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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에서 건강한 피로함으로 살아가기벌써 십년이 지났으니 최근 작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2010년 가을에 재독 한국인 철학자가 독일 지성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조그만 문제작을 출간했고, 독일 최고의 권위지 중의 하나인 ‘프랑크프루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지가 특집으로 다루면서 이 문제작은 독일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곧이어 2012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번역이 되자 그 해 말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출판계에서는 신임 대통령이 꼭 읽어 보기를 권하는 대통령 강권 도서 1호로 꼽히며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탔었던 책이다: ‘피로사회’(한병철 저)가 그 책이다.100페이지 조금 남짓한 시집 형태의 작은 책이 서구뿐 아니라 아시아 권에서도 선풍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그 책이 가지는 사상사적 깊이와 현대 사회의 병폐를 꼭 짚어 진단하는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 때문일 것이고, 또한 말미에 제안의 성격으로 제기된 결론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라 말들 한다. 해서 이 책의 주제들을 중심해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자신 만의 삶의 의미 가꾸기’를 함께 해 보면 좋겠다.먼저 저자는 현대 사회를 과거의 ‘규율사회’와는 다른 ‘성과사회’라 진단을 하며, 그렇게 된 이유로는 ‘개선된 인권과 자유에 대한 포스토모던적 경향’으로 말미암아 사회 전반이 개방되어 무한 경쟁의 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그는 특별히 과거의 규율사회를 나와 타인의 경계를 중심하여 타자를 밀어내고 배척했던 의학적 면역체계로 설명했는데, 과거에는 나와 다른 이방인의 진입을 적극적으로 막아 ‘나’를 보호하는 것이 덕목이었다면, 포스트모던 사회는 ‘타자’를 적극 유입하는 것이 더 좋다는, 즉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바탕으로 하는 무한 경쟁을 하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런 경향을 부추킨 것은 또한 과도한 긍정에의 숭배였다. 흔히 ‘I can do’란 말로 표현되는 ‘과잉 긍정’이  현대의 문제점을 잉태하고 성장시켰다는 것이다.좀 쉽게 설명하자면, 현대인은 고양된 자유와 강조된 긍정적 사고로 말미암아 더 많은 성과를 도출해 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게 되는 새로운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현대인의 질병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병균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 있어서 나를 몰아치는 ‘과잉된 긍정’이 범인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유대인 학자 발터 베냐민의 글을 인용하며 ‘현대인은 자극에 과잉 노출되고, 정보에 과잉 주의를 함으로 인해 오히려 공동체성이 퇴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포스트 모던 시대의 ‘성과’에 끌려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을 보았는데, 이런 시대적 현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또 성과사회에 과잉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은 ‘과잉행동성 소진증후군’을 앓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이런 성과사회에서 살아 남고 성공하기 위하여 인간은 자신도 잃고, 이웃도 잃어 가고 있으며,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스스로를 ‘착취’하는 분열적 피로사회에서 몸살을 앓으며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참 아픈 지적인데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 용기도 없다. 이런 현상은 이탈리아 출신의 조르조 아감벤이 묘사했던 ‘호모 사케르’(어떤 사회에서 범죄하여, 추방당하고 그를 만나는 사람은 누구라도 죽여도 괜찮은 인간)가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착취하고 죽게 하는 그런 현대 성과사회의 ‘호모 사케르’가 되어 가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현대는 성과의 폭력에 물든 ‘피로사회’라고 말하며, 그런 피로사회의 구성원인 현대인은 자아를 챙길 여유가 없으며, 감동이 없는 그런 삶을 사는 존재로 전락해가고 있으며, 큰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죽음을 향해 계속 돌아가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탈진하고 고립된 피로한 자아가 되어가고 있다는 외침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이런 시대 이해가 아마도 삐에르 쌍소의 ‘느림의 미학’이 강조하고 있는 강조점과 연결되고 있다: “그저 한 번 멈추어 서 보라, 한 번 천천히 사물을 돌아보라”는 쌍소의 권고말이다.이런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에서 저자는 ‘분노해 보라, 아니라고 말해보라’라고 권하며, 또한 신약성경의 오순절 공동체를 소환하며 재미있는 제안을 하고 있다. 자신에 집착하여 과잉 긍정의 노예가 되어 탈진하게 만드는 그런 피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섬김과 봉사로 피로 했었지만, 도무지 탈진에는 이르지 않는 신약 공동체의 ‘타인을 위한 피로함’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그의 글이 이즈음에 이르자, 목사로서 또 후학을 가르치는 학자로서 전투 의지(?)가 살아났다. 한병철의 오순절 공동체를 좀 더 무게있게 강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 철학자 에마누엘 레비나스를 전공한 서강대 철학과 교수 강영안의 글이 그것이었는데, 강교수는 이런 현대사회에서 진정으로 회복되는 길은 어린 시절의 무목적한 동네 친구들과의 놀이라고 하였다.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 땀 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혹은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재미있게, 그것도 땀 흘리며 놀이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을 확보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삶의 현장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아닌 타인이 함께 있을 때 비로서 내가 보인다는 것이다. 참 공감이 갔다. 우리는 매사를 너무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것에만 집착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레비나스가 그랬단다: ‘타인을 통해 나를 보는 것,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수용할 때에 비로소 나의 나됨이 드러난다’ 코로나로 온통 세상이 어지럽고 불안이 가중된 삶을 살고 있다. 피곤함에 익숙해 있어서 이렇게 록다운 되어 강제로 쉬는 것도 불안하다. 피로함이 탈진으로 인도하는 피로함이 아니라, 활기찬 기쁨으로 나아가게 하는 그런 피곤함은 없을까? 이웃과 함께 고통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는 삶의 확장과, 영원한 생명을 나누는 그런 피곤함이라면 어떨까? 사랑하는 자녀들 위해 땀 흘리는 부모는 결코 탈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한다. 내 안에 내가 너무 커서 스스로를 소진하며 착취하는 자리에서 멈추어 서서, 나를 위한 피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피곤을 즐거이 감수해 보는 그런 ‘건강한 피로’가 물결치는 새로운 피로사회를 강추한다.주님이 말씀하셨다.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아멘”  김호남 박사(PhD,USyd)시드니 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30/09/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다윗의 우직지계(迂直之計)가 그리운 시절”인간의 역사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 변화와 도전의 시대에 능동적이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자는 살아 남을 것이고, 불평하며 이 괴로움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란다든지, 혹은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한 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도태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아무도 밝은 내일을 전망할 수 없는 불투명한 불안이 우리를 엄습해 오는 정황 속에서 손자병법의 한 구절과 다윗의 굴곡 많았던 삶의 여정이 오버랩되어 솟아 나는 한 줄기 교훈을 한호일보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우리가 잘 아는 ‘손자병법’의 ‘군쟁편’에 나오는 말이다. 유식한 척 한자 풀이를 해 봐야 별 소득이 없을 터이니 ‘우직지계’의 뜻을 간단히 설명하겠다. 군사가 대치하며 서로 승리하려고 으르렁 거릴 때의 승리의 비결 중 하나는 먼 길을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이 직진하여 나아가는 것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전법이다. 