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광고 |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주경식세계는 지금얼마 전 캐나다에 사는 친구가 벌겋게 타오르는 산불 사진과 함께 기도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가 사는 동네 15km까지 산불이 번졌다는 소식과 함께 비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2년 전 호주의 산불이 기억난다. 불과 2년 전인 2019년, 호주에서는 9월부터 장장 6개월 동안이나 꺼지지 않던 산불로 인해 코알라를 비롯 약 10억 마리의 야생동물이 죽고 많은 사상자를 내었을 뿐만 아니라, 그 피해액은 천문학적 숫자였다.   지금 델타변이 바이러스로 온 관심이 코로나에 쏠려 있어 그렇지, 북반구의 올 여름은 유난히 다른 해보다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났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해 때문에 종말론적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서부에 번진 산불은 미국 캘리포니아 경우만 해도 지난 7월 26일까지 무려 5천566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강우량이 줄고, 50°C까지 육박하는 이상 고온 때문이다. 세계 초강국이라는 나라들이 산불을 진화하지 못하고 숲은 계속 타들어 가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과 캐나다 서부에 이어, 그리스, 터키 등 남유럽지역에서도 대규모 산불이 2주 넘게 진행되면서 수천 명의 이재민을 낳았고 ‘불타는 유럽’이라는 기사가 연일 쏟아졌다.   더 심각한 것은 영구 동토라 불리는 시베리아의 산불이다. 늘 나던 산불이지만, 여름 평균 기온이 18°C이던 곳이 올해 최고 기온 39°C에 육박하면서 산불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번졌다.   시베리아 산불은 미국, 캐나다,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산불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16만km2 (남한의 크기가 10만 km2이다)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하는 손실을 내었다.   시베리아는 원래 여름이 빨리 오고, 6월에는 눈이 오는 곳인데 작년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수많은 탄저균과 나쁜 균들이 나오면서 생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Death Valley)에서는 한낮의 기온이 54.4°C를 기록하는 최고의 이상 기온현상 벌어졌다. 이름대로 이 지역에서는 열사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54.4°C는 열려진 공간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기온이다.   보통 사우나 실내온도가 50-70°C 정도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한낮의 기온이 54.4°C는 지구상 가히 세계 최고 기온이라 할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추운 나라로 알려진 캐나다도 역대급 폭염이 몰려와 캐나다 리튼 지역에서는 6월 30일 49.6°C를 기록해 캐나다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 중동지역보다 더 뜨거운 고온의 이 기록은 어쩌면 수천 년에 한번 나올까 하는 수준의 높은 고온이라는 것이다.   불을 가열하지 않고 햇볕 아래 두었던 프라이팬에 계란을 깨뜨리자 바로 계란 후라이가 되는 장면이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러한 불볕 더위로 7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갑자기 돌연사하고 10억 마리 이상의 해양생물이 죽었다.   어디 이뿐만인가? 한쪽에서는 이상고온과 산불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상기후로 인해 쏟아진 폭우로 독일과 벨기에를 포함한 서유럽에서 8백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산 사태 ‘천 년 만의 폭우’라 할 정도로 가히 ‘물 폭탄’의 집중 호우가 쏟아져 산사태가 일어나고 제방과 둑이 무너지고 홍수가 일어나는 등 최첨단의 테크놀로지로도 손쓰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서유럽에 이어 오스트리아 체코 등 중유럽까지 번지고 있는 폭우는 피해 복구비만 6조 원을 넘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중국 쓰촨성에서도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인해 홍수가 나서 72만 명이나 집을 잃었다.   이 모든 일은 지난 한 달 사이에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온 문명과 첨단기술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의 폭염과 폭우, 대형산불 등의 자연재해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났다.   왜 갈수록 이러한 극한의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기후 변화가 있다.  기후 변화의 원인  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 발표한 평가서에 의하면, “인간은 기후 시스템에 명백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최근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은 관측 이래 최고 수준이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류에 의해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에어로졸, 미세먼지 등이 배출되었고, 경작과 생산을 위해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세계 최대 삼림이라 불리우는 브라질의 아마존은 더 이상 ‘지구의 허파’ 노릇을 못 하고 있다. 아마존에서 몇년째 화재와 벌채가 함께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콩과 소고기 세계 최대 수출국인 브라질은 땅을 개간하여 소를 키우기 위해, 벌목 및 아마존 숲에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사람들은 더 많은 토지를 농지로 전환하면 생산성이 커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비를 덜 내리게 하는 역효과를 낸다”고 전망한다. 이제 아마존은 더 이상 ‘지구의 허파’가 아니다.   이전까지는 아마존이 지구상의 더러운 공기들을 흡수하여 정화하는 지구의 허파 노릇을 했지만, 지금은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배출량이 흡수량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화재로 인해 아마존에서 이산화탄소가 매년 15억 톤씩 발생했지만, 이 가운데 삼림에 흡수되는 것은 5억 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질수록 전 지구상의 평균 기온은 높아진다. 이산화탄소, 메탄가스, 이산화질소의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이중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증가는 인간이 사용하는 석유와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의 문명과 관련이 많다. 결국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생산에 몰두한 삶의 방식과 그로 인한 2차 산업들의 발전으로 인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굴뚝들과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의 매연을 발생시키는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사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산업화 이전의 280ppm에서 2005년 기준 379ppm으로 30% 증가했다.  2021년 5월 조사한 대기중 온실가스 농도는 419ppm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무려 50% 이상 늘어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 농도가 25% 증가하는데 200년이 넘게 걸렸지만, 최근 30년 동안 무려 50%에 도달한 것은 지구 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외에도 메탄가스는 폐기물, 음식물 쓰레기, 가축의 배설물, 초식동물의 트림 등에서 발생하고 이것은 인간의 경제성장과 인구증가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산림을 벌목하는 일은 지구상의 온실가스를 높이는 일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2°C 올라간다면  지금의 지구는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가 1°C 가 오른 상태이다. 고작 1도 오른 것이 무슨 큰 일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지구의 온도가 1°C 밖에 안 올랐음에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재해와 피해들을 목격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1만 2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구의 온도는 4°C 변했다고 추정한다. 1만 년 동안 4°C 변한 것도 자연에서는 무척이나 빠른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는 불과 100년 동안 지구의 온도를 1°C 상승시켰다.   자연보다 25배나 빠른 속도라고 할 수 있다. 기후 학자들은 이대로 나간다면 2050년에 지구온도가 2°C 높아진다고 내다보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2040년에 벌어질 수도 있다고 가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지구의 온도가 2°C 높아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과학자들은 다양한 컴퓨터 기후 모델을 통해 미래의 기후 변화를 예측했다. 이런 모델링 결과를 종합해 볼 때 2050년에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C 올라갈 경우, 북극 생태계와 아마존에서 환경변화가 갑작스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는 이른바 ‘티핑 포인트’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육지의 탄소 흡수량 감소, 생물종 멸종 위험 증가, 해양 산성화와 높은 기후변화 속도에 따른 해양 생물 다양성 손실, 기후변화에 의한 작물 생산 변동성 증가, 질병률 증가 등의 위험이 심각할 것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빈곤계층의 물 부족’이다.   이것을 좀더 쉽게 예를 들면, 만약 지구의 온도가 2°C 올라간다면, 북극의 빙하가 녹아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안데스 산맥의 작은 빙하들도 녹게 됨으로 5천만 명이 물 부족현상에 처하게 된다.   남아프리카와 지중해에 물 공급량이 20~30% 감소되어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열대지역 농작물이 크게 감소(10%)되어 약 5억 명이 굶어 죽게 된다. 그리고 6천만 명 이상이 말라리아에 노출된다. 홍수로 매해 천만 명 이상이 영향을 받는다. 아마존이 사막과 초원으로 변한다. 해수면이 상승하여 없어지는 나라들도 발생한다. 세계 대부분의 산호층이 죽게 되어 해양생태계가 변한다. 해양이 산화되고 많은 바다 생물들이 멸종한다. 지구의 33%의 생물들이 멸종한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어쩌면 지구 온난화가 가속도를 받아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로 빠질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스프링을 과도하게 늘리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지구기온의 탄력성이 상실되어 지금까지의 기후와는 전혀 다른 기후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3°C 올라 간다면 남아프리카, 호주, 미국 서부는 사막으로 변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많은 섬들은 사라지고 낮은 지역들도 해수에 잠기게 되며, 최대 50%의 생물이 멸종한다고 가정한다.  기후 학자들은 지구 온도가 2°C 높아질 시기를 2050년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재앙과 같은 날이 될 것이다.  재앙을 맞이하는 미래세대  2018년 8월 스웨덴 국회의사당앞에서 15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우리가 자란 후 이런 재앙을 맞이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후 매주 금요일 학교를 빠져가면서 시위를 계속했고, 이는 지구 온난화를 염려하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9년 9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항공기가 아닌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환경을 위해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고 영국에서 뉴욕까지 15일간 친환경 요트를 타고 간 것이다.   툰베리는 기자의 질문에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면 내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것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기후 위기가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메시지를 줄 수 있어요. 그리고 캠페인이 되기 위한 동력이 될 수도 있고요.”라고 답변했다.   또한 툰베리는 각국 정상들에게 “세계 지도자들이 온실가스 감축 등 각종 환경공약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 행동은 하고 있지 않다”면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나이지만 적극적으로 시위를 벌였고, 세계를 상대로 캠페인에 나선 것이다. 지구를 걱정하는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고 세계가 그녀의 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2050년은 그리 멀지 않은 세월이다. 특히 우리 자녀와 손주들에게는 금방 닥칠 미래이다. 그들이 맞이할 세계가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가 보여주듯이, 북극과 남극이 녹아 없어지고 많은 곳이 사막으로 변해 황폐화되었으며, 해수면이 높아져 많은 나라와 도시가 사라지고 질병이 들끓고 물과 식량이 부족해 서로에게 빼앗으려는 세상을 맞이하게 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될까?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개인의 노력은 쓸모가 있다  어쩌면 기후변화를 위한 개인의 노력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생각해 볼 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개개인이 하는 노력들은 기업이나 국가적 단위를 바라볼 때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나 하나 운전을 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고기를 안 먹고 채식을 하고, 비닐 사용을 줄이고 쇼핑백을 들고 다니고,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쓰레기를 줄여 나가고 물을 아끼는 이 모든 개인의 행동은 실은 공장이나 기업이나 국가가 하는 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운동가들은 말한다. 개인의 행동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은 기업이나 목장에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의 행동이 바로 환경을 보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주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 행동들이 가족과 친구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서 정부와 기업에까지 대책 마련을 할 여건을 조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도 맨처음 그녀 혼자 피켓 시위를 했다. 비록 혼자지만 여러 날을 국회의사당에서 피켓 시위를 한 것과 기후변화에 대한 그녀의 지속적인 행동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된 것이다.   개인의 지속적인 실천이 의견을 형성할 수 있다. 개인의 힘은 미미할 지 모르지만 개인이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각자의 삶에서 지속적이고 진지하게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들을 실천한다면 그 행동들은 주위에 의견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의견들은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나라들이 동참할 수 있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지역교회들도 기후 변화와 같은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영성에 관심을 가지길 소망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 관심을 갖고 지구를 보전하는 일에 앞장서면 좋겠다. 교회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설교나 환경운동과 관련된 성경공부를 함께 하면 어떨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무모함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지구상의 교회들만 앞장서도 지구온난화는 막을 수 있다. 세계의 모든 교단들이 2022년 교단 목표를 ‘교회가 기후변화를 막는데 앞장서자’로 정하고 실천한다면, 그리고 개교회들이 올해 교회 목표를 ‘기후변화를 막는데 우리 교회가 솔선수범하자’하고 따라간다면, 아마도 세계 20억 기독교인들이 동참한다면 분명 지구 온난화는 멈출 것이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기후 변화이다. 인류는 모두 낭떠러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버스에 함께 타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떨어지지 않았다고 자위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아차 하는 사이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인류는 기회가 남아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개인과 교회와 기업과 나라가 모두 함께 노력한다면 아직 인류에게 기회는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우선 나부터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실천해보기를 권면한다. 그리고 지속적이고 진지하게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에 대한 경고를 가족과 친구와 교회에서 나누자.   이런 작은 노력이 모여 또 하나의 여론이 될 때 낭떠러지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기후변화의 버스’는 멈추게 될 것이다.〠주경식|본지 편집국장

