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W의 직전 주총리들인 베리 오파렐과 마이크 베어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깔끔하게 전격 사퇴를 한 점이다. 오파렐 전 주총리는 이른바 ‘포도주 스캔들’로 위증 의혹이 터지자 바로 물러났다. 2011년 NSW 선거 승리 후 축하 선물로 약 2천 달러 상당의 고가 와인(펜폴드 그랑지) 한 병을 받았는데 “받은 기억이 없다”고 재판에서 말했다. 포도주 제공자가 오파렐로부터 잘 받았다는 내용의 카드를 증거로 제시하자 오파렐은 위증을 인정하고 주총리 자리에서 전격 사퇴했다. 구차한 변명 같은 것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위증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마이크 베어드 전 주총리도 지난 주 연말 휴가 후 첫 기자회견을 통해 정계 은퇴를 깜짝 발표했다. 표면상 이유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과 병중의 부모를 돌볼 시간을 더 갖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진짜 이유는 2년 후(2019년) NSW 선거에 대비해 후임자에게 자유-국민 연립의 3연속 집권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 새 출발을 대비하기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개인보다 당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미련 없이 정계를 은퇴하는 모습은 박수 받기 충분했다.
베어드의 주총리 사퇴로 NSW에서 첫 자유당 여성 주총리가 탄생했다. 글래디스 베레지클리안(Gladys Berejiklian). 아르메니아 이민자 2세로 시드니에서 태어났고 올해 46세이며 독신(미혼)이다. 그녀의 성(surname) 베레지클리안은 다소 발음하기 어렵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아르메니아 성은 ‘~ian(이안)’으로 끝이 나는 이름이 많은데 가문을 의미한다고 한다.
베레지클리안 신임 주총리는 23일 NSW 자유당 의원 총회에서 도미니크 페로테트 예산장관과 함께 만장일치로 각각 주총리(겸 자유당 대표)와 부대표로 선출됐다. 만장일치는 반대가 없었다는 의미인데 당권 경선에 나선 의원이 아무도 없었다. 이같은 추대 형태의 만장일치 선출은 베레지클리안 신임 주총리의 당내 조직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개각을 통해 페로테트 예산장관이 재무장관에 임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베레지클리안 신임 주총리는 NSW 자유당 좌파 실세이면서 온건 성향이다. 페로테트 장관을 재무장관으로 영입하며 우파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2014년 베리 오파렐 전 주총리가 사임했을 때, 후임 주총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베레지클리안 의원(당시 교통장관)은 당권에 도전할 의향이 있었지만 숫자가 뒷받침하지 못했다. 따라서 마이크 베어드 당시 재무장관이 주총리직에 올랐고 베레지클리안 의원은 부주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때부터 차기 주총리는 베레지클리안 의원이 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었다.지난 주 베어드 전 주총리의 정계 은퇴 선언과 함께 베레지클리안 주총리 옹립설이 바로 등장했다. 예상대로 아무 의원들이 당권 경선에 도전하지 않았고 신임 주총리 선출은 만장일치로 진행됐다. 베레지클리안 신임 주총리의 당내 리더십이 견고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베레지클리안 신임 주총리는 대학생 시절(시드니대) NSW 청년 자유당의 의장으로 선출된 경력이 있다. 비영어권 이민자 출신이며 여성으로서 결코 쉽지 않는 자리였는데 학창 시절부터 조직력, 장악력이 상당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어려서부터 아르메니아 커뮤니티 행사에 적극 참여한 것이 정당 활동에서도 힘이 됐을 것이다.
이 점은 특히 지역사회 활동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는 한인 2, 3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주 정계에서 특히 지역구 공천을 받아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하원에서는 낙하산이 거의 없다. 학생 시절부터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은 뒤 자연스럽게 시의회(카운슬)에 도전하거나 정치인 보좌관으로 일을 배운다. 이런 후보자들 중에서 지역구 공천자를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한인 자녀들을 정치인으로 키우려면 커뮤니티 단체(시드니 한인회도 좋다)나 정당에 가입해 학생 때부터 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올해 9, 10월경 NSW지자체 선거가 예정돼 있다. 지자체 통폐합이 아직 완료되지 않아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통폐합으로 카운슬의 규모와 예산이 커지기 때문에 시의원의 위상도 자연스럽게 종전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지자체 선거에는 4년 전 보다 많은 한국계 후보들이 도전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도전도 의미가 있지만 주요 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권에 근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인 유권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카운슬에서 특히 자유당이나 노동당 후보로 선거에 참여하는 한국계 후보가 늘어나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체험장인 지자체 선거라는 1차 관문을 거치면서 단련된 뒤 주의원(하원, 상원)에 도전하는 한국계 정치 지망생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민자의 롤모델인 베레지클리안 신임 주총리가 걸어온 길을 보며 한인 차세대들이 큰 꿈을 갖기를 바란다. 붉은 닭띠 해를 시작하며 시드니 한인커뮤니티에 가져보는 새해 희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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