적군이 오판하도록 군사를 먼 길로 돌아가게 하는 우회 전략이 어떤 때에는 직진 돌격하여 공격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 갈 줄도 알아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잡담하는 목사님들의 모임에서 했더니 수학을 잘 하는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사이클로이드의 곡선’이란 수식으로 설명해서 놀라기도 했다.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은 직선이다”라는 논리는 2차원, 즉 평면일 때는 맞는 논리인데, 그것이 3차원, 4차원일 때에는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직선 주로가 오히려 곡선주로보다 더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사이클로이드의 곡선’인데, 첨부하는 사진 한 장으로 뜻이 전달 될런지 모르겠다. 좌우간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지름길, 짧은 길, 직진하는 것만이 성공과 승리를 담보하는 비결이 아님을 배우게 된다. 살다보면 여러 가지 정황들 때문에 ‘돌아 가야만 하는’ 아픔을 겪을 때가 있는데, 요즘 같은 코비드 팬데믹(Covid-19 Pandemic) 정황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원치 않게도 쉬어야 하고, 멈추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너무 조급해 하거나, 너무 불안해 하지 마시라 하고 싶어서 드리는 말씀이다.이런 지혜는 성경의 인물인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아시다시피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무찌르고 일약 이스라엘의 스타가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당시의 왕인 ‘사울’의 질투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도피하게 되고, 결국은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에게로 망명을 가서 그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된다. 얼마나 답답하고 길이 없었으면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망명을 갔을까! 좌우간 거기서 지내다가 자기의 새 주군인 블레셋의 ‘아기스’왕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다윗을 참전시켰다. 다윗은 원치 않게도 자신의 조국과 전쟁에 참전하게 할 수 밖에 없게되었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 그때에 블레셋의 여러 장수들이 전략회의를 하다가 다윗을 열외시키기로 결정했다.지금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는데, 이스라엘에서 망명 온 저 다윗을 참전시켰다가 그가 변심하여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 블레셋 군대는 포위되는 형국이 되니 아예 다윗의 군사들을 이 전장에서 제외시키자고 의결되었고, 다윗은 천우신조(?)로 조국과의 전쟁을 면제를 받게 되었다.그래서 망명지인 ‘시글락’에 돌아와보니, 남자들이 모두 전장으로 나갔던 그 마을은 이미 ‘아말렉 족속’의 공격을 받아 마을이 초토화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사로 잡혀갔던 것이다. 주군인 다윗을 믿고 망명지로 따라와 살던 부하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자신들의 처 자식이 다 아말렉에게 잡혀갔던 것이다. 다윗을 향해 성난 부하들이 돌을 던지려 했다. 그 군급한 시기에 다윗은 흔들림없이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그리곤 전열을 정비하여 아말렉을 치고 사로잡혔던 모든 식솔들을 구해내었다. 오히려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다윗의 인생을 돌아보며 도종환 시가 생각이 났다.“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하며 이어지는 아름다운 시구이다. 믿음의 영웅 다윗이 그렇게 살았다. 국가에 충성했지만, 보상을 받기 보다는 질투를 받았고, 쫓기고 쫓기다 적국에 망명해야 하는 위기속에 그의 청춘이 가고 있었다. 그에게도 ‘직진’해서 사울을 폐위시키고 자력으로 왕권을 쟁취하는 권력쟁패의 투쟁에 나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지켜야 할 것이 있었고, 물려 주어야 할 유산이 그 안에 있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그의 손으로 어찌 할 수 없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맞기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조국을 떠나 망명지를 떠도는 불안한 나날이 연속되고 있는 중이다. 현하의 우리들처럼 말이다.그런데, 그 망명지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다윗은 그가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안정된 조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있는 유다의 여러 친구들에게 ‘선물’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무릇 선물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무어 힘이 있고 능력이 월등해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 함’을 표하는 행위였기에 다윗은 망명지에서도 본국의 친우들에게 선물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그렇다, 꼭 돌파를 하고 직진으로! 지름 길로만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 때로는 ‘우회’를 하고 돌아가는 길도 아름다울 수 있고,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시구에 나오는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했던 것처럼, 이 이민자의 외로운 길에도 여전히 ‘그 분’이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나는 지금 다윗의 여유를 누리고 있는가를 자문한다.손자가 지적했던 ‘돌아가는 길이지만 직진보다 더 빨리 갈 수도 있다’는 지혜가 방랑과 망명의 길에 있지만, 그 길에서도 사랑과 존경을 나누는 인간됨의 미덕을 실천할 수 있었던 다윗의 믿음과 오버랩되면서 이 코비드-19의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아! 주님께서 돌아 가라고 하시는 구나, 아! 그분께서 쉬었다 가라고 하시는구나’를 깨달으며 이 돌아오는 추석에는 조국에 계신 부모, 형제에게 조그만 선물이라도 발송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드니의 봄을 맞는다, 감사하다!김호남 박사(PhD, USyd)시드니 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02/09/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다시, 다니엘의 영성으로!요즘 같이 어수선하고 미래가 불투명하게 보이는 시대에 크리스챤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미국이 20년간 전쟁을 벌였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적으로 철수를 하고, 원조에 기대어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던 아프간의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들은 항복을 하거나 해외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위하여 통역하며 여러 가지로 협조하던 세력들은 문자 그대로 졸지에 민족 반역자로 몰려 죽음에 내몰리게 되었고, 이슬람 율법 하에서 여성과 미성년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은 불보듯 뻔 한 일이 되었다. 그래도 미국은 그곳에서의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며 그 많은 생명들을 버려둔 채 자신들의 국익을 위하여 슬그머니 발을 빼 버렸다. 냉정하고 차가운 국제사회의 이기적 행태를 보는 것같아 마음이 못내 씁쓸하다.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패망한 조국에서 포로로 잡혀와 이등 국민의 생활을 하다가, 새롭게 정착한 ‘바벨론’에서 성실히 살아 국무총리까지 지낸 한 사람이 생각이 났다. ‘다니엘’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이 이름은 국적을 불문하고 일종의 ‘현자’같은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다 한다. 동양의 ‘제갈공명’처럼… 그런데, 그곳에서 발 붙이고 살면서 나름 성공하기도 한 바벨론의 국무총리 다니엘에게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 온다. 그가 모시던 바벨론이 고레스 대왕이 이끄는 신흥 제국 ‘페르샤’제국에게 함락된 것이다. 그런데 많은 바벨론 출신의 왕족과 고관 대작들은 다 처형되었는데도 유독 유대 출신인 다니엘은 살아남아 다시 신흥 제국 페르샤의 국무총리 중 한 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자 페르샤의 개국 공신들은 이 다니엘을 눈엣 가시처럼 여겼고 결국은 그들의 모함으로 ‘사자굴’에 빠뜨려지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물론 이 배경에는 새로운 제국의 분봉왕이었던 ‘다리오 왕’의 총애가 그들을 질투하게 하였던 것이라 여겨진다. 페르샤 제국의 대왕 고레스의 외삼촌이면서 바벨론 지역을 다스리도록 위촉된 다리오 왕은 역모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바벨론 출신의 모든 고관대작들을 처형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치세와 행정을 알던 쓸만한 인재가 필요했고  마침 거기에 부합한 사람이 소수민족 출신의 배경없는 다니엘이었던 것이다.게다가 다니엘은 그런 국정운영의 경험 뿐 아니라 인생사의 제문제에 대한 경륜까지 겸비한 인간적으로 참 매력적인 늙은이(?)였다. 하지만 그 수하에 있던 개국공신들의 입장에서는 왜 국왕이 이 이민자를 총애하는지 여간 기분나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좌우간 그래서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한 죄’로 사자굴 형벌에 처해졌고, 왕은 이 늙고 신실한 신하의 구명을 위해 식음을 전페하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쓰며 다니엘이 살아나기를 염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침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다니엘은 사자들의 입에서 구원을 받았고 다시 왕의 총애를 회복하였으며 정적들은 제거되었다. 