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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의 식물들(종려가지, 시내 버들, 과실(에트로그))유대인들은 신년이 시작되고 대속죄일이 지나면 곧장 초막절을 맞이한다. 새해가 되자마자 세 가지(로쉬 하샤나, 대속죄일, 초막절) 절기가 연이어 진행되는 셈이다. 우리가 이번 주 추석을 보내 듯 유대인들은 지금 초막절을 지낸다. 초막절(장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더불어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하나이다. 초막절은 또한 수장절이라고도 불리는데 말 뜻 대로,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살면서도 하나님이 인도한 것을 기념하고, 풍족하게 누리고 창고에 수확물을 쌓아두는 것을 감사하고 즐기는 축제의 절기이다. 유대인의 초막절은 광야의 초막을 기억하며 또한 풍요를 기념하는 역설이 있다. 부를 누리고 또 빈곤을 기억하는 것이다.초막절, 수장절 기념 카드(한 해의 추수를 저장하는 절기) 1.유대인의 부의 태도초막절(수장절)은 유대인들의 부와 경제적 부요를 상징하는 첫번 째 절기라고 볼 수 있다. 광야의 유대인들과 지내다 보면 그들이 그다지 자랑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모임에 가면 허름한 옷차림에 드러나지 않는 인물들이 나중에 그가 유명한 대학의 저명한 학자이거나, 사회 속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적잖이 놀라는 경우가 있다. 물론 성경 여러 곳에서 겸손을 강조하고 있지만, 탈무드는 유대인들이 돈 버는 것을 격려하면서도, 그들의 경제 개념 안에 이웃의 상대적인 형편을 고려해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록다운으로 모두가 어려운 때, 내가 혹, 장에 나가 장사를 해서 돈을 두둑히 벌게 됐다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더라도,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고 탈무드는 의외의 조언을 한다.그래야 듣는 사람도, 돈 벌지 못한 자신도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해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만약 내가 시장에서 싹쓸이를 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말한다면, 틀림 없이 말하는 자기 자신도, 듣는 이웃도 편치 않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고 이는 나쁜 일이 시작되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숄름 알라이켐, 지혜의 소리, P35). 인간이 가진 질투와 시기심은 때도 없이 발동되는 것을 잊지 않고 불필요한 자랑으로 이웃과의 관계를 해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야외에 지은 초막 (Sukkah-수카)2. 인간의 본성사람의 심리에 대해, 사울 바이스라는 랍비는 당신이 순수한 의도로 다른 사람의 선행이나 장점을 말했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은 그 사람의 악행과 단점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탈무드는 사람이 없을 때 험담을 하는 것과 또 칭찬을 하는 것, 두가지 모두를 조심 시키고 있다.인간은 본성적으로 나쁜 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 시작과 달리 끝에는 부정적인 대화로 개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한다(바바 바스라,164b). 그래서, 진실을 말해서 질투나 반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 보다, 말을 하지 않거나,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하는 것이 더욱 지혜로운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이디쉬 격언은 “원수가 내 안의 좋은 면을 보는 것이, 내가 그 사람 속의 악함을 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 라고 말한다.초막절에 추수하는 여인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튼 프리드만은 이스라엘 베긴 수상의 경제 자문이었는데, 그가 국회에서 연설을 할 기회가 있었다.그가 연설을 끝내자 숄모 로린츠라는 의원이 그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탈무드에는 힐렐 학파에서 ‘당신에게 싫은 것이 있으면 이웃에게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정리된 한 마디 교훈이 있는데, 경제에 관해서는 그렇게 한 마디로 정리된 말이 없습니까?”라고 의도된 심술궂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가 “네, 경제에도 한마디로 정리된 구절이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결코 공짜 점심은 존재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라고 그가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은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고, 국민을 위해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감수 해야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못된 심보에 대해 보기 좋게 반박한 사례로 회자되는 말이다.유대인들의 경제 관념에는 사람의 시기심에 대해 늘 조심해야한다는 것과 또 한편, 상대를 배려해야한다는 관념을 탈무드가 상기시키고 있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3. 탈무드의 지혜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만약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하는지 안다면 세상엔 단 몇명의 친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사람이, 앞에서는 속 마음을 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상대방으로부터 직접 진심이 담긴 악평을 듣는 것은 분명 관계를 해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단정하고 있다.그래서 탈무드는, 험담을 들은 사람이 그것을 확인하고자 할 때 “험담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정직하게 말해서 상처를 주거나 반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보다 더욱 지혜로운 것이라고 가르친다.유대인 가정과 절기관계를 해치는 것보다는 하얀 거짓말을 허락하는 거짓의 융통성이 오히려 지혜로운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평화를 유지하는 비법인 셈이다. 랍비 이스라엘 살란터가 “어떤 성실한 사람이 한 밤중에, 곧 다가올 초막절을 준비하느라고 밤에 먼저 불쑥 일어나는 것은 칭찬할만한 입니다. 그렇지만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편히 자고 있는 다른 가족들을 깨우게 된다면, 그가 단순히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실제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그가 지적한 것 처럼 밤에 일어나 다른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필요없이 깨워서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더욱 선한 일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과 동일한 맥락의 이치이다.(도브 카츠 인용, 투낫 하-무사,Vol.1, 355p).현대의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회당에 모여 예배하고 수영장이나 옥상에 작은 초막을 만드는데 종려나무와 가지들과 여러 과일들을 얼기설기 엮어 매달아 둔다. 가지들로 엮은 허술해 보이는 초막에 어린 자녀들은 가정이나 회당에서 그림을 그려서 초막내에 장식을 한다. 이들은 광야에서 빈곤한 초막의 고통의 세월을 지내면서도 장막위에 비치는 별빛과 달빛처럼,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기념한다. 풍요를 경험할 지라도 그것이 내 능력과 자랑이 아니라는 근원에 대한 기억을 새로이 하는 절기이다. 돈을 벌더라도 자랑하기 보다, 이웃을 배려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는 것을 실천하려는 그들의 경제 개념을 생각하게 한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23/09/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유대인들은 새해가 시작되고 9일 동안의 회개 기간이 지나면, 10일 째가 되는 날 25 시간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는 완전 금식에 들어간다. 기도로 새해를 맞이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왜 하나님은 금식까지 해가며 새해를 맞이하게 하셨을까?토라 며칠 전 친구 랍비의 회당에서 줌으로 연결한 미팅에서, 회중들에게 금식을 위해 미리 물을 많이 마셔 두라고 권고하면서도, 어렵고 힘든 내색을 하기보다는 다분히 특별한 예식에 기꺼이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날은 평소 회당에 잘 오지 않는 세속적 유대인들을 포함해, 전 세계의 유대인 커뮤니티가 일년을 통틀어 회당에 가장 많이 모이는 날이라고 한다. 온 국민이 금식하며 새해를 시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는 것이 한편 신기하기도 하다.  1. 변하지 않는 인간흔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듣고, 말한다. 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 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더 크다. 그래서, ‘사람은 잘 변하지 않으니 쉽게 믿거나 방심하면 안된다는 말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죄성과 욕망으로 점철된 타락으로부터 벗어나고자했던 종교적 갈망은 중세에, 여러 금욕주의적인 참회의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나중에 유대교의 하시디즘에서는 . 하나님이 진정 원하는 것은 기쁨의 예배와 삶인 것에 반해, 이러한 것들이 다분히 우울증과 자기비하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했다. 신이 인간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과 달리 인간은 자학하면서 변화를 추구 했지만 그것이 빚어낸 결과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이방의 축복의 계명그런 면에서 랍비 제러 레비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몸을 상하게 하는 외형적인 가해가 핵심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 더럽고 악한 것이면, 이 곳도 쓸고 저 곳을 쓸어도 더러운 곳이 남게 마련이므로, 단순하게 악한 것으로부터 떠나고, 그저 선을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악을 상대해서 이기고자 애쓰는 것은 소용없고, 그곳에 젖어 있는 생각과 환경을  피하고 완전히 동 떨어진 다른 편에 있는, 선한 생각과 환경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 하는 것이다. 신이 진정 원하는 올바른 절제는, 억압과 헐벗음으로부터 죄인을 자유케하려는 정의로 연결돼야 한다고 바로 잡는 것이다.      2. 