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 은혜가 안된다는 한탄이 자주 들린다. 내 설교를 듣고도 그런 소릴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은혜가 안된다. 깊이가 없다.... 설교가 주업인 목회자들엔 무서운 이야기다. 정작 무슨 뜻으로 그런 무시무시한 소리를 하는 것일까?
자주 지적되는 것은 설교가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베낀 설교 같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저작권이 강조되는 시대에 심각한 지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베끼는 몰염치에 빠지진 않아도, 설교가 뭐가 그리 새로울 것이 있을까? 특히 한국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수교회들은 ‘새로운 사상’이나 ‘성경 외 이야기’를 설교에 끼는 것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혀 새로운 이야기 여부가 기준이 되긴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불평은 주로 표현방법과 적용 내용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적용은 나중에 또 다루겠지만, 표현방법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동시에 기술과 훈련 문제다. 적어도 ‘공적 발표자’의 역할로 그 자리에 선 만큼 목소리, 단어선택, 내용표현방법 여러 가지 면에서 ‘공적’ 발표자에 걸맞는 수준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고 설교로 월급을 받기엔 좀 부끄러울 수 밖에 없다. 여기선 목회자의 자성과 노력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다른 비판은 성경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장 설교들을 듣다보면 그런 문제가 자주 발견된다. 설교를 성실히 준비하는 목회자라면 다루는 주제나 본문의 핵심을 잘 추려내고, 이것이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 지 비교해 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둘러보는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설교 내용은 한쪽에 치우치거나 설익은 반쪽짜리 결론을 피하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는 예화와 적용문제다. 여기서 가장 흔하게 지적되는 것은 너무 교회이야기만 한다는 지적이다. 하나님의 응답하면 교회사역이 커지는 이야기, 하나님의 역사하면 선교지 이야기, 하나님의 도우심하면 교회일하다 겪은 기적적인 도움들... 이런 식이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경험이긴 한데,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목사나 직장과 가정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하며 교회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남의 일’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교역자 태도문제일 수 있다. 평소에 교인들의 ‘삶’에 충분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심방하며 대화한 사람이라면, 또 신학서적 뿐 아니라 세상의 뉴스와 사정에도 관심을 가지며 살아왔다면 예화가 교회 안에만 있을 리가 없다.
어쨌든 교회 안에서 들리는 설교에 대한 불평, 강단의 위기는, 목회자가 마땅히 거쳐야 할 전문가로서의 훈련 미숙, 성실성 문제, 그리고 관심의 폭 문제이다. 이를 위해 목회자 자신부터 대화기술을 향상시키고, 깊은 연구와 고민을 소홀히 하지 말고, 보다 실제적이고 다양한 삶의 현실에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설교의 질이 모두 목사책임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옳지않다. 이를 위해선 교인의 도움도 많이 필요하다. 설교를 연구, 준비할 시간에는 설교자를 보호해서 방해받지 않도록 좀 도와주어야 한다. 설교에 대해 계속적인 피드백도 매우 중요한 공헌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설교가 설교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작업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설교자라는 제한되고 부족한 도구를 이용해서, 하나님이라는 무한하고 완전한 대상을 표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소리도 나오는 것이다. ‘설교는 듣는 사람의 태도 문제’라고....
그래도 여전히 목회자의 짐은 무겁다. 짐을 싸들고 기도원으로 가야할 때인가? 나를 충분히 내려놓고 있는가? 하나님만이 온전히 드러나시도록 충분히 주의하고 있는가? 고민이 많다.
김석원(교육전문사역단체 Under Broomtree ministr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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