다니엘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였으면 이 이야기는 일종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끝이 났을 것이다.그러나 다니엘은 더 크고 위대한 일을 하게 된다. 유대인들의 성경 주석집인 탈무드에 전해오는 다니엘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다리오 왕의 마음을 얻은 다니엘은 페르샤의 대왕 고레스를 접견할 기회를 갖게 된다. 젊은 고레스 왕은 페르샤 제국의 확장과 번영을 위해 이 경륜 많은 다니엘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때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이렇게 답했다 한다.“폐하, 폐하는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200여년 전부터 전해오는 신비로운 신의 문서가 한 부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바로 대왕폐하의 이름이 예언되어 있으며 고레스라는 대왕이 나타나 이 땅의 구세주로 일을 할 것이라 적혀 있습니다”. 하면서 이사야45장 앞 부분을 읽어 줍니다. 당연히 고레스가 놀랐다. 자신의 이름이 먼 이방 나라의 선지자에 의해 200년 전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니? 그리고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종(메시야)으로 사역하게 될 것이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래서 고레스가 혹시 자신이 속고 있는 것인지를 몰라 왕궁에 있는 학자들을 불러 그 문서의 내용이 사실인가 하고 검증을 하고는 감탄에 감탄을 발한다. 그리고 다시 자문을 구한다.“그러면,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 폐하께서는 지금까지 해 오던 일들을 잘 하시면 됩니다”, “그래, 그 정복전쟁, 해방전쟁을 잘 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고 무엇을 유의해야 하는가?”, “폐하, 폐하의 나라는 끝없이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제국의 수도와 왕궁의 경비를 더욱 든든히 하셔서 왕권이 흔들림이 없어야 하겠으며, 변방을 잘 방어하여 나라에 외적의 침략을 잘 방어하셔야 나라가 더욱 든든히 설 것인줄 아옵니다”그러면서 이어진, 다니엘의 자문은 과거 역사를 들추면서 “이 나라의 서쪽과 동쪽, 북쪽에는 폐하의 나라를 위협할 세력이나 국가가 없습니다. 하오나, 폐하, 저 남쪽에는 과거부터 영화를 누리던 ‘애굽’이라는 큰 나라가 호시탐탐 폐하의 나라를 넘보고 있습니다. 그 애굽이라는 나라는 지금부터 80년 전에 앗수르가 무너지고 신흥 바벨론이 세워질 때도 공격을 해 왔던 적이 있습니다. 이제 폐르샤라는 새로운 제국이 세워졌으니, 이 나라가 더 견고해 지기 전에 저 남방의 애굽이 폐하의 나라를 쳐들어 오려할 것입니다. 이 나라의 침략을 사전에 잘 막으면 페하의 나라가 만세수할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렇구나, 그럼 그 남방 애굽의 침략을 사전에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겐가?”이 질문을 받고서, 다니엘은 잠시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곤 이렇게 어드바이스를 했다. “폐하, 애굽이 침공할 때에는 반드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과하여 올라옵니다. 과거에도 그리하였습니다. 하오니, 과거에 잡혀온 유대 사람들을 돌려 보내셔서 그곳에 성을 건축하여 미리 애굽의 침공에 대비함이 가장 현명하고, 폐르샤군대의 손실을 줄이는 일인줄 사료되옵니다….”그의 충언을 들은 고레스 대왕은 무릎을 치며 다니엘을 치하하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애굽군대의 출병길을 예루살렘성을 건축하여 방비하라고 칙령을 내리게 됐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고레스 칙령’이며 이 칙령으로 이스라엘은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 것이다. 다니엘은 소수 민족 출신이었기에 살아 남았고, 인간적인 ‘빽’이 없었기에 쓰임 받았다. 그는 현재를 치열한 정신으로 살고 있지만 지나간 시간인 역사의 교훈을 가슴에 간직하였었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하였다. 정말 두렵고 불안한 상황 가운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던, 영원한 시간 속에 살아 있는 성도의 귀감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 너무 먹고 사는 일과, 현재 펼쳐지고 있는 일에만 함몰되지 말고, 눈을 들어 역사를 보고, 말씀을 먹으며, 녹슬지 아니하는 무릎 영성으로 파도를 헤쳐 앞으로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김호남 박사(PhD,USyd)시드니 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19/08/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낭중지추’와 ‘문경지교’의 삶근 1년 반이 되어가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몰라 우리 사회를 지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갑갑하다!”와 “불안하다”라는 푸념 섞인 넋두리다.독자 여러분은 어떠신 가요? 괜찮으세요? 좀 버틸 만하세요? 그럼 천만에 다행입니다만, 사라질 듯, 잠잠할 듯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또 여러 변종을 일으키며 괜찮아가던 사회를 다시 들쑤셔 놓았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조용한 이곳 호주에서도 ‘록다운 상황’을 풀어 달라고 시위를 하고, 어떤 나라는 포기를 했는지 아예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하면서 걱정스런 호기를 부리는 나라까지 생겨 시민들의 마음이 온통 뒤숭숭하기 이를 데가 없다.여기는 정부의 록 다운 규정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거의 ‘천 만원’가량의 벌금을 부가하니, 없는 형편에 그게 무서워서 정말 어딜 가보려 해도 엄두도 못내고 국제적 민주투사모양으로 원치 않는 ‘가택연금’을 하며, 원치 않는 ‘도’를 닦으며 수양(?)을 하고 있으니..이런 시절에 나누고 싶은 인상 깊은 고사 두 개와 성경의 인물 두 사람이 겹쳐 떠 올라서 펜을 들었다. 요즘이야 인터넷만 잘 두드리면 이런 고사성어에 얽힌 유래를 잘 알 수 있어서 길게 설명하진 않겠다.#첫 번째 이야기: 옛날 중국의 춘추 시대에 진나라의 왕이 조나라의 무령왕을 초대하여 회담을 청했다. 의심스러운 면이 있었으나, 피하면 더 비겁한 왕이 될 것 같아 왕은 재상 중 한 사람인 ‘인상여’를 대동하고 회담에 임했다. 진나라의 신하들이 호기를 부리며 “우리 진나라 왕의 체면도 있고 하니 조나라의 읍성 15개를 양도하면 어떻겠소?” 하자, 무령왕이 당황했다. 이 때 ‘인상여’ 재상이 나서며, 진나라 왕에게 되물었다. “그건 별 문제될 일이 아니요, 근데 우리 조나라 왕의 체면도 있고 하니 진나라의 수도를 내어 주면 어떻겠소?”하고 맞받아 치고, 회담은 결렬되고, 돌아온 무령왕이 ‘인상여’를 재상중에서도 높은 ‘상경’에 임명하여 치하했다.조나라에는 온갖 전장을 누비며 상경에 오른 ‘염파’라는 대장군이 있었는데, 그이가 시기하며 불만을 토로하고 인상여를 헐뜯어 댔다. ‘나는 피흘리며 전쟁터를 누빈 공으로 상경이 되었는데, 저 인상여는 세치 혓바닥 잘 놀려 상경이 되었으니 어찌 상경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며 공사석간에 놀려 댔고, 이를 눈치챈 ‘인상여’는 그와의 충돌을 피해 다녔다. 이를 본 인상여의 부하들이 볼멘 소리를 하며 불평했다. “대감은 어찌하여 저 염파 장군의 공격을 피해만 다니십니까?” 그때, 인상여가 이런 말을 한다. “진나라가 우리를 쉽게 침공을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 대장군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인데, 만약 우리 둘이 서로 으르렁거리면 적군인 진나라에게 얼마나 좋은 빌미가 되겠느냐, 나는 진나라의 왕에게도 큰 소리쳤던 사람이라 염파를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지만, 나라가 먼저고 개인적인 감정은 나중의 일이 아닌가?”라고 했다. 이런 인상여의 깊은 심중을 전해들은 ‘염파’는 대장군답게 인상여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화해를 했고, 이 후로 두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배신하지 않기로 다짐을 하는데,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목 벨 刎(문)’, ‘목 頸(경)’, ‘갈 之(지), ’교제 交(교)’, 즉 ‘문경지교(刎頸之交)’이다.  혼란한 시대라, 믿을 사람이 없는 시대라 한다. 이렇게 속 깊은 사람 만나 문경지교의 기쁨을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다 한 여인의 고백이 떠 올랐다. “시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시어머니께서 어디를 가든지 나도 동행하겠으며, 죽기까지 시어머님을 따르겠습니다!”하며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셨던 이방 모압 출신의 이민자 여성 ‘룻’이 생각났다. 그런 충절이 그리운 시절이다. 하나님은 그런 여인을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게 하셨다. 참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두 번째 이야기: 역시 춘주전국시대의 말엽이다. 진나라의 공격으로 위협을 느낀 조나라의 혜문왕이 아우인 ‘평원대군’에게 인재들을 모아서 ‘초’나라로 가서 지원군을 요청하도록 했다. 평소에 평원군은 자기 집을 열어 전국의 인재들을 식객으로 거두고 있었다. 문무겸비한 사절단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식객 중의 한 사람인 ‘모수’라는 사람이 평원군에게 부탁을 한다. “대감, 이번 사절단 길에 저를 한번 데려가 써 주십시요”, “자네는 누구신가?”, “저는 대감의 식객으로 있는 모수라는 사람이올씨다”, “그래, 우리 집에 머문 지는 얼마나 되었소?”, “예, 한 3 년되었나 봅니다”, “그래요, 그럼 별 일없으니 그냥 일이나 보시오”하고 돌아서는 평원군에게 ‘모수’ 다시 강청을 한다. “대감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대감이 저를 한 번도 주머니속에 넣어주지를 않았지 않습니까? 