  그저께

(재)기독교선교횃불재단(명예이사장 이형자)은 전 세계 193개국에 흩어진 750만 한인디아스포라들을 선교사로 세우라는 비전을 좇아 2011년부터 횃불 한민족 디아스포라 세계선교대회를 개최해 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팬데믹 상황 속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들이 대회에 직접 참여할 수 없어 사전녹화 후 온라인으로 스트리밍 방송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여덟 번에 걸쳐 개회해 온 이 대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즉 한인 2, 3, 4, 5세를 그들이 나고 자란 곳의 선교사로 세우기 위한 선교사역이다.   횃불재단은 지금까지 디아스포라 선교대회를 통해 ‘보내는 선교에서 세우는 선교’라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디아스포라 선교는 앞으로 100년의 선교역사를 새로 쓰게 될 획기적 선교 방식이 될 것이라 믿고 추진하고 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리고 국가 간 이동이 어려운 현재의 팬데믹의 상황에서는 기존의 선교 방식에 더해 새로운 접근이 요청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의 확산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귀국을 했거나 하고 있고, 신임 선교사들은 파송 길이 막혀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여러 국내 교회들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선교비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 선교의 내일을 부정적으로 전망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금번 대회는 ‘디아스포라, 그 시작’(Diaspora, the Beginning)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주제에서 보여주듯 디아스포라의 시작은 성경이며, 성경의 인물들을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다루게 된다. 특히 아브라함과 모세, 다니엘, 그리고 바울과 예수님을 중심으로 설교자들이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금번 대회는 온라인의 장점을 살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강사로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경험하고 한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김승욱 목사(할렐루야교회), 최병락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디아스포라로서 현지의 한인들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미국의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가 저녁집회에서 말씀을 전한다.   또한 미국의 권혁빈 목사(씨드교회), 독일의 이찬규 목사(프랑크푸르트 한마음교회), 호주의 진기현 목사(주안교회),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강 볼레슬랍 목사(타슈켄크 아가페교회), 중국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사역하는 서영희 목사(한중사랑교회), 북한 디아스포라를 섬기는 탈북민 김성근 목사(한나라은혜교회), 복음의전함 대표로 광고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고정민 이사장, 그리고 디아스포라 대회를 기획하고 실행해 온 이경석 목사(기독교선교횃불재단) 등이 주제강의 강사로 나선다. 그 외에 미국, 독일과 러시아, 그리고 키르키즈스탄 등에서 사는 디아스포라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랜선찬양과 예배의 순서자로 각각 참가한다.   <선교대회 일정> ·일시: 2021년 10월 25(월)~27일(수) 오후 7:00~9:00           10월 26(화), 27일(수) 오전 10:00~12:00·주제: 디아스포라, 그 시작 (창 12:3)·대상 :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방식 : 유튜브 횃불재단 TV를 통한 스트리밍 온라인 방송  <주요 순서> (오후 7:00~9:00)  - 10월 25일(월): 이형자 대회장, 김승욱 목사  - 10월 26일(화): 강준민 목사, 최병락 목사  - 10월 27일(수): 오정현 목사, 김상복 목사  <주제강의> (오전 10:00~12:00)  - 10월 26일(화): 권혁빈 목사, 서영희 목사, 이경석 목사,                        강볼레슬랍 목사  - 10월 27일(수): 이찬규 목사, 진기현 목사, 김성근 목사,                        고정민 이사장  <힐링콘서트>  - 10월 25일(월): 송정미, 한웅재, 민호기, 지미선, 김동욱  <파송식> 10월 27일(수)·문의: 이경석 목사 (82-10-9025-0201, kslee@torchcenter.org)

