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호주신학교에서 공부 할 때가 기억난다. 매번 맨 앞자리에 앉아서 눈을 부릅뜨고 들어도 강의의 반은 놓치던 그 때 말이다. 옆자리에 앉은 친절한 호주친구가 자신의 노트를 보여주지만,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의 필체여서 전혀 도움이 안되었다. 결국 혼자서 씨름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남이 1시간이면 다 읽을 논문을 난 서너시간을 붙들고 앉아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지만 고난은 훈련과 성숙을 가져온다. 덕분에 영어 실력도 많이 늘었고, 어지간한 강의는 어렵지 않게 핵심을 파악한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다.
그러나 학업과정에서 가장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공부의 어려움 자체가 아니었다. 도리어 내 의견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무시되는 분위기가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말로 하라고 하면 그냥 그 자리에 끝낼 것을 영어로 어렵게 엮어 내야 하는 것도 큰 숙제였지만, 그 보다는 내 의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하는 상대편을 보면 무시당한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인지 더 기분이 나빠졌다.
실제로 호주친구들 중에서는 나를 도와줄 때는 아주 친절한데, 논쟁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너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같은 태도를 보이는 인간들이 없지 않았다. 나중에 호주단체나 교단에서 일하면서도 좀 더 미묘한 방법으로 같은 태도들이 드러나는 것을 발견하면서 속상한 적이 많았다.
물론 실제로 내가 잘 모르고,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문제도 많겠지만, 그런 것에 해당되지 않는 것 앞에서 아시아계를 무시하는 뿌리깊은 태도가 자꾸 눈에 띄기 때문이다. 호주생활이 더 익숙해지고, 영어가 늘면 늘수록 '미묘하게' 이런 모습을 흔하게 발견하기에, 이민생활이 쉽지는 않다.
다행히도 이러한 도전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훈련의 일부였던 것 같다. 나를 겸손하게 하시고, 또 그들의 교만을 보면서 내 모습을 반추하게 하시는 지혜로 말이다. 동시에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내가 옳거나 분명히 내 의견을 정리해서 표현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은 아님을 배운다. 상대의 선입견, 뿌리깊은 문화적 분위기, 거기다 각 개인이 매일 만나는 다양한 경험들이 어우러져, 대화는 항상 '창조적'으로 진행된다. 덕분에 호주에서 사는 '다문화의 경험'은 우리를 더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인도한다. 그래서 이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가끔이라도' 드는 모양이다.
김석원(교육전문사역단체 under broomtree ministr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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