이번에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뾰쪽한 송곳 끝이 아니라 손잡이까지 나오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하여, 모수는 발탁이 되었고, 평원군은 초나라로 가서 모수의 활약으로 필요한 지원군을 얻어 나라를 구하게 되었답니다.여기서 평원군이 모수의 청을 물리치면서 한 말이 있는데, “夫賢士之處世也(부현사지처세야), 譬若錐之處囊中(비유추지낭중), 其末立見(기말립견)” 풀어서 설명하면,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산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과 같아서, 그 끝이 반드시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라는 뜻입니다.근데 당신은 3년이나 우리 집에 있었는데, 내가 인지하지 못했으니, 당신 실력이야 보나 마나겠지요…. 하는 말입니다. 아무렴, 그렇지 않겠습니까!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데, 그 끝이 어찌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이래서 나온 이야기가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문자이지요. 인재는 파묻혀 있어도 반드시 그 진가가 드러날 때가 있다는 것이랍니다.답답한 ‘록다운’ 시절이라, 내 청춘 다 날아 가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너무 불안해하지 마시라는 위로입니다. 주머니속의 송곳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밤하늘의 별과 같고! 정오의 태양같은 존재들 아니던가요?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그렇게 귀히 여기시는데 무에이 그리 안달 낼 일이 있답디까? 옛날, 망해가는 조국에서 쫓겨나 바벨론에 정착한 다니엘이란 젊은 아이가 있었지요. 그래도 거기서 열심히 살아 바벨론이란 이방 나라의 재상까지 성공해서 올랐는데, 그의 인생 말년에 그 바벨론마져도 신흥제국 페르샤에 망해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구제받을 길이 없는 망한 제국의 재상으로 척결대상 1, 2호쯤 되는 신세가 되어버린, 지지리도 운 없는 사람 다니엘 말입니다. 그래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새 제국에서도 중용되기는 했는데, 소위 개국공신들에게 질시를 받아 사자굴에 던져졌던 비운의 주인공 다니엘이 기억나세요? 그가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생명이 위태롭고,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이 일순간에 재가 될 수 있다는 그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그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난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까?일장춘몽 같다는 길지 아니한 인생길 가는동안 다니엘처럼 지킬 것을 지키며, 낭중지추를 잊지 않는 그런 삶이면 코로나도 한 번 붙어 볼만 하지 않을까요? 주님의 가호가 있기를..  김호남목사(PhD, USyd)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29/07/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외경 ‘유딧트’와 인간의 기준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 크리스토파노 알로리의 대표적인 작품(1613, Oil on canvas, 139 x 116 cm, 플로렌스의 팔라티나 갤러리 소장) 벌써 몇 년째 ‘신학적 인문학’이란 강의를 해 오고 있다. 시중에 하도 여러 종류의 ‘인문학’이 범람(?)을 해서 그런 하나님 없는 인문학의 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데 수준이 떨어지는 인문학 유행의 문제를 어떻게 성경의 조명 아래서 이해해볼까하다가 개발된 과목인데, 학우들에겐 꽤 관심을 끓었던 과목이다.그 과목을 시작하는 어간에 조선 문인화의 백미인 추사의 ‘세한도’와 더불어 소개하는 서양화가 바로 오늘 보려는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Cristofano Allori, 1577년 10월 17일 ~ 1621년 4월 1일, 이탈리아 화가)가 1613년도에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란 그림이다. 무릇 그림이란 것이 어떤 것은 ‘명화’가 되기도 하고, 그저 이발소 작품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 그림은 구약 성경 중 정경이 아닌 ‘외경’으로 분류된 책 ’유디트’의 주제로 그린 그림이며, 서양화단에서는 이 유디트를 주제로 그려진 유명한 화가의 그림만해도 수 십점에 이른다. 이 그림은 특별히 여인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팜무 파탈’ 경지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에서 시작해서, 온 인류가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하는 종족 윤리적 문제를 다루기에 더욱 화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고뇌하는 화가들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필자는 서양화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림에 대한 미술사적, 혹은 미학적 가치를 논하는 일에는 그리 해박하지 못하다. 비록 필자의 부친이 꽤 유명한 서양화가라 어릴적부터 집에 있는 아버님의 아틀리에에서 나는 유화물감 냄새에 찌들려 살았다곤 해도, 그림에 대해선 그저 평론가들의 평을 몇 권 주어 읽고는 평하는 것이니 그 점은 고려하고 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일단 이 그림을 이해하려면 그림이 주제가 되는 구약 외경인 ‘유디트’에 대해서 간략히라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고대 이스라엘의 ‘베툴리아’ 마을에 앗수르의 대장군 ‘홀로페르네스’가 대군을 이끌고 마을을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했다. 마을의 원로들은 이 난국을 수습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머리를 싸매며 기도했지만 특별한 대안이 없이 전전긍긍하며 마을이 몰살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항복을 하자니 하나님의 백성이 저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항복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울 것이고, 결사항전을 해서 싸우자니 전멸할 것이 불보듯 뻔한 그런 전세였던 것이다. 그런 진퇴양난의 유곡에서 그 마을의 젊은 과부 ‘유디트’가 마을의 원로들에게 나아가 자기에게 방도가 있으니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다. 별 대안이 없던 유대 마을의 지도자들은 허락을 하고, 젊은 과부 유디트는 과부의 어두운 옷을 벗어 던지고 꽃 단장을 한 후에 하녀 한 사람과 약간의 예물을 준비하여 적진으로 나아갔다. 적진에서 여러가지 검문 검색을 거친 후 마침내 천하의 대장군 홀로페르네스 앞에 서게 된다. 그녀는 거기서 그 옛날 다윗을 만났던 ‘아비가일’이 그랬던 것처럼, 홀로페르네스 대장군을 하나님이 이 시대를 구원하라고 보낸 구세주라고 치켜세우며, 저 유대의 늙은이들이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사자를 몰라보고 저렇게 버티고 있으니 자신이 답답해서 이렇게 친히 대장군을 맞이하러 왔다고 치하하고는 장군의 마음을 산다. 홀로페르네스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천하 절색의 미인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감히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라고 칭찬하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았을까! 남녀간의 운우 지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렇게 대장군의 마음을 훔치고, 전장에서 피로해진 장군과 함께 있게 된 유디트는 한 동안 그이와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어느 날 완전히 긴장을 풀고 거나하게 한잔하여 취해 쓰러진 대장군을 그녀의 하인의 도움을 얻어 목을 베고는, 그 밤에 장군의 머리를 수습하여 몰래 유대의 마을로 도망을 친다는 이야기이다. 다음 날, 유대의 마을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총사령관의 목 없는 시신 앞에서 놀란 앗수르 군대는 신이 노하여 그렇게 되었다면서 한 걸음에 줄행랑을 해서 유다의 마을 베툴리아가 앗수르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물론 이 그림은 배경을 어둡게 처리하고 여인의 몸으로 거사를 감행한 젊은 과부의 약간은 겁에 질리고 긴장한 듯한 표정과 이 결과 자신이 죽어도 좋다는 성취감이 묻어 나오는 유디트의 표정은 정말 일품이라 아니할 수 없고, 또 그런 거사를 치루는 젊은 주인을 바라보는 노회한 여종의 걱정반 존경반의 감탄하는 눈매묘사 또한 거장의 솜씨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림 후기에서 작가 알로리는 그 하인은 자신의 어머니를 대역으로 했고, 목 잘린 장군은 자신의 초상화라해서 더욱 유명해진 그림이다. 그러나, 이 그림이 단지 그런 표정 묘사나 음영 배치만으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아니다. 이 유딧트의 행위는 유대 민족에게는 우리의 안중근 의사의 쾌거처럼 민족을 구원하는 영웅적 행위임에 틀림없으나, 반대로 앗수르의 입장이나 그 아들의 입장에서는 부모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용서하지 못할 행위인 것을 어쩌랴! 그래서 화가뿐 아니라 철학자에 윤리학자, 문화학자들까지 논쟁에 가세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그렇다! 인간이 기준이 되면… 우리가 하는 일에서 인간이 기준이 되면,  거기엔 항상 음영이 함께 존재하게 되는 것 아닐까? 인간의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 외에 절대 선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은 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고, 학자들은 그런 경향성을 ‘세계관’이라 그러기도 한다.