  그저께

NSW ‘델타변이’ 확산에 봉쇄령 9월 말까지 연장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됐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몇 개월만 지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방심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곤경에 빠졌다. 국경폐쇄는 물론 나라 안에서도 이동을 금지하는 봉쇄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고 있다.  호주에서도 코로나19 공포가 커지고 있다. 시드니 광역권도 봉쇄조치가 길어지면서 코로나19의 폭풍 속으로 들어간 모습이다.  NSW주 감염자 계속 급증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26일 NSW주에서는 신규지역 감염자가 919명이나 무더기로 쏟아졌다. 사흘 연속 이어진 800명대에서 그나마 감소세를 보인 듯 했지만 역대 하루 최다치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전날에는 753명이 추가된 바 있다. 25일 집계된 919명의 신규지역 감염자 가운데 387명이 시드니 서부지역에서, 247명이 남서부지역 주민들로 파악되는 등 감염 위험지역으로 선별된 12개 카운슬 관할지역의 상당수에서 확신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날 사망자도 2명 추가됐다. 이로써 지난 6월 16일 시작된 이른바 시드니 본다이 발 델타 변이 사태로 인한 누적 확진자수는 1만 4천673명으로 불어났으며 누적 사망자수도 76명으로 증가했다.   한편 이날 하루 동안 4만 5천73명이 백신접종을 맞았으며 이로써 25일 현재 NSW주내의 백신접종 회수는 총 614만 3천824회로 집계됐다. 이같은 상황이 장기화되자 봉쇄조치로 델타 변이 확산사태를 차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신속한 백신접종을 통하여 현 상황에 대항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호주는 8월 24일 현재 16세 이상 성인 인구 기준 백신 1차 접종률이 53.6%, 접종 완료는 30.9%로 각각 집계됐다. NSW주의 경우 1차 접종률은 60.3%, 접종 완료는 32.2%로 전국 평균치를 앞질렀다.   지역별로는 ACT가 1차 접종률 60.66%, 접종완료는 37.57%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빅토리아 주는 1차 접종률이 51.8%, 접종완료는 30.78에 그쳤다.   전국적으로 가장 낮은 접종률을 기록한 지역은 서호주 주로 1차 접종률이 46.52%, 접종완료는 27.77%에 불과했다.   NSW 주정부를 비롯한 호주 연방정부는 현재 봉쇄조치로부터 ‘해방’되고 국경을 다시 열기 위해서는 성인 인구대비 백신접종 완료목표를 최소 70%에서 80% 이상으로 설정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호주 내의 전염병 전문학자들은 호주의 백신접종 완료가 70-80%에 도달하면 일일 신규지역 감염자 수가 많아도 국경 재개방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호주의 대표적 전염병 연구소인 멜본대학의 도허티 인스티튜트(Doherty Institute) 측은 전체 성인 인구의 70-80%가 백신접종을 완료할 경우 신규 확진자수가 많아도 국경 재개방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연방정부의 국경재개 4단계 계획을 사실상 입안한 도허티 인스티튜트 연구소다. 연방정부도 록다운을 통한 ‘코로나 제로’ 달성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며, 무조건적인 봉쇄보다는 백신접종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사람들이 무기한 감금상태로 지낼 순 없다. 어느 시점에선가 기어 변경이 필요하고 이는 백신접종 70%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신규감염자 통계에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백신접종을 통한 다음 단계 진입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영구적으로 동굴 속에 머물러야 한다. 이는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가 정해야 하는 어느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반드시 가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호주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수는 4만 7천8백여 명, 사망자는 989명이다.  봉쇄조치 돌파구 ‘백신 접종’  지난 6월 26일 시작된 광역권의 봉쇄조치가 9월 말까지 5주 연장됐다. 이미 8주가 지난 상태인데 현재의 NSW 하드 록다운이 최소 13주로 연장되는 셈이다. 신규 지역사회 감염자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시드니의 12개 ‘우려대상 지자체’를 대상으로 8월 23일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5시까지 통행금지조치도 시행되고 있다.   통행금지 적용 대상지역은 △블랙타운 △캠벨타운 △켄터베리-뱅크스타운 △컴벌랜드 △페어필드 △조지스리버 △리버플 △파라마타 △펜리스 일부지역 △스트라스필드 △버우드 △베이사이드 등이다.  12개 지자체 안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어린이집과 장애인시설 근로자들은 8월 30일까지 백신접종을 완료해야 한다. 지자체 밖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승인을 받은 근로자들은 1차 백신을 접종했거나 아니면 작업장에서 15분이 소요되는 신속 코로나 검사장에서 검사를 받고 일을 해야 한다.    NSW 주민 중 적절한 이유 없이 우려대상 12개 지자체를 방문하다가 적발되면 벌금 처벌과 동시에 귀가 조치되며 14일 자가 격리의무가 부여된다.  12개 관할지역에 대해 8월 23일 월요일부터 적용되는 조치는 △통행금지(저녁 9시- 익일 오전 5시까지. 필수 근무자, 비상구호, 의료진 제외) △야외운동 하루 1시간으로 제한 △소매점인 경우- 온라인 주문 후 물품 수거만 가능(묘목점 및 화원, 사무용품점, 철물점, 건축자재점, 조경자재점, 농사물품점, 애완동물점) 해당분야 기술자는 해당분야 숍 방문허용 △모든 시험 및 기타 교육 그리고 기술개발 관련활동 등은 전면 온라인화(HSC 제외. 세부내용 추가발표 예정)  NSW 주민들은 집 밖에서는 산책 등 운동(1시간 제한)을 할 때를 제외하고 항상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침묵하지 못하고 함부로 한 말  부끄러워 마스크로 입을 가리웠습니다  감사없이 살아온 낯 뜨거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거짓과 때론 위선으로 알아볼 수 없는  두 개의 얼굴이 돼버린 모습  마스크로 가리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말하지 않고 보지 않는 것 이것은 그나마  코로나 시대의 영성입니다텅 빈 시드니 거리를 걷다  지난 8월 중순 적막함마저 느껴지는 시드니 거리였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언제나 사람으로 넘쳐나던 화려한 시드니의 거리 모습은 평온과 고요가 자리하고 외부에 무심한 듯 보인다. 하늘길이 막히며 외국인 관광객도 사라졌다. 신축건물들도 공사가 중단되었고 오페라 아이다 공연도 취소되었는데 홍보 깃발만 아직도 바람에 휘날린다. 어떻게 텅텅 빈 도시가 될 수 있는지.  록스 거리도 다르지 않았다. 왁자지껄 사람들이 붐비고 맛있는 먹거리가 늘 즐거운 록스 거리였다. 거리에는 카페와 클럽, 맛집들이 즐비했다. 클럽에서는 매일 밤 라이브 음악으로 떠들썩했고, 노천 카페에서는 사랑하는 이와 커피를 마시며 초코렛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들의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록다운 상태의 상점가는 모두 문을 굳게 닫았다. 굳게 닫힌 상점 셔터와 셔터를 부여잡은 자물쇠가 쓸쓸함을 자아냈다.   록스의 활기는 사라졌다. 코로나가 이대로 계속 장기화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시드니 불꽃놀이 최고 인기 관람지라는 카힐 익스프레스 전망대에는 외롭게 노숙자 몇 사람만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다. 그나마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기에 신기하기도 했다.   서큘라 퀴 항구 옆 작은 잔디공원에서 강아지와 산책하는 여인도, 햇살 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노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거리의 악사 예술가들도 갑자기 사라졌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면서 감자튀김을 먹던 젊은이가 모두 모습을 감췄다. 갈매기 한 쌍이 먹이를 던져주던 그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서큘라 퀴 선착장 활기도 사라진지 오래다. 설렘은 사라졌고 개찰구는 텅 비었다. 코로나 이전엔 대형 유람선들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왔다. 풍요로움이 넘쳤다. 록다운 된 서큘라 퀴 선착장은 시간이 멈춘 듯 정적만 남았다.   오페라 하우스도 또 다른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오페라 관람을 위해 잘 차려입은 남녀들이 서둘러 걸어가는 모습도 사라졌다. 광장은 관광객은 물론이고 시드니 시민들도 사랑하는 야외공원이다.   평일에도 일과 후 삼삼오오 모여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에 날린다. 롤러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시원하게 가로지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거리낌 없이 애정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복잡한 곳, 평소였다면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빽빽했던 식당가였다.  그러나 오페라 하우스 광장은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개점 휴업 상태다. 순찰을 돌던 경찰관이 쓴 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삶에서 일상을 빼앗아버렸다.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었고, 잃은 것, 잊힌 것도 많았다. 각자 집에 갇힌 사람들은 이따금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가 며칠 동안 먹을 식료품을 구입하는데 그 짧은 외출에도 여러 차례 불편함을 느낀다.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문을 나서지만 좁은 공간에서 누군가와 마주치게 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약방이든 슈퍼마켓이든 어딘가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입구에서 QR코드를 찍어야하고 체온계에 이마를 내밀어 열이 있는지 확인받아야 한다.   이때 섭씨 37.3도 이상이 측정되면 코로나19 의심환자로 분류돼 격리 치료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매번 체온을 잴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든다. 장보기 무섭게 서둘러 집으로 피신한 후에는 집을 소독하고, 손을 씻고 또 씻는다.   스쳐가는 감기였으면 좋겠다.                                 교회에 가고 싶다 NSW주의 록다운으로 시민들의 외출이 엄격히 제한됐고 일체의 집회가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22일(일) 저녁 시드니서부 블랙타운(Blacktown)의 한 교회에 60여 명이 예배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성인들 외 아이들도 이날 밤 예배에 참석했는데 성인 30명에게 1인당 1천 달러씩, 교회에 5천 달러의 벌금통지서가 발부됐다. 블랙타운은 감염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우려대상 12개 지자체에 포함돼 가장 강력한 규제가 적용 중이다.   크라이스트 엠베시 시드니교회로 밝혀진 이 교회는 QR 코드판도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에 가고 싶다. 예배당에 들어가고 싶다. 성가대와 기악부의 찬양을 듣고 싶다. 장의자에 앉아 두 손 모으고 눈 감고 기도하고 싶다. 교회 식당 설거지를 끝내고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고 선교회 회원들과 커피 한잔 하고 싶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교회학교 아이들이 보고 싶다. 잠깐 들러 기도라도 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것도 안 된다. 지금은 참아야 한다. 록다운 규정에 따라 모든 종교집회에 대중 참석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현장예배가 멈추었다고 신앙이 멈출 수는 없다. 각자 혹은 가족단위로 가정과 일터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신앙생활은 계속돼야 한다.   미국 성공회 사제이자 대학 켐퍼스 사역자로 활동해온 티시 해릿 워런은 저서 ‘오늘이라는 예배’에서 사소한 하루가 어떻게 거룩한 예배가 되는지를 세밀히 기록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침대 정리를 하면서 세례를 생각했고, 남은 음식을 먹으며 말씀과 성례전을 묵상했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친구와 통화하면서 상대방을 축복하는 공동체를 경험했고, 운전 중 교통체증을 버티면서 서두르지 않는 하나님을 떠올렸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다면 모든 순간은 예배로 변할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를 못 드린다고 속상해 할 일이 아니다. 기도와 말씀묵상 그리고 섬김, 기뻐함과 감사 등의 훈련을 통해 코로나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성전은  텅빈 공간으로  문이 닫혔습니다  그럼에도   허물어진 가정 제단  다시 쌓게하신 은총  이단은 속임과 거짓으로  성소에 둥지를 틀 때  우리는 외식에 취해  배부르며  해야 할일을 잃고 안주했습니다  코로나19는 펜데믹되고  세상은 단절과 결핍으로  불안과 두려움 속에  더욱 어두워집니다  주여!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 또 용서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아버지 집에서  서로 뜨겁게 손잡고  목이 쉬도록 찬송하고 싶습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십시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소멸하라”  그리고  “교회여 울지말라   너희의 목자인 내가 있다”  교회와 성도들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신앙을 걱정해 발을 동동 구른다. 최근에 나 나름대로 예배를 드렸다. 찬송가 합창곡을 들으면서 사무치는 마음을 달랬다. 잠시 속으로 기도했는데 근래 들어 가장 강렬하고 간절했던 것 같다. 주기도문이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했는데 울컥해서 더 잇지 못했다.   우리는 두 다리로 걷는 게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아프지 않고 햇살 한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잊고 산다. 교회에 가고, 지인들과 저녁을 먹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이었는지 코로나가 닥친 후에야 새삼 느끼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은 전염병의 공포로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이 어떨까. 따뜻한 위로가 희망이 되어 우리는 내일을 다시 살아간다. ‘극복’이란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평범한 삶을 복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연결의 힘을 믿는다. 힘든 현실에 자꾸만 당신이 생각나는 하루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  늘 그랬듯이.〠글|김명동 본지 편집인사진|권순형 본지 발행인