금식의 이유대속죄일이 되기 전 날에, 죄수에게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마지막 식사를 하게 하 듯, 유대인들은 대속죄일 전날인 에레브 욤기프르(Erev Yom Kippur)에, 죽음을 맞이 한다는 의미의 마지막 식사를 갖는다. 그리고 이 때, 강렬하게 다가온 절박한 죽음을 앞에,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하듯, 마지막으로 죄의 고백의 기도를 올리게 되는데, 이는 마지막 음식을 먹다가 미처 속죄일을 맞이 하지 못해 용서를 받지 못하고 죽을 수 있는 것을 피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죄의 고백과 신의 용서가 절박하기 때문이다.대속죄일의 회당그리고, 그 때부터 모든 음식과 물을 차단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방어와 핑계를 죽음으로 내 던지고 오직 하나님의 법정에 서서, 신의 용서를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결코 버리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속죄는 개인의 노력이나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의 은혜에 의한 것을 의미하고, 또한 금식은 결국, 하나님의 큰 은혜에 대한 자기 권리 포기의 한 표현인 셈이다. 그러므로 금식은 금욕적이거나 율법적인 강제성이 담긴 힘든 노역이기 보다, 속죄를 선물로 받는 왕 앞에 나가기 위한 자발적인 예복 점검과 같은 것이다. 신이 나서 선뜻 참여할 득템의 약속인 셈이다.회개하지 않은 아간의 최후3. 언약적 관계 속으로미쉬나 토라의 저자이며 12세기 최고의 현자라고 불리는 마이모니데스는, 참회는 사람을 변화케 한다고 가르쳤다. 후회를 통해 과거로부터, 현실에서 죄의 거부를, 그리고 미래를 향하는 참회의 과정을 통하면 죄와 흠이 많은 사람도 변할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대 죄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로 참여하게 하는 날이라고 설명한다. 대속죄일은 은혜와 속죄의 성례적인 능력이 백성들에게 흘러나오게 하고, 죄로부터 용서의 신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다시금 신의 경지에 이르는 파트너로 완성되는 날이라고 격려한다.큰 물고기가 뱉어 낸 요나유대인들은 이 날에 요나서를 읽는다. 원수의 나라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을 싫어한 선지자가 도망다니다 결국 그 백성에게 회개를 외치고 축복이 임하는 것을 그린 책이다. 유대인들은 이 책을 읽으며 자신들이 이방인들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하지 않은 죄를 회개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언약이 없는 이방인인데도, 그들을 회개케 하시고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임하기를 원하는 분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는 꼴통 짓을 하며 도망다니고 대들고 불평했지만, 결국 사람에게 원수로 보여도, 하나님은 손 때가 뭍은 니느웨 백성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죄와 상관없이 회개만 한다면 축복이 임하게 하려는 신의 분명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때, 자신들의 용서를 감사하며, 이웃을 위한 자선을 결단한다. 이웃과 이방인들을 위해 자발적인 감사로 표출되는 것이다.  로쉬하샤나와 욤키프르는 새해를 시작하는 유대인의 세계관을 토라로 부터 발견하는 출발점이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영적 회복의 시간이며, 불편한 이웃과 화해하는 시간이며, 이웃을 사랑하고자 다짐하는 시간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제약과 불확실의 시기에도, 하나님의 토라는 여전히 풍성한 열매와 밝은 미래에 대한 축복의 새 출발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16/09/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왜 회개가 새해에 필요할까?지난 주에 소개한 바와 같이 이번 주 화요일부터 신년이 시작된 유대인 사회는 조용한 기도와 회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대교는 신년 벽두마다 이 절기를 통해 수 천년 동안 회개를 실천하고 있다. 왜 하나님은 유대인의 모든 절기를 ‘나의 절기’라고 부르면서 성경의 계명으로까지 입법화를 통해 매해 회개를 강조하시는 것일까? 우리도 ‘회개’를 수도 없이 들어와서, 죄로 느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으레 죄인 모드로 정체성 변경을 스위치하고, 채 설득되지 않은 죄라도 입으로 고백하는 습관적 회개에 익숙해 졌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회개는 분명 변화된 행동을 수반해야 할 텐데, 여전히 세월을 거듭해 속 시원하지 않은 미진한 과제로 늘 남아있다.대속죄일과 회개1. 새 해에 회개가 중요한 이유탈무드는 신년과 대 속죄일은 열흘의 간격 사이에 서로 다른 두 가지 방향성을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탈무드는 흔히 대속죄일을, 보편적인 사람의 선과 악이 혼재된 삶이 심판대에 오르는 날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신년이 시작되고 대속죄일까지의 열흘 동안이 그간 1년의 죄의 심판을 회개로 피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런 면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법정에 오르기 전 죄를 청산 할 수 있는 마지막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어쩌면 이 기회에, 낱낱이 죄가 기억나서 모든 죄가 탕감받는다면 더 할 수 없는 사면의 특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해 공식적인 특사를 법으로 제정해 둔 셈이다. 그리고 열흘 째 되는 대속죄일은, 모든 죄가 사면되고, 믿고 순종한 덕에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확인받는 날이기도 하다. 참으로 죄인에게는 온 가족이 반기며 투옥되지 않은 것을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니, 참으로 달력에 기록해  둘 만한 특별한 날이 아닐 수 없다.랍비 어빙 그린버그는 “ ‘대 속죄일’은 24 시간의 죽음을 경험하는 날이며, 또한 새로운 생명의 무드가 삶의 표면을 감싸는 날이다”라고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를 경험하는 날이다. 법정에 세워지며 또한 용서를 받는 날이기도 하다. 이 상반되는 방향성은 죽음으로 치닫던 죄로 범벅이 된 인생에 새로운 갱생의 출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 신년 절기에 강조되는 세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회개와 기도와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다소 게으름을 탈피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이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을 겁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극을 통해 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속죄 제물로 대속죄일에 드려지는 아사셀 염소2. 죽음과 생명의 관계탈무드는 이 날이 유약함과 악과 선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죄책감의 여정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 속죄일은 단지 회개만 무턱대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새 출발을 촉구하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검증된 인생으로서의 전진을 위한 것이지 음성적 자기 학대가 아니다. 탈무드는 육체적 죽음 만이 인간에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주기적인 만성화, 반응의 상실, 습관화로 무감각해진 개념과 관심은 마치 죽음과 같다고 간주한다. 사람은 금지된 일을 한 두번 할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세번째가 넘으면 습관화되어 자기 합리화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상의 습관화와 무반응적 감각 상실이 성장의 가장 큰 적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탈무드는 죄의 권세는, 사람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이 변화하고 성장하고 새로워질 수 있는 능력을 자포자기하게 한다. 이에 반해, 회개는 처절한 절망에 대해서도, 인간에게 새로운 소망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도전적인 모델이며 담보된 약속이라고 평가한다. 새로운 탄생은 다소 집중과 노력과 도움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조언한다. 소크라테스는 ‘검증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회개를 거치지 않은 궁극적 불순물은, 마지막 과정인 ‘죽음’이라고 단정하고 있다.대속죄일의 유대인들3. 회개의 3R고대에는 대속죄일에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풀어놓거나 절벽에서 떨어 뜨려 전가된 죄가 사해지는 의례를 행하고, 사람들의 죄를 안고 재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죄를 사함받곤 했었다. 하지만 제2성전이 파괴되고 난 후 이러한 의례는 없어지게 되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을 거쳐 랍비와 탈무드의 현자들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는 시간과 반복적인 과정(teshuvah)이 요구된다고 결론적으로 가르치게 되었다.12세기의 현자 마이모니데스는 회개에는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완성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탈무드의 랍비들은 이를 3R 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1. Regret-반성2. Reject-거부3. Resolution-해결 방안으로 정리 될 수 있다. 첫번 째로, 인간에게는 자정 능력이 있고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심각하게 반성하는 과정을 거치면, 두번 째 단계에는 죄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탈무드가 말하는 ‘행동은 말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낸다’는 단계로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습관화된 죄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으므로, 그것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강한 결단과 다시금 죄를 짓지 않는 반복된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마이모니데스는 ‘회개의 궁극적인 목적은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운 생명체가 되는 것’이라고 다시금 상기시킨다.군대에서 제대 날을 기다리는 것도 애가 타는 일인데, 감옥에서 출소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사면이 이루어진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신문에는 특사를 받고 나오는 사람마다, 죄를 돌이키고, 사회를 위해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유대인의 새해맞이는 결국 진정한 기쁨과 의로운 인생을 새롭게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굳은 의지를 깨닫는 시간이다.