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 1:16~17)
영원한 가치를 발견한 룻의 고백이다.
설명 할 수 없는 슬픔과 꼬인 인생은 여전히 설명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선택은 더욱 분명 해졌다. 기가 막힌 고난을 겪는 동안 안될 것을 안될 것으로 깨닫고, 내힘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를 아는데 고난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면에서 그 고난은 축복이었다.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시어머니 나오미가 부르는 여호와라는 신과 그의 약속에 대해 간간히 들었던 룻은 여호와에게서 목숨 걸만한 가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생명처럼 붙들었다.
살아가는 동안 목숨 걸만한 가치를 발견 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어차피 죽을 인생, 죽음에게 쫓겨 다닐 것인가, 아니면 목숨 걸 가치와 대상을 좇을 것인가?
영원히 달리 될수 없는 참된 결론, 진리를 붙든 룻은 진리에 운명을 걸었다. 나오미를 따라가는 룻을 보면 진리를 소중하게 만난 자들의 태도가 모두 동일 하다는 것을 알수있다.
엘리사는 엘리야라는 사람에게 한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죽기까지 따라 갔는데, 아무리 말려도 그를 엘리야에게서 떼어 놓을수 없을 정도였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맹 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
하겠나이다”(왕하 2:2)
결국 나중에 엘리야가 두손을 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를 네게서 데려 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왕하 2:10)
무슨 말인가? 0.0001%도 돌아갈 여지가 없는 결론난 마음이라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복음 앞에선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엘리야를 발견한 엘리사 처럼, 나오미를 발견한 룻처럼 진리의 복음에 마음의 닻을 내렸는가?
왜 복음의 영광을 발견하지 못하는지 아는가? 틈만 나면 돌아서려 하고, 핑계를 대고 결론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 주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예외없이 돌아 갈 여지를 끊었다!
주님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실 때 망설이는 이유는 자기 계산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복음외에 다른것을 가지고 가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좁은 길은 더욱 좁아 보이고, 험한 길은 더욱 험해 보인다. 그러기에 아무나 못간다. 십자가의 길은 모든 것을 뛰어 넘을 만큼 복음의 영광에 사로 잡히지 않으면 갈수 없는 길이다.
룻은 진리를 결론 삼고, 시어머니를 따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곳으로 갔다. 그리고 드디어 그 곳에서 예비하신 구속자 ‘고엘’(Goel)을 만났다!
마치 보이지 않는 주님을 보이는 분 처럼 보고,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갔던 아브라함의 믿음과 한치도 다를바 없다.
믿음의 질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룻의 믿음은 동일하다. 이 이하의 믿음은 존재할수 없다. 이 믿음을 가지고 시어머니를 따라 갔는데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것이다.
출처: 김용의 선교사(순회선교단)
http://gnp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