  20/09/2021

호주 전역 79개 교회 8천889명 신청 한국의 대표 제약회사 종근당은 퍼시픽 블루 헬스(PBH)라는 호주 법인을 세워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진출, 호주 전 지역에 있는 한인교회 성도들에게 무료 샘플 증정 행사를 지난 8월 크리스찬리뷰사와 함께 진행했다.    한인교회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절찬리에 진행된 무료 샘플 증정 행사는 폭발적인 성원으로 인해 개인 신청은 받지 못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신청을 받았으며, 8월 초에 조기 마감했다.    블루 헬스(PBH) 호주 법인장 김종영 대표는 “예상했던 수량의 무려 5배가 넘는 폭발적인 성원에 감사드린다”며 “교민 한 분에게라도 더 샘플을 드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번 증정 행사는 호주 전역에서 79개 교회가 신청했으며 시드니(6,456), NSW(80), 캔버라(158), 멜번(688), 아들레이드(317), QLD(790), 타스마니아(65), 퍼스(335) 등 8,889명에게 장 건강과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유산균 제품 ‘프로 바이오틱스’가 전달될 예정이다.     종근당 관계자는 “현재까지 대면예배가 가능한 3개 지역에 1,540개의 ‘프로 바이오틱스’를 배송했으며, 시드니와 멜번을 비롯한 일부 지역은 봉쇄조치(lockdown)로 인해 대면예배가 불가함에 따라 봉쇄조치가 해제되고 대면예배가 시작되면 증정 행사의 진행 여부를 재고, 보유 상황 및 사업 운영 계획 대비 검토 후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관계자는 “가능하다면 1차 신청한 분들에게 전량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5배가 넘는 수요에 따라 상품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이번 신청자들에게 추후 진행하게 될 행사에 우선 순위를 제공하겠다”며 “최대한 형평성을 지키도록 노력하겠다. 다시 한번 뜨거운 반응에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교민 사회에 한인 기업으로써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프로 바이오틱스’ 판매처 및 문의>판매처: (시드니)혼스비 건강식품, 이스트우드 건강식품, 제니마트 (브리즈번) 하나로마트 Priceline, Good price pharmacy warehouse 등 문의: 스티브: 0477 025 290www.elementelle.com.au