그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 좋으라고, 내 판단, 내 기준대로만 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시드니의 겨울이 깊었다. 내 생각 잠시 내려놓고, 흘러가는 저 구름 위에 더 높이 계실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에 남은 생애를 헌신해 봄이 더 의미있고, 힘이 나게 하는 것이리라! 자위하며 늙어 힘없어 가는 몸 주님께 의탁한다. 김호남목사(PhD, USyd)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01/07/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찬란한 땅’과 ‘수려한 땅’- 1908년 영국을 방문 중이던 약관 23세 호주 아가씨 ‘도로시 멕켈라(Dorothea Mackellar)’가 조국 호주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자부심을 담아 두고두고 호주인들에게 사랑받고 애송되는 소위 ‘호주 찬가’같은 시 ‘My Country(나의 조국)를 지었다. 다섯 연으로 되어 있어 많은 호주의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이 시는 이곳에서 공교육을 받지 못한 이민 1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시일 수 있다. 그래도 호주 생활을 좀 하신 분들은 호주의 국가 ‘Advance Australia Fair’대신에 한국의 ‘아리랑’ 같은 의미의 노래로 호주의 저항정신을 담은 ‘월칭 마틸다(Waltzing Matilda; Banjo Paterson,1895)’라는 노래 정도는 아는데, 이 마이 컨트리 라는 시는 약간 생소할 것이라 여기며 소개한다. 둘째 연이 너. 무나 유명하여 거기서부터 드문 드문 몇 구절을 나눌까 한다. (필요한 부분만 영문 병기, 이하 필자 역) I love a sunburnt country/나는 햇볕에 그을린 나라를 사랑하고 광활한 평원의 대지와 구불한 산맥들과 가뭄과 홍수 조차도 사랑한다. 나는 이 땅의 아득한 지평선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보석 같은 바다와 조국의 아름다움과 조국이 주는 무서움조차, 그리고 나를 위해 드넓게 펼쳐진 갈색의 땅을 사랑한다 …… 내 마음 한 가운데 있는 나의 조국! 황금 무지개의 땅, 홍수와 산불과 기근, 이 나라는 우리에게 이 세 가지를 주지요. …… 비록 지구에는 찬란한 곳이 많이 있겠지만, Wherever I may die/내가 어느 곳에서 생을 마칠지라도, I know to what brown country/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이 갈색의 땅으로 My homing thoughts will fly/내 마음의 생각들이 날아오를 거예요 진한 여운을 남기며 끝나는 이 시는 필자가 알고 있는 한 호주에서 교육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랑처럼 여기는 그들의 조국에 대한 ‘시’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 호주라는 땅은 정말 광대하고, 심지어 장엄하기까지 하며 자랑할만한 많은 보물같은 지하자원을 가진 ‘찬란한 땅’임이 분명한 것 같다. 그에 비해 우리가 나고 자랐던 조국 ‘대한민국’은 어떤 느낌으로 우리에게 남아 기억되고 있을까? 우리의 조국 한반도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아득한 지평선을 보기도 힘들고, ‘울룰루(에어즈 록)’같은 거대한 바위 산(?)같은, 웅대한 그런 지형도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나고 자란 조국 대한민국도 호주에 못지않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단지 크고, 웅장해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닐진대, 춘원 이광수, 벽초 홍명희와 함께 일제하 조선의 3대 천재라 불리웠던 육당 최남선이 지은 ‘국토 예찬인 ‘삼춘순례’라는 글은 조국의 산하에 대한 또 다른 느낌을 준다. “… 진실로 남다른 애모와 탄미와 무한한 궁금스러움을 이 산하 대지에 가지는 것입니다. 자갯돌 하나와 마른 나무 한 밑동도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흥미와 또 연상을 자아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윤동주의 연희전문 스승이었던 이양하 교수가 지은 ‘신록 예찬’ 이라는 문장 중에도 이런 섬세한 아름다움이 노래되고 있지요. “…그러나 이러한 때―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에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혼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아니할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 조국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은 웅장함이 주는 압도적인 위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동네 개구장이들도 능히 오를만한 동구 밖의 작은 언덕과 사시사철 졸졸거리며 작은 자갯돌들을 돌아 흐르는 실개천 벗삼아 흐드러진 버드나무 가지잎에 서리어진 정겨운 아름다움일 것이다. 국력이 모자라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며 읊었던 김상현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하는 애달픈 서러움이 묻어 있는 조국의 산하는 민중을 압도하는 고압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남부여대(男負女戴)하는 저잣거리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생동하는 삶의 아름다움이리라! 조국의 산하는 사계가 선명하여 철철이 아름다운 옷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하고, 온갖 먹거리와 삶의 터전을 제공하여 우리 삶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연인들에게 사랑의 밀월터를 제공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금강의 일만이천봉이 주는 기이함과 풍성한 상상력도 제공하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수려한 아름다움의 땅이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물장구치던 시골 정겨운 모습을 잃어가는 조국을 떠나 이곳, 찬란한 아름다움의 땅, 인공이 자연을 넘지 않도록 잘 조경된 삼대 미항인 시드니에 살면서도 내내 떠나온 조국의 흙냄새를 그리워하는 것은 못난 필자만의 회한일까? 찬란한 아름다움의 땅 호주나 수려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의 조국이나 우리가 기대어 서 있는 이 땅들이 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니 어느 곳에서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추사 김정희의 호 중에 ‘불계공졸(不計工拙)’이란 호가 있는데, 명인이 지은 작품은 잘되고 못됨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라 했다. 그래, 명인 중의 명인이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땅이니 그 어딘들 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을 터! 우리가 서 있는 시간들을 주님께서 부탁하신 그 사랑함으로 반응하며 살수만 있다면 좋겠다. 김호남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10/06/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일심선과 존재의 가벼움에서 벗어나기 현대의 많은 문명의 이기들은 우리에게 많은 편의를 주고 있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추우면 온풍기를 튼다. 아이들도 엄마 하고는 떨어져도 핸드폰 하고는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그런 현대의 삶 속에서 인간은 믿고 기다리는 일에 둔해지며 점점 즉흥적, 감정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네의 인성과 인격조차도 점점 얇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필자의 연구실 서랍 안에는 선물 받은 잉크 묻혀 쓰는 펜과 더위를 식혀주는 부채가 있다. 객기 같지만, 점점 기계화, 자동화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손글씨로 잉크 묻혀가며 한 자 한 자 써보고 싶었고, 조금 여유 있을 때에는 부채를 펴 지긋이 흔들며 시를 읊조렸던 옛 선배들의 호연지기한 인성을 기억코자 그 두 물건을 제법 오래 보관하고 있다. 한자어 ‘선’ (扇)으로 표기되는 부채는 우리의 옛 역사에 의하면 ‘죽음을 맹세하는 결의의 매체’이기도 했고, 또 ‘사랑을 증명하는 일종의 연서’ 기능도 했던 것 같다. 미국 아나폴리스에 위치한 미 해군 사관학교 박물관에는 고종 8년에 있었던 ‘한미 소전쟁’ 당시 강화도의 광성포대에서 노획한 ‘일심선’이라는 접는 부채가 진열되어 있다 한다. 부채살마다 이 전투에 참여했던 한국 병사들의 직함과 이름을 써넣어 온 장병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전투에 임했음을 짐작케 하는 부채이다. 그뿐 아니다. 임란시 동래부사 송상현은 자결하기 직전에 부채에다 ‘군신의 의를 지키기 위해 부자의 은’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부채에 적어 아버지에게 부쳤다고 했다. 이쯤되면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쫓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실존의 극한에서 그 자체가 단심의 대변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용도외에도, 부채는 여러 가지 실용적 미덕도 있다 한다. 