회개를 통해 멋진 하나님의 고품격 사랑이 경험되고, 새 인생의 약속을 담보받는 사면의 절기인 셈이다. 샬롬!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09/09/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9월이 시작됐다. 유대력에 따라 유대인들은 9월에 새해를 맞이한다. 올해는 유대력으로 5782년이고 9월7일부터 신년이 시작된다. 흔히 나팔절이라고 불리는 ‘로쉬하샤나’는 나팔을 불며 승리를 기원하며 새 출발의 의미를 담아 새해를 선포한다. 우리가 흔히 새해에 떡국을 먹는다면 이들은 사과에 꿀을 찍어 먹거나 석류 등과 같은 달면서도 풍성함을 의미하는 과일을 먹는다.로쉬하샤나와 꿀과 석류, 사과그리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와 같은 의미로 ‘샤나 토바’(Shanah Tova) –‘좋은 새해 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우리가 새해가 되면 고향의 가족들을 찾아가고, 풍성한 음식을 차려 맘껏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갖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것과 달리, 이들의 신년행사는 열흘 후의 대속죄일이 되기까지 가족 전체가 깊은 회개와 기도, 그리고 타인에 대한 자선과 선행을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다.나팔절이라 불리는 유대인의 신년1. 새해 맞이제사도 지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윷놀이도 하고 화투도 치고, 술도 마시며 다소 명절 휴가의 여유를 탐닉하는 시간을 보낸다면, 이들은 새해의 절기 이름을 아예 대 속죄일이라고 정해서,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이 주로 회개와 기도, 금식 하는 정숙과 근신의 시간을 의무적으로 갖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타 종교에서도 기도와 회개를 강조하지만, 탈무드는 오랜기간 민족적 절기로 이들의 관습과 문화 안에 자리잡은 전통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하겠다. 사실, 기도와 회개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좀처럼 잘 실천 되지 않는 어렵고 무거운 과제 임에 틀림없다.아브라함의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기도2. 왜 세 번을 기도할까?탈무드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아침(Shacharit), 점심(Mincha), 저녁(Maariv)에 세번 기도할 것을 가르쳐오고 있다. 학자들은 아침과 오후 기도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일 아침과 오후에 희생제물을 드려왔고 AD70년 후, 성전이 파괴되면서 흩어진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이것을 기념하며 상기하는 의미로 시작되었다고 그들의 전통 예배가 속죄의 의미를 내제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반면에 저녁 기도는 희생 제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이에 대해서, 2세기 경 탈무드는, 야브네의 산헤드린의 수장인 랍비 가말리엘2세와 그의 친구인 랍비 여호수아가 시편 55:18, 다니엘6:11 의 기도를 근거로 논쟁을 통해 세번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결정을 남겨놓은 기록에 그 기원을 찾는다. 랍비 여호수아는 저녁 기도는 특별히 저녁 희생 예배와 관계가 없으므로 선택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가말리엘의 주장이 관철되었고, 그 이후 하루 세번 기도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3.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기도한편, 탈무드의 현자들은 성경에 아브라함이 아침 기도, 이삭이 낮의 기도를, 야곱이 저녁의 기도를 소개한 원조들이라고 설명한다.“아브라함이 조카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가 불타는 것을 보며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렀다(창세기19:27)”는 성경에서 아침 기도의 근원을 찾았고, 그의 기도는 아브라함이 스스로 하나님께 자원하여 요청하는 자발적 기도 였음을 상기시킨다. 모든 인생의 미래를 확증할 수 없는 영적 여정에서,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찾고 발견하려는 그의 꾸준한 요청 기도는 결국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드디어 신을 찾고 발견한 믿음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설명한다.오후 기도는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창24:63)” 는 장면에서 이삭이 늘 그 시간 즈음에 기도하는 일상 가운데,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보낸 시종이 하란에 가서 리브가를 신부로 데려 오는 순간을 맞이하게 됐음을 그 기원으로 삼는다. 이삭의 기도를 ‘시하-Siha’라고 부르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대화’ 또는 ‘소통’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도에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두 당사자가 있어, 사람이 말할 때 신이 듣고 응답하고, 신이 말할 때 사람이 듣고 반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삭은 자신의 영적 경험을 통해 사람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있는 것을 나타내는 인물이라고 강조한다.야곱의 환상-사다리와 천사  한편, 야곱의 기도는 이들의 기도와 상당히 다르다. 그는 스스로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수 만가지 생각으로 머릿 속이 몹시 분주한 사람이었다. 형으로부터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을 쳐야 했고, 외삼촌 라반을 향해 가는 미래를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이었다. 그런 복잡한 마음의 와중에 땅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사다리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며 하나님의 환상이 임했다. 그는 이러한 일을 결코 준비한 적이 없고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야곱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이 일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관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모든 것을 기획하신 것이다. 랍비 죠나단 삭스는, 그래서 야곱의 기도는 의무적으로 정해 놓은 기도가 아니지만 결코, 하루에 빼놓을 수 없는 기도라고 강조한다. 언제,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일상에 찾아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아브라함이 아침부터 하나님을 향해 찾아나서고, 이삭이 매일 정해놓은 오후의 기도로 소통의 여정을 살았다면, 야곱은 전혀 계획과 일정과 기대가 없는 여정이었지만 밤에 환상과 음성과 부르심을 확인하게 하는 변환의 순간을 경험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이 여기 계셨지만 내가 결코 그것을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세상은 그대로 있었지만 야곱이 변하게 되었다.밀레의 만종유대인들은 ‘로쉬하샤나-Roshi Hashanah’를 맞이하며, 온 가족이 하루에 세번하는 기도와 더불어 더욱 회개와 이웃을 축복하는 기도로 새해를 시작한다. 기도에는 신비한 용서와 임재의 기쁨으로, 다시금 새로운 여정을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따스한 의도가 스며있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02/09/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BC 1,000 년경의 인물인데 그로 부터 3,000 여년이 지난 21세기에도, 명실공히 ‘지혜’의 대명사로 불리는데 이견이 없다. 이를 뒷받침하듯 성경은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열왕기 상3:12)”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을 받은 것을 기록하고 있고 그 예언은 역사 가운데 실제가 되었다. 그는 인생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과 부귀 영화를 경험한 왕이다. 여느 인생이 감히 명함을 내밀어 볼 수 없는 왕들 중에서도 최고의 권력과 존경과 지혜와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열왕기상 3:13).”하고 약속의 실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솔로몬에게 직접 알려주고 있다.  솔로몬의 지혜와 판결1. 인생의 본분, 하나님을 경외최고의 왕, 최고의 권력자, 부귀 영화 모든 것을 체험 했을 뿐 아니라, 세상의 학문과 이치를 통달한 현자 중의 현자인 솔로몬이 자신의 회고록과 같은 ‘전도서’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12:3)”이 말은 어느 시대의 출중한 추앙받는 현자가 한 말과도 그 격이 다른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으로부터 직접 권력과 부귀영화와 지혜와 통치에 대한  확연한 약속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유무와 별개로 성경과 역사의 기록 안에서도 그 명성에 걸맞는 실제의 인물로 존재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3대째 왕으로 약40년 동안(BCE 971-931) 왕국을 통치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지혜의 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솔로몬이 그의 말년에 온 세상을 향해 세상의 학문과 부귀 영화 모든 것이 헛되고 제일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모든 인간의 본분이라고 강조한 것이니 예사롭지 않은 의미가 담긴 것이 분명하다.지혜의 왕 솔로몬과 시바의 여인탈무드는 “신은 육체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없으므로 실제 성지를 찾아가서도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더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직접 계시한 기록인 토라를 읽고, 믿고 그대로 따르면, 신을 만날 수 있게 되고 토라 안에 하나님 경외에 대한 해답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토라는 ‘경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나그네를 선대하는 유대인2. 약자를 돌아보는 것이 하나님 경외토라는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위기19:14)”라고 기록하고 있다. 귀먹고 못보는 사람들은 그 시대의 약자들이고, 그 시대에는 장애가 죄로 기인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 죄인으로 취급받는  계층이었다.