  20/09/2021

정의·진실·화해를 향한 매우 큰 발걸음       마이올 크릭 추모제 (Myall Creek Memorial Ceremony 2021)                        글/주경식사진/권순형   마이올 크릭 대학살 (Myall Creek Massacre) 배경 1838년 6월 10일, 뉴 사우스 웨일즈, 마이올 크릭 목축지에서 12명의 백인 남성에게 최소 28명의 원주민(Aborigine) 남성, 여성, 어린이들이 살해되었다.   백인들이 호주 원주민을 살해한 사건은 호주 정착 과정에 자주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이올 크릭 대학살이 다른 학살 사건들에 비해 중요한 이유는 백인이 원주민을 죽였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호주 대륙에는 영국인이 1788년에 첫발을 딛기 전까지 최소 4만 년 이상을 원주민(the first people, 지금은 호주의 첫 번째 정착민이라고 부른다)이 살고 있었다. 영국인의 정착 초기부터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는 당연히 갈등이 벌어졌다.   이러한 갈등은 일반적으로 백인이 호주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을 원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영국이 죄수 유형지로 호주 신대륙을 선택하고 죄수들을 보냈지만 점차 자유 정착민들도 호주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838년 이미 백인들은 51년 동안 호주에 정착을 하면서 백인 목축업자들은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무너뜨렸다.전개  1830년대까지 원주민들에 대한 백인들의 폭력은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특히 뉴 사우스 웨일즈 국경지대에서 백인들의 이러한 원주민 공격은 1837-1838년에 야만적으로 증가했고 극에 달했다.   뉴 사우스 웨일즈의 식민지에는 공식적인 경계가 있었다. 공식 국경 너머에 정착한 사람들을 스쿼터(Squatter)라고 불렀다. 이 스쿼터(목축업자)들은 종종 더 넓은 목축지를 찾아 원주민의 땅까지 침범하여 자신들이 기르는 소나 양을 방사했다. 마이올 크릭 목축지는 그러한 장소였다.  1838년 6월 10일 마이올 크릭 목축지에서 28명의 원주민 남녀와 어린이들이 학살되었다. 마이올 크릭 대학살을 이끈 존 플레밍(John Flemimg)은 부유한 자유 정착민 목장주의 아들이었다. 그는 11명의 죄수들을 규합하여 원주민 학살을 이끌었다.   더욱이 끔찍한 것은 원주민들의 머리를 참수하여 시체들을 불태웠다는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더 많은 원주민을 찾아 죽이려고 그 인근 지역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인근 인버렐 지역에서 또 다른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들이 살해한 원주민 희생자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술 파티를 열고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서로 자랑하기도 했다.  재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정착 초기에 식민지 호주 대륙에서는 원주민 학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마이올 크릭 사건은 백인들이 원주민에게 저지른 만행이 문서로써 잘 보존되고 원주민을 살해한 백인을 처벌한 최초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다른 원주민 학살과는 다르다.  당시 마이올 크릭 목장주였던 윌리엄 홉스(William Hobbs)는 학살사건을 지역 경찰인 토마스 포스터(Thomas Foster)에게 신고했다.   그리고 사건을 보고받은 당시 뉴 사우스 웨일즈 신임 총독이었던 조지 깁스(George Gipps)는 수사를 명령하고 학살자들을 체포하도록 했다. 얼마 후 학살을 이끌었던 존 플레밍을 제외하고는 모두 체포되었다. 존은 죄수가 아니라 자유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수감자들에 대한 뉴스가 퍼지면서 그들의 체포는 군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었다. 심지어 어떤 백인 목장주는 죄수들을 위한 최고의 변호사를 구하는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첫 번째 재판은 1838년 11월 15일에 열렸다. 그러나 시체들도 모두 불태워지고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제시된 부족한 증거들로 인해 배심원들은 15분 만에 그들 모두에게 무죄판결을 냈다.   1938년 12월 18일자 ‘오스트레일리안’ 신문에 실린 당시 기사는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원주민들을 원숭이 군집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구상에서 빨리 멸종될수록 더 좋습니다. 백인들이 살인죄를 범했다는 건 알지만 원주민을 죽였다는 이유로 교수형에 처해진 백인은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 1838년 12월 18일 The Australian에 인용된 배심원 중 한 명의 이야기 -  당시 뉴 사우스 웨일즈 식민지 법무 장관이었던 존 플룬켓(John Plunkett)은 포기하지 않고 11명 중 7명에게 별도의 죄목으로 기소를 다시 한다.    두 번째 재판이 열릴 때 백인들은 배심원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존 플론켓 법무장관은 담당 판사에게 배심원에 추천되었는데 나오지 않는 자들에게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명령했다.   다행히 두 번째 재판이 열리고 원주민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7명 모두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되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죄수들은 1838년 12월 18일 아침에 처형되었다. 영국의 법률 시스템이 원주민에 대한 범죄로 영국인을 처벌하는데 사용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백인들은 원주민 학살보다 영국 시민의 처형에 더 격분했다는 사실이다.  마이올 크릭 추모제 전날  2000년부터 시작된 마이올 크릭 추모 행사는 매해 6월 NSW주 국경일(Queen’s Birthday) 연휴에 열린다. 아마도 추모행사를 주최하는 ‘마이올 크릭 추모 친구들’(FMCM, Friends of Myall Creek Memorial Inc) 재단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학살이 자행된 6월의 공휴일로 정한 것 같다. 올해는 그날이 6월 13일 일요일이다.   6월 11일(금) 인버렐에 저녁 늦게 도착한 기자 일행은 다음날 취재 준비를 위해 마이올 크릭 관련 기사를 몇 개 읽고 잠을 청했다.   6월 12일(토) 오전 10시, 마이올 크릭 행사장으로 향했다. 구글 지도가 표시해 주는 대로 인버렐에서 B76번 국도를 타고 정확히 35분 거리에 있었다. 마이올 크릭은 도시가 아니다. 말 그대로 학살 현장이고 목축지이다. 근처에는 달랑 메모리얼 홀 하나만 있을 뿐 황량한 초원이어서 관심을 갖고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오전 10시 40분경 도착한 취재팀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추모행사가 열릴 예정인 오벌(Oval)로 향했다. 행사 전날인데도 불구하고 미리 온 사람들을 제법 많이 볼 수 있었다. 어제 온 비로 인해 포장되지 않은 흙길은 질척거렸다. 오벌 안에도 빗물이 고여 있어서 내일 추모행사를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내일 행사를 참석하기 전에 사진 촬영 장소도 살펴보고 ‘마이올 크릭 추모의 길’을 미리 답사를 겸해 걸어 보았다. 추모의 길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7개 석탑들이 세워져 있었다. 석탑에는 마이올 크릭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학살이 벌어진 내용들이 스텐 명판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얼마를 걷고 있는데 몇 사람들이 길을 고르고 길옆의 잡초들을 뽑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친절하게 인사를 걸어왔다.   로컬 화해 그룹(Local Reconciliation Group)  그는 울릉공 밑에 있는 서던 하이랜드(Southern Highlands)지역인 윈지캐리비(Wingecarri- bee) 화해 그룹(Reconciliation Group)의 리더 거스 존슨(Gus Johnson)이였다.   10명 정도의 동료들과 함께 추모행사에 참여도 하고 추모의 길을 정돈하고자 미리 온 것이었다. 그는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아시아인이 이 행사에 참여한 것이 신기한 듯 물어 왔다.   우리는 시드니 한인 커뮤니티에서 왔으며 크리스찬리뷰에서 취재차 왔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간단한 한국말을 몇마디 하더니 ‘윈지캐리비 화해그룹’에서는 해마다 참여를 하고 있으며 이렇게 미리 와서 잡초도 뽑고 길을 정비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의 조상은 아이리쉬(Irish)입니다. 저희 아이리쉬도 예전에 영국인에게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영국 백인들이 이렇게 원주민을 대학살한 것은 끔찍한 범죄입니다. 어떠한 회개를 해도 그들의 죗값을 다 치루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라도 이것이 기억되고 해마다 추모제를 지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오히려 원주민들이 우리를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백인들이 이것을 모르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는 감정에 복받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충혈된 눈으로 마이올 크릭 역사를 설명하며 이 추모행사를 참석하고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역설했다.   그 덕분에 뉴 사우스 웨일즈의 많은 지역 카운슬 안에 원주민을 지원하는 로컬 화해 그룹(Local Reconciliation Group)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맨리, 레인코브, 베네롱, 혼스비, 마운틴 드륏과 파라마타를 포함한 웨스턴 시드니 지역, 이외에도 울릉공 등 많은 로컬 지역에서 원주민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지역 화해 그룹들이 활동해 오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간 권 발행인과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한인 커뮤니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거스와 헤어진 후 조금 있다가 다시 한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무리의 마지막에 있던 한 남자가 반갑게 인사를 전해왔다. 그의 인사를 받으며 역시 우린 한인 커뮤니티에서 참석을 했으며, 크리스찬리뷰에서 취재차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이 추모제 행사를 주최하는 ‘마이올 크릭 추모 친구들’(FMCM, Friends of Myall Creek Memorial Inc) 재단의 재정이사인 그레엄 코디너(Graeme Cordiner)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역시 추모행사를 위해 단체회원들과 함께 내일 걷게 될 길을 먼저 답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레엄은 진지하게 마이올 크릭 현장이 왜 호주 역사에 중요하며 떳떳하지 않은 역사지만 호주가 이것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 힘주어 설명했다.  “마이올 크릭에는 세 가지 다른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먼저는 학살을 당한 당사자인 원주민들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학살을 자행한 백인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호주의 다문화 커뮤니티에서 바라보아야 할 스토리가 있습니다.   먼저 백인들은 이 부끄러운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저도 조상이 영국이지만 영국인들은 자기들이 우수한 민족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이올 크릭앞에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다른 문화와 민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원주민은 이런 아픔을 당하고서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곳에 오면 미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원주민들은 우리를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문화국가 호주의 모든 다민족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정신을 배워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이올 크릭의 정신은 화해와 사랑입니다.”  그의 마지막말이 가슴에 와 꽂혔다.  “마이올 크릭의 정신은 화해와 사랑입니다.”  마이올 크릭 추모제 (Myall Creek Memorial Annual Service of Commemoration)6월 13일(주일) 오전 10시 30분에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대강 계수해보니 어림잡아 참석한 숫자가 4백여 명 정도 되었다. 채널 7과 채널 9 로컬 방송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먼저 마이올 크릭 원주민 장로인 수 블랙록(Sue Blacklock)은 추모제에 참석한 참가자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따뜻하게 전했다. 이어 사회자가 추모행사에 참석한 귀빈들을 소개한 후 원주민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원주민 전통 춤 공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초청 강사인 린달 라이언(Lyndall Ryan)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린달 교수는 자신은 원주민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이올 크릭 비극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마이올 크릭 학살은 호주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중요한 사건이며 후손들에게 교육해야 할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후손들은 마이올 크릭을 반드시 기억하고 정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린달 교수의 강연이 끝난 후 모두 일어나서 마이올 크릭 선언문을 함께 낭독하며 1부 추모행사를 마쳤다. 그리고 마이올 크릭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장소로 그룹을 지어 이동하며 기념비 앞에서 2부 추모행사가 이어졌다.  기자 일행은 사진 취재를 위해 서둘러 ‘마이올 크릭 추모의 길’로 향했다. 추모의 길 입구에는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 놓고 연기로 정화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추모의 길’에 들어서기 앞서서 연기를 통과하게 하고 이마에 황토선을 그어 원주민 정화의식을 체험하게 했다.   삼삼오오 그룹들은 각 기념 석탑 앞에 서서 미리 와서 준비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읽어주는 명판 내용을 눈을 감고 들을 수 있었다.   매해 추모행사에는 로컬 하이스쿨 학생들과 멀리 퀸즈랜드 하이스쿨 학생들까지 자원봉사로 참석하여 행사를 돕는다. 이렇게 학생들은 자원봉사를 통해 행사를 돕고 또한 참가한 학생들은 추모제를 통하여 화해와 조화의 삶을 배우게 되는 호주 교육의 우수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이올 크릭 추모 기념 바위 앞에서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추모의 길’을 통과하여 추모 기념 바위 앞에 모였다. 다시 마이올 크릭 원주민 장로 수 블랙록(Sue Blacklock)은 따뜻한 환영사로 참석자들을 맞이했다.  그는 “마이올 크릭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며 누구나 와서 화해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조화롭게 사는 것을 배우자”며 참가한 모두를 따뜻하게 환영했다.   환영사가 끝나자 원주민 전통악기인 블로러(Bullroarer)를 돌리는 소리가 기념바위 뒤에서 들려왔다. 블로러는 전통적으로 원주민 의식에서 다른 부족끼리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악기이다. 블로러를 연주한 원주민의 악기와 의식에 대한 소개가 끝난 후 이곳에서 희생당한 원주민들을 위해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 세워진 14톤이나 되는 화강암 기념바위는 지금 있는 장소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하였는데 이곳으로 옮겨와 기념바위로 세우고 1838년 마이올 크릭에서 희생한 원주민들을 추모하는 청동 동판을 붙여 놓았다.   존 브라운(John Brown)목사와 마이올 크릭   사실 마이올 크릭 추모제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존 브라운(John Brown, 변조은) 목사의 공로가 크다. 추모행사에서도 공로자로 그의 이름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불리우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80세 후반의 노장이지만 원래 올해 추모제에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마이올 크릭 추모제 취재를 준비하며 기자는 약 3주 전 존 브라운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년 참석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올해도 참석하는지 확인하고 마이올 크릭에서 만나 짤막한 인터뷰를 할 계획이었다.   그는 한국에 선교사로 다녀온 후 호주연합교회 선교부 총무로 오랫동안 봉사해 왔다. 한국 선교에 큰 공헌을 했지만 원주민 선교에도 크게 헌신했다. 마이올 크릭 추모제는 사실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어떻게 마이올 크릭 추모제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전화로 물어보았다.  “제가 만나는 원주민들마다 마이올 크릭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 원주민들은 마이올 크릭 이야기를 했어요. 마이올 크릭에서 대학살이 있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마이올 크릭을 넘어가지 않고는 원주민 선교를 할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원주민 위원회 장로들과 회의하면서 제가 마이올 크릭에 같이 가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1998년 10월에 저희가 마이올 크릭에 함께 모였습니다. 마이올 크릭을 본 후 우리 백인들이 원주민과 정말 화해를 하려면 우리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해야 하고 마이올 크릭에 원주민 추모 기념비를 세우고 이일을 두고두고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2000년에 호주연합교회의 모든 직분에서 은퇴했지만 마이올 크릭 학살 추모행사에는 깊게 관여했다. ‘마이올 크릭 추모 친구들’(FMCM, Friends of Myall Creek Memorial Inc) 비영리 재단도, 해마다 열리는 마이올 크릭 추모제 행사도 그가 없었다면 아마 조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존 브라운 목사는 올해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손녀가 운전을 해서 손녀와 함께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개인 사정상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아쉽다고 전해왔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이제 마이올 크릭 재단은 3단계 사업으로 ‘마이올 크릭 교육·문화 센터’를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센터를 통해 마이올 크릭 역사와 진실을 배우고 원주민의 문화를 존중하고 함께 조화롭게 사는 법을 전수하는 데 목적이 있다.  추모행사에 참여한 70세 넘은 한 원주민은 자기들은 “학교에 가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라고 하소연을 해왔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똑같이 교육받고 똑같이 법적인 처우를 받고, 똑같이 호주 시민으로서 호주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우리도 동등한 호주 시민입니다.”  원주민들은 비로소 1970대에 들어서 초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것도 각 지역 학교마다 편차가 심했다. 호주는 2008년 케빈 러드 정부에 와서야 비로소 원주민에게 ‘Sorry’를 외쳤다. 백인들은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무참히 죽이고, 아이들 교육을 명분으로 부모와 생이별을 시켜 원주민의 전통과 문화를 멸절시켜 왔다.   그외에도 원주민들에게 행한 악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라도 원주민들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미안하다’라고 선언하고 원주민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원주민들의 인권을 법으로 인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화해와 인정(Reconciliation and Acknowledgement)  마이 올 크릭 학살 사건은 호주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건이다. 바로 영국 식민지의 법이 원주민과 백인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도록 식민지 행정부가 개입한 첫 번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올 크릭에서의 학살은 호주 역사의 모멘텀이다. 마이올 크릭 학살 기록을 통해 1838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백인들에게 원주민 학대를 상기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제 마이올 크릭 추모를 통해 백인들과 원주민들이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마이올 크릭 ‘추모의 길’ 끝에 세워진 기념 바위 동판에 새겨진 글귀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역사의 진실을 인정하고 화해의 행동으로 호주 원주민과 비원주민 호주인 그룹이 함께 2000년 6월 10일에 이 기념바위를 건립합니다.”  마이올 크릭에서 만난 백인들은 모두 그들의 선조가 행한 범죄를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마이올 크릭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이올 크릭에서 만난 원주민들은 모두 화해와 용서를 이야기했다.   마이올 크릭은 화해와 회복의 장소이다.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화합을 강조하는 마이올 크릭에 한인 커뮤니티가 무엇을 공헌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시드니로 내려오는 내내 가슴이 뜨거웠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권순형|본지 발행인