작고하신 문화평론가 고 이규태씨의 재기발랄한 평가에 따르면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아주는 것이 일 덕이요, 흙 땅에서 깔개가 되어주니 이 덕이요, 들판에서 밥상이 되어주니 삼 덕이요, 물건을 머리에 일 때 또아리가 되어주니 사 덕이며, 햇볕을 가려주니 오 덕이요, 비를 막아주니 육 덕이며, 파리 모기 쫓아주니 칠 덕이요, 얼굴을 가려 내외를 해주니 팔 덕이며, 여기에 장단 맞추는 도구되니 구 덕이요, 무당춤 귀신 부르는 십 덕이 있는 참으로 요긴하여 옛 사람들은 이를 신물이라 했다 고 평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조선 성종 때에는 부채 하나에 무명 4백 필이나 하는 초고급 부채도 있었다 하니 조선에서 부채는 무언의 재력과 신분을 상징하는 역할까지 했다보다. 88올림픽 입장식 때는 한국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한국선수단이 청홍황의 삼색 태극선을 흔들며 입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의 옛 선조들은 가볍게 흔들어 우리를 시원케 해 주는 부채라는 작은 물건 하나에도 많은 뜻을 담고, 의미를 실어 삶을 즐기며 살았던 운치와 멋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할 것이다.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고 가벼이 들고 다니는 부채이지만, 결코 ‘가볍다’고만 할 수 없는 의미와 무게를 지닌 조선의 부채를 보며, 20세기 중반의 냉전문학가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이 난다. 우리에게는 약간 포르노적인 영화로 기억되는 ‘프라하의 봄’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밀란 쿤테라는 그의 소설에서 베토벤적인 무거움과 진지함을 선택한 의사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랑도,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화장장의 유골가루 같은 여류화가 사비나의 가벼움과 자유를 찾아 방랑하는 사랑도 모두 역사 앞에서 무슨 족적을 남기는 ‘무거운 것’이 되지 못한다고 냉소하고 있다. 의사 토마스는 자기의 바람 피우는 기질을 인하여 낙심하고 고향으로 돌아 가버린 아내 테레사가 마지막 작별의 편지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돌아간다.’ 라는 그 내용을 깊이 묵상하다가 그렇게 아내를 힘들게 하고 그런 편지를 쓸 때의 아내의 마음에 한없는 동정을 느끼며 또 자기의 경박함을 회개하며 테레사에게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한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인간의 도리이며 가치있고 무게 있게 사는 바른 길이라 결심하고 소련의 붉은 군대와 탱크가 지배하는 조국 프라하로 돌아가게 된다. 무게있고 바르게 사는 길을 선택한 그는 체코의 비밀경찰의 압제와 통제를 받으며 의사로서의 모든 특권을 몰수당한 채 시골의 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중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그의 사고를 애닯아 하는 테레사 앞에서 토마스는 자기 삶을 압도하는 무거움이 오히려 자기를 가볍게 해방하는 즐거움이라고 고백하며 숨을 거두고, 반면에 그의 한 때의 애정 행각의 파트너였던 여류 화가 사비나는 모든 얽매임과 구속을 싫어하여 자기가 가진 모든 뿌리와 역사를 포기한 채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자유롭고 성공적인 화가로서 자기만의 안정된 공간에 살다가 죽으면서 사비나가 유언한다. ‘자기의 시체를 화장하여 재를 바람에 흩날려 달라.’ 작가 밀란 쿤테라는 이런 두 유형의 삶: 무거움을 선택하여 의미와 가치와 더불어 고생스런 삶을 살다 죽는 토마스나 자유와 안정을 외치며 살다가 죽을 때까지도 ‘바람처럼’이라 외치고 죽은 여류 화가 사비나라의 자유, 모두 인간-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발버둥일 뿐이며 그 두 가지 모두 인간의 죄악성과 가벼움에서 기인한 탈피본능의 반작용임을 무언중에 보이고 있을 뿐이라 비판하고 있다. 묵직한 인생, 가벼운 인생 모두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찰나를 살다가 가는 것 뿐인데… 그렇다! 가벼운 바람을 일으켜 우리를 시원케 해주는 그 가벼운 부채에도 묵직한 의미가 있는데, 요즘하게의 우리의 삶들은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돌아본다. 펜촉에 잉크를 묻혀 한 자 한 자 글을 쓰면서 펜촉에 긁히는 종이의 감촉을 느끼는 것이 새롭고, 피곤한 일과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부채를 펼쳐 천천히 바람을 일으켜 보는 것으로도 벌써 마음이 새롭다. 옛날 강화도 광성포대에서 최후의 일전을 다짐하며 ‘일심선’의 부챗살마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으며 우리의 군병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일심선에 기록된 병사들의 이름과 직함이 세월따라 무색하게 사라졌고 우리는 그 당시의 적국과 함께 혈맹의 우의(?)를 다지는 시대를 살고는데!.. 시드니의 가을은 생각하기에 참 좋다. 할 수만 있는데로 기계문명에서 벗어나고 존재의 가벼운 몸짓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며 주님께 지혜를 구한다. 김호남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13/05/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오래전 한국 해군 사관생도들의 순항훈련 부대를 전송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한다. 이민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서로 상처들을 주고받고 하는데, 들어보면 상처를 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뿐인 것 같다. 고향 떠나 영어권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민자들이 조금은 성숙한 모습으로 이런 일들을 소화해 갔으면 하는 작은 바램으로… 각설하고, 선상에서는 막 해군 군악대의 송별 팡파레가 시작됐다. 악대를 지휘하는 악장의 능란한 손놀림에 따라 군악대는 고향냄새 물씬 풍기는 흘러간 옛 노래 가락들을 토해내며 송별 나온 동포들의 마음을 휘저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더니 드디어 호주 해군 제독을 비롯하여 함상에서 송별연을 마친 이곳의 유지들이 하선을 했고 시드니를 떠나는 순양훈련함대도 곧 바로 송별을 위한 차비로 부산해졌다. 곳곳에 걸려있던 환송 현수막이 걷혀지고 배를 오르내리던 트랩도 올리워졌다. 장기간의 원양 훈련에 그을린 사관생도들과 늠름한 장병들이 하얀 제복을 입고 갑판 위에 도열하고 있었다. 두 척의 호위함이 천천히 항구에서 멀어질 때만 해도 그저 ’이제 떠나나 보다‘하며 가볍게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함대 사령관이 탑승한 마지막 배가 닻을 걷어 올리고 출항 뱃고동을 울리며 초등학교 졸업식 때 불렀던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정아‘하던 그 곡이 연주되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급하게 내가 송별해야 하고, 손을 흔들어주어야 하는 후배가 어디에 있는 지를 확인했다. 닻은 완전히 걷어 올리워졌고 큰 군함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선내 방송으로 ”차-려-엇"하는 구호가 나오더니 함대에서만 쓰는 짧고 힘있는 시그널과 함께 갑판에 도열해 선 온 해군 장병들이 일제히 큰 함성으로 부둣가의 환송객들에게 송별의 경례를 붙였다. 환송객 대표격인 호주 해군의 제독일행도 절도있는 동작으로 답을 하고, 민간인인 동포들도 얼떨결에 손을 눈썹 옆에 같다대며 답례를 했다. 그렇게 짧게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장병들의 경례가 아직도 모자의 창 끝에 붙어있는데도 무심한 배는 서서히 후진하며 부둣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경례를 한 후, 군인들과 송별객들은 이제 격식을 갖춘 경례가 아니라 손을 흔들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기 시작했다. 배의 중앙에 있던 후배가 나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려고 앞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군인들과 환송객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 유독 그 후배와 나는 양손을 마주 흔들며 자리를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후진해서 뒤로 빠지고 있는 배의 선수쪽으로, 나는 민간인이 갈 수 있는 울루물루 해군 기지의 가장 끝자리로 움직이며 손을 흔들어댔다.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시드니의 아침 햇살이 따갑게 느껴진 것은 아마 그 때쯤이었을게다. 후배는 아예 장교 모자를 벗어 흔들며 “형, 나 여기있어!”하며 고함치는 것 같았다. 함대는 고동을 울리며 멀어져 갔고 훈련되고 멋있는 제복을 입은 사관생도들은 여전히 자기의 위치를 고수하며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먼 이국에 사는 동포들이여, 힘을 내십시오!”하는 것 같았다. 점점 시야에서 희미해져 가던 후배는 이제 군함의 맨 앞까지 나왔다. 하얀 모자를 벗어서 크게 흔들어 댄다. 해군 장교의 체면보다도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인간의 본능이 먼저인가 보다. 후배는 배 맨 앞에 설치된 국기 계양기가 있는 난간 위에까지 걸터 올라 모자와 양손을 흔들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속이 ’찡‘하게 울리며 눈물이 핑돈다. “녀석하고는...”에라 모르겠다, 나도 양복의 윗도리를 벗었다. 목사의 체신이 무에 그리 중요하랴, 냅다 윗도리를 흔들며 “잘 가! 권소령, 이 녀석아, 군목역할도 잘하고 참모 역할도 잘해!”하며 옷을 돌리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고, 후배도 배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계속 모자와 양손을 저어 돌리며 서로 반쯤 넋 나간 사람처럼 이별의 애잔한 마음을 달래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무심한 항구의 갈매기들이 아침 햇살을 고즈넋하게 가르며 유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선상에 도열한 하얀제복들이 이젠 점. 점. 점으로만 보이며 아스라이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환송객들은 거의 나가고 없고 함께 동행한 교회의 집사님만 안타까이 우리의 별난 송별 몸짓을 보며 눈시울을 훔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에이, 항구의 이별이 이렇게 마음 메이게 할 줄 알았으면 오지 말 걸 그랬습니다.”며 말꼬리를 흐리고 있는데 집사님이 거든다. “목사님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보내는 사람도 이리 마음이 아린데, 저기 가시는 후배 목사님이나 군인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손 흔들며 보내니 보기가 좋습니다. 