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는 육체적 불편과 정서적 괴로움이 있는데다 죄인으로까지 취급을 받으니, 사회 전체로부터 받는 소외감이 크고, 행복 지수는 엄청 낮은 삶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신은 이들에게 마음을 두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솔로몬의 묵상과 기도또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위기19:32)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서 이자를 받지말고, 하인을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위기25:36,43)고 약자를 돌보아야 할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지금 시대도 그렇지만,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종종 푸대접을 경험한다. 특히 하인은 주인의 학대에 맞설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토라는 하인들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주인들에대해 대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하고 있다.부와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아래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기 보다, 함부로 말하고, 무시하고, 자신의 우월감을 표출하는 대상으로 취급할 수 있는 인간의 악한 성정이 드러날 수 있는, 바로 그 때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선하게 대우하라는 지침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전 봉헌과 솔로몬3. 하나님의 질문탈무드는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큰 세 가지 덕목을 ‘토라 공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아버지의 윤리1:2p24)라고 정의한다. 토라의 핵심 메시지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토록 심각하게 우상숭배를 배격하는 이유가 “우상숭배가 하나님 한 분이 아닌 여러 신을 믿도록 조장하는 것이며, 우주적 도덕성을 부인하고, 진리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탈무드는, 유대인들이 죽은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는 지에 대한 질문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물을 것이라고 한다.예루살렘 성전1. 정직하게 행동했는가?2. 토라를 공부하며 선하게 살려고 했는가?3. 가정을 잘 지켰는가?4.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는가? (랍비, 요셉 틸루쉬킨-유대인의 지혜)위의 덕목들은 내가 성실히 실천하지는 않아도, 대체로 질문의 의미가 납득이 되지만,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의 질문에 대해서는 신통한 대답을 하기 어렵다. 탈무드는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에는, 힘의 불균형의 약자들에 대해 선한 성품과 온유한 인격을 갖춰야 할 가진 자의 배려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세상을 그들과 함께 더 살기 좋은 평화와 화목의 땅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토라와 탈무드“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요즘 주총리의 록다운 지침도 잘 들어야 겠지만, 3000년 동안 ‘지혜의 왕’이라 불리는 솔로몬의 인생 조언은 분명히 기억해 두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26/08/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유대인들에게 신을 경외하는 것의 가장 우선은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탈무드는 “누구든 우상을 거부하면 그는 유대인이다. (바벨론 탈무드,메길라13a:우상에 관하여,p294-297)”라고까지 말한다.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 히브리 산파하나님을 ‘경외(야례)’ 하라는 히브리 단어는 ‘무서워 하다, 두려워 하다’는 뜻으로, 구약 성경에서 330번이나 귀에 닳도록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이다.  흔히, 신을 경외하는 것이 종교적인 의식에 열심히 참여하고, 규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막중한 종교적 짐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에 비해, 토라의 해석은 적잖이 다양하고 우리의 단편적인 생각보다는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욥의 하나님 경외1. 넌센스 경외(?)성경에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특별히 아브라함이 100세에 나은 아들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올라가 번제물로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인륜에 어긋나는 일을 시킨 신과 그의 명령을 경외함으로, 주저 함없이 따른 아브라함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3일 길을 떠나 먼 곳에 가는 동안 여러 번민이 있을 법 한데도 모리아산에 올라, 아들을 결박하고 거침없이 칼로 동물을 도살하듯 죽여 희생제물로 바치려고 했다. 그 때 성경은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을 급히 멈추게 하고 미리 준비한 양을 번제물로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리고 이어 신은 아브라함이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았다고 그의 믿음을 칭찬하고 세상의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다시금 약속받는다.  살던 고향을 떠나 수십 년이 지나고서야 드디어, 아브라함이 경외함의 시험을 합격한 것이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 성경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기적적으로 준 아들이기 때문에, 이 아들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믿었다고 (히브리서11장19절) 아브라함이 도달한 믿음의 수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경외한다는 것에는 신에게 생명을 살리는 부활의 능력이 있음을 믿는 신에 대한 신뢰가 있었음을 일깨우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반인륜적인 명령에도 아들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결단을 감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모리아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과 이삭한편 믿음의 시험을 패스한 아브라함이지만, 사라는 이 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아 127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 했을 것이라고 랍비들은 설명한다. 이때는 이삭이 약 30대의 건장한 청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충분히, 자신을 죽이려는  130세의 아버지를 대항할 수 있는 왕성한 나이 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경외하는 아버지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 드리려고 했음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착한 이삭은 기꺼이 제물이 되려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엄마가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려 아버지와 산에 오른다는 이 일로 충격을 받지 않도록 간절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것은 “이 소식을 사랑하는 엄마가 지붕 위에서 일을 하다가 듣고 떨어지지 않도록.. 부엌에서 일하다가 놀래 칼로 다치지 않도록.. 충격으로 인해 상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결과적으로는 이삭이 다치지 않고 오히려 온 세상이 축복을 약속 받는 계기가 되었지만 상처입은 사라가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는 희생이 따르게 되었다. 랍비들은 후에, 예루살렘이 된 영험한 하나님의 산, 모리아 산에서 천사의 임재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죽음과 생명을 경험한 이삭은 더욱 영적인 인물이 되었고 그의 삶의 확연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결국, 신을 경외함은 부활 신앙의 확인과 축복의 양면을 담보하고 있다.  미국 흑인 시민의 자유 투쟁- 마틴 루터 킹 목사2. 진정한 자유를 위한 경외출애굽기에서 이집트의 바로 왕은 유대인의 숫자가 왕성해 지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하고 서서히 대량학살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십브라와 브아라는 산파들에게 너희들이   히브리여인들을 도와 아이를 낳게할 때에, 남자 아이면 그 아이를 죽이고, 그러나 여자 아이이면 살게 하라(출1:16)고 당부했다. 그렇지만,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리고(출1:17-18), 그들의 추문에 히브리여인들이 건장하여 산파들이 당도도 하기 전에 출산을 하였다고 둘러 대었다. 그리고 그일에 대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그들이 번성하고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더욱 흥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리아산의 천사의 현현이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그 시대의 신과 같은 애굽 왕을 거역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세상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라고 토라는 설명한다. 랍비 죠나단 삭스는 이러한 원리는 1848년 미국의 노예 해방과 1960년대에 흑인 시민의 자유를 위해 애쓴 마틴 루터 킹 사건에서의 근간이 되었고, 시민의 불순종의 원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반항적 선언은 도덕적 한계 이론이 되었다고 정리한다.렘브란트-아브라함의 제사 중세, 절대 왕권에 대한 순종의 요구는 17세기 죤 로크같은 인물이 자유와 사회 계약과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 때까지 거의 모든 종교적 견해는 현존하는 권력의 구조를 정당화 하는데 집중되었다. 그것이 미신적 기능이 되고 나중에 ‘왕의 신적 권력’의 개념이 되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권력에 대해 시민의 자유가 한계에 부딪친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고, 왕에게 도전하는 것은 현실 자체를 부정 하는 것과 같은 역기능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중세의 탁월한 유대교 철학자이며 학자인 랍비, 모세 마이모니데스가 도달한 토라의 결론은  “토라 율법의 목적은 신을 경외함으로, 세상에 자비와 사랑과 평화를 가져 오는 것이다.” (모세 마이모니데스, 미쉬나 토라-안식의 율법,” 2:3) 라고 설명한다.