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이태원에서 할로인으로 십수만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젊은 청년들이 156명이나 압사로 생명을 잃는 끔찍한 사건이 생겼다. 그 중엔 여성이 약80%가 되고, 대부분이 10-20 대 라고 한다. 세계가 발칵 뒤집혔고 대통령과 장관을 비롯한 주무처 관리들은 사건을 규명하고 보고하느라 매스컴에 등장하고, 어린 자녀들의 죽음에 안타까운 국민은 그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 세운다. 북한이 울릉도 부근에 전후 처음으로 NLL을 넘어 미사일을 쏘았다.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한 위기의 순간이 되었다. 리더십1. 예측된 리더 토라의 첫 책인 창세기의 후반부는 거의 성경의 위대한 리더인 요셉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그는 항상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고 그의 꿈과 상황의 극적인 변화는 온통 그가 원초적 리더로서의 정해진 방향성으로 가는 것에 어느 독자도 이견이 없을 듯하다. 심지어 그는 기독교에서는 요셉을 예수의 예표라고까지 인정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요셉의 후손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족속은 BCE722년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그들의 종적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만다. 반면에 전혀 예상치 않았던 유다의 후손인 다윗이 왕이 되면서 그의 후손은 계속 왕위를 이어가는 왕족이 된다. 유다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사람이다. 막내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자고(창37:26-27) 했던 장본인이 바로 유다 였다. 그는 그의 형제들을 떠나 가나안에서 살다가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그의 아들들이 죄를 지어 두명이나 죽게 되고, 나중에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임신을 하게한 인물이다. 유다는 이방 친구를 사귀고 그를 따라 “형제들을 떠나 내려갔다”(38:1)고 한 것의 ‘내려갔다’는 말을 주석가들은 그의 도덕성이 주저 앉은 강력한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이 정도면 리더 얘기는 입에 담지도 못할 형편의 인물이다. 사울왕과 다윗2. 반전의 리더그러나, 세월이 많이 지나,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고, 그의 모든 형제들이 붙잡혀 볼모가 되고 꼼짝 못할 궁지에 몰리게 되었을 때 그는 새로운 반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기근으로 인해 곡식이 궁해 이집트에 왔지만 총리가 그들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고 아버지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의 첫 아들 요셉을 잃고 또 남은 아들 마져 잃을 수 없어 거절하게 된다. 그 때, 큰 형인 르우벤이 ,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내 두아들을 죽이라고 하며 납득되지 않는 말로 나서고 모두 방안을 찾지 못할 때, 유다가 조용히 “ 내가 스스로 볼모가 되어 베냐민이 돌아 올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베냐민과 함께 이집트로 돌아가 요셉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융성한 대접을 받고 돌아가고자 할 때, 또 베냐민을 볼모로 잡고자 할 때 그가 나서서 그의 아버지 야곱의 슬픔이 극도에 달해 어떤 비극이 아버지에게 닥칠 지 모른다는 장면에서 요셉이 이집트 총리의 모습으로부터 그들의 동생인 것을 드디어 나타내게 되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탈무드의 현자들은, 이 장면에 “ 뭇 의인의 설 수 없는 자리에 참회자는 우뚝 선다(Bersakhot 34b)”는 회개의 원리를 고양시킨다. 그리고 이사야 서57:9에 “평화, 평화가 먼 데 있는 자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 있을 지어다” 하며, 먼 데있는 자(참회자)가 가까운데 있는 자(의임)보다 앞서 부르는 것으로 이 원리를 인증하고 있다. 요셉을 전통적 ‘의인’이라고 여기던 토라의 맥락에, 유다는 ‘참회자’로서 등장한다. 그리고 요셉은 왕의 다음가는 둘째가 되지만, 유다는 왕의 조상이 된다. 유다는 토라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회개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록 젊은 시절 동생을 팔고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죄지은 아들이 두명이나 죽게 된 부도덕의 과거가 남은 가장이 되었다. 하지만, 후에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와 동침해서 임신을 하게되는 수치의 순간을 맞이 하게 될 때, 그의 변모를 짐작케하는 기록을 토라가 남기고 있다. 다말이 사람들에게 붙잡혀 수절하는 여인이 임신한 것을 죽여야 한다고 유다 앞으로 데리고 나왔을 때, 다말이 증거로 제시한 끈과 지팡이와 도장을 보고, 임신케한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 “그가 나보다 의롭도다(창38:26)”하고 고백한다. 이것이 토라에서 처음 잘못을 시인하는 장면이다. 유다가 첫 ‘참회자’가 되고 다말이 다윗의 조상인 ‘베레스의 어머니’가 되는 순간이다. 유다와 변장한 며느리 다말바로의 제2인자가 되는 요셉유다의 고백으로 만난 요셉3. 탈무드의 리더마이모니데스는 ‘고백’을 ‘회개’의 핵심으로 삼았다. “ 리더는 실수하는 사람들이다. 매니저는 규정을 따르지만, 리더는 규정이 없는 상황에 행동하는 사람이다”라고 탈무드는 상기시킨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의 위기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리더의 곤혹스런 문제이다. 나치와 마주한 전쟁의 위기의 시기, 1939년 영국의 총리 챔버레인의 유화적인 태도는 나중에 처칠에 의해서 누가 옳았는지 금방 판명이 되었다. 모든 리더들이 실수를 범하지만 결국, 리더십이 문제가 아니라, 리더의 나약함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최고 지도자인, J.F 케네디와 빌 클린튼의 성적 스캔들은 그들의 리더십에 큰 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 토라의 위대한 리더 다윗이 충성된 부하의 아내와 취해 임신하게 하고, 이를 숨기기위해, 교살까지 한 것에는 비교 할 수 없을 지 모른다. 토라가 리더의 진정한 덕목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회개’ 하는 것이다. 잘못한 것을 시인하고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다. 랍비 솔로비치크는 이스라엘의 1,2대 왕인 사울과 다윗은 둘 다 죄를 범했고 둘 다 선지자들로 부터 견책을 받았다. 삼상15:24, 삼하12:13에 “내가 범죄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확연하게 다르게 나타났다. 사울은 왕위를 잃었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랍비 라브는 “ 다윗은 곧장 회개하였고, 사울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얼버무리고 변명으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유다와 그의 후손 다윗의 이야기가 말하는 리더의 덕목은 ‘완전한 의로움’이 아니다. 오히려 리더십은 실수로부터 배우고 그것으로부터 성장하도록 실수를 받아들이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유다의 마지막은 그의 청년 시절과 학연히 다르다. 어눌하고 주저하던 젊은 모세와 120세에도 눈과 기력이 쇠하지 않은, 막강한 영웅이 된 모세는 분명 다른 인물이다. 리더는 비록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정직하고, 겸손하고, 용기있는 사람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토라에서 보여주는, 리더 유다의 정의는,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을 연약한 한 여성의 버려 질 수 있는 인생을 위해,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용기이며, 타협할 유혹이 분명, 큰 순간들 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조국에, 규정없는 상황으로 일어나는 급박한 위기에, 빛을 발하는 ‘반전의 리더’들로 우뚝 서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샬롬! 이태원 압사 사건북한 NLL 미사일 동해 침범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