아무도 안오고 그냥 자기네들끼리만 떠났으면 군인아저씨들 마음이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한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아리아리하다. 단칸방의 우리 신혼방에 와서 우리 사이에 끼어자며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고,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던 후배라 그런가? 책 한 권 사보려고 끼니를 라면으로 떼울 때 그 귀한 라면을 나눠먹던 후배라 마음이 이리 찡한가? 좌우간 학교를 졸업하고 서로의 갈길에 충실(?)하느라 거반 15년을 넘게 못보던 후배가 순양함대의 군종참모가 되어 먼 객지에서 만났으니 속절없는 세월이 무심하기만 했다. 공항에서의 이별도 보내고 돌아 나오는 걸음이 무거웠는데, 이렇게 헤어지는 항구의 이별은 정말 내가 먼 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구나하는 고독감을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힘들어하는 감정을 눈치챘는지 운전을 하시는 집사님의 너스레가 많아졌다. 차창에 기대어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맞으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김 목사, 마음이야 아프겠지만 이런건 아름답고 멋있는 이별이쟎아, 니네들은 기쁨으로 또 만날 것이니까, 이별은 이렇게 다음에 더 깊은 사랑으로 만날 것을 기대케 하는 이별이라야 돼 알겠니? 누구를 만나고 사귀든 그런 이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름다운 성도의 삶이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래요, 주님, 그런 아름다운 이별을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전역하고 부산의 역사 깊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후배를 코비드19 상황이 끝나면 한번 볼 수 있겠지… 시드니의 아침은 언제나처럼 위대했답니다. 김호남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29/04/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שְׁמָע ישְׂרָאֵל ! (세마아 이스라엘!- 들으라 이스라엘아!)로 시작되는 구약 신명기의 언약 구문에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는 이 언약을 잘 지켜 순종하면 생명과 복을 누리리라는 것과 또 하나는 이 언약은 여기 있는 너희들 뿐 아니라 장차 태어날 너희의 후손들과도 맺는 언약이라는 특징이 있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늘 이렇게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며 전수하는 특징이 있고, 그 전통은 모세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도 이어진다. 여호수아 역시 가는 곳마다 기념비를 세웠는데, 후세에 그의 자손들이 물으면 시청각 교육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얼마 전에 3.1절이 지났다. 여기가 한국이 아닌 호주여서 그런지 삼일절이 왔는지 가는지도 모르게 지났다. 하긴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과 광복절이니, 개천절이니 하는 국가적 기념일도 여기서는 무심하게 지나기는 별반 다르지 않으니 삼일절이 그냥 지났다고 해서 문제삼을 일도 아니긴 하다. 본 칼럼이 주로 미래 지향적 성향의 글인데 몇몇 지인들이 국가 기념일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따라 옛날에 썼던 글 중의 일부를 다시 다듬어 써 보기로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신 불신 간에 인간은 자신의 공적을 널리 자랑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세대가 겪었던 위대한 경험들을 후손들이 길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일과 귀감이 될 만한 일들이라면 당연히 그리 해야 하리라. 여호수아 장군이 요단강을 건넌 후 돌 비석을 세운 것처럼 말이다. 지난 80년대 한국의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인 이규태씨(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칼럼에 의하면 조선 중후반기에는 마을마다 고을마다 원님의 공적을 칭송하는 비석이 너무 많이 세워졌고, 이에 대한 후유증도 심각했다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개 꼬리 비석’, ‘수렁밭 비석’, ‘뻐꾸기 비목’ 등이 창궐(?)하여 후대에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였는데, 그래서 영조 임금은 ‘금비령’을 발포하고 최근 30년 이내에 세운 비석은 다 파괴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한다. 그 중에 ‘개 꼬리 비석’은 고을 원님이 새로 부임할 때 마을 사람들이 미리 그 부임하는 고을 원님의 덕성을 높이 칭송하는 ‘선정비’를 마을 입구에 세우는 것이다. 마치 얻어맞기 전에 미리 꼬리를 흔들어 주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개 꼬리 같은 마음으로 세워두는 공적비인 것이다. ‘수렁밭 비목’이란 그 지방에 암행어사가 감찰한다는 소문이 돌면 지방의 원님은 자신의 선정을 칭송하는 공적비를 세워서 그 암행하는 어사에게 보이고 싶은데, 그게 새로 급조해서 만든 것이면 속이 보이니까 비목을 새겨서는 근처의 미나리꽝 같은 물속에 잠겨 놓았다가 마치 몇 년을 비바람 맞은 비목인 것처럼 위장해서 마을 입구 근처에 몰래 세워놓는 것이 수렁밭 비목이라 한다. 또한 ‘뻐꾸기 비목’은 고을 원님이 역시 마을의 유력자와 결탁해서 세우는 자신의 공적비인데 뻐꾸기는 원래 꾀꼬리의 둥지에 자기 알을 까넣는 그런 얌체같은 새인데, 뻐꾸기 비목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칭찬을 해서 조정에 그 선정이 알려지도록 하기 위해 고을 유력자의 손을 빌리는 것이 마치 뻐꾸기의 꾀꼬리 둥지 침탈같다는 것이다. 그런 웃지 못할 일화는 너무나 많다. 예를 들면 어느 고을의 유력자가 愛民善政碑’(애민선정비)를 세우면 며칠 후에 그 비문은 愛緡善丁碑(애민선정비)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그런데 뒤의 ‘민’자는 백성 ‘민’자가 아니고 ‘돈 꾸러미 민’자이며 ‘정’자도 ‘갈고리 정’인 것이다. 수탈하던 악덕 원님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백성들이(금일송차도/今日送此盜-오늘 도눅님께서 떠나신다)라는 비목을 세워 그 떠나는 원님을 흉보면, 떠나가던 원님은 말에서 내려 (명일래차도/ 明日來此盜-내일 도둑이 다시 올 것이다)라고 다시 고쳐 쓰고 떠났다 한다. 참 한심스런 나으리에, 불쌍한 백성들이다. 한국이 민주화되었다하고,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에 진입했으며, 군사력은 7위 정도로 랭크되어있다 한다. 진보나 보수 정권이 서로 정권을 주거니 빼앗거니 하면서 지난 25년여 동안 한국은 IMF의 어려움이나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재정난 등을 잘 극복하며 신기할 정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별히 속칭 ‘한류라 하는’ 문화적 영향력은 세계 5위권 안으로 진입한 것 같아 감사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런 빛나고 있는 조국이 서로 정권을 잡으려는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들의 과도한 경쟁으로 백성들을 양편으로 갈라놓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고, 그 와중에 ‘공복’으로서의 의무감을 망각하고, 고급 정보로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일부, 물질과 출세에 양심을 팔아버린 공무원들로 인해 마음이 갑갑하다.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청백리’니 ‘공복’이니 ‘지조’니 하는 단어의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는 말이 실감나고,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한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발전하면서, 지키려하고, 나누고, 누리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며 기도한다. 이민자들에게 삼일절은 어떤 느낌으로 남아 있을까? 흔히들 아버지와 아들의 고향이 다른 사람을 우리는 이민자라 부른다. 하지만 고향이 달라도 우리의 정체성은 유지되고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특별히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의 그것도 존중해 주어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것이 4차 산업혁명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존경할만한 어른이 없다거나, 신뢰할만한 지도자가 부재하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스럽기까지 하지만, 다시, 성경의 비석 세우기와 조선의 비석 세우기의 차이점을 생각하며, 마땅히 지키고 전수해야 할 가치들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누나와 선열들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김호남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25/03/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상유이말(相濡以沫)과 삼독(三毒) 그리고 주님의 사랑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 중 서울대에서 특강을 하면서 “역사적으로 양국 국민은 어려울 때마다 서로 도왔다”며 강조한 문자가 ‘상유이말’이다. 