아브라함의 하나님 경외토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종교적 의식과 영적인 것에 치중한 것이기보다, 세상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한 ‘신의 배려’임을 일깨우고 있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19/08/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지난 주에 유대인의 고립은 경제 인식에 대한 전환을 가져오고 유럽과 세계의 상권을 잠식해가는 계기가 되었다는것을 살펴 보았다.어떤 인식, 즉 어떤 세계관을 갖느냐는 삶의 방향과 영향력을 좌우하는, 대양을 항해하는 배의 키와 같다는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는 바와 같이, 질문을 많이 하는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뻔한 질문보다는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라는 것을 배우며 자란다. 이는 질문은 생각을 유발하고, 그 때 답을 다 얻을 수 없다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더 깊이 있는 사고와 주요 명제에 대한 지혜를 얻고 인식의 변화와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궁극적으로, 그들의 질문의 의도에는 인식, 즉 세계관의 변화에 방점이 있는 셈이다. 신의 존재는? 진정한 행복은? 인생은 ? 죽음은 ? 등의 질문은 한 가지로 답하기 어려운 난해한 주제 임에 틀림없고 대답하기 애매한 묘한 질문들은 세대를 거쳐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1. 질문과 세계관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19세기의 문제가 ‘신은 죽었다’라는 것이라면, 20세기는 ‘사람이 죽었다’ 라는 것”이라고 외쳤다. 이 명제 안에는 과연 신은 실존 하는가, 사람은 왜 죽었다고 말하는가라는 질문을 유발하고 있다.‘신의 죽음’이라는 주제와 이에 대한 질문은 19세기 프리드리히 니체가 제기하였고 여러 철학자들과 페오도르 도스토옙스키 같은 철학자가 ‘카라마쵸프의 형제들’이라는 저술 등에서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명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과정을 거쳤다.‘신의 부재’에 대한 논쟁은 산업 혁명과 과학의 발전을 거듭하며 자리잡은 그들의 세계관은 나치의 시대에까지 이르는 극단의 사상이 되었다. 극단적 민족주의자인 히틀러는 ‘유대인의 전제적인 신’을 멸망 시키는 것을 그의 일생의 사명으로 여겼다. 그의 아리안족의 생태적 우수성을 기반으로 유토피아를 꿈꾼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가졌다.그의 인식 속에는 결코 신은 존재 하지 않았고 급기야 신을 대적할 뿐 아니라,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행동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20세기의 최고 지성이라고 불리는 버트란트 러셀은 “나는 세상의 무성한 잔혹함을 어떻게 윤리적 가치에 준해 반박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무신론자인 그는 모범적이고 윤리적인 지성인의 삶을 살았지만 결코, 세상의 방종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해답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그런 면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단순한 질문은 삶의 전반에 총체적 방향성을 결정하는 출발점이 된다.천지 창조 – 미켈란젤로2. 탈무드의 대답    어느 철학자가  랍비 르우벤에게 물었다. “누가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일까요?”라고 묻자 “그 사람은 창조주를 부인하는 사람일 겁니다.” “왜 그렇죠?”라고 반문하자,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 는 도덕률에 대해 “보십시요, 이 사람은 그가 그 것들의 근원(신)을 부인할 때까지는 이 법률의 어떤 것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토세프타 쉐브옷3:6)“라고 대답했다고 한다.이 말은 역설적이지만, 창조주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어떠한 선한 도덕률도 부인하려고 달려들 것이란 말이다. 신의 개입이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부인하고자 하는 무신론자의 반박이 랍비에게 가장 골치 아픈 상대라는 말이다.정의의 여신과 모세의 십계명3. 현대 문명의 세계관서구의 세속적 현대 문명은 ‘지성과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도덕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어느 작가가 마치 ‘꺽인 꽃의 문화’라고 표현한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도덕과 자유는 마치 꺽여진 꽃의 생명이 유효할 때까지만 꽃이 아름답고 향기를 내는 것처럼 뿌리가 없는 한 결코 지속적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이에 대해 “신의 개입이 없는 도덕과 윤리는 아무리 근사해 보여도 결국, 인생의 변덕스런 욕망과 세상의 권력과 호기심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는 사상누각이 될 것이기 때문(윌 허버그, ‘유대교와 현대인’, p91-92)”이라고 유대 철학자는 조언한다. 창조주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인생을 건축하는 든든한 기초가 된다는 말이다. 볼테르 같은 철학자는 “내가 아는 변호사, 재단사, 주차요원, 심지어 나의 아내가 신을 믿는 다면, 적어도 내가 덜 사기 당하고, 덜 갈취 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탄 했다고 한다.탈무드는 “ 만약 신이 죽었다면, 현대에 누가 근친상간이나 수간같은 끔찍한 일에 대해 옳고 그른지 제대로 말해 줄 수 있을까? 아마도 현대 휴머니스트들은 동물들이 그것을 즐기는지, 아닌지, 그들의 권리에 대해 항변할 것이다.(어빙 크리스톨, ‘After world, p161)’라는 질문을 던진다.실제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휴머니즘의 발상은 자칫 진리의 주체를 망각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독일의 내 놓으라는 지성들이 온 세상을 송두리채 파괴하는 전쟁의 망상으로 치닫고, 반 인륜적인 잔인한 살상을 저지른 근대 역사가 바로, ‘신의 부재’로 가득한 세계관이 창출한 결과를 상세히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12/08/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코로나 록다운이 길어지고 작년 첫 록다운 기간보다 다닐 수 있는 거리도 단축됐고 생필품 구입도 가구 당 한 사람으로 제한됐다. 일체의 가족 모임이 금지됐고 벌금이  크게 늘었다.집에만 있다보니 운동도 덜하고 체중이 늘고, 건강은 나빠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팬데믹으로 인한 록다운은 자유를 박탈 당하고 제한된 곳에서 필수적인 것이 아니면 거주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유대인의 게토를 생각나게한다.고리대금업으로 인한 파문의 심판    1. 유대인의 게토게토는 유럽 인구의 1/3이 죽은 중세의 흑사병과도 무관하지 않은 연관성이 있다. 수세기에 걸쳐 반복된 흑사병은 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하고 발병을 할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죽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 질병이 인간이 퍼뜨린 악의적인 질병(페스티스 마누팍타)이라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푸대접에 불만을 품은 유대인들이 가죽 자루 속에 독과 앙심의 혼합체를 만들어 베네치아 주변의 우물과 샘과 물웅덩이에 뿌렸다는 누명을 씌우게 되었다. 이러한 혐의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고문을 못이기고 거짓 자백을 하고, 관계없는 랍비의 교시에 의해 일을 저질렀다거나, 기독교인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억압하며 수 많은 유대인을 죽였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우리도 지배자가 되고 싶어서 였다는 거짓 조서를 꾸미게 됐다. 그리고 그들은 거센 반유대주의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고 후에 게토로 내몰리고 사회와 격리되어 더욱 심한 경계와 생활의 제약을 받게됐다.게토에서의 생활은 유대인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보존할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 되는 순기능이 있었지만 특별 세금을 내고 안전을 보장받는 경제적 부담이 뒤 따르는 것이었다. 이들은 낮에는 게토를 벗어나 일할 수 있지만 해가 지면 주거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많은 수의 유대인이 한 아파트에 몰려 살아야 했고 비좁고 비위생적인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수구나 정화 시설이 파손되어 사람의 분뇨도 일반 쓰레기와 함께 그들의 주거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유대인들은 구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해서 연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 났다. 겨울이 되면 추위와 굶주림으로 동사하거나 매일 고아가 발생하고 조금의 양식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차별과 고립된 삶의 악순환이, 나폴레옹이 이를 폐쇄할 때 까지 약 300여년간 지속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고난이 그들이 생존을 위해 경제적인 기술과 방법에 더 깊이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 무장 봉기가 1943년 1월 18일 일어났다.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 en.wikipedia.org 2. 경제 인식의 변화베네치아의 주재 대사였던 지오반니 안토니오 파키네티는 베네치아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것은 유대인들이 경제적인 부를 창출하는 것은 좋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가진 기독교와 다른 사상을 근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베네치아의 상권을 잠식해 가기 시작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죄악시하는 고리대금업에 깊이 관여하고 그들이 벤치(Banko)에서 탁자를 펴고 상담하며 사업을 하던 것이 발전해 추후 은행(Bank)으로 발전하는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영원한 안전지대 없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 민첩하게 이주해야하는 환경은 이들 공동체가 교권주의를 거부하고 지성에 기반을 둔 사상과 그로 인해 독자적인 회당 공동체 제도를 선택하게 됐다. 회당을 중심으로 부를 축척해야하는 상술과 방법을 체득하고 살아야하는 실존의 사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으로 평가한다.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게토인 유덴가세의 1868년 모습. 위키피디아. 17세기 중반 유대인 변증가인 므낫세 벤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누군가 우리를 박해하면 다른 이들은 우리를 정중하고 친절하게 받아주었다. 