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요새를 연상케 하는 건물의 개관식이 열렸다. 독일 해외 첩보 기관인 연방정보국(BND)의 새 본부 청사이다. BND는 미국의 CIA(중앙정보국), 영국의 MI6와 같이 해외 스파이 활동을 담당하는 기구다.
BND의 새 청사는 축구장 36개 면적인 26만㎡ 부지에 여러 개의 직사각형 건물들을 가로세로로 이은 복합 단지로 크기로는 세계 최대 규모 정보기관이라고 독일 언론은 밝혔다. 2006년 10월부터 짓기 시작해 완공까지 12년이 걸렸다. 첨단 장비 구입을 포함한 건설비로 모두 13억유로(약 1조6500억원)가 들었다. BND 는 웹 사이트에서 13만5000㎥의 콘크리트와 2만t의 철골이 들어갔고, 1만4000개의 창문과 1만2000개의 문을 갖췄다고 밝혔다. 주(主)광장에는 숨은 비밀들에 빛을 비추는 BND의 역할을 상징하는 황동색 조형물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날 개관식은 건물 한구석의 브리핑 룸에서만 진행됐고, 참석자들과 취재진에게 내부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참석자들이 소지한 스마트폰과 랩톱 컴퓨터 등 인터넷 접속 수단은 모두 수거됐다. 평소 말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개관식에서 "솔직히 이 방만 보고는 문 밖을 상상할 순 없겠지만 어느 나라 해외 첩보 당국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의 새 청사에선 전체 BND 요원 6500명 중 4000명이 근무할 수 있으며, 남부 뮌헨 외곽에 있는 BND의 이전 청사에서 나머지 인력이 일하게 된다. 청사 이전(移轉)을 위해 10만여 개의 상자와 5만8000점의 장비·가구를 옮기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사실 게슈타포(나치 독일의 국가비밀경찰), 슈타지(동독 비밀경찰)를 기억하는 많은 독일인에게 BND와 같은 첩보 기관들은 별로 인기가 없다. 2013년엔 미 CIA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BND가 미 CIA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해온 불법 도청을 도왔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 탓에 2016년 한 여론조사에서 독일인의 BND 신뢰도는 26%에 그쳤다. BND는 개관을 앞두고 새 청사 외부의 야자수 조형물들이 결코 도청 장비가 아니라 단순한 예술품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 "BND는 냉전이 끝나고 임무 변화에 잘 적응했고, 이제 정부를 위해 전 세계 모든 일을 관찰하고 있다"며 "매우 혼란스러운 세계에 사는 독일인의 안전을 위해 전보다도 더욱 강력하고 효과적인 해외 첩보 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축 과정에선 보안 엄수가 생명인 BND에 망신스러운 일들이 속출했다. 2011년 건물의 자세한 설계도가 누출됐고, 300개의 도면에서 에어컨 시스템의 오류 4000건이 발견됐다. 결국 일부를 다시 설계해 지으면서 원래 완공 연도인 2012년과 최초 공사비 7억2000만유로를 훌쩍 넘겼다. 심지어 2015년엔 도둑들이 건물 내 화장실에 설치한 수도꼭지를 모두 훔쳐가 공사 현장에 물이 넘치기도 했다. 독일에서 '워터게이트'라 불리는 이 사건의 범인들은 잡히지 않았다. 일간지 베를리너 차이퉁은 BND 새 청사의 디자인은 "외국의 첩보 기관들과는 달리 '권력의 상징'을 연상케 한다"고 비판했고, 이 신문 여론조사에선 50%가 '흉측하다'고 답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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