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적인 수집가?
전설적인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어떤 것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동화책, 유명인의 신발, 편지, 빛바랜 사진, 해묵은 엽서는 기본이고, 진료비 청구서, 수프 캔, 썩은 피자꽁다리 등 일반 사람들이 쓰레기로 취급하는 잡동사니들을 꼼꼼히 모아 수백 개 상자에 채웠다. 그는 이 상자들을 ‘타임캡슐’이라고 불렀으며, 이 타임캡슐을 5층 건물 전체에 물건을 쌓아둬 실제 사용할 수 있었던 방은 2개였다고 한다.
워홀은 1975년 출간한 저서 <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나 자신은 원치 않은 물건이라도 그걸 버리는 건 내 양심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수집가라기보다 저장강박 증세를 보이는 ‘호더’(Hoarder)였다.
워홀은 수집품을 병적으로 모으면서도 수집가처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 “종이와 상자들. 나는 무언가를 집에 가져오면 아무 데나 놔두고 다시는 집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그가 타임캡슐에 저장해둔 온갖 잡동사니들을 언급하고, 그렇게 강박적으로 저장함으로써 정신병을 창조의 요소로 받아들인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 환자로 결론짓는다.
실제로 워홀은 1954년부터 198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 이상 골판지 상자에 온갖 잡동사니를 닥치는 대로 채워 넣고 그 상자를 보관했다. 워홀이 죽은 뒤 뉴욕에 있는 저택은 물건으로 가득 차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태였다. 오늘날 정리수납전문가들도 그곳에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둔 600개가 넘는 타임캡슐과 그 안에 들어있는 약 50만 개의 물건은 지금까지 남아서 피츠버그 앤디 워홀 미술관에 어엿한 예술작품으로 보존되어 있다. 학자들은 그것을 면밀히 조사하고, 관람객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거기에 매혹된다.
잡동사니 쓰레기 속에서 안락함을?
잊혀질듯하면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이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 소위, 저장강박 증세를 지닌 호더의 이야기이다. 잡동사니를 절대 버리지 않고 잔뜩 쌓아둔 채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는 행동은 저장강박이라는 정신장애에서 온다.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사거나 주워와 집안 가득 ‘병적으로 축적하는 행위’를 호딩(Hoarding)이라 부른다. 미국의 한 방송은 저장강박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7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최근 들어 인기 직업군에 들어온 ‘정리수납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검색해보라, 가정집에서 수십 톤의 쓰레기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온갖 잡동사니와 각종 음식 쓰레기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푸드 호딩’부터 수십 마리의 유기 동물과 그 시체들이 들끓고 있는 ‘애니멀 호딩’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종류, 그런 것에 애착을 갖고 모으고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집 안에 쓰레기를 잔뜩 쌓아 두어 이웃들에게 악취, 해충 등의 피해를 끼치는 것은 기본이다. 작게는 잡동사니, 추억이 담긴 물건들, 희소한 물건들부터 시작해서 재산가치 목록에 끼우지도 못할 다양한 물건을 수집하고 집착하는 증상을 보이는 호더가 얼마나 많은가? 가벼운 정도라면 정리가 필요한 정도로 여기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치료를 필요로 한다.
이들은 물건의 실제 가치와는 관련 없이 버리지 못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대체로 그 물건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것이거나 미학적 가치가 있다고 여겨 소유물에 대한 감상적 애착, 소유물의 운명에 대한 책임감, 중요한 정보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등의 이유로 호딩을 멈추지 못한다. 주로 공허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며, 마음속 허전함을 물질로 채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호더들은 공통으로 우유부단하고,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며, 회피적이고, 꾸물거리고, 조직의 어려움을 겪으며, 산만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타인으로부터의 거절로 인한 자존심 손상 등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호딩이 심해지면 그 자체로도 일상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침대 위에서 잠을 잘 수 없거나 의자 위에 앉을 수 없기도 하고,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넘어 타인의 활동 영역까지 침범하여 물건을 쌓아 두는 탓에 타인의 행동까지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보통사람이라면 그곳에서 자거나 밥을 먹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호더들은 그렇게 저장해 놓은 물건(사실은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을 때 안락함과 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심지어 집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웃고 있다.
추억이 담긴 물건, 구하기 힘든 수집품, 손톱 등을 저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미라가 된 ‘남편의 시신’을 집에 저장한 여성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 물건들을 건드리면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아 다른 사람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그 많은 물건들을 ‘좀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들은 순간 갑자기 심장이 요동을 치고 심하게 불안해지고 ‘극도의 두려움’까지 느낀다. 모든 것을 걸고 저 물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좀체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치워도 내가 치운다’며 다른 사라들의 도우도 한사코 거절하고 정리를 계속 미룬다. 보다 못한 가족이 호더가 없을 때 물건들을 버리고 정돈이라도 해버리면 말 그대로 ‘죽을 것만 같은’ 숨 막히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다음에 꼭 필요할 때 찾아서 쓸 수도 있는 데 그걸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버렸다는 것에 대한 원망’과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러한 심리는 전형적인 저장강박증이다. 물건에 대한 사용 여부와는 관계없이 버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해 두는 강박장애의 일환으로, 습관적인 절약 또는 취미로 수집하는 것과는 별개로 심각한 증세가 보일 경우 치료가 절실한 정신질환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의사 결정을 회피하게 되고 결국 저장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도대체, 왜?
