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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정      -Sky Joo- 나는 크면 무조건 미스코리아에 나가는 줄 알았다. 내 운명은 이미 그렇게 정해있노라 여겼다. 서울 변두리 조그만 동네에서 예쁘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 말 끝은 언제나 같았다. "커서 꼭 미스코리아 나가야돼" 나는 그 말을 주문처럼 마음에 새겼다. 하지만 크면서 깨달았다. 어른들의 입바른 소리였다는 걸. 미스코리아는 커녕 미스도 되기전 이미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코딱지만한 동네에서나 예쁜 얼굴이라는 것, 미스코리아는 아무나 나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세상 무서울 것 없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쁜 줄 알고 살았던 10대 그 시절. 흔한 미담처럼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잡지 모델로 데뷔했다. 수줍은 또래 소년들에게 (그 당시 유행하던) 꽃 향기나는 펜으로 쓴 편지도 받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카시아 꿀 향기와 닮은 그 시절 내음이 폐 속 깊이 울려퍼진다. 요즘 속된 말러 ‘나이가 깡패’였나보다. 모두들 그렇듯 그저 한창 예쁠 나이이기에 누구나 듣는 뻔한 어른들의 거짓말. 어쩌면 내 인생 가장 찬란했던, 그만큼 불완전한 존재였던 10대의 소녀의 나. 분명 겁없이 자신만만하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인지 10대의 난 철저하게 불안했고 모든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사춘기인지도 모르고 지났던 천방진축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서럽다. 이유모를 서글픔이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오른다. 이런게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면아이'일까?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인지하기도 전에 어른이되었다. 20살. 대학생 꼬리표를 달았지만 여전히 교복이 익숙했던 신입생시절. 단지 CC(Campus couple)이 하고 싶어 선택한 학교여서였는지 나의 대학시절은 흔히 말하는 ‘아싸’로 어렴풋한 회색빛 기억으로만 남았다. 정작 CC는 1년? 계획에 없던 이별로  정금같은 청춘의 시간을 길바닥에, 술잔에 털어버렸다. 감당하기 버거웠던 이별은 깊은 상처와 흑역사를 남기고 고스란히 흉터로 남았다. 가장 혼란스럽고 불완전하던 나를 지탱해주던 버팀목이었던 그를 보내는 일은 내 사지를 잘라내는 듯한 아픔이었다. 그 시련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또, 관계에 있어 조심스럽고 조금 더 신중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청소년기에서 어른이되는 과도기를 함께 겪고 나를 일으켜세워준 그의 건승을 빈다. 유난히도 '죽음'이 가까이 있던 20대 중반, 남편을 만났다. 여전히 위태롭던 나에게 힘이 되어 주기도, 전투 본능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친구로 만나 연인이되고 부부가 되기까지 오랜시간 함께했다. 특별할 것 없이 여느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하고 여행을 즐기고 투닥투닥 다투기도 하면서. 그와의 연애동안 나는 공연 기획부터 KTX승무원을 거쳐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무대공포증인 나는 늘 등장 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그는 관객석 입장과 동시에 특유의 기침소리를 내며 괜찮다고 격려해주었다.(기침 소리가 독특하다.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게 아쉽다) 그는 나를 아내로, 며느리로 그리고 엄마로 만들어주었다. 새로운 나의 이름 3개를 만들어 준 사람. 나는 지금 그 사람의 고향과 다름없는 호주라는 곳에 와 있다. 