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에서 가장 빨리 지나가는 달은 묵은해와 맞닿아 있는 새해의 일월이 아닌가 싶다. 바로 엊그제 셋~ 둘~하나를 소리높이 외치며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새해의 첫날을 맞이한 것 같은데 어느새 2월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다. 내 나이에 숫자 하나가 더 보태졌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이를 먹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단지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부딪힐까봐 우려될 뿐이다. 나는 이른 아침, 잠에서 깨면 내 눈을 뜨게 하고 내 입술을 열어주는 신에게 먼저 감사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를 낮추고 사는 즐거움을 가져보라는 주문을 살짝 걸어둔다. 자기를 감동 시킬 수 있는 떨림이 있어야 최선을 다한 하루가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하이스쿨에 애보리진과 섬나라 출신의 십대학생들을 지도해주는 멘토 프로그램이 있어서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나는 평소에 원주민 역사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퀸스랜드대학교에서 ‘호주 애보리진과 섬나라 원주민들의 전망(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Prospective)’ 이라는 과목을 한 학기 동안 공부한 적이 있었다. 애보리진 배경을 가진 교수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구랑구랑 부족’ 출신이라고 밝히며 강의 중에 자신의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백인들에 의한 탈취와 억압받았던 선조들의 잃어버린 역사를 말할 때면 그의 얼굴에는 슬픔과 분노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었다. 애보리진 교수의 진지했던 강의는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 영향을 받았던 덕분인지 애보리진 역사를 찾아가는 탐방 여행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선샤인코스트에서 바닷가를 걸으며 원주민 선조들이 했었던 피시트립(Fish Trip)을 따라 갔으며, 바다에서 주운 붉은 돌을 갈아서 나온 물감으로 얼굴에 무늬를 그려보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이 전사가 되기 위해서 성인의식을 치르던 산속의 보라링 터에도 가보았다. 먼 옛날 애보리진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그들의 언어로 주문을 외우며 나무 막대를 두드리는데, 조상의 영을 불러들이는 신성한 의식이라고 했다. 알 수 없는 신령한 힘이 주위를 감싸는 듯 신비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불루마운틴에서 유럽학생들과 사파리 모험여행을 갔을 때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안내를 맡았던 원주민 레인저와 함께 산속을 걸으며 그가 따주던 나무 열매와 풀을 맛보기도 했다. 누구나 쉽게 해볼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멘토 그룹의 멤버로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지난 금요일 오전 휴식시간에 애보리진 학생들과 섬나라 출신 학생들을 만나는 첫 모임이 있었다. 나는 특별한 만남에 부푼 마음을 가지고 한국 떡과 간식을 준비해서 가져갔다. 원주민 학생들을 만나면 신나게 선조들의 역사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갔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와르르 소리를 내며 한 순간에 무너졌다. 모임 장소에는 하얀 피부에 금발머리를 가진 백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한 두 명 정도가 갈색피부에 갈색머리를 지닌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모습 어디에서도 검은 곱슬머리와 회갈색을 띤 검은 피부의 진짜 애보리진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그들도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배경을 지닌 보통의 호주 십대 청소년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밝고 활기찬 모습에서 미래의 애보리진 공동체의 희망찬 전망을 예견 할 수 있었다.
12학년인 키에른은 대학교에 진학하면 스포츠를 전공해서 프로 럭비 선수가 되고 싶다고 장래 희망을 밝혔다. 지금도 럭비클럽에 나가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부끄러운 표정으로 내 옆에 서있던 자스티스(10학년)에게 어느 과목을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체육시간이 가장 좋으며 달리기를 잘하는데 언젠가 올림픽에 나가서 호주대표로 뛰고 싶다는 꿈을 수줍게 말하기도 했다. 라클란( 1학년)의 다섯 손가락에 꼬깔콘을 끼워주었더니 장난스럽게 한 개씩 빼먹으며 한국 과자가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을 보면서 4만 년 전 호주 땅에 처음으로 정착했던 이 땅의 주인들을 떠 올렸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빼앗긴 것을 되찾지 못하는 그들의 아픔을 누군가는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샤선생이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애보리진들이 정부를 위해서 일을 했으나 노동의 대가인 봉급을 호주정부가 여전히 관리하고 있으며 원금의 이자만을 애보리진 공동체에 조금씩 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원주민자녀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키워주는 멘토 교육프로그램에 나의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졌다. 선조들은 빼앗긴 슬픔으로 살았지만 이 땅에 더 넓게 퍼질 후손들은 되찾는 기쁨을 가져야 할 것이다.
멘토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나의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게 건네졌을 때, 가슴 안에 스며드는 따스한 기운이 바로 내 삶의 에너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바이러스처럼 많~~이 퍼뜨리고 싶다.
“나누니까 행복해지더라.”
황현숙(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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