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둘째 주에 그레이스테인스 연합교회에서 한 목사 안수식이 있었다. NSW주에서는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의 목사라고 했다. 그는 다음 달 혼스비 연합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할 예정이다. 그를 배출한 본교회와 안수를 맡은 노회 모두 기뻐했다. 그의 가족과 아프리카 친구들에게는 춤과 찬양, 감사의 눈물이 함께 한 예배였다.
3년 여 동안 그 목사와 멘토였던 인연으로 나는 이 안수식 예배의 설교자로 초청받았다. 설교의 끝부분에, 나는 그에게 개인적인 권면을 했다. 그대 정체성의 뿌리는 아프리카 호주인이다. 또 이것은 그대의 삶과 목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제는 그대 자신의 뿌리와 영성을 늘 자랑스러워 하며, 호주 목회 속에서도 춤과 찬양, 큰 웃음과 눈물이 함께하는 자신만의 구별된 사역이 드러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수년간 호주 공무원이었고, 그의 아내도 중요직책을 맡은 경찰로서 호주 주류사회에 익숙해있다. 그는 호주의 새로운 문화와 가치, 직장환경 등에 적응하기 위해서 얼마간은 모국인 가나를 잊고 살았다고 했다.
때로는 분재나무를 키우듯, 자신의 뿌리와 가지를 잘라내는 것 같은 절제를 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반대의 권면을 한 것이다. 이제는 보통 호주 교인들의 삶, 우선 순위와 방법을 충분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자신만의 고유한 것들을 나누며, 호주 교회 속에 새로운 변화와 재창조로 기여해 보라는 바람을 전했다.
지난 5월, 뉴욕의 한 공원에서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꽃울 보았다. 거기에 ‘코리안 라일락’ 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었다. 얼마나 반갑고 신기했던지! 나는 오래 전부터 라일락을 좋아 했었다. 소박한 그 꽃의 진한 향기를 사랑했었다. 프랑스에서는 라일락을 리라꽃이라고 부른다고 기억된다. 많이 잊어버렸지만 “베사메, 베사메무초,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라는 그런 노래말을 흥얼거렸던 젊은날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꽃이다.
그런데 그 주에 나온 미주 한국일보에서 ‘미스김 라일락’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1947년 미군정청 자문관으로 왔던 엘윈 미더(Elwin Meader) 교수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취한 토종종자를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하여 ‘미스김 라일락’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했다. 일반 라일락보다 키가 작지만 향기가 더 진하고, 꽃이 더 오래 피어서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했다. 이 꽃을 70년 만에 다시 한국 북한산으로 돌려보내는 프로젝트를 앞두고 특별전시를 가진다고 했다.
오래 전의 그 토종 씨앗을 생각해 본다. 낯선 토양에 심겨져, 외롭게 기다린 시간도 길었으리라.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견디어야 했겠고. 연한 뿌리가 조금씩 굵어져 그 땅을 뚫고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아야 했던 그런 몸부림을 생각하며 아련한 아픔을 느낀다. 그러나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그같은 아픈 과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한 결과, 지금은 미국 땅 크고 작은 공원들과 개인 정원 등에 심겨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않는가! 또한 고국땅 북한산에도 자랑스럽게 귀향할 수 있지 않는가!
9월 초에 발간된 한호일보에서, 한인교포들의 호주인으로서 정체성과 소속감이 매우 낮다는 한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74%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13%만이 호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것은 투철한 애국심의 표현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바로 이런 태도가 호주사회에 정착하는데, 언어장벽 그 이상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호주 주류사회에 깊히 들어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 때문에 필리핀계 등 다른 아시아 이민자들과 비교해서도, 평균소득이 낮고, 정치적인 영향력이 작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 비해 교육수준도 훨씬 더 높고, 부지런하고, 재주가 많은 한인교포들이 말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페어 딘컴 오지(Fair Dinkum Aussie)는 ‘순전한 호주인’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여기서 Dinkum은 한자어 '정금(正金 'ding kam’, 진짜 금 ‘real gold’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851년 빅토리아주 발라렛이나 벤디고 등의 골드 러쉬를 맞아 영국이나 유럽, 북미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중국 사람들의 삶과 언어 등이 호주 사회 속에 Dinkum이라는 새롭고 중요한 어휘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본다. 소고기 파이(Meat Pie)는 흔히 호주인들이 만들었고, 또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레바논계 이민자가 처음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은 호주 국민 다수가 좋아하는 호주음식의 하나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민생활을 통해서 개인이나 한인공동체가 몸으로 배운 지혜들이 많은 줄 안다. 그 중의 하나로 이제는 어떤 분야이든 생업이든지 간에 최소한 30년 후를 바라보면서, 호주의 토양과 역사 속에 씨를 심고 뿌리를 내리려는 노력이 있어야겠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먼저 이 땅의 토양을 알고, 적절한 씨앗을 심어야 할 것이다. 또한 외롭지만 참고 기다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껍질을 깨고 벗는 고통도 있을 것이며, 척박한 새 땅에 뿌리를 내려야하는 억척스러움도 필요할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언어나 전통, 문화와 음식, 가치와 노래 등을 우리만의 것이 아닌 호주적인 삶의 방식과 생활 속에 받아들여지고 토착화시키는 지름길인 줄 안다.
마치 아프리카 출신의 호주 목회자처럼, 미국의 미스김 라일락처럼, 혹은 호주 속에서 중국어의 딘컴이나 레바논계의 소고기 파이처럼 말이다.
최정복 (호주 연합교회 은퇴목사)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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