단 한사람만 믿고 모든 것을 두고 혼자 낯선 땅에 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다들 내가 대단하다고 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냥 내 삶이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 순간 순간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지금 내가 되었다. 때론 대단한 사건도, 드라마틱한 일들 없이도 생각치도 못한 변화를 겪게 되는게 인생사 아닐까? 30대. 나는 호주에 살고 있는 이민자이다. 공연을 하며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엄마 사람. 지극히 평범하지만 누구와도 같지 않은 그런 사람. 모든 사람들처럼 비슷해보이지만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 유일한 사람.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호주 하늘을 보며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도 이내 서둘러 이불빨래를 하는 평범한 여자 사람. 오늘도 현실과 이상, 몽상과 상념 사이를 쉴새없이 오간다. 가끔 신주단지처럼 모셔둔 예전 다이어리를 보며 10년 전 나와 마주한 채 등을 토닥여준다. 30대의 내가 10대, 20대의 나를 만나는 일은 늘 익숙한듯 낯설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어제의 나와 협상을 하는 동안, 과거의 나는 그곳에서 나를 지켜본다. 4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볼 것 같은 표정으로. 오늘도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일기에 마음을 담고 욕심을 담는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 10대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자마자, 결혼과 동시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마치 제1막, 휴식시간이 끝나고 제 2막이 시작되는 뮤지컬 공연처럼. 제 2막이 시작되고 스토리 진행을 따라가기도 전, 또 다른 사건이 던져진다. 엄마. 세상에 나를 엄마라고 부를 존재가 생긴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 이었다. 더구나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호주라는 나라에서. 공연 2막의 절정에 가까워진다. 내 일이 생겼다. 나를 찾아주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의 온기와 더불어 오늘을 살아간다. 무겁기만하던 엄마라는 이름과도 그럭저럭 타협점을 찾아간다. 누구도 결말은 끝까지 보기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뻔한 결말을 예상하는 삼류 영화나 공연도 소설도 그런데 하물며 내 인생은 오죽하겠는가. 호주라는 곳도, 엄마라는 자리도, 어쩌면 필라테스 강사도 내가 꿈꾸던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얼마인지 모를 내 남은 생과 사이좋게 지낼 궁리를 해본다. 그걸로 충분하다.                                   By Sky Joo      @sky_j_pilates P.s 지금 그 자리에 모두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다음주부터는 여러분 건강에 도움이되는 컨텐츠로 매주 찾아오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어제

‘어머 이건 사야해’‘와우 이거 진짜 필요했는데 사야해 사야해’요즘 내가 흠뻑 빠져있는 것이 있다게임도 넥플릭스도 드라마도 아닌 매일같이 축근도장 찍는곳,  공구하는 까페들이다10년전만해도 한국의 값싸고 질좋은 물건들은 가족과 지인에게 부탁해서 받았지만 비싼 배송비를 내야했다한국갈때마다 필요한것들을 구입했었는데 그것도 입국시 키로제한으로 최소한의것만 슈케이스에 담을수 있었다혹여나 여행을오는 지인들에게 부탁하기도했다요즘은 어떠한가.. 