  01/07/2021

실로암장로교회(담임목사 류병재)는 지난 5월 16일(주일) 오전 11시 라이델미어(Rydalmere) 비전센터에서 입당 감사예배를 가졌다. 류병재 목사의 사회로 시작된 감사예배는 경배와 찬양, 김병근 목사(할렐루야장로교회 은퇴목사)의 기도에 이어 호주장로교회 총회 목회 선교국 담당 폴 멕켄드릭 목사(Rev. Paul Mckendric)는 ‘불안정한 시기에 안정감’(살후 2:13-17)이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은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또한 여러분이 힘들 때 위로해 주신다"며 “불안정한 시기에는 안정감을 주신다”고 말하고 “주님의 말씀을 꼭 잡고 신앙생활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전센터 역사 영상 상영과 총회 존 아이삭 목사와 조현구 장로의 건축 경과 보고가 있었다. 조현구 장로는 “1991년 8월 18일 창립된 실로암장로교회는 2007년 비전센터 1차 캠페인 후 2011년 2월 비전센터 구입했으며, 2012년 6월 비전센터 1층 완공 후 사무실을 이전하고, 2019년 11월 본당 공사를 시작하여 2021년 5월 OC발급을 받고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경과를 보고하고 김문원 장로가 입당기도를 드렸다. 이날 축하행사로 유아부, 유치부, 유초등부의 찬양 율동과 함께 워십댄스팀의 워십댄스, 중고등부, 한어 청년부의 찬양 및 앙상블 연주가 있었으며,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칼넷 이사장), 정근두 목사(에스라상경대학원 총장, 울산교회 원로목사), 피터 바니스 목사(Rev. Peter Barnes, 호주장로교 전축 총회장)가 영상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교회 건축에 헌신한 임정호 대표, 강우인 대표에게 감사패를 중정하고 케익 커팅식을 가진 후 문원형 목사(가나안장로교회 은퇴목사)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03/06/2021

시드니교회(담임목사 형주민)는 창립 28주년을 맞아 감사예배와 함께 권사 및 항존집사 임직예배를 지난 5월 16일(주일) 12시에 동교회당에서 가졌다. 형주민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1부 말씀의 예배는 유광숙 장로의 기도, 성가대의 찬양에 이어 동교회를 창립한 초대 담임목사였던 최정복 목사가 ‘벧엘을 향해 가는 믿음의 삶’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건강한 교회로 성장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기도와 물질로 몸으로 헌신해 온 신실한 성도들의 결실이다”라고 말했다. 최정복 목사는 “창립 28주년을 맞은 시드니교회는 청년교회가 되었다”며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집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이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섬기며, 헌실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우리들이 꿈꾸는 교회 사역이 무엇이든지 주님의 마음을 드러내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보화를 쌓을 수 있는 그런 사역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2부 임직 취임식은 형주민 목사의 집례로 임직자를 소개하고 임직자와 교인들로부터 서약을 받고 안수 및 임직기도를 드린 후 취임을 선포하고 동교회 여성중창단의 축가가 있은 후 임직패 및 기념품을 증정했다. 이어 김석호 목사(삼일교회 은퇴목사)는 축사를 통해 “러더십(leadership)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팔로워십(followship)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마태복음 20장 26-27절(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은 예수님의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임직자를 대표한 백승국 집사는 답사를 통해 “임직을 받으며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더 낮은 자세로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교회의 화평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는 선한 청지기들이 되겠다”고 강조했으며, 최정복 목사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임직자는 다음과 같다. ·권사: 권현주, 김인옥, 이원숙, 장수미 서정화 (*한국 체류중 귀국 후 임직 예정) ·항존집사: 김승제, 백승국

  03/06/2021

시드니새순장로교회(담임목사 송선강)는 지난 4월 25일(주일) 오후 4시 동교회 새순홀에서 장로 임직식을 가졌다. 당회장 송선강 목사의 인도로 시작된 1부 예배는 홍상은 목사(노회 서기, 혜림교회)의 기도, 동교회 호산나찬양대의 찬양에 이어 송길환 목사(노회장, 시드니예수인교회)는 ‘순종하는 신자, 본이 되는 리더’(벧전 5:1-6)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송 목사는 “우리는 믿는 자다운 삶으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에 신성 모독이 안 되는 진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며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지만 자신을 낮추는 자를 높이신다’라고 말하고 “교회 공동체 전체 구성원들은 겸손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행하라”고 전했다. 송 목사는 “교회 지도자들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챔임 있게 잘 보호하고 목양해야 하고 다른 성도들은 그런 지도자들을 존중하고 겸손히 섬길 때 지금 같은 고난 시대에 아름다운 교회를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2부 임직식은 송선강 목사가 임직자(강문갑, 강유상, 박승천)와 교우들로부터 서약을 받고 안수기도를 드린 후 임직을 공포하고 임직패를 증정했으며,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꽃다발을 증정하고 테너 김재우 집사의 축가가 이어졌다. 김종찬 목사(증경노회장, 엘림장로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신 임직자들은 긍휼과 거룩과 자비와 인내의 옷을 입고 그 위에 사랑을 더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며 사랑으로 일해야 한다”라고 권면했으며, 황운고 목사(총회장, 동행장로교회)는 “임직 받은 자들은 충성스러운 주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며 축사에 대신했다. 임직자를 대표한 강문갑 장로는 “부족한 저희들은 여러분의 종이 되고자 하며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듯이 그런 낮은 종의 자세로 새순 교인들을 섬기겠다’고 말하고 “저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도구로 사용되기를 소망한다. 저희들이 이러한 초심을 잃지 않고 교회를 잘 섬길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답사를 전했으며, 강승찬 목사(부노회장, 시드니새생명교회)의 축도로 임직식을 마쳤다.

  03/06/2021

기념예배와 함께 병사 입대식 및 부교 임명식 가져 구세군라이드교회(담임사관: 김환기, 김은려)는 창립 2주년을 맞아 지난 4월 11일 오전 11시 동교회당에서 기념예배와 함께 병사 입대식 및 부교 임명식을 가졌다. 김환기 사관의 인도로 시작된 예배는 조현상 부교의 기도에 이어 김환기 사관은 병사로 입대하는 황태영, 최병선, 이효영, 김경애 등 4명의 성도와 부교로 임명받은 조옥정, 박조향, 조현상, 조미령, 조삼덕, 김정금, 최춘화 등 7명 성도들로부터 서약을 받았으며, NSW/ACT 지방장관 미리암 그루예스 사관(Lt.Col Miriam Gluyas)은 임명장을 전달하고 기도를 드렸다. 이어 이효영 집사의 간증과 축하 찬양, 구세군 시드니 박물관 책임자인 돈 캘러핸(Don Callaghan) 씨의 코넷 연주가 있었으며 지방장관 미리암 그루예스 사관은 ‘불이 내리고 성령이 임하면’(The fire fell, spirit came)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지방장관 그루예스 사관은 “불이 임하고 성령의 임재하면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고 변한다. 지금 이 세상은 주님이 필요한 때이고 성령의 임재가 필요한 때이다.”라며 “부활절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제자들은 이 세상을 구원하실 줄 알았던 예수님이 아무 힘 없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것을 보고는 상심이 컸을 것이다. 두렵고 낙심도 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루예스 사관은 “제자들과 믿는 크리스찬들은 많이 혼동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셨고 희망을 주셨다. 그리고 그 성령이 여러 크리스찬들과 병사들에게 지금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고 주님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들은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으며 주님은 우리가 항상 평화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예배는 손아브라함 목사(순복음은혜교회 원로목사)의 축도로 마친 후 교육관에서 오찬을 나누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동교회는 2019년 4월 14일 사택에서 첫 예배를 드린 후 6개월간의 사택 시대를 마감하고 10월 6일 현재의 교회로 이전했다. 그러나 2020년 초에 발생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대면 예배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9월 마지막 주일부터 다시 대면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지역관인 로빈 블랙(Robyn Black) 사관을 초청, 12월 6일 3명의 병사 입대식을 가진 바 있다.

