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의 엔트로피
사람들은 자기에 대해 남이 말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흔히 ‘뒷담화’라고도 하는 이 ‘남의 말하기’ 역시, 불변의 과학법칙인 열역학 제 2법칙처럼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뒷담화, 즉 남의 말하기는 으레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진행되며 방향도 무질서하게 사면팔방으로 흩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온라인, SNS의 발달로 ‘뒷담화의 진화’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명칭부터 ‘악플’(악성 댓글)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범위도 ‘뒷담화’시절엔 동네 한 바퀴 벗어나기에도 상당한 시절이 흘렀지만, 악플은 빛의 속도에 버금갈 정도로 빠르게 전 세계를 휩쓸 정도이다.
지금이라도 포털 뉴스를 열어보시라. 특히 정치인, 연예인, 체육인들의 악플은 뉴스 보도와 더불어 실시간으로 수백, 수천 개씩 달리는 곳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 악플 내용을 읽어보면 어지간한 사람은 심장이 터져 기절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욕설을 아무 죄책감도 없이 예사롭게 도배되고 있다.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악플에 상처를 받아 목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도 잊혀질만하면 다시 등장하곤 한다. 자신에 대한 비난과 혐오, 동정과 위로, 오해와 편견, 애정과 집착이 범벅된 수많은 악플들이 마치 토사물처럼 뒤덮고 있을 때, 어지간한 심정으로는 견디기 어렵다. 특히 ‘사람’이 아닌, 상품 품평회 하듯 차가운 말을 쏟아내는 군중들의 ‘악플 심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특히 지독한 진영논리에 따라 내편 아니면 모두가 적이고, 절대 악이라는 논리로, 상대방을 천하에 몹쓸 인간으로 만드는 댓글조작은 조직적, 체계적으로 예사롭게 일어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왜 사람들은 얼굴을 맞대고는 절대로 하지 못할 말을 인터넷에서 총알처럼 쏟아 낼까?
그들만의 독특한 심리
인터넷은 자신을 숨기기에 제일 좋은 공간이다. 컴퓨터라는 매개체 뒤에 숨어서 익명으로 오프라인에서는 하지도 못할 말들을 쏟아 내기도 한다.
영국의 행동 심리학자 헤밍스는 악성 댓글을 쓰는 이유가 “대다수 악플러가 오프라인에서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악플러는 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외톨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균형을 잃은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인터넷에서 푸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밝혔다. 악플러 대다수가 사회에서 존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인터넷상에선 책임감과 자기 인식을 포기한다. 또한, 악플러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비방함으로써 내적 열등감을 투사한다. 이러한 병적 심리는 악플러가 현실에서는 표출하지 못하는 공격성을 과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익명성은 악플러가 가장 좋아하는 요소이다. 내적인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수준 낮은 인정 욕구가 더해지면, 어설픈 경험과 지식을 뽐내서 저급하고 왜곡된 우월성을 확인하여 병적인 자존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악플을 달아도 익명성으로 인해 쉽게 보복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악플러들에게 공고하게 자리 잡은 것도 문제다. 자신처럼 특정 연예인을 비난하는 의견이 많아지면 ‘나 하나쯤 더 비난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군중심리가 작동해 무차별적인 악플이 양산된다.
‘누군가를 추앙해 스타를 만드는 것보다, 추락시키는 것에서 자신의 힘을 느낀다.’
물론 익명성이 악플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익명이 아닐 때에도, 예컨대 자기 이름과 얼굴을 걸고 하는 페이스북 같은 공간에서도 흔치 않게 악플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이버 닥터로 알려진 심리학자 린다 케이에는 “악성 댓글을 다는 이유가 사디즘, 정신병증 같은 성격적 특성도 있겠지만, 악성 댓글 같은 부적절한 행동은 악플러가 오락적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앞서 언급한 헤밍스는 “악플러는 다른 악플러들의 지지를 받는 것을 중요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주는 관심을 통해 현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자아 가치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혐오하고 싫어할 것 같은 메시지를 지속해서 보내는 행동을 가시성이라고 한다. 악플러는 이러한 가시성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더 강화한다. 자신이 쓴 악플이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악플러는 스릴과 즐거움을 느낀다.