한 군주가 우리를 추방하면 이탈리아의 제후들과 덴마크의 왕과 니사의 사보이 왕가의 군주는 우리에게 특권을 부여하며 특별한 대우를 해 주었다”고 유대인들이 가진 경제적 능력이 생존의 중요한 방책이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돈과 관련하여 동족과 이방인들에 대해 이중 잣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현대에도 유대계 은행들이 유대인들에게 대출을 할 때는 유대교의 율법을 따를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이자를 부과 함으로 무상으로 유대인들에게 제공하는 것과 차이를 두고 있다. 16세기 아비뇽의 저명한 랍비 아브라함 파리손은 유대인 경제 지도자 회의에서, 성경시대 이후로 만물이 변화 했으며 돈은 단순한 생활의 도구가 되었다고 강조했다.영국의 중앙 은행-잉글랜드 은행 이 말은 유대인의 경제 활동은 율법으로 인해 제한될 것이 아니라, 적극 장려하고 보호 받아야 한다는 유대인의 생각의 변환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6세기 초에 출간된 신명기서의 주석을 쓴 신학자이며 랍비인 이자키 아브라바넬은 “이자가 무가치한 것이아니라.. 정확하고 정상적인 사업 방식이다..”라고 확고한 해석을 제시했다.탈무드는 이런 유대인의 경제 인식을 이렇게 대변힌다. “가진 것이 없을 때, 부의 고마움을 가장 잘 알 수 있다. 의인의 눈에 아름답고 세상의 눈에 아름다운 것이 일곱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부다.”라고 강조했다.유대인의 ‘할라카’는 “정당하게 이루어진 경제 거래는 엄격한 윤리에 완전히 합치할 뿐만 아니라, 더욱 체계인 자선사업을 가능케하는 덕이 높은 행위”라며 경제 인식을 격상시켰다. 유대인이 함께 했던 왕조와 군주들이 발전하고 부흥했던 것은 많은 역사적 사료들로 잘 알려져 있다.로스차일드 가문 창업자의 집(1869) 기독교에서 사도 바울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고 터부시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랍비 중심의 유대교는 이미 중세 시대부터 경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 세계 경제 성장에 선구적인 역할을 자처하게 되됐다. 나라가 없고 주권이 없는 나그네 민족의 설움과 반유대주의의 혹독한 고난이 오히려 그들을 더욱 강하고 실존의 능력을 배양하는 결과를 낳게한 것이다.코로나 록다운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실존의 필수에 눈뜨게 하는 특수 과외의 시간이기도 하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영국의 중앙 은행-잉글랜드 은행

  05/08/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흔히 유대인에 대해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때문에, 오만하고 목이 곧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지내다 보면 그 말이 꼭 맞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굳이 트집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들 중에는 따스한 인품을 갖고, 도덕적이며, 가정적이며,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고, 한편 세상에 부딪치는 성정이 못된 사람들도 주위에 허다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수긍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심지어, 같은 종교 공동체 안에서도 종교적 자부심이 남다른 사람들이라고해서 모범적이고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산다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에는 어느 종교이든 자부심과 자기 독선의 문제는 오랜 세월, 풀려지지 않는 인간의 죄성이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로마서3:10) 는 말을 수 없이 반복 하고 있습니다.    1.엘리야의 절망과 자기 연민엘리야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선지자로 손색이 없지만, 탈무드는 의외로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인물을 적잖이 폄하하는 글들을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위대한 업적과 상관없이, 잘못한 측면을 가감없이 비판하는 그들의 가치 기준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유대인의 유월절에는 엘리야를 위한 포도주 잔을 따로 준비 하고, 할례의식 때는 의자 하나를 비워 두는데,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앉을 자리로 마련해 두는 것이 라고 합니다. 그의 위상에 걸맞는 의전 이라고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450명이나되는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상을 숭배하는 왕비 이세벨의 (열왕기상19:2) 추격을 받자, 두려워 광야로 도망쳐 자신을 죽게해 달라고 외쳤던 상황을 마치 이스라엘 민족 모두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극심한 두려움의 표현이었음을 지적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그는 절망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고 죽여 달라고 자기 연민과 독선에 함몰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부심으로 가득한 위대한 사명자로서 놀라운 기적과 승리를 쟁취한 바로 후의 뒷 모습인 것입니다. 탈무드는 엘리야가 유대인의 종말을 섣불리 예견한 ‘염세주의자’중 하나라고 평가 합니다. 그는 소망보다는 절망을 기대했고 자기 연민은 죽음을 선택하려는 독선으로 드러 났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위해 유월절과 할례를 행할 때 위대한 선지자를 위로하기위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태어나고 존재하는 현장에 그의 자리를 비워 두고 잔을 예비 한다는 것입니다.2. 유대인의 자부심과 사명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교리를 따지기 이전에 오랜 역사 가운데 이미, 세상은 이스라엘에게 의롭고 거룩한 오직 한 하나님이라는 사상을 제공한 것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을 사용 하셨기 때문입니다.” (루이스 야곱, ‘유대인의 논리’, P274) 라고 강조합니다.유대인들은 줄 곳 그들이 하나님이 제시한 도덕법을 세상에 알리려는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위해 선택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 합니다.유대인들은 “고대로부터 자신들이 하나님을 모든 인류에게 알리는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않았더라면, 신은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존재는 인류 문명이 존재하지 않고 또한 마치 신이 없는 것같은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더 낫다는 것을 말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더 나아야 한다(모리스 죠셉(1840-1930), ‘신조와 인생으로서의 유대교’, p117)” 라고 강조합니다.  “ 우리는 세상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지분(분깃)이다 ”라고 (아브라함 죠슈아 헤첼, ‘지구는 하나님의 소유’, P109.)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지침을 주었다. 그리고 세상 저편의 사람들이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를 보게하는 것이다”라고 (해롤드 쿠슈너, ‘ 세상에게 ’, p 31) 그들의 선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강조했습니다.더 나아가, 랍비 시몬 바 요나이는 선지자 이사야가 “너는 나의 증인이라”라고 선언한 말에 대해서, 그 말의 진정한 뜻은 “네가 나의 증인으로 살 때 비로소 너의 하나님이지, 무례한 행동을 하는 때는 너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거의 2000여년 동안 랍비들은 하나님의 선택과 증인으로서의 삶은 동일한 가치로 여길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왔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이 소중하지만, 증인으로서의 모범이 없다면 독선이 될 수 있다는 경고성의 지침을 놓치지 않는 듯 보입니다.3. 독선에 대해서죠지 버나드 쇼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당시의 가장 저명한 지성인으로 간주되었는데, 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 아리안 족의 인종적 우수성의 독트린은 어떤 면에서 유대인들의 선민 사상을 베끼고 있습니다”라고 설파했습니다. 같은 관점에서, 1971년에, 감리교의 진보적 저널인 ‘인생 속의 종교’에서 “ 히틀러가 한 일이 선택된 민족이 유대인이 아니라 바로 아리안족이라는 것을 대 놓고 복수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여름 1971, P 279)”라고 기술했습니다. 그들의 자부심은 자칫, 자신의 우수성을 강조하다보니 그것이 상대를 비하하고 열등하게 만드는 독선으로 비쳐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아픈 역사 속에는, “하나님이 많은 민족가운데 우리를 선택했지만, 아! 하나님 뭐예요? 우리를 대적하기 위해서 그러신 거예요?”라는 이디쉬 조크의 역설적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반유대주의로 늘 위협받고 불안의 반복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랍비 울프의 “당신 생각만큼 당신이 훌륭하지도 않고, 세상이 형편없지도 않다”는 말은 자부심이 지나쳐, 오만의 길에 빠지기 쉬운 내면적 독선에 대해 뼈아픈 지적이 됩니다. 샬롬!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22/07/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1. 나쁜 상황에 부딪칠 때..랍비 아키바가 여행 중 어느 마을에 당도하여 숙소를 구해 보려고 애썼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키바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모두 선하다 ”고 읖조리고 들에 나가 밤을 보냈습니다. 그에게는 수탉과 램프와 나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오자 램프의 촛불이 꺼졌습니다. 그리고 고양이가 오더니 수탉을 잡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사자가 와서는 당나귀를 잡아 먹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키바가 “무엇이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선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에 몇 명의 군인이 마을에 들어 오더니 주민들을 모두 잡아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아키바가 “내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선하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바벨로니안 탈무드, 버락호트 60b-61a)아키바에게 숙소를 제공하지 않던 동네 주민들이 잡혀간 것이 인과 응보이고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자조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흔히 사람들이 원인이 결과를 산출한다는 기승전결의 논리와 달리 상황과 관계없이 결론은 하나님인 셈입니다.