  30/04/2021

199년 전통의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 글/주경식 사진/권순형·김환기 2021년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Sydney Royal Easter show, 이하 이스터 쇼)가 지난 4월 1일(목)부터 12일(월)까지 12일 동안 시드니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시드니 쇼그라운드(Sydney Showground)에서 열렸다. 이스터 쇼는 부활절 (3월 또는 4월)을 기념하여 매해마다 부활절이 시작되는 2주 동안 개최되는 호주 최대 규모의 행사로써 호주의 농업과 축산업을 장려하고 농촌지역을 지원하는 NSW 왕실농업협회(Royal Agricultural Society)에서 주최해 왔다. 이스터 쇼는 1823년 시작되어 199년이란 전통을 가진 호주 최대 규모의 축제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행사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년에는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1823년 이스터 쇼가 처음 시작된 이래 단 2회(1919년 스페인 독감, 2020년 코로나19) 취소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42년부터 1946년까지 전쟁으로 인해 열리지 못한 것을 제외한다면 199년 동안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해 개최된 긴 역사를 가진 호주 최대의 축제라 할 수 있다. 이스터 쇼의 역사 이스터 쇼가 처음 개최된 목적은 식민지의 농촌 산업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이스터 쇼를 개최하는 단체는 NSW 로열농업협회(Royal Agricultural Society of NSW, RAS) 이다. 맨 처음 뉴 사우스 웨일즈(NSW) 식민지가 건설될 당시 영국 정부는 식민지 정부가 식량 생산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농장을 개간하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1822년 시드니의 주요 시민 그룹은 “각종경연대회를 통하여 호주의 1차 산업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NSW 농업협회(Agricultural Society of NSW)를 1822년 7월 5일 결성했다. NSW 농업협회는 식민지 내 가축을 늘리고 농사의 다양한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NSW 농업협회는 농촌 산업을 장려하고 선진화하기 위해 그 이듬해인 1823년 이스터 쇼를 처음 개최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이스터 쇼는 농업, 축산 분야의 각종 대회와 교육 및 행사를 통하여 농촌산업을 장려했다. 현재에도 그런 전통이 이어져 이스터 쇼에서는 축산물과 농산물에 대한 각종 경기, 대회, 심사가 진행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1823년 처음 시작된 이스터 쇼는 시드니 시티에서 서쪽으로 24km 떨어진 파라마타 공원(Parramatta Park)에서 열렸다. 이스터 쇼가 처음 시작할 때에는 말, 소, 양, 돼지 및 가금류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파라마타 공원에서 45년 진행되던 이스터 쇼는 1869년 프린스 알프레드 공원(Prince Alfred Park, 현 Chalmers St, Surry hills)으로 옮겨져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1881년 뉴 사우스 웨일즈 정부가 무어 공원(Moore Park)의 토지를 NSW농업협회에 제공했다. 그래서 이스터 쇼는 1882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115년 동안 무어 공원에서 진행되어 오게 되었다. 오래 전 호주로 이민 온 교민들은 자녀들과 함께 무어 공원에서 열렸던 이스터 쇼를 관람했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스터 쇼의 관람객들이 무어 공원의 시설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1994년 뉴 사우스 웨일즈 정부는 이스터 쇼가 홈부시의 시드니 올림픽공원으로 이전하는 것을 승인했다. 올림픽공원의 새로운 부지에서의 첫 번째 쇼는 1998년에 열렸다. 지금까지 올림픽공원에서 진행되고 있으니 23년 동안 올림픽공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시드니 이스터 쇼에 ‘Royal’ 칭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NSW주의 농업 발전과 그간의 공헌을 격려하기 위해 1891년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특별허가를 내주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891년 NSW 농업협회(Agricultural Society of NSW)는 NSW 로열 농업협회(Royal Agricultural Society of NSW)로 이름이 바뀌었고 같은 해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Sydney Royal Easter Show, SRES)가 열리게 되었다. 자이언트 스타디움 행사 본지 특별취재팀(권순형, 김환기, 주경식)은 2021년 이스터 쇼를 취재하기 위해 NSW 로열농업협회 미디어 관리팀에서 패스(Media pass)를 발급받았다. 공식 개막식이 열리는 4월 2일(금), 카메라를 챙기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이스터 쇼 공식 개장을 알리는 개막식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터 쇼 개장을 축하하기 위해 오후 4시에 예정되었던 공군 곡예 비행공연은 취소되었다. 하지만 자이언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1년 개막식은 호주 육·해·공군 3군 의장대가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초록색 잔디 위 넓은 운동장에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볼 만했다.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의장대의 행진 시범이 끝난 후, 마가렛 비즐리(Margaret Joan Beazley) NSW 총독이 마치를 타고 입장한 후 의장대를 사열하고 이스터 쇼 개장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개막식이 끝나고 이스터 쇼에서 가장 볼거리의 하나인 그랜드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시드니 로열 대회(Sydney Royal Competitions)에서 상을 수상한 각종 동물들(말, 소, 젖소, 양, 염소, 돼지, 망아지, 알파카)이 그룹으로 나와 음악에 맞춰 행진을 하는 모습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이 행사를 보면서 호주 농업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고 시드니 로열 대회에서 우승한 잘생긴 동물들과 주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이언트 스타디움에서는 계속해서 로데오경기와 장애물 넘기 승마대회가 이어졌고 저녁에는 오토바이 곡예 시범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호주를 대표하는 홀덴 자동차와 미국을 대표하는 포드 자동차의 점프와 곡예 운전은 또 다른 볼 만한 거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화려한 조명 가운데 각종 캐릭터들로 장식한 퍼레이드 차량들이 이어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 시작된 호주 가수들의 노래와 댄스 공연은 절로 신이 나게 만들었다. 밤 9시가 가까워 오자 스타디움에서는 불꽃놀이로 호주의 가을밤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불꽃놀이는 이스터 쇼 기간 동안 매일 저녁 펼쳐질 것이라는 사회자의 유혹의 멘트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우드 초핑 대회(Wood Chopping competition) 이스터 쇼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목과 볼거리는 우드 초핑 대회(Wood Chopping competition)이다. 우리말로 하면 ‘통나무 자르기 대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놀라운 일은 시드니 로열 우드초핑 대회가 10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권위있는 우드 초핑 대회라는 것이다. 시드니 로열 우드초핑 대회의 한 종목에서 우승하면 그 종목의 세계 우승자가 되는 것이다. 우드 초핑 종목에는 짧은 통나무 자르기, 중간 길이 통나무 자르기, 발 아래 놓고 자르기, 나무 밟고 올라가 벌채하기 등 다양하다. 자료에 의하면 69개 클래스에 걸쳐 전 세계 250명 이상의 선수들이 참가한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성끼리 경쟁하는 경기들도 있다. 이것은 호주가 정착 초기부터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않게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역할들을 감당해온 것을 증명한다. 호주는 직업에 있어서도 여자, 남자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4월 2일, 이스터 쇼 개막식에 앞서 기자 일행은 우드 초핑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마스터 쉐프 우드촙 스타디움(Master Chef Wood Chop Stadium)을 방문했다. 오후 3시부터 시작하는데 한낮의 태양이 내리 쬐는데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우드 초핑이 재미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취재팀은 이번 이스터 쇼를 취재하기 적어도 이틀 이상 현장을 방문했다. 4월 2일과 4월 8일은 취재하기 위해 기자 일행이 함께 방문했다. 그리고 나머지 날들은 개인의 형편에 따라 각자 편한 시간에 맞추어 방문했다. 다섯 차례나 방문한 기자도 있고 필자는 세 차례 방문했다. 이스터 쇼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할 때마다 우드 초핑대회는 반드시 관람했다. 기자 일행이 방문한 날(4월 8일)은 다행스럽게도 “나무 밟고 올라가 벌채하기 325mm세계 챔피온십 결승전” (325mm World Championship Tree Felling Contest Final)이 열린 날이었다. 스타디움이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만약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해외에서 참가하는 참가자들로 인해 더 많은 열기로 경기장이 뜨거웠을 것이다. 이 경기는 높은 나무의 윗부분을 자르기 위해 나무에 홈을 만들어 판대기를 꽂고 그 판대기를 밟고 올라가 벌채하는 경기이다. 이렇게 나무를 자르는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글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높은 나무의 윗부분을 벌채하기 위해 나무의 낮은 곳에 도끼로 홈을 파고 그 파진 홈에 나무 판대기를 꽂고 그 판대기를 밟고 올라가 다음 높은 곳에 홈을 내고 그 파진 홈에 다시 판대기를 꽂고 그 판대기를 밟고 계속 올라가며 높은 곳의 나무를 벌채하는 경기이다. 아마도 실제 이렇게 벌채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경기가 생기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날 경기는 타스마니아에서 온 날씬한 남성이 우승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남성은 참가한 다른 남성들에 비해 건장해 보이지도 않았고 근육질도 아니었다. 도끼질은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이날 기자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안전교육을 받은 후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근접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드 초핑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역사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볼거리 탈 거리 세상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스터 쇼의 첫 번째 목적은 농업을 장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스터 쇼의 다른 측면인 각종 경쟁대회, 엔터테인먼트 및 상거래 등을 포함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형태로 발전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농촌 산업 제품의 전시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스터 쇼 기간 동안 호주 전 지역에서 생산되는 곡물, 콩류, 신선한 과일, 야채, 기름, 양모, 계란, 와인, 잼 등이 지역별로 화려하게 꾸며진 각종 전시관에서 전시된다. 여기에 전시된 생산품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상을 받고 올라온 특정지역의 농산물들이다. 이 전시품들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스터 쇼 기간 동안 다양한 가축들을 심사한다. 여기에는 19세기부터 호주 경제의 원동력이었던 양모를 생산하는 메리노양을 포함하여 각종 젖소들도 출전한다. 이외에도 말, 양, 염소, 돼지, 알파카 심지어 병아리까지 전시장에서 전시된다. 여기에 전시된 축산물들 역시 각 지역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우승을 한 동물들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개를 좋아하는 호주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관람 중의 하나는 베스트 개를 뽑는 시드니 로얄 도그쇼(Sydney Royal Dog Show)이다. 이스터 쇼 기간 동안 수천 마리의 개가 출전하여 경쟁한다. 심사위원들은 개의 생김새(골격과 구조), 그리고 얼마나 주인의 말을 잘 듣고 영민한지 등을 따져 최고의 개를 선별한다. 이스터 쇼에서 무엇보다도 빠질 수 없는 것은 이스터 쇼 쇼백(showbag)이다. 쇼백 파빌리언 (Showbag Pavilion) 방문 없이는 이스터 쇼에 왔다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쇼백 파빌리언에서는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주는 3백여 가지 이상의 쇼백이 판매되고 있다. 캔디, 장난감, 기념품 등 많은 재미있는 상품들뿐만 아니라 거기서는 아쿠브라 모자 (Akubra hats), 울 어그 부츠(woolen Ugg boots), 드라이자 본(Driza-Bone)우비 등, 호주만의 특산품과 다양한 호주 아이콘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1백 개가 넘는 수많은 놀이기구와 게임숍이 운영된다. 시드니 최대 놀이공원인 루나파크(Luna park)보다도 놀이기구가 더 많을 정도이다. 이스터 쇼는 가족이 함께 와서 즐기고 관람하는 가족프로그램이다. 이스터 쇼를 찾는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놀이기구가 쇼 기간 동안 일부 놀이기구는 저녁 늦게까지도 운영된다. 하루에 이스터 쇼를 다 관람하고 경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멤버십 카드를 신청해서 이스터 쇼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한다. 멤버들을 위한 다양한 혜택과 편의가 제공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멤버십카드를 신청하는 것이 이스터 쇼를 관람하기에는 더 효과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스터 쇼 행사 기간 동안 풍부하고 다양한 먹거리들도 거리마다 즐비하다. 가격이 약간 비싼 것을 제외하고는 시중에서 맛볼 수 없는 특이한 스낵과 음식들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후대에 갈수록 상업화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들이지만 수입의 일부는 NSW농업과 농민들을 위해 쓰여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곳에서의 소비가 보람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2021년 이스터 쇼를 종합하며 NSW로열 농업협회는 올해 이스터 쇼 참가자가 80만명에 이르렀다고 보도헸다. 물론 여기에는 티켓을 사서 입장한 관람객뿐만 아니라 농업, 축산분야 전시 참가자 및 직원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까지 포함한 숫자이다.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하루 입장객을 6만 명으로 제한했지만 주말에는 만 명씩 증가하여 7만 명까지 입장을 허락했다. 2019년 굿 프라이데이에는 무려 12만 9천 명이나 방문한 것을 비교한다면 올해는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올해 이스터 쇼는 코로나19로 인해 주말보다는 주중인 평일에 방문하기를 권면했고, 이로 인해 이스터 쇼가 시드니 올림픽공원에서 개최된 이래, 평일에 방문했던 인원이 가장 많은 해의 기록을 경신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의 큰 행사들은 다 중지되었다. 그래서 호주에서 열린 이스터 쇼 행사는 2021년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이벤트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다행하게도 이번 이스터 쇼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 행사기간 동안 확진자가 발생했다면 많은 피해와 어려움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는 올해로 199년째이다. 내년에는 이스터 쇼가 200주년 되는 해이다. 한 행사를 세기를 지나 199년을 지속해 왔다는 것은 호주인들의 끈기와 그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2022년 이스터 쇼는 4월 8일부터 19일까지 개장될 것이라고 이미 일정이 확정되었다. 호주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라면 기념비적인 200주년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에 참가해 보기를 권면한다. 2022년 시드니 로열 이스터 쇼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권순형|본지 발행인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인

