서 서로 만나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 소중한 인연들, 언제나 30cm 정도의 지근의 안전거리가 360cm의 남남과의 거리로 틈이 생기지 않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될 듯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좀 더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하면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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