사람들의 취향도 차별화되고 다양한 물건을 구입하고자하는 욕구도 커졌다거기에 sns 가 점점 대중화되면서 원하는 상품을 예약해서 살수있는 ‘공동구매(공구)’가 생겨났다 공동구매는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한형태이며 온라인서비스를 활용한 판매구매 활동이다판매자는 예약된물건만 수입하기에 재고에대한 손해를 없애주고, 구매자는 호주에서 구매할수없는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할수있는 장점이있다‘띵띵’공동구매 알람을 맞쳐놓으면 시시각각 상품정보를 알려준다개인적으로 한가지 단점을 얘기하라면, 예기치못한 과소비를 하게된다는 것이다당장 필요없어도 언젠간 필요할 것이다란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매하게된다 어느새 통장은 텅장이 되어가고 몇몇 후회템들이 생기고 난후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진짜 필요한 쇼핑만 하게된다 사실 호주에서의 공구는 먹거리가 대부분이라 조금 과잉 구매해도 괜찮다우리가족먹고 주위 친구들 나눠먹으면 버려지는것은 없으니까.십몇년전 한국에 있을땐 홈쇼핑으로의 쇼핑은 신뢰하지 않았다. 자고로 물건은 직면 대면해보고 요리조리 따져봐야한다는 어머니같은 고정관념이 있었다그시절 십년터울 갓입사한 여동생은 수시로 홈쇼핑으로 구매를해서 아파트문앞 택배상자로 성을 쌓았다엄마도 나도 홈쇼핑홀릭이된 동생을 나무랐는데 섬나라 호주에선 이제 시작이고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았나온라인거래가 적은 호주에선 정통쇼핑 그러니까 발품을파는 쇼핑을 선호하며 주말이면 쇼핑센터에 주차할곳이 없다팬데믹으로 쇼핑루틴이 바뀌고 있는지 얼마전 주문한 물건이 삼일만에 도착해서 놀랬다공동구매도 온라인쇼핑처럼 하나의 쇼핑루틴으로 자리잡아가고 있고 판매자와 구매자의 직거래 방식으로 함께 성공하는 윈윈법칙이 요즘 대세가 아닐까한다물론 당근마켓이나 이베이처럼 중고물건을 거래하는 온라인도 점점 활성화되고 있다오전에 공구로산 물건을 픽업하러갔다 판매하시는분과 커피를 마시고 대화가 잘통해 자연스레 점심도 함께 먹었다이렇게 공구를통해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기도하고 좋은 물건에 감동받는다나의 공구사랑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에서만든 물건만큼 저렴한가격에 하이퀄러티는 호주에서 찾기 힘드니까 말이다.

  21/10/2021

햇살이 아주 따뜻해서/김별 햇살에 손이 있다면 이 순간 등 뒤에서 나를 안아주고 있을 것이다. 아침 9시부터 11 사이. 두 평 남짓 발코니에 앉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품에 안겨 있다.  우리집은 창들이 큰 편이라 낮에 어둡지는 않지만 직접 햇살이 집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집에서 유일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온 몸으로 맞을 수 있는 곳은 아침시간의 베란다뿐이다. 맑은 날이면 책 한 권, 헤드폰과 커피를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요즘은 피부에 닿는 볕의 온기, 공기에 실린 냄새의 변화로 봄이 오는 것을 느낀다. 훈훈해 진 바람을 타고 은은한 재스민 향기가 실려 오기도 하고 근처 카페의 달콤한 빵 냄새가 풍겨 오기도 한다. 햇살의 품에 안겨 책을 읽다보면 하얀 종이 위로 드리워진 내 둥그스름한 그림자가 눈에 들어오곤 하는데 자세히 보면 그림자 머리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아롱거리는 그림자의 실체를 잡아볼 요량으로 손을 들어 머리에 얹는다. 잡히지 않지만 손바닥을 타고 느껴지는 봄. 살아있어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작년 3월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옮기게 되어 급하게 이사를 해야 했다. 아이는 학교를 걸어서 다니고 싶어했고 나도 아침마다 운전을 하지 않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 학교에서 5분 내외의 집들을 보러 다녔다. 처음 이 집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아 성의 없는 눈길로 슬깃슬깃 둘러보았다. 인근에 도로와 기차역이 있어 시끄러울 것이었고 거실에서 바라본 베란다 창밖으로는 맞은편 아파트내부가 훤히 보였다. 반듯하지 않은 방 모양도 마음에 걸렸다. 대충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베란다를 열고 나가 본 순간 모든 단점이 스르르 잊혔다.  