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포트 스테판(Port Stephens)에서 짧은 휴가를 즐겼다. 다른 두 부부와 함께 갔다. 난 그 다음 주부터 1월까지 매주 설교며 모임 등의 약속이 있었고, 마침 외벽공사로 집이 어수선했다. 그래서 적절한 때에 훌쩍 집을 떠날 수 있어 좋았다. 숄 베이(Shoal Bay)에 있는 한 리조트에 머물렀다. 그 지역 마켓의 식재료로 만든 보통 음식이며, 평소 하지 않던 맥도널드 햄버거를 사 먹는 것도 맛있다. 평범한 얘기도 함께 나누면 더 재미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온 휴가 자체가 기쁨이다.
나는 아침 저녁으로 한가한 해변을 맨발로 걷곤 했다. 발에 와 닿는 모래와 잔잔히 밀려오는 바닷물의 그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촉감이 좋다. 빠른 걸음으로 조깅하는 젊은이도 있고, 바다에서 수영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낚싯대 앞에서 물고기를 기다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금속탐지기를 들고 모래밭 속에서 동전 등 묻힌 금속을 찾고 있는 남자도 있었다. 그리고 시드니에서 온 한 젊은이는 3주간 페인터로 일하고 있는데 하루의 일을 끝내고 바다에 와서 수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각기 다르지만 모두 다 기쁨을 위한 몸짓이다.
리조트 안의 수영장에는 운동기구도 있고 또 바닷물, 찬물, 더운물 등 세 개의 다른 스파공간이 있었다. 그 수영장에 비키니 차림의 젊은 여성이 있는가 하면, 머리에 히잡을 쓰고 온 몸을 검은 천으로 감싼 무슬림 세 모녀도 있었다. 그처럼 대조적인 복장을 했지만 물을 통해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동일하리라. 그러나 또 다른 기쁨의 내용은 그녀들의 복장만큼 크게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마침내 국회에서 가결됐다. 그러나 아직도 촛불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다만 그 주장이 탄핵에서 구속으로 바뀌었다. ‘방빼고 감옥으로’라는 피켓을 배경으로 한 젊은 주부 시위자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난다. 그녀는 “시위의 결과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어 기쁘다. 첫 아이 출산 때보다 더 기쁘다”고 말했다. 여성의 첫 출산은 특별한 것인데 그보다 더 크다니 그녀의 기쁨은 그런 적극적인 시위 참여나 투쟁에 있는 것 같다. 사람마다 기쁨을 느끼는 내용이나 이유, 조건 등은 다를 수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한국 프로그램에 나오듯 상식과 규범 밖의 것들도 얼마든지 많지 않는가!
언젠가 호주 지역별 웰빙지수(National Well-Being Index)를 읽어 본 적이 있다. 이 지수는 주민들이 표현하는 포괄적인 삶의 만족도 혹은 행복지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두 번째로 낮은 지역이 내가 잘 알고 있는 파라마타의 주민들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가장 높은 지역이 NSW 농촌 지역인 리베리나(Riverina)의 주민들이었다. 의외의 결과였다.
객관적으로 소득 수준이나 고용기회는 물론 의료, 복지와 문화시설 등을 볼 때, 파라마타와 리베리나는 전혀 비교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흔히 호주 사람들이 좋아하는 해변가도 아닌 보통 농촌지역이다. 이 결과를 한 호주 친구에게 얘기 했더니, 그도 믿을 수 없다며, 혹 내가 농담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베리나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고 선택한 것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웰빙의 수준은 반드시 객관적인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좌우돠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을 기억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성탄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성탄의 기쁨을 말하며 소원한다. 거리나 쇼핑센터가 성탄 트리 장식등으로 축제 분위기다. 신나는 캐럴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마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염려와 아픔, 눈물 가운데 있는 사람들도 많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스트레스가 더 커지는 기간이다. 가족이 멀리 있거나 이별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혹 금년에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을 잃고 처음으로 혼자서 성탄절을 맞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더 힘들고 울적한 성탄절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가? 기뻐할 만한 어떤 조건이나 그만한 환경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기쁨은 우리 안에서 온다. 아주 작고 평범한 것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기쁨은 우리가 선택하는 주관적인 관념이다.
성탄의 기쁨은 또 어떠한가? 예수 없이는 성탄절이 아니다. 성탄의 기쁨은 개인적인 조건이나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 근거한다. 그 분에 대한 믿음과 헌신에 따라 좌우된다. 그 분과 함께라면 아픈 가슴 혹은 외로운 영혼도 성탄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선물처럼 그렇게 대가 없이 받을 수 있다.
대림절(Advent) 셋째주일의 주제는 ‘기쁨’ 이다. 힘들거나 곤란한 중에서도 선물로 주어지는 ‘예수님의 기쁨’이다. 성서공과 중의 하나인 이사야서의 한 부분을 묵상하며, 도전과 감동을 느낀다.
“메마른 땅과 사막아 기뻐하여라. 황무지야, 내 기쁨을 꽃피워라. 아네모네처럼 활짝 피워라. 기뻐 뛰며 환성을 올려라..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 하리라.” (이사야 공동번역 35:1 &6)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그러한 기쁨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이웃에게도 같은 기쁨을 주고 받기를 선택하는 그런 교회들이, 그러한 교민사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특별히 정의와 평화를 위해 애쓰는 자들에게 이사야가 꿈꾸며 선포했던 그런 거룩한 기쁨이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2016년의 성탄절에!
최정복 (Jason.choi46@gmail.com 호주연합교회 은퇴목사)
(02) 8876 1870
info@hanhodaily.com
http://www.hanho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