대개는 남의 탓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성이 덜차면 남을 핑계삼아 서라도 자신의 상황을 반전하려는 것이 세상의 방법인데 랍비는 고통은 자신이 감수하고 하나님으로 인해 선한 일들이 일어 날 것을 기대하는 마음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난감한 일들이 생길 때가 종종 있지만 탈무드는 대체로 여유로운 태도를 견지합니다.2. 병과 죽음의 문제랍비 요하난이 병에 들자 친구 랍비 하나나가 문안을 왔습니다. 그리고 “이 병이 자네를 환영하는가?”라며 병으로 너무 힘들어 하지는 않는지 역설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요하난이 “병은 나를 환영하지도 상도 주지도 않는다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저 병이 들었지만 휘둘리지 않고 덤덤하게 병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의 대답이었습니다. 마치 세상이 코로나로 록다운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 유지를 하고 백신을 맞아도 결국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어느 전문가의 진단 처럼 이제 더불어 살아갈 것을 마음 먹어야 할 듯합니다.    델타 변이가 극성을 부리고 늘어나는 사망자의 숫자들이 수시로 뉴스로 등장하며 은연 중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랍비 히야 바르 아바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당신의 삶을 희생해야 합니다라는 도전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곧 바로 죽는다는 전제 하에 그렇습니다. 저는 지속적인 핍박의 고문을 견딜 자신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랍비라면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용기있게 대응하겠다며 더 근사하게 대답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인간적인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가 온다면 한 순간 고통 없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 입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고문을 받거나 심한 부상을 입고 오랫동안 고통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주위에는 심지어 한 순간 갑자기 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사람도 제법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의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서 나치의 군사들이 뜨겁게 달군 쇳덩이를 잡힌 포로들의 겨드랑이에 그들이 죽을 때까지 집어 넣곤했다고 합니다. 랍비들도 피하고 싶었던 것처럼, 고문이 의로운 사람일 지라도 죽음의 공포로 처참하게 굴복하게 만들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세 친구도 느브갓네살 왕이 고문을 했더라면 분명히 우상을 숭배했을 것이라고 탈무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바벨로니안 탈무드, 케투봇 33b)현대 유대인의 법에는, 절대 고문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계 유일의 법적 조항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그가 압박을 받을 때 진술했던 것에 대해서는 결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적어두고 있습니다. (바벨로니안 탈무드, 바바 바트라 16b) 만약, 어느 사람이 그가 극심한 고난 중에 하나님을 저주했다면, 유대인의 법은 그 사람이 유죄이거나 결점이라고 정죄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나약함이 결코 정죄되지 않는 신의 너그러움이 안심이 됩니다.  3. 인격적 모독과 비난을 받을 때..1930년대 팔레스타인의 최고 랍비였던 아브라함 아이작 쿡은 학자이며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신실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시온주의를 경멸하는 극단 정통주의자들로부터 심한 모독과 인격적 비난을 받았습니다. 당시 극단 정통파들은 이스라엘로 귀환하고 방문하고자 하는 시온주의자들을 성지를 우상숭배의 수단으로 끌어들이고 시온주의는 가짜 메시야 보다도 더 나쁜 가짜이며 악마의 종교라고까지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경멸의 말과 글로 그를 매도하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그러던 중, 비난의 중심에 섰던 정통파 지도자의 딸이 죽음의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의사도 구하지 못하고 돈도 없는 처지에 있던 상대에게, 중재를 하는 친구 랍비의 요청을 받자, 랍비 쿡은 기꺼이 자신의 추종자인 미국의 저명한 의사를 추천하고 배삯까지 대폭 할인해 달라는 편지를 써서 원수의 딸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처를 해 주었습니다. 랍비 쿡은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지도 않으면서도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존경받는 랍비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이민 사회에서도 고통스러운 때가 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그로 인한 비난과 악의적인 소문과 인격 모독을 겪을 때 일 것입니다. 그런 일은 의도치 않게 오해가 생기고, 그때 복수를 하기위해 상대를 비난하거나 결점과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곤 합니다. 탈무드는 이런 때, 만약 어떤 사람이 모욕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저주를 받은 사람이 대응하지 않는다면, 성경은 “그들은 마치 힘있게 솟아 오르는 태양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사사기5:31)(베벨로니안 탈무드, 샤밧88b)탈무드는 비난와 모욕에 대해 무기력해 보이는 무대응이, 꼬이는 상황 속에서도 신의 선함을 기대하는 미련해 보이는 믿음이 이 땅에 평화를 이루고 태양과 같은 힘있는 인생이라는 역설의 비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가 개인에게 남아 있는 셈입니다. 샬롬!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15/07/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탈무드는, 죽어서 하늘의 법정에 선 사람들이 받게될  질문은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 했는가?”, “돈을 많이 벌었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정직하게 했는가?”일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한인, 중국인, 인도계 등 이민자들은 특히 자녀들이 돈을 많이 벌거나 의사나 변호사같은 전문직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아 지면 자녀를 잘 키우고 성공했다며 기뻐하고 자랑합니다. 물론 기뻐할 일이지만 돈을 벌고 신분 상승을 위해 부단히 애쓰며 높은 지위에 올라 능력과 스펙은 쌓였지만, 인품이 갖춰지지 않은 많은 상사나 지도자를 경험하고는 적잖은 충격과 상처를 입곤합니다. 더 나아가,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주위로부터 듣거나, 스스로 알게 된다면 좌절과 절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시상대에 오를 것을 꿈꾸며 달려 왔는데, 결승점에 이르자 실격 판정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충만하라(be fruitful and multiply)” 는 명령에는 세상 속에서의 역할의 양면성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이 명령은 물론, 숫자와 규모가 커지는 것을 의미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은 사람의 숫자가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게 하는 사람은 마치 진정 번창하는 일을 방관하며 오히려 재를 뿌리고, 신적 이미지를 훼손하는 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바벨로니안 탈무드, 예봐못63b)”라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 것을 강조한 경고성의 지침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경제적 위상이 세계10위권으로 G7에 초청받는 외교적 국격을 갖게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실제 우리의 내면이 선진 문화의 품위와 격조를 갖췄기 보다, 외형에 비해 품격의 내실이 부족함을 자성하는 사회적 비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탈무드는, 진정 열매맺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성이라고 가르칩니다.   1. 삶의 양면과 균형탈무드는 영적 필요 뿐 아니라 장래 직업에 대한 교육과 현실적인 문제에 등한시하는 부모를 비난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업이나 직업 교육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부모는 아들이 도둑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 가지이다(바벨로니아 탈무드, 키두쉰29a)”라고 부모의 역할에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다지 민감하게 생각지 않는 것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돈은 벌었지만 거만하고 자기 자랑을 일삼는 졸부들처럼 종업원을 업신여기는 갑질하는 부자들에게나, 영적인 일에만 몰두하느라 가족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 가장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랍비 라반 감리엘은  “세속적인 직업과  결합된 토라 공부는 유익한 것이다. 죄를 멀리하게 하고 일과 관련 없는 이 두가지 균형을 멀리한 토라 공부는 결국 무의미하며, 오히려 죄의 근원이 된다(아버지의 윤리2:2) 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재능이나 또는 도덕적 능력 하나 만으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훈련과 직업 훈련이 결합된 균형 잡힌 삶이 존경을 얻게 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게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제를 할 때도 자신의 수입의 10% 이상을 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어느 누구도 20% 이상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균형성을 유지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또한  유대주의가 가난을 일종의 저주처럼 여겨 온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세상에 어떤 것도 가난보다 더 비참하지는 않다. 가난에 찌든 사람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시달리는 것과 같다”고 상기시켰습니다. 