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참, 바쁘게 사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말이 부담스럽게 들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이를 생각하고,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는 충고로 받아들여진다. 몸살을 앓으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거절하지 못하고 “예”라고 편하게 대답해 버린다.
올해 상반기는 유난히 건강에 문제가 많았었다. 두 달이 넘게 감기에 시달렸고 나을 무렵쯤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으며 또 다시 회복될 무렵에는 간단한 수술을 받았는데 진통제 부작용으로 큰 수난을 겪었다. 이런 일들을 견뎌내면서도 맡겨진 많은 일을 열심히 해냈다. 그것은 내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는 삶은 내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만도 아니고 우월감도 아니다. 세상에 살면서 내 마음이 가는대로 바르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간 참으로 다양한 행사에 참석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바쁘다, 피곤하다”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교육 세미나, 학교행사, 광복절 행사, 브리즈번 시장 방문, 한국전통 그림 전시회, 한인의 날 행사 등... 다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정 속에 파묻혔다.
지난 5월 말경에 한인회 주관으로 교육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느낀 점은 많은 사람들이 정보에 목말라한다는 것이다. 퀸즐랜드 주의 대입제도가 2018년부터 바뀌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교육청의 사무관과 함께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건강복지 전문가를 초청해서 교민들이 모르고 있는 정부의 복지혜택에 대해서도 알리는 기회를 제공했다. 학부모들의 진지한 태도와 쏟아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한국인 부모들의 교육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오늘, 제가 인기가 너무 많지 말입니다”라는 드라마의 유행어로 웃음을 날리며 세미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퀸즐랜드주에서는 QCAA(Queensland Curriculum & Assessment Authority: 교육과정 평가원)라는 정부기관이 교육과정, 교육평가 연구 및 대입수능 시험 출제를 담당하고 있다. 올해 12학년인 학생들은 8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서 수능시험(QCS)을 치르게 된다. 수능시험의 제도로서 OP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등급이 1-25까지 배열되어있다. 각 대학교의 학과마다 제한된 등급이 있어서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지원하려면 걸맞은 OP등급을 받아야 한다. 특별히 한국학생들에게는 보너스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국어 시험(External Exam)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등급이 올라가서 학과 선택에 큰 도움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한국학생들이 한국어 시험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시험을 치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브리즈번은 호주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아직까지 정식으로 한국어가 신설된 정규학교가 없는 실정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공립 하이스쿨에 전임 시드니 총영사와 교육원장의 방문을 계기로 한국어 정규과정 신설에 밑불은 붙여진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필자는 IB프로그램(디플로마 과정)의 한국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수업개요(Syllabus)가 일반 한국어 과정과는 많이 다른 수업방식이다. 브리즈번에서도 한국어수업이 하루빨리 정식과목으로 채택되기를 바랄뿐이다.
지난 8월 13일(토) 시청 광장에서 개최된 한인의 날에 이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킹 조지 스퀘어를 가득 메웠다. 한국문화와 예술을 호주사회에 알리는 큰 이벤트가 펼쳐졌다. 매년 열리는 예술 문화의 축제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자랑스럽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다문화 사회, 다민족 사회인 호주에서 당당하게 성장하는 코리안 커뮤니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된다. 올해의 깜짝쇼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호주인 여선생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한국어의 중요성을 모여 있던 청중들에게 알리는 이벤트였다. 그녀들의 한국사랑에 감탄하며 큰 박수를 보냈다. 풍물패의 우렁찬 연주는 시청광장을 가득 채우며 하늘 높이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축제의 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인종의 구별 없이 함께 즐기며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사는 이 사회에서 내게 주어진 몫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살면서 만나지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역할이 있듯이 내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남겨 놓으려면 건강이 따라 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 하루도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
‘행복’ 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당신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지는 마세요.”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02) 8876 1870
info@hanhodaily.com
http://www.hanho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