저장강박증의 원인은 정확히 규명된 것이 없지만 크게 두 가지로 생각될 수 있다. 뇌의 활성화에 대한 능력 상실과 우울증과 불안한 정서에 동반되는 강박장애다.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손상됐기 때문에 물건이 필요한지, 버려야 하는지 가치평가를 내리지 못해 일단 저장해 두는 경우를 저장강박으로 보는 것이 의학계의 주된 입장이다.
또 유아기의 애착관계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장강박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신적 문제로는 유아기 시절 주변의 관계인들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못 받았을 경우 이를 심리적으로 보상하기 위해 물건에 과도한 애착을 갖게 된다. 이는 유아들이 자기 물건에 다른 사람의 접촉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상실 또는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우울증으로 발전하여 그 아픔을 보상하려는 심리로부터 만족감을 느끼고 강박증 증상을 가지게 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대부분의 호더들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생각으로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물건을 저장한다. 이 저장을 통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준비되어있다고 안심하면서 잘못된 패턴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이러한 안일한 생각이 저장강박증의 출발선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세계 인구통계의 2~5%가 저장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저장강박증 사례를 연구한 마이크 넬슨에 따르면 설문응답자 879명 중 51%가 자신의 강박증에 대해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마이크 넬슨, 잡동사니 증후군, 큰나무, 2011, p.13).
중요한 것은 강박증을 앓고 있는 실제 환자들이 모으는 것이 무용하고 저급한 점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특정 물건을 모으는 우리의 일상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즉 어느 누구나 저장강박증에 쉽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저장강박증의 치료의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환자가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의지를 갖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강박장애보다 치료가 쉽지만은 않은데 그러한 부분에서 약물치료보다는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상담치료’가 더 효과적이다. 저장강박증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므로 사회와 대중의 관심이 절실하다. 또 호더들이 자신들의 심각성과 인간관계에서 안정을 찾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끔 지지해 마음을 다스리도록 도와줘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저장강박 당사자들이 단순히 ‘정리에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고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건들을 ‘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못 버리는’ 심리도 인해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금방 놓아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그것이 그 순간 전부라고 느껴서 붙들고 있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해 주고 갈등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마음속의 잡동사니
여기서 잠깐, 저장강박 호더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나는 값비싼 쓰레기통 속에서 산다! 내 것과 내 마음의 75%는 잡동사니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얼마나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많기에 그것만 전문적으로 치워주는 ‘정리수납 전문가’라는 직업군이 생겼을까? 미국 최고의 정리수납 전문가라는 브룩스 팔머는 10년 넘게 남의 집과 사무실, 차고 등에 쌓인 쓰레기와 잡동사니를 버리는 일을 도와온 베테랑이다.
그는 이 잡동사니를 마음을 어지럽히는 ‘심리적 잡동사니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우리 마음의 75%는 잡동사니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나아가 이 세상 물건의 75%, 우리 인생의 75%도 잡동사니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거대하고 값비싼 쓰레기통에서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거꾸로 말해서 우리가 잡동사니를 치운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세상의 쓰레기를 치우는 대단한 일 아닌가?
브룩스 팔머는 “우리는 술이나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한 잡동사니에 중독돼 있다”고 한다. 막상 버리려 하면 멈칫하고 들었던 손을 놓게 만드는 잡동사니! 그것의 질긴 유혹, 중독에 무심결에 빠질 대가 얼마나 많은가? 아직 쓰레기처럼 흉하게 방치되어 있는 우리 마음의 ‘잡식성 욕망의 산물’같은 잡동사니를 치워내기 위해 미국 최고 잡동사니 정리 전문가의 아래의 열 가지 지침, 소위 ‘잡동사니 버리기 10계명’을 곰삭여 마음을 새롭게 해보자.
1.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무엇인가 어색하고 거북하다고 느껴지면 그 물건을 버려라.
2. 어떤 물건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결정하는 데 우물쭈물한다면 그것은 잡동사니다.
3. 1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는 물건은 잡동사니다.
4. 물건이 비싸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면 그것은 잡동사니다.
5. 사진들은 대부분 잡동사니다. 살아있는 순간으로 가득한 사진들만 간직하라.
6. 만일 어떤 물건이 잡동사니라는 첫인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잡동사니가 확실하다. 첫인상은 틀리는 법이 없다.
7. 트로피처럼 '소중하다'는 이유만으로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은 눈 딱 감고 버려라.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기 위한 물건을 간직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8. 과거가 지금보다 특별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물건, 그때만큼 좋은 시절이 없었다고 옛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물건은 무엇이든 버려라. 현재의 인생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물건만 남겨라.
9. 망가져서 고칠 수 없는 것이나 고치고 싶지 않은 물건은 무엇이든 버려라.
10. 잡동사니는 접착성이 탁월하다. 겹겹이 쌓여 있거나 뒤엉켜 있는 물건들을 주목하라. 그런 물건은 전부 잡동사니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을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그 물건이 선물하는 느낌을 갈구한다. 그런 느낌 속에 들어 있는 마약 같은 성분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물건 안에 행복, 즐거움, 열정이 녹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우리는 소유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데 혈안이 돼 있으며, 그 물건이 자신의 참모습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브룩스 팔머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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