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드는 명약
장도니크 보비라는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사고로 전신마비되고, 왼쪽 손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그가 절규했다.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친구 목사님 중에 후두암 수술을 받아 침샘이 말라버린 적이 있었다. 항상 물병을 들고 다니면서 들이키며 그가 들려준 말이 얼마나 마음에 저려왔는지 모른다. “우리가 기분 나쁘다고, 더럽다고 퉤퉤 뱉어버리는 침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순간순간 깨닫고 있네! 침샘에서 침이 나오지 않으니 모든 음식을 부드럽게 씹을 수도 없고, 맛도 못보네. 입에서 냄새도 심하게 나고, 침이 마르니 가장 먼저 잇몸이 어떤 모습으로 빨리 상할지도 모르고...”
팬데믹의 계절에 우리가 처절히 경험하는 것은 아무리 건강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불시의 사고, 세균 하나가 우리 몸에 불시 방문하는 날이면,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육체라는 사실이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 씨는 온몸이 장애가 된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은 점점 굳어져 움직일 수 없었다.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 씨가 이런 처방을 내렸다.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줄 것이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는 아들이 감 두개를 건네주었다. 그는 손을 내밀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났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이다. 한 마디로 감사는 돈 안드는 명약이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행복은 어디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수줍은 듯 화사한 미소를 띠고 있는 신부와 평생 한 번 입을 턱시도를 입고 연신 웃음을 흘리는 신랑에게 제일 알맞은 인사는 역시 “행복하게 살아라”이다. 우리 모두는 무엇보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통계에 의존해서 말한다면 오늘도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새 가정을 이루는 젊은이들은 대략 30% 정도가 4년 안에 이혼으로 끝난다.
행복하게 살 것인지, 불행하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일까? 심리학에서는 ‘모든 행동은 개인적인 변인과 환경적인 변인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행복과 불행도 결국 나 자신과 환경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요인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자세나 가치관이 크게 달라진다.
서구 문화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영국의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영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는 모든 식민지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를 기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보는 시각이 셰익스피어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이전 사람들은 사람의 운명이 개인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 이전의 대표적인 극작가는 고대 그리스의 소포클레스이다. 그의 대표적인 비극 작품으로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 <오이디푸스 왕>이다. 대를 이을 후사가 없어 고민하던 테베의 왕에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고 신탁에 나와 있는 아들이 태어났다. 고민하던 왕은 결국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오이디푸스는 친아버지를 죽이고 만다. 그리고 테베의 왕이 되어 어머니와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막장 패륜을 저지르고 만다. 물론 본인은 자신이 친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후에 그 사실을 알고 스스로 왕위를 버리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 비극의 핵심은 오이디푸스 왕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고,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참 무섭고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황당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사실 오늘날도 ‘사주팔자’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결혼을 할 때 궁합을 본다든지, 이사할 때 택일을 하는 것 등도 다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면 주인공의 삶은 운명이 아니라, 성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변한다. 그의 4대 비극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햄릿>을 살펴보자. 갑자기 아버지가 죽는 비극을 겪은 햄릿은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복수를 결심한 햄릿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정작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며 결행하지 못하고 만다. 널리 회자되는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햄릿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극명히 보여주는 명대사다. 결국 햄릿의 비극은 운명이 아니라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운명인가, 성격인가?
셰익스피어는 여러 유명한 연극의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의 삶은 운명이 아니라 성격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위대한 극작가로 존경받게 되었다. ‘운명’과 ‘성격’ 중에 어떤 것이 우리 삶의 여정을 결정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 질문의 해답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식’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세계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성격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고 믿으면, 더욱더 성숙한 성격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자기의 삶을 성공적으로 개척해나가기 위해 분투노력하게 된다.
현역 시절 투수로서 뛰어난 활약을 한 후 1997년에‘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필 니크로라는 선수는 통산 318승 29세이브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24시즌 동안 매년 평균 13승 이상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엄청난 기록이다. 한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300승 이상을 올리는 투수가 될 수 있었냐고 할 때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내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300승 넘는 투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자신도 모른 채 마치 비극적인 오이디푸스 왕처럼 그는 위대한 투수가 될 ‘운명’을 타고났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건에 반응할 수 있는 자신의 ‘성격’덕분에 위대한 투수가 됐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에게서도 동일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들도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만 그 어려움에 성숙하게 대처했느냐 혹은 미성숙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대투수 니크로도 통산 274패를 경험했다.
반면에 70년대 미국의 팝계를 주름잡던 올리비안 뉴튼존이라는 여 가수 이야기는 ‘운명’임을 시사한다. 그녀는 ‘Let me be there’라든지 ‘Phisical’ 같은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래미상도 여러 차례 수상할 정도로 미국 팝계의 전설적인 여왕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다. 그가 한참 잘 나갈 때 사업에 손을 댔다. 청바지와 캐주얼 옷을 파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처음에는 일취월장 성장가도를 달렸다. 그런데 과대하게 확장하면서 부도를 맞았다. 때맞추어 낸 음반이 부진을 면치 못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큰 고통을 겪게 되면서 건강도 악화되었다. 병원에서 검진하는 동안 92년에 유방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의 말이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Why me?”(하나님 왜 하필이면 접니까?) 원망하며 보냈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었고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데뷔곡으로 불렀던 노래 제목처럼 “If not for you”(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노력과 한계로 어찌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운명’인 하나님의 섭리에 달렸다고 믿었다. 그러자 그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병원의 의사가 깜짝 놀랐다.
“당신의 유방에 암세포가 보이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 그는 암 환자들에게 간증하러 다니고, 환경운동가로서 환경 개선에도 앞장을 서고 있다.
마음먹기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도 있듯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운명’을 믿든, ‘성격’을 믿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다면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잘 살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이 아닐까? 존경받는 큰스님인 성철 스님도 “팔만대장경은 한 마디로 하면 마음 심(心)자 위에 놓인다”고 했다. 성경에서도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고 교훈한다.
그렇다면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당연히 마음에 대해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발달에 대한 이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데 필수 요인이 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했겠는가? 아마도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철학자, 심리학자로서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확립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20세기 최대의 발견을 이렇게 피력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 윌리엄 제임스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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