  26/04/2021

6.25전쟁의 의미와 한호 우정을 되새기다 - 시드니문화원, ‘가평 전투 70주년 기념전’ 개최 -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주시드니한국문화원(원장 김지희, 이하 ‘문화원’)은 문화원 개원 10주년 및 가평 전투 70주년을 맞아 6.25전쟁에서 싸웠던 호주 군인들의 희생을 기리는 ‘가평 전투 70주년 기념전’(1951, the critical year of the Korean War)을 문화원에서 전시하고 있다. 주시드니총영사관(총영사 홍상우, 이하 ‘총영사관’)과 문화원이 공동 주관하고 시드니 안작메모리얼(Anzac Memorial) 협력으로 개최되는 ‘가평 전투 70주년 기념전’은 1951년 6.25전쟁 당시 호주군이 참전했던 주요 전투인 가평 전투와 마량산 전투를 중심으로 한 호주군의 활약상을 소개하고 있다. 문화원은 기념전 개막식에 앞서 지난 4월 21일(수) 3시에 홍상우 총영사를 비롯한 한국전에 참가했던 호주왕립공군(RAAF) 출신 레이 시버(Ray Seaver), 왕립호주연대 3대대 소속이었던 조니 비네함(Johny Bineham), 해군제독 이안 크로포드(Ian Crawford) 그리고 안작메모리얼 박물관의 큐레이터 브래들리 마네라(Bradley Manera) 등 관계자들을 초청해 ‘가평 전투 70주년 기념전’ 개막 행사를 가졌다. 1951년 4월 23일에 시작된 가평전투는 호주군이 포함된 영국 연방군이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가평에서 사흘 동안 격렬히 맞붙은 전투이다. 특히 가평전투는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서울 탈환을 막은 호주군이 수행한 전투 중 가장 위대한 전투로 잘 알려져 있다. 10월 첫째 주에 벌어진 마량산 전투는 유엔군 사령부의 대규모 방어전으로 호주군이 임진강까지 이어지는 마량산 일대를 수호하는 임무를 부여받아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의 연속되는 반격을 막아낸 전투이며, 한국전쟁 중 호주 육군이 보여준 뛰어난 활약으로 기억되고 있다. 개막식에서 홍상우 총영사는 "작년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기념한데 이어 올해 가평, 마량산 전투 70주년 기념 전시를 통해 호주군의 희생을 기리게 되어 뜻깊다"라며 “호주군의 숭고한 희생은 한국과 호주의 현세대와 다음 세대가 잊어서는 안 될 공유의 역사이고 특히, 한·호 수교 60주년을 맞은 해에 열리게 된 이번 전시는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아닌 한국과 호주가 함께 기억해야 할 전쟁으로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브래들리 마네라 큐레이터는 “오랫동안 호주군의 6.25전쟁 참전에 대한 인식은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의 대비에 비해 낮았다”라며 “이번 전시는 6.25전쟁에서의 호주군의 활약과 6.25전쟁을 통해 형성된 호주와 한국의 우애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6.25전쟁에서 싸웠던 호주군 1만 7천 명 중 3백40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중 일부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호주의 현충일인 4월 25일 안작데이(Anzac Day)에 앞서 개막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호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6.25전쟁 중 맺어진 양국의 우정을 재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총영사관에서는 가평전투 70주년 기념 특별 영상을 제작했다. 전시명과 동 제목의 영상에는 호주군의 6.25전쟁 참전이 양국 우호관계 형성에 미친 영향, 가평전투 승리가 갖는 의미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호주군 참전용사의 희생에 대한 홍상우 총영사의 감사 인사 및 제프 리(Geoff Lee) NSW주 다문화 및 보훈장관, 김성기 가평군수, 호주한국전참전단체총연합회 회장 이안 크로포드(Ian Crawford) 제독의 가평 전투 70주년 기념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영상은 총영사관 홈페이지(overseas.mofa.go.kr/au-sydney-ko/index.do) 및 유튜브(https://youtu.be/0eZrHfwVqtI)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원은 지난 4월 21일 오후 공식 개막식을 갖고 7월 2일까지 전시(무료 관람)를 진행한다.〠 ·기간: 4월 23일~7월 2일(주중 오전 10시~오후 6시) ·장소: 주시드니한국문화원 (255 Elizabeth St. Sydney)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권순형|본지 발행인

  26/04/2021

크리스찬리뷰사 편집고문 홍관표 목사 90세 생신 축하 오찬 모임 가져 크리스찬리뷰(발행인 권순형)사는 편집고문 홍관표 목사의 90세 생신을 축하하는 오찬 모임을 지난 4월 15일 스트라스필드에 있는 중식당(Golden Coronet Restaurant)에서 조촐하게 가졌다. 권순형 발행인의 인사로 시작된 이날 모임에는 편집고문 김종규 목사, 어윤각, 목사, 편집자문단장 황기덕 목사, 편집인 김명동 목사, 편집국장 주경식 목사, 영문 편집위원 김환기 사관, 디자인실장 정성택 집사를 비롯한 편집진과 선교단체 대표로 하태식 목사(시드니 318 예수전도단 대표)와 김오준 집사(AIM이사장) 등 11명이 참석했다. 홍관표 목사는 크리스찬리뷰 창간부터 현재까지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현재도 매월 정기적으로 리뷰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1931년 생으로 양띠인 홍 목사는, 양의 온순한 성품과 함께 호랑이와 같은 카리스마도 겸비하고 있다. 1981년 4월 19일 '시드니중앙장로교회'를 개척하여, 그곳에서 21년간 목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2001년 12월 15일 명예롭게 은퇴함으로써 시드니 최초의 '한인 원로목사'가 되었다. 은퇴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존재 자체가 시드니 교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는 구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운전을 한다. 식사 도중 화제는 자연스럽게 홍 목사의 과거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의 고향은 북한이다. 월남할 당시에 아슬아슬했던 이야기와 육이오의 급박했던 순간들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일과 같이 생생하게 기억하며 들려주었다. 홍 목사는 ‘날카로운 지성’과 ‘부드러운 감성’ 그리고 ‘깊은 영성으로 무장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호주 시드니 교계에서 존경받고 있는 목회자이다.

  25/0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