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이면 북극곰 같은 에스키모와 함께 로열 보타닉가든에서 브리즈번 강변을 따라 산책을 시작한다. 이 길은 굿윌브릿지(Goodwill Bridge)를 지나고 사우스뱅크(Southbank)까지 연결되어 있다. 하늘을 가릴 만큼 초록잎 무성한 나무들이 열병식 하듯 늘어서 있는 공원길을 걷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천천히 걷는 걸음걸이마다 생각이 하나씩 떠오르고 내가 보낸 한 주일의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브리즈번 강위에는 한가로워 보이는 보트들이 넘실대는 물결위에서 흔들거리며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건너편 캥거루 포인트의 절벽 위로 외줄로프에 매달려 기어오르는 록클라이머들의 풍경도 펼쳐진다. 위험한 스포츠에 힘을 쏟는 그들의 정신력과 체력이 부럽기만 하다.
유난히 파란하늘과 하얀 구름이 조화를 이루고 눈부신 햇살이 발끝에 걸리는 봄날,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산책을 하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El Camino de Santiago)을 생각하게 된다. 은퇴한 후에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여행은 스페인으로 가서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물론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다 걷지는 못하겠지만 일부라도 걸으며 침묵 속에서 신과 대화하며 만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몇 년 전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소설 “순례자”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서 산티아고 순례 길을 방문하고 싶다는 꿈을 지니게 되었다.
하나의 교훈처럼 내 가슴 안에 담고 있는 말이 있다. “ 마음을 열고 하늘을 껴안아라.” 독일인, 하페 케르켈링이 쓴 소설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에서 나오는 글이다. 산티아고 카미노가 알려진 계기는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의 한사람이었던 사도 야고보가 순교한 후에 시신을 그의 제자들이 이베리아 반도의 갈리시아 지방에 매장을 했었다. 시간이 흐른 후인 8세기경에 지나가던 주민들이 밤길을 걷다가 밤하늘을 비추어야 할 별빛들이 구릉의 들판을 맴돌면서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 곳을 조사하다가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이 지역을 '빛나는 별 들판의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라 고 부르면서 성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리고 매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몰려와서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 정화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해결하지 못한 무언가를 목에 걸린 가시처럼 품고 살 때도 있다. 이제는 일을 놓고 편히 살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나는 건성으로 들으며 하루의 시간이 아쉬운 듯이 살고 있다. 그런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 길을 다시 깨닫게 만들어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소설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영화한 “나의 산티아고” 이다.
독일에서 유명한 연예인이었던 하페 케르켈링은 휴식 없는 바쁜 생활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대 위에서 쓰러지게 된다. 의사는 그에게 최소한 3개월의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선고를 내린다. 하페는 어린나이에 엄마의 죽음을 경험했으며, 그때 맞닥뜨렸던 신의 존재를 떠올리며 단절되었던 신과 다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으며,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신을 통해서 대답을 얻기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는 혼자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며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등도 겪지만, 결국에는 바람 부는 들판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왜 그리 눈물이 흐르든지... . 그는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지난 삶을 뒤돌아보고 많은 일들을 생각한다. 순례의 길은 고통이 따르지만 진리를 만나기 위한 길로 걸어가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길 위에서 깨달음이 늘 보장되는 건 아니며 두려워해서도 안되고 열망해서도 안된다는 충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깨우쳐야 하는 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무런 기대와 바램을 갖지 말라는 말로 이해된다. 또한 순례의 길은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여행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화두처럼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래야 나를 잃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고 작가는 말한다.
보타닉가든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다른 쪽이지만 느낌이 새롭다. 같은 길이며 방향만 다를 뿐인 산책로는 올곧게 펼쳐져 있는 강변의 가로수 길이다. 조깅을 하는 사람, 아기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엄마, 풀밭에 누워서 낮잠을 즐기는 여유, 놀이터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아빠, 바로 우리 곁에 있는 각각의 사람들이 지닌 삶의 모습들이다. 내가 걸어왔던 길이 어떠했는지, 내가 지금 걷는 길이 어떠한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자. 하루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는지에 대한 감각만 잃지 않기를 바란다.
베네딕트 수도원에 가면 방문객들에게 주문 같은 울림을 안겨주는 라틴어가 돌에 새겨져있다고 한다.
Hodie Mihi (오늘은 나에게)
Cras Tibi (내일은 너에게)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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