바로 정면은 아파트지만 고개를 40도만 왼쪽으로 돌려도 탁 트인 풍경이 펼쳐져 있던 것이다. 이 작은 베란다는 차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시드니 시내며 한시간도 더 걸리는 도시들까지 한 눈에 내다 보였다. 멀리 보이는 하버브리지에 엄지손가락을 대어보니 둥근 손톱에 딱 들어맞았다. 호주의 도시 고도제한 덕분이다. 높아야 4-5층인 집들 사이사이 집보다 더 큰 키와 풍채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촘촘히 고개를 들고 있어 고층빌딩이 있는 먼 도시들까지 드넓게 펼쳐진 정원에 가까웠다.  정원과 맞닿은 하늘은 눈이 닿는 지평선까지 탁 트인 바다처럼 뻗어 있었다. 그자리에서 바로 임대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엄마랑 요를 깔고 자던 시기를 지나 처음으로 내방을 얻었을 때 핑크색 톤으로 꾸며 주기를 요청했다. 엄마는 침대에 프릴이 달린 분홍 침구세트를 깔고 핑크와 아이보리가 어우러진 책상과 커튼으로 방을 꾸며주었다. 그날 이후 내 방과 내 책상이란 당연히 있어야 했고 있을 줄만 알았다. 결혼 후 그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침실은 남편과 공용 공간이었고 건너방은 딸아이 방, 거실은 가족의 공간이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교하고 나면 그제야 홀로 거실을 쓸 수 있었고 식탁을 책상으로 사용했다. 저녁시간이나 주말에는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화상으로 회의를 하거나 수업을 들을 때 거실에서 누군가 TV를 보고 있으면 이어폰을 끼고 마이크는 무음으로 한 채 채팅창으로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가족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 마저도 쉽지 않아 베란다에 간이 책상을 마련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하는 줌 회의는 베란다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참여한다. 누군가 본다면 궁상맞아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바깥 공기를 마시며 앉아있는 기분이 생각보다 낙락(樂樂)하다. 매일 봐도 새로운 얼굴의 붉게 타는 아침노을, 라벤더색 안개가 낀 듯한 호주의 저녁노을, 신비로운 달무리와 하늘에 수놓아진 남반구 별자리들이 질릴 틈 없이 나만의 공간을 꾸며주고 있으니까. 달이 지평선 위로 올라올 때 얼마나 빠른지 멀리 고층빌딩 사이에 걸려있는 달은 얼마나 붉고 크게 보이는지도 덕분에 알게되었다.  베란다 한 켠에는 층층 선반을 두고 다육이들을 키우는데 식구가 점점 불어난다. 화초들이 내 손에만 들어오면 명이 당겨지는 걸 보고 식물생활은 포기했었다. 그래도 초록에 대한 미련이 남아 이사 기념으로 선인장과 다육이 화분 몇 개를 데려왔다. 아침에 잠깐 드는 볕과 잊을 만하면 주는 물만으로 어정어정 자라나고 자구를 올리는 녀석들이 기특하고 고맙기만 하다. 속이 시끄러운 날이면 선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올망졸망 꽃을 닮은 녀석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등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녀석들이 주는 고운 기운에 어느새 마음은 말랑하게 풀어지고 만다. 그럴 때면 반려묘 사피와 몽이도 발치에 앉아 함께 볕을 쏘이고 초록이들을 들여다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속엣말을 모두 풀어낸 듯 개운해지고 위로의 언어를 듣지 않아도 쓰담쓰담을 받은 느낌이 된다.  아침해가 높이 올라갈수록 발코니에 볕이 드는 구간은 점점 좁아진다. 베란다 끄트머리 마지막 타일 한 조각에 남은 볕까지 놓치지 않으려면 책을 읽다 말고 수시로 의자를 옮기는 수고를 해야 한다. 오늘따라 마지막 한 켠에 드리운 햇살이 더욱 따사롭다. 뜬금없이 <대낮에 한 이별>이란 곡이 떠올라 틀고는 얼른 헤드폰의 볼륨을 높인다. 눈을 감자 20대의 나로 돌아간다.  ‘햇살이 밝아서 햇살이 아주 따뜻해서 눈물이 말랐어 생각보단 아주 빨리…햇살이 밝아서 괜찮았어~’ 빛의 품에 안긴 동안 무한 반복으로 듣는다. 남은 한 줄기 볕이 사라질 때까지...

  20/10/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