인간이 추구하는 심리적 보상에는 칭찬이나 인정 등 긍정적 심리보상과 혼란과 무질서, 두려움 등 부정적 심리보상이 있다. 여기서 악플러들은 부정적 심리보상을 통해 자기만족을 추구한다. 현실 세계에서 이런 반사회적 행동은 집단 속에서 제지되지만, 인터넷에서는 익명성을 통해 무제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악플 피해자는 자존감 하락, 불면, 우울에 빠지고 심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지만, 악플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이 부족하고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지 않는 심리적 특징을 보인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튄다’는 느낌을 주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악플러들은 뛰어난 외모와 부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에 대해 시기심과 상대적 박탈감(혹은 열패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처럼 지나치게 도덕적 잣대를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옳다 아니면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해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인격모독적인 비난을 함에 따라 피해자가 발생한다.
온라인상의 부화뇌동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단어와 표현, 욕설, 직간접적인 위협을 날리는 것, 또는 단어나 기호들을 사용해서 공격성을 내비치거나 모욕적이고 상대를 격하하는 언사를 하는 행위를 ‘언어폭력’이라고 한다. 악플의 경우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언어폭력에 해당된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의 레오니 뢰스너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동조’행위가 악플 증가에 한몫 한다. 연구자들은 인터넷 공간은 익명성의 공간, 즉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공간인 동시에 네 편 아니면 내 편, 여성 아님 남성, 가난한 사람 아님 부자 같이 쉽게 집단화하는 공간임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도 내집단과 외집단을 칼 같이 구분하는 편이지만 온라인에서는 더 작게 파편화된 정보들로도 쉽게 누가 자신과 비슷하고 다른지 편을 구분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보다도 더 주변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게 되고, 그 결과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며 자신과는 다른 정치 성향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집중 포화를 쏟아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댓글을 쓰기 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쓴 기존의 댓글들이 얼마나 온건하거나 온건하지 않은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댓글들이 공격적이지 않을 때에는 비슷하게 공격적이지 않은 댓글을 달았지만, 기존 댓글이 공격적이면서 추가로 익명성 또한 잘 보장되는 상황에서는 언어폭력이 현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온라인상의 부화뇌동’이라고 할까? 사람들이 기존 댓글들의 톤에 큰 영향을 받아 우르르 악플을 달게 되는 것이 공통된 연구결과이다. 마치 두건을 써서 얼굴을 가리는 것만으로는 공격성이 폭발하지 않지만, 이미 잔뜩 화가 난 사람들과 함께 같은 두건을 쓰고 있을 때에는 집단적인 폭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원래 좀 그래!‘
사람들이 자기가 온라인에 쓴 글 하나만을 가지고 나라는 사람 전체를 판단한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억울한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댓글은 중요한 사회적 문화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되자 고대 아테네 시민들이 아고라에 모여 토론하듯이 온라인에서 각자의 의견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댓글 문화는 아테네의 참여 민주주의처럼 서로 의견을 보완하고 허점을 지적해 주는 등의 순기능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 또한 존재한다. 몇몇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핑계로 맹목적인 비난, 즉 악플을 소명처럼 달아대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악플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 정신건강의 현주소이기도 한다. 건강하게 극복되지 못한 스트레스가 잘못된 방법, 잘못된 통로로 분출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는 말이 있다. 온라인에서 쉽게 던지는 수많은 돌들로 인해 누군가는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특히 포털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은 아리라도,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소문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남의 시선에 신경 쓰고, 그룹과 조화를 이루려고’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뜻하지 않는 ‘뒷담화’에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런 뒷담화의 대상이 내가 되었을 때는 무엇보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남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고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심사숙고한 다음에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 ‘팩트 체크’ 없이, ‘그래/tek면 그 사람 좀 그렇네...’ 정도의 이야기를 쉽게 한다. 나에 대한 시선은 그저 ‘그 이야기가 이 사람 얘기인가?’ 정도의 눈빛이었을 수 있다. 약간은 삐빡한 시선을 가졌더라도 나를 직접 대하면 오해를 쉽게 풀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부류에 속한다.
그리고 일부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소위 정신과 교과서에 나오는 ‘성격장애자’는 인구의 10%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10명인 그룹에서 1명 정도는 애초에 성격적으로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 정치, 종교, 성별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더 흔하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뒷담화는 자연스런 풍경이다. 이런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나에 대한 뒷담화는 ‘반찬’으로 알고 받아먹고 잘 소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나의 체질에 맞지 않더라도!
그리고 상황과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나를 지지하고 있다면 그들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 억울하게 나를 비난하고, 그것을 생각없이 퍼뜨리는 세상에 환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가까이서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면, 이들을 맏아들이고 의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멀리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아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들은 원래 좀 그렇지 뭐.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과 억울함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라고 할 수 있다.
“욕설을 욕설로 되돌려주는 기술은 상스러운 자들의 몫이다.”
-프레데릭 2세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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