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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필라테스 강사로 새로운 삶을 살기까지》                                                      -By Sky Joo-난감하다.나는 지금 뒤집어진 거북이처럼 버둥거리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다. 어째서일까 한땐 NSW 대표 육상 선수이자 운동 신경 좋기로 유명한 그 였는데...사건의 전말은 1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와우(wow)! 오늘 된장찌개 베리(very) 딜리셔스(delicious)해!""많이 먹어"영어와 한국어를 오묘하게 섞어쓰며 저녁상을 칭찬하는 남편과 해맑은 아이를 보며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를 볼록하게 솓아오르고 있는 그의 배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필라테스를 좀 해보는게 어때?""뭐? 필라테스? 하하하 여자들이나 하는 그런걸 내가 왜? 난 웨이트할거야 필라테스 쏘 보링해(so boring)"필라테스가 쉬운 운동이라고 얕잡아보듯 말하는 그가 괘씸하단 생각이 들었다."그래? 그럼 한번 해보자! 코어랑 ABS(복근)운동 몇개만 해봐""노노(No No) 그런거 안한다니까!"계속 거절하는 남편을 보고 오기가 생겼다."왜? 자신없어? 그렇게 웨이트를 했는데 코어가 없나보지? 뭐 못할 것 같으면 하지말고. 근력없는 사람들한텐 힘든 운동인거 나도 알아."작정하고 그를 교묘하게 자극했다."왓(what)? 오마이..(oh my.. ).""100불! 제대로 하면 내가 100불 줄게! 대신 못하면 나한테 100불!""알유 씨리얼스(Are you seriou)? 빨리 녹음해 지금! 아니다 당장 100불 롸잇 나우(Roght now)!"경쟁의식이 강한 그는 소화도 시키기 전 도전장을 내밀었다.결과는 참패.간단한 복근 동작도 버거워하며 허우적거리는 그를 보며 깔깔깔 웃었다.예상대로 그는 속근육을 써야하는 필라테스 동작들을 버거워했다. 내 그럴줄 알았다.자존심이 상한 그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수강료를 내는 나의 회원이 되었다. 이제는 필라테스 찬양까진 아니어도 주변에 필라테스 효과를 전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필라테스 강사가 된지 이제 햇수로 4년차이다. 그 당시 한국에 있는 친구 몇 몇은 이미 5년차 이상 필라테스강사를 하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었다. 처음에는 나도 어깨 부상으로 인한 재활치료 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나의 선택이 아닌 담당의 선택으로. 그러다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고 마음이 동했다. 통증이 완화되고 제약이 있던 움직임이 좋아졌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생겼다. '배우'라는 꿈 이외 처음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전투태세로 돌입했다. 서치를 하고 교민잡지들을 뒤적이며 강사과정을 하는 곳들을 찾았다. 없었다. 한국어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그럴수록 의지가 불타올랐다.그러다 우연히 예전 한국 기사에서 'OO필라테스 협회 시드니 지점'에서 2년전쯤 한국어로 필라테스 강사과정이 열렸던 정보를 접했다. 당장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OOO라고 합니다. 필라테스 강사과정을 하고 싶습니다. 혹시 귀사에서 강사과정을 또 진행할 계획이 있으실까요? 꼭 하고 싶습니다!""네 안녕하세요 마침 저희가 계획중인데 상담 한번 오시겠어요?"대박!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역시 옛말 중 틀린 말이 없구나!그길로 당장 달려가 상담과 동시에 등록을 마쳤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금액이었고 당시 아이도 어린 시기라 주변에선 만류했다. 평소 '10센트짜리(100원정도?)귀'를 가진 내가 그때만큼은 확고하게 결심을 밀고 나갔다. 다행히 남편의 적극적인 서포트 주말을 반납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사실 처음 교육을 시작하자마자 후회했다. 영어보다 더 외계어같은 해부학 용어들을 접하며 정신줄을 놓기 일쑤였다. 필라테스강사는 운동을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러기위해 몸을 알고 몸의 구조와 움직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지 못했다. 울며 불며 용어를 외우고 정육점 고기처럼 생긴 근육들을 하루종일 노려보며 공부했다. 그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 아이큐 결과를 의심했다. 하지만 실기 교육이 시작되고 동작과 접목하여 근육의 움직을 배우기 시작하니 더디지만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그렇게 영원히 오지 않을 강사과정이 끝났다.인턴쉽 휴가를 내고 한국에 가서 마지막 워크샵까지 들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열정적으로 임했다.. 내 인생 몇 안되는 후회없는 값진 시간이었다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내 이름이 생겼다. OO와이프, OO 며느리, OO엄마가 아닌 그저 나로 봐주는 곳이.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하다. 아직 아이가 어린데 뭘 할려고 하냐며 주변에서 싫은 소리를 했을때도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결단이. 묵묵히 지지하고 응원해주던 남편이.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교육 받으러 가는 엄마에게 쿨하게 빠이(Bye) 해주던 아이가.어렵고 벅차서 울면서 하던 해부학 공부들이.그 도전이 나를 변화시켰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허리 디스크로 몸의 균형이 무너져 기본 동작도 버거워하던 분이 고난이 동작을 수행하고, 잘못된 움직임의 반복으로 후천적 척추측만으로 찾아오신 분이 자세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코어가 뭔지 어디있는 건지도 몰랐던 분들이 코어를 이해하고 컨트롤하는 것도, 특별한 부상이 없음에도 통증으로 인해 움직임에 제약이 있던 분들의 움직임이 정상범위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는 것도 나에겐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통증이 완화되고 움직임이 좋아지고 자세교정이 되며 기뻐하고 감사해주는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다. 그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더 공부하고 더 연구하고 더 고민한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강사가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해를 거듭하며 함께하는 소중한 회원분들과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 만나 나도 그들도 함께 성장한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분주하고 버거웠던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P.s 모든 분들의 꿈과 도전을 응원합니다. 100년도 안되는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영원히 살 것 처럼 살고 있진 않나요?        JUST DO IT!       GO GET IT!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By Sky Joo@sky_j_pilates 

  23/09/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