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화지와 형형색색 크레파스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 이제부터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한동안 눈을 감고 내 인생의 굴곡 위에 그려질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태어나서 부모형제와 함께 했던 첫 삼십 여 년의 배경은 동네 골목마다 개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결혼해서 두 자녀를 독립시킬 때까지의 다음 삼십 여 년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와틀꽃이 늘 함께 했다. 그리고 허락된다면 내 이름 석 자로 살아 보고픈 앞으로의 삼십 여 년의 바탕에는 이 두 가지 꽃이 더불어 피어있기를 희망해 본다. 노란색 크레파스를 집어 든다.
골든 와틀 (Golden Wattle)이라는 꽃은 1988년에 호주의 국화(國花)로 제정되었다.
우리 식구가 시드니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던 해이기도 하다. 매년 팔월이면 산책길에서 이 황금빛 꽃을 만나곤 하는데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꽃송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만발해 간다. 순식간이다. 구월에 봄이 시작한다는 호주에 봄이 가까워졌다고 일찌감치 알리는 전령사와도 같다. 초록 잎도 동시에 곁들여 은은한 향기까지 더해가며 벌들을 초대한다. 베로니카 메이슨의 시(詩)가 이즈음 즐겨 읊히는 이유는 늦겨울 풍경을 우울하게 묘사한 후 ‘그러나 이제 봄이 왔네/만발한 와틀과 함께’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리라.
이 곳의 추위는 한국처럼 상큼하게 추운 것도 아니면서 을씨년스럽게 뼛속으로 파고든다.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이 아닌데도 몸과 마음을 얼음장으로 만들 때마다 양지 바른 곳의 샛노란 개나리를 떠올리면 몸이 따스해져 오곤 한다. 도착하던 해엔 우유 2리터가 68센트였지만 저녁엔 열려있는 상점이 없었고 주말 내내 굳게 닫쳐 있었다. 미처 준비해 놓지 못해 아가는 배고파 울고 그것을 보는 엄마는 생활이 익숙하지 못해 울었다. 이렇게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왜 개나리가 그토록 그리웠을까? 절망스런 순간에 희망을 주던 그 노란꽃은 내 마음을 알아 주곤 했었으니.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매단 교복을 입고 초등학교를 입학해 설레임보다는 겁이 더 많았던 시절에도 교정 담벼락에 쏟아져 내릴 듯 무리지어 피어있는 개나리를 보면 꽃말처럼 희망이 생겼었다. 물론 어린 계집애의 수줍음도 달래주곤 했다. 웃풍이 심한 한옥집에서 지독한 겨울을 날 때마다 개나리는 언 몸을 녹여주며 또 새 학기를 부푼 꿈으로 시작하게 했었다.
호주에서의 삶에 황금빛 와틀이 등장했고 그래도 그 꽃에 정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내가 닮고 싶은 한 가지 뛰어난 장점을 발견하고부터였다. 열악하고 메마른 토양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심지어 모래 언덕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노란색에서 개나리를 느껴보려고 무던히도 애쓰곤 했지만 색이 같다고 해서 그리움까지 달래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노란꽃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개나리는 나처럼 한국이 고향이다. 그래서 학명도 포시티아 코리아나(Forsythia Koreana)로 되어있다.
온 천지를 노랗게 수놓는 이 꽃을 한 번 더 보고 가려다 아쉽게 목전에 두고 한반도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 고국 방문을 꽤 여러 번 했는데도 다시는 볼 기회가 없었다. 사월이면 들리는 고향의 개나리 소식에 향수병으로 몸살을 하던 차에 구하기 힘든 묘목을 선물로 받았다. 토양과 기후가 많이 다르지만 햇볕이 좋은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나던 생각이 났다. 설레임을 안고 탐스럽게 피어날 것을 상상하며 뒷마당 볕 좋은 명당자리에 심어주었다. 처음엔 열심히 물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한 해 두 해 자꾸 세월은 가는데 꽃은커녕 가지에도 살은 오르지 않고 생명력이 강한 식물임에도 영 자리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걱정했던 대로 푸른 잎만 매달고 겨우 연명하는 모습에서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나를 보는 듯하여 최근엔 아예 외면 해 버렸다.
얼마 전 구월 중순이 되니 찬란했던 와틀 꽃송이들이 누렇게 바래고 고개를 숙이면서 결국 땅으로 모습을 떨구었다. 그래도 대륙에 봄을 알리는 소명을 다했으니 당당하다. 일 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기에 아직 남아있다면 한 번 더 눈에 담아 놓으려고 조바심을 냈다. 부지런히 나무들을 훑으며 먼 곳을 쳐다보는데 아무도 없던 허허벌판 저 멀리 맞은 편에서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이른 새벽 이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도 왠지 혼자 내기를 하며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으니 미소로 가볍게 인사하며 스쳐 지나갈 뻔하는 순간 ‘어머, 안녕하세요?’라는 소리에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평생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일이 일어났다. 북반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다.
일반인보다 여행이 자유로울 것 같지 않은 지인의 딸이 수도복 차림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내 앞에 서 있다. 모처럼의 휴가를 마치고 그 날 돌아간다는 그녀. 우연이라 하기에도 확률이 너무 희박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했다. 이미 약속된 만남보다도 반갑고 신기하여 온몸에 전율이 왔다. 일초라도 더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안고 헤어져 집으로 향할 밖에. 그토록 찾던 초봄의 마지막 와틀꽃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듯 했고 흥분은 다음 날까지도 가실 줄 몰랐다. 나는 습관처럼 커피 한 잔을 들고 부엌 창문을 통해 무심코 뒷마당을 내다봤다. 노란색이 눈에 들어왔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보니 비쩍 마른 가지 끝에 분명히 종모양의 꽃이 달려있다. 푸른 잎만 보여주던 개나리가 안쓰러웠는데 드디어 꽃을 피워낸 것이다. 통통하지는 않지만 제법 네 잎을 갖춘 모양새가 누가 봐도 개나리꽃이다.
호주 땅에서 어렵게 꽃을 피워낸 개나리가 내 인생에도 봄날이 왔음을 알려준다.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무슨 말을 들어도 곧 이해가 된다는 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희망 가득한 봄날의 문턱을 넘어섰다. 고향의 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노란 개나리를 나눌 수 있으니 앞으로는 일년 내내 봄날이리라. 어느 새 초록색과 노란색 크레파스는 다 닳았다. 하얗던 도화지엔 태양빛을 머금은 와틀꽃과 그 옆에 개나리꽃 몇 송이가 의기양양하게 피어있다.
차수희 (수필가, 호주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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