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의 시대
“공부만 잘 하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이 말은 성적 줄 세우기나 외모 비하가 절대 아니다. 자녀문제라면 종교적인 열정을 가진 부모들의 인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사람들은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에서 당연히 공부 잘하는 아이, 예쁜 아이를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공부와 예쁨으로 다른 것을 재는 잣대로도 사용한다.
이를 두고 심리학에서는 후광효과(Halo Effect)라고 한다. 헤이로우(Halo)는 태양광 혹은 달빛이 만들어내는 빛의 띠로서, 어떤 사물을 더욱 빛나게 하거나 두드러지게 하는 배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후광효과는 ‘한 가지 좋은 특성을 가진 대상은 또한 다른 좋은 성품들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현상이다. 즉, 대상의 두드러진 특성이 배경이 되어 그 대상의 다른 세부 특성을 평가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손다이크(Edward L. Thorndike)는 ‘어떤 대상에 대해 일반적으로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고 그 대상의 구체적인 행위들을 일반적인 생각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경향’을 후광효과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사람이 덜 매력적인 사람보다 더 인품도 좋고, 더 고위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도 바로 이 후광효과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한 사람을 평가하는 데 그 사람의 배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들 하는 것도 후광효과의 한 표현이다.
침소봉대, 옹고집
과연 그럴까? 더 정확히는 ‘하나를 보고 열을 추측한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하나’는 ‘열’을 평가하는 극히 일부를 반영할 뿐이지, ‘열’을 알 수 있는 준거기준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작은 것을 침소봉대하여 지나친 일반화는 절대금물이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없는데, 바늘구멍을 통해 보고 세상을 다 보았다고 한다면 이만한 옹고집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광효과는 우리의 삶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실험을 통해 입증된 몇 가지 예를 생각해보자. 학생들은 매력적인 여 선생님이 가르치는 경우 더 재미있다고 평가하고, 더 뛰어난 교사라고 평가한다. 엄정해야 할 재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재판정에서도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매력적인 피의자는 볼품없는 피의자보다 더 가벼운 형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자신이 변호하는 피고들에게 정장을 하고 용모를 말끔히 단장하고 재판정에 출두하라고 조언한다.
이처럼 신체적 매력의 후광효과가 여러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근에는 취직이나 입시 등의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미용성형이 성행하고 있다. 국제미용성형외과협회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성형 수술 및 미용시술 건수는 세계 7위였지만, 인구 1000명당 건수는 13.5건에 달해 인구 대비 성형 건수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인구 대비 성형외과 의사 수 역시 한국이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방사효과, 일반화의 오류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후광효과로는 방사효과(Radiation Effect)가 있다. 이는 매력적인 사람이 내품는 후광 덕분에 함께 있는 사람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현상이다. 용모가 뛰어난 연예인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 동반자도 역시 매력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유명 인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사진들을 특별한 기념물로 간직하며 자랑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특별한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도 그처럼 높은 평가를 받고, 자신의 인상을 좋게 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매혹적인 이성과 친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선거철에 전gus직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함께 나란히 서있는 사진을 선거홍보용 책자나 포스터에 싣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다음 선거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대통령이나 유력인사의 옆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살벌한 신경전을 벌인다. 일반인들도 유명 연예인들과 팔짱을 끼거나 가깝게 밀착해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기도 한다. 이 모든 현상의 밑바닥에는 권력자나 유명인의 후광에 힘입어 자신도 힘이 있거나 매력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다.
TV에서도 이왕이면 매력적인 남자와 여자 아나운서들에게 주요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한다. 이 전략도 매력적인 아나운서의 후광에 힘입어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려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미용성형을 할 뿐만 아니라 복장이나 용모를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전문적인 코치를 받기도 하고 많은 경제적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매력이 곧 밑천이기 때문이다.