탈무드는 “만일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과 가난을 저울에 잰다면, 가난이 그 모든 것들보다도 더 무겁다(출애굽기, 라바31:12, 14)”라고 지적 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종교성을 실천하는데 있어서도 세상 속에서의 실제의 삶에 대해 성실하게 부를 축적하고 가족을 보호하는 현실 속 양면의 균형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2. 존경 받는 사람탈무드는 인생의 가장 큰 선행은 죽은 자에게 베푸는 ‘선’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헤브라 카디샤 (Holy brotherhood)-거룩한 형제'라고 불리는 유대인들 중 가장 인품과 덕망을 갖춘 소수의 인물이 장례위원으로 선정되는 것을 큰 명예로 여겼습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산혜드린의 공회원이며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와 같은 종교성과 사회적 입지가 확고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장례를 주도한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적 삶의 진정성을 현실에서 찾으려고 하는 유대인들은 세상 속의 삶에 비중을 많이 둡니다. 랍비 나흐만은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은 인간이 가진 불건전한 욕구로부터 기인한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가진 불건전한 욕구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집을 짓거나 아내를 맞이 하거나 사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사람이 가진 욕구는 불건전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육신을 덧입은 창조물로서의 한계에대한 수용이며 또한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강조합니다. (창세기, 라바 9:7) 예컨데, 어느 의사가 돈을 벌기 위해, 특수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해서 그가 나쁜 의사는 아닙니다. 또 사람은 부와 명예와 욕정을 갖고 살고 세속적 충동을 가졌지만 그것의 동기가 100% 순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행동은 얼마든지 선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현자들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대단한 선행이지만, 탈무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에게서 배고픔 뿐만 아니라 수치심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탈무드의 이상이라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야 말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신의 명령에 대해, 하늘이 내려 주는 특별한 기적과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신에게 칭찬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창조주의 신적 품격과 현실 속의 균형성을 늘 기억하는 일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미 내재한 신분 상승의 혜택을 모두 덧입은 셈입니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08/07/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

지난 주에 이어 유대인의 ‘성인식’과 관련하여 유대인 자녀들이 어떤 선물을 받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성인식’에는 가족들이나 친지로부터 선물을 받는데, 전통적으로 시계, 돈, 성경, 이 세가지 선물이 가장 의미 있는 선물로 간주되었다고 합니다. 시계는 어른이 되며 시간을 잘 엄수하는 약속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시간을 아껴 늘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선물로 주곤하는데, 미래의 공부를 위해 학자금이나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어 갈 수 있는 미래 사업의 종잣돈이 되도록, 큰 액수의 돈을 가족들이 선뜻 내 놓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면서 유대교 내에서도 경제적으로 빈약한 가정들이 전통을 따르다 겪게되는 지나친 허례허식에 대해 지적하는 변화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바르 미츠바(성인식) 1. 성인식과 허례허식탈무드에는 “유대인들의 장례 비용이 너무 비싸, 어떤 유가족들은 시체를 버리고 도망을 가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장례식에 큰 비용을 지출하고는 생활고에 시달린 유족들이 많았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우리도 “자식 여럿을 결혼시키면 집안 대들보가 휘청한다”는 말처럼 어느 사회든 좋은 의미의 전통이, 외식과 사회적 병폐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미 중세 이전에, 재력가이며 존경받는 저명한 랍비 ‘감리엘’은 “내가 죽으면 값싼 수의를 입히고 값싼 나무관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유지를 따라 거친 천으로 고인을 안장하는 것이 사회에 귀감이 되어 그 후 의례가 간소화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녀의 ‘성인식’에 부유한 유대인들은 약 6만여달러 이상, 일반인들도 약 3만달러 이상을 지출한다고 합니다. 남들에게 초라해 보이지 않으려는 심리적 압박이 ‘계명을 따르는 모범적인 삶의 시작’이라는 ‘바르 미츠바(계명의 아들)’의 의미를 희석 시키고 있다는 자성의 소리도 들리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현대에는 형편에 맞게 작고 의미있는  선물들을 전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가족의 큰 기념일로, 결혼식에 버금가는 행사를 회당에서 진행하고 그 후 우리의 피로연처럼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선물은 토라, 즉 성경입니다. 원래 성인식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평생 성서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고 사회 속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교육을 생명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의 교육의 시작점은 바로 성경이고 율법입니다. 그래서 주로 회당의 회당장이 축하의 메시지와 함께 성경을 선물로 전달합니다.지혜의 왕 솔로몬 2. 성인식과 율법 교육성인식을 위한 교육을 1년 내내 받았다고 해서 젊은 세대들이 모두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이 많은 젊은 학생들은 교육 기간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에 거침없는 질문을 쏟아 내곤 합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래의 친구들과 세상 전체와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탈무드는, 타협하기 쉬운 율법에 대해서,“가벼운 율법을 가장 중요한 율법이라고 생각하며 지키라. 그것이 죄로 부터 떠나게 하고, 하나의 죄가 또 다른 죄를 짓게하는 것처럼, 하나의 율법을 지키면 또 다른 율법을 지키도록 인도할 것이다” (아버지의 윤리, 4:2) 라고 격려합니다. 작고 쉬운 율법을 잘 지키기 시작하면 죄로 부터도 멀어지게 하고 절제가 훈련된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유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바벨론 탈무드는 “범죄를 저지르며 율법을 완수했다고 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Sukka 30a)고 조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돈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었다고 한다면, 이는 돈을 준 사람이 아니라 돈을 잃은 사람이 선을 베푸는 사람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이 일들은 오히려 모든 것의 주인인 신이 도둑질한 것을 기뻐하고 축복하는 것으로, 신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런 면에서 탈무드는 솔로몬 왕이 시작은 좋았지만 계명을 자신의 욕망에따라 합리화하고, 말년의 부끄러운 역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과 이방여인들 3. 훈련으로서의 율법과 솔로몬 왕 성경은 “(신 17:17) 그(왕)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하는 말이 주어졌음에도, 위대한 지혜의 왕 솔로몬은 “내가 많은 아내를 두고 그리고 나의 마음이 그르치지 않게 하겠다”고 자신을 과신하며 율법과 타협하려 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말년에, “ (왕상 11:4)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하고 성전을 짓고 지혜로운 통치자로 등극한 솔로몬이 아쉬다롯과 암몬의 밀곰과 같은 우상의 신전을 세우게 하고 그의 많은 이방 아내들이 각기 우상을 숭배하는 일들이 다윗의 가문에 일어나게 된 것을 상기시킵니다.  솔로몬 왕의 우상숭배  또 “ (신 17:16) 그(왕)는 병마를 많이 두지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했는데도 솔로몬이 스스로 “ 나는 병마를 더 많이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이 결코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겠다..”고 호언 장담했지만, 후에 “ (왕상 10:28) 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들여왔으니 왕의 상인들이 값주고 산 것이며..”라고, 솔로몬이 말씀대로 따르기 보다, 자신의 성취를 위해 애굽, 즉 세상의 힘과 권력과 쾌락과 결탁해, 왜곡한 그의 행실을 꼬집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탈무드는 “율법을 제정한 신에게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이 ‘카쉬루트’라고 불리는 식사 예법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아니라, 계명이 주어진 분명한 목적은 “오직 한가지, 사람들을 훈련시키려는 것(미드라쉬 탈무드, Shmini 7)”이라고 강조 합니다. 흔히 율법은 어리석고 가치 없는 것이라고 쉽게 간주하는 것으로 인해, 훈련 한 번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살아온, 미흡함을 자각하게 됩니다.솔로몬 왕과 일부다처 요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무명의 세월동안 탄탄히 쌓여진 실력이 진정한 승자가 되게 하는 것처럼, 성인식은 내실있는 인생을 향해 시작하는 인턴들의 훈련 입소식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록다운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훈련은 내실을 담보한다는, 마음으로 기쁘게 시작하는 7월이 되기 바랍니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01/07/2021
  탈무드와 자녀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