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의 광둥성 선전 본사 앞에 16일 투자자들이 항의하기 위해 모인 가운데 한 여성이 울상을 짓고 있다.
‘부동산 재벌’ 헝다(恒大ㆍEvergrande)그룹 파산 위기에 중국 경제가 휘청대고 있다. 당장 23일 1,400억 원의 채권이자를 갚지 못하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헝다의 총부채는 1조9,500억 위안(약 356조 원)으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 직원은 20만 명에 달한다. 곪아터진 환부를 단번에 도려내기엔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중국 경제를 좀먹도록 방치하는 건 훗날 더 큰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대마(大馬)는 죽지 않는다’는 시장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디폴트 사태로 금융 리스크가 고조된 중국이 발목을 제대로 잡혔다.
헝다 ‘유동성 위기’ 어떻길래
헝다그룹이 발행한 채권 총액은 293억 달러(약 34조7,000억 원) 규모다. 그에 따른 이자지급 기일이 차례로 돌아오는데, 23일 1억1,953만 달러(약 1,421억 원ㆍ자회사 포함)가 첫 고비다. 총자산(2조3,000억 위안ㆍ약 420조4,000억 원)에 비해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헝다는 20일 은행 대출 이자조차 내지 못했을 만큼 잔고가 비어 있다. 헝다그룹은 일단 22일 성명을 내고 “23일 만기가 도래하는 (일부) 채권에 대한 이자를 제때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23일을 넘기더라도 첩첩산중이다. 29일 4,500만 달러(약 533억 원)를 비롯해 연말까지 6억6,800만 달러(약 7,909억 원)의 이자를 내야 한다. 내년에는 채권 원금 상환도 예정돼 있다. 설령 이번 달에 디폴트를 피하더라도 갈수록 채무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국 신용평가사 피치는 15일 헝다의 신용등급을 CCC 에서 투자 부적격에 해당하는 정크본드 수준인 CC로 하향 조정하면서 “헝다가 파산하면 중국 건설사와 중소형 은행의 연쇄 파산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헝다그룹이 장쑤성 쉬저우에서 건설 중인 문화관광도시 현장을 17일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 파산 위기에 놓이면서 현장 공사는 중단된 상태다.
독이 된 문어발식 확장
1997년 광저우에서 시작한 헝다는 중국 부동산 광풍을 타고 급성장했다. 전국 도시 280여 곳에서 1,300개가 넘는 개발사업을 진행해왔다. 대출로 땅을 매입해 집을 빨리 짓고 이윤이 적더라도 빨리 파는 방식으로 시장을 잠식했다. 그 결과 중국 2위 부동산업체로 몸집을 불렸다. 지난해 매출은 1,100억 달러(약 130조2,400억 원)로 집계됐다. 창업주 쉬자인 회장은 중국 부호 순위에서 알리바바 마윈, 텐센트의 마화텅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헝다는 부동산을 넘어 전기차, 보험, 관광, 생수분야로 진출하더니 프로축구 구단까지 인수하며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당국이 부동산 개발회사의 부채를 규제하면서 성장가도에 급제동이 걸렸다.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헝다는 전국 800개 아파트를 선분양하고 기존 부동산을 할인 처분했지만 자금 경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선분양 아파트에 돈을 낸 입주 예정자는 120만 명, 헝다 협력업체 직원은 380만 명에 달한다.
부채 한도 규제에 헝다 직격탄
중국 주택건설부와 인민은행이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8월 보유 현금에 부채 한도를 맞추는 3대 ‘레드라인’을 제시했다. 이후 12월 부동산 대출 상한, 올 3월 경영 대출 자금의 부동산 유입 방지 등 잇따라 대책을 내놓았다. 그사이 헝다의 돈줄은 말라갔다.
매년 중국은 1,500만 채의 집을 짓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합한 것보다 5배가 많다. 이 중 4분의 1은 비어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1조4,000억 달러(약 1,657조 원)가 주택사업에 몰렸지만 중국에서 파산한 부동산업체는 228개에 달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 중국 개발업자들이 상환 부담에 처한 채권은 1,000억 달러(약 118조 원)가 넘는다”고 추산했다.
헝다그룹의 선전 본사 사옥 주변에서 13일 경비원들이 손을 맞잡고 투자금 반환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접근을 막고 있다
‘질서 있는 퇴장’…디폴트 개의치 않아
중국에서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가 처음 발생한 건 2014년이다. 이후 2017년 시진핑 집권 2기 들어 디폴트가 급증했다. 거품을 빼고 체질을 개선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이른바 ‘질서 있는 퇴장’이다. 특히 20%를 밑돌았던 국영기업 디폴트는 지난해 5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도덕적 해이’를 근절하려는 정부 방침과 코로나 사태 이후 채무 급증에 따른 재정 악화가 겹치면서 중국판 삼성전자로 불리던 대형 국유 반도체기업 칭화유니도 디폴트를 피해가지 못했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중국 기업의 회사채 디폴트 규모는 1,160억 위안(약 21조2,000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부동산 업종 디폴트 비율은 1.8%로 일반기업 회사채 평균(0.5%)의 3배를 웃돈다. 화샤싱푸를 비롯한 주요 부동산업체들은 올 상반기 이미 디폴트를 선언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중국 공산당은 이제 ‘채무 폭탄’이 터지는 것을 용인하며 선별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폴트로 가더라도 매몰차게 뿌리치긴...
‘부동산 재벌’ 헝다(恒大ㆍEvergrande)그룹 파산 위기에 중국 경제가 휘청대고 있다. 당장 23일 1,400억 원의 채권이자를 갚지 못하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헝다의 총부채는 1조9,500억 위안(약 356조 원)으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 직원은 20만 명에 달한다. 곪아터진 환부를 단번에 도려내기엔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중국 경제를 좀먹도록 방치하는 건 훗날 더 큰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대마(大馬)는 죽지 않는다’는 시장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디폴트 사태로 금융 리스크가 고조된 중국이 발목을 제대로 잡혔다.
헝다그룹의 내년 이후 채무 만기 도래 규모.
제2의 ‘리먼’ 사태로 증폭될까
‘세계에서 빚이 가장 많은’ 부동산 업체가 존폐 기로에 서자 2008년 미국 투자은행 4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사례가 거론되고 있다. ‘헝다 리스크’가 가중되면서 뉴욕, 홍콩 등 주요 증시는 21일에도 일제히 급락했다.
다만 헝다 사태가 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하다. 헝다가 시장에 유통시킨 저신용등급 하이일드 달러채는 중국 전체의 16%, 아시아의 11%에 달한다. 아시아에서 발행 규모가 가장 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헝다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중국 건설사들의 달러화 채권 디폴트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경제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중국 소비자들은 주택을 구입할 때 담보대출보다는 주로 선불로 지급하는 터라 디폴트로 인해 금융권이 빌려준 돈을 떼이는 파급효과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또한 코로나 위기에 따른 불안감으로 해외보다는 여전히 중국 내 주택 구입에 대한 수요가 많다. 중국인의 81%가 ‘결혼 전 주택마련이 필수’라고 여길 정도다.
헝다가 은행에서 빌린 돈은 중국 전체 은행 대출 총액의 0.3%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이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는 “헝다의 디폴트로 시장이 당분간 혼란에 빠질지 모르나 디폴트 도미노로 확대되지 않는 한 중국은 경영부실에 따른 우려를 털어내고 경제 전반에도 오히려 이익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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