후광효과가 여러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후광효과는 사실상 일종의 인지적 편향이다. 때문에 실질적인 능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후광효과에 의한 착각은 곧 사라지게 된다. 선거나 인사선발에서 후광효과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특정인과, 특정 상황에서 발생한, 특정 경험에서 나온 결론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특정 학교나 지역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특정 혈액형이 어떤 직무와 맞다고 확신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런 결론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사례들을 (나름대로는) 종합해서 내리는 결론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편견을 가지는 순간, 본인이 예상하는 바대로 편향된 관찰과 평가가 일어나게 된다. 자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특정 학교나 지역 출신에 대해서 부정적 평가를 하거나 혹은 홀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왜? 싫어하니까! 그리고 그 친구는 문제를 일으킬 것이 확실하니까!(라고 예상하니까!). 혹은 특정 혈액형의 사람을 해당 직무에 배치하고는 ‘저 친구는 일을 잘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도움을 제공한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혈액형은 궁금해 하지도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기와 조작과 후광효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때 피해야 할 핵심적 금기사항 넘버원이 바로 인상에 의해서 판단, 평가하고 결론을 쉽게 내리는 후광효과이다. 물론 사람마다 나름대로 선호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에 따라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몰되면 사기 당하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사기꾼의 3대 특징이 외모가 수려하고, 말을 착 달라붙게 잘하며, 법에 대한 지식을 기막히게 풀어놓는다고 했을까? 찬찬히 풀어보면 모두가 후광효과와 연결되어 있다. 외모나 인상에 의해 성품과 인격, 능력에 대한 판단을 연결 지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사기꾼의 외모, 첫인상, 그리고 소위 ‘말 빨’은 절대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매혹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그 유창한 ‘말 빨’에 녹아들어, ‘이토록 고상하고 거룩한 말을 하니 성품도 그와 같을 것이라는’ 첫인상이 후광효과로 작용하는 순간 사기당하기 십상이다.
특히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후광효과는 다양한 심리 조작술로 활용되기도 한다. 광고계에서는 이미지가 좋은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내보낸다. 유명 연예인에 대한 신뢰감이 높으면 높을수록 광고로 내보내는 제품의 신뢰감 또한 높다고 소비자들은 인지하게 된다. TV 광고나 TV 홈쇼핑에 유명 연예인이 나와서 제품을 소개하면, 그 연예인이 그 제품을 사용해 본 다음 제품에 대해 만족하여 해당 광고를 촬영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다수의 연예인들은 그 제품을 사용해 보지도 않았으며, 해당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제품에 문제가 있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도 않는 것이다. 광고 촬영을 하고 촬영 대가만 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소비자가 그 제품을 구입한 가장 큰 이유는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을 보고 왠지 그 제품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제품의 치명적인 하자나 소비자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숨기고 광고했어도 해당 연예인은 책임지지 않는다.
아파트 분양 광고와 화장품 판매 광고에도 미모의 연예인이 곧잘 등장한다. 보험 광고엔 대개 나이 지긋한 유명 탤런트가 나온다. 소주 광고에도 젊고 섹시한 가수가 나와 뇌쇄적 몸동작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모두가 후광효과를 노린 마케팅 전략이다. 광고주는 이들을 앞세워 판매 극대화를 꾀한다.
주변에서 후광 효과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핸드백이라도 유명인이 들고 있으면 왠지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시력이 나빠 안경을 썼는데도 쓰지 않은 사람보다 더 지적일 것이라고 예단한다.
이처럼 후광효과는 진실을 질식시키며, 이성을 압도하고, 강한 사람을 약하게, 약한 사람을 강하게 보이게 하는 ‘요술방망이’이다. 이 방망이에 휘둘리지 않도록 아무리 주의해도 오히려 부족함을 명심하자
“인간은 대체로 내용보다는
외모를 통해서 사람을 평가한다.
누구나 다 눈을 가지고 있지만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마키아벨리 송기태 / 알파크루시스대 글로벌 온라인 학부장,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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