그 내용은 장자(莊子)가 길을 가다가 물이 말라버린 연못을 지나게 되었는데, 말라가는 연못 바닥에는 물고기들이 퍼덕거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자는 문득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물이 빠지는 연못에 있다가 같이 곤경에 처한 것인데 물고기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입으로 거품을 내뿜어 서로의 피부를 촉촉이 적셔주며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서로 상(相 ), 젖을 유(濡), 써 이(以), 거품 말(沫)’ 즉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있는 힘을 써서 남을 돕는 행동을 비유하는 말이다. 물질문명의 극치를 이루는 듯한 세월은 하수상하고, 더구나 코비드-19 팬데믹 상황은 아직도 사회 전영역을 통제하여 인류를 두렵게 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모두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 기독교 지성의 산실이 되어야 하는 신학대학의 학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 시대의 문제는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교회와 신자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등등의 문제에서 우리 신학대학은 무언가 답을, 방향을 제시하고 성도와 교회를 견인해가야 하는 작은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일찍이 불교에서도 탐욕(貪慾)•진에(瞋恚)•우치(愚癡), 이 세 가지 번뇌가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 경계했다. 삼독은 모두 어리석은 자신인 ‘나(我)’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자신’스스로에 미혹되어 행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우치’이고, 그 ‘우치’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맞으면 ‘탐욕’을 일으키고, ‘나’에게 맞지 않으면 ‘진에(노여움)’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해설). 무슨 말인가? 세상이 모두 그릇된 근원, 즉 불완전한 인간(자신)이 기준이 되고, 근원이 되며 사물을 판단하며, 사람과 일들을 대해 가기에, 자기 기분과 맞으면 그것을 더 많이 누리려고 탐욕을 부리며, 자기랑 안 맞으면, 분노를 표출하며 미워한다는 것이다. 즉, 매사를 자기 중심으로, 자기가 기준이 되어 평가하고 판단하면 인간은 그 삼독의 위험에 노출되고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차가운 기계 문명, 콘크리트 문명의 한 복판에서 가슴 저미어 오는 사랑을 꽃 피워 올리는, 그런, 신앙을 삶으로 살아내는 기독자를 보고싶다. 나 혼자만의 염원일까? 더구나 익숙한 문화와 조국을 떠나 ‘인권과 기회의 나라’ 호주로 이민 와서 살아가는 외로운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더욱 간절한 것이 돈이나 명예보다 따뜻한 영혼을 가진 조용한 사랑의 실천자들 아닐까? 어떤 시인은 ‘외로우니까 인간이다!’ 라고 외치기는 했지만, 불신 세상의 사람들도 ‘상유이말(相濡以沫)’을 내세우며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며 살자고 외치고 있다. 근데 왜 그런 삶이 요원할까? 굳이 불교적 용어를 빌려 설명해 보자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기준의 잘못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기뻐하거나, 보람을 느끼거나 혹은 분노하거나 미워하는 기준이 ‘나(我)’가 되기에 그렇다는 불교의 분석은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는 혜안에 기초해 있다. 여러 해 전에 ‘흙 속에 저 바람속에’, ‘축소지향형의 일본인’이란 책으로 유명한 이어령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유럽의 개는 도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독을 지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탁월한 식견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영특한 것 같지만 기실은 허물지고, 불완전한 인간이 기준이 되면 그렇게, ‘진에’를 일으키거나 ‘탐욕’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 인생 아닐까? 주님이 기준이어야 하고, 진리인 성경이 기준이어야 한다. 이렇게 창조주를 떠난 인간의 허망함이 우주의 광활한 허공을 배회하는 동안에 세상의 영혼들이 목말라 기다리는 것! 그건 다름아닌 참 사랑일 것이다. 막 떠들거나 자랑하며 나대지 않으며 조용히 뒤에 서 있을 수 있는 용기, 잔잔히 자신을 낮추어 이웃을 섬겨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조그만 헌신, 서로를 먼저 배려주는 겸허한 마음, 존중히 여겨 높여주는 작지만 따뜻한 언어들! 헌신과 수고에 대한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고 강도 만났던 이웃을 조건 없이 치유해주었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던 우리 주님께서 기대하는 성도의 삶!이란 ‘나(我)’가 기준이 아니라, 주님과, 말씀이, 교회의 덕이 기준이 되는 그런 삶에 헌신하는 신자다운 신자! 그를 보고싶다. 우리 주님께서 강조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갑자기 설교가 되어버렸나 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상유이말’과 ‘삼독’이란 말이 오버랩되었고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이 생각이 났다.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주여, 우리를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로 작은 아쉬움을 마무리한다. 김호남 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25/02/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

‘상사’와 ‘유사’의 시대를 건너는 기독교 오늘은 그림 하나를 감상하며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이 그림 보신 적이 있으시죠? 이 작품은 아마도 포스트모던적 현대 사상을 대변하는 그림이 아닐까 여겨진다. 필자는 화가도 아니고 미술 평론가도 아니기에 이 그림이 가진 진면목을 다 표현해 낼 수는 없겠지만, 이 그림이 시사하는 바와 현대 사상의 접목점에 대한 기독교적 반성을 해 볼 수 있는 있겠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년)는 흔한 파이프를 그려 놓고는 아래에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 놓았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파이프를 재현한 그림 속의 대상은 파이프가 맞지만, 화가는 관습적 사고방식의 허상을 환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림과 문장을 모순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즉, 화가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고 역설한다. 르네상스 이후 계몽기와 합리주의를 거치면서 형성된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옮겨 놓는 것’을 최고의 그림으로 여기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좀 당황스럽겠지만,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보이는 화폭 속의 대상물이 파이프 자체가 아니라는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도 한다. 이것이 만약 진짜 파이프라면 담뱃불을 붙일 수 있어야 하고, 또 어찌 파이프가 자기 혼자 덩그러니 허공에 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저 그림속의 파이프를 만지면 목재질의 파이프 질감이 아니라 물감 묻은 캔버스의 투박한 천자락을 만지는 느낌일 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 즉 기존의 옳다고 받아들여 지던 모든 관점들을 한 번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하고 다시 생각해 보면서 현대 사상이 발전하고 정리되고 있다. 그러면서 각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개발되고 그것이 적극적으로 현대의 마케팅과 정책 결정에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식의 고고학’, ‘광기의 역사’ 등의 명저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철학자 미쉘 푸고(Michel Foucault: 1926~1984년)는 위의 마그리트의 그림을 평하며 ‘상사(similitude)’와 ‘유사(resemblance)’의 개념을 이끌어낸다. ‘유사’란 어떤 원본이나 본체가 있고 그와 유사한 제품, 작품 등을 말하며, ‘상사’란 원본이나 본체는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이 없고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찍혀 나오는 비슷한 제품과 작품들 사이의 닮음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옛날에는 명품과 비슷한 짝퉁, 원본과 ‘유사’한 제품일수록 가치가 있었다고 여겨졌으며, 그래서 ‘원본/본체’는 더 없이 귀하게 여겨졌다는 뜻이다. 그에 반하여, 요즘에는 원본의 의미는 별 가치가 없고, 그 원본에서 수없이 찍혀 만들어지는 많은 서로 비슷한 제품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오직 그 ‘기능과 역할’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아무도 삼성 캘럭시 폰이 원본이니 짝퉁이니 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 산 폰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 에만 관심한다는 말이다. 즉, ‘유사’란 원본을 인정하고 원본의 소중함을 아는 ‘비슷함’이고, ‘상사’는 동일한 제품들 사이의 ‘비슷함’을 말하며 오직 기능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사고이다. 이런 현대철학적 사유가 각종 사회정책에 반영되고, 경제 활동에 반영되고 있는데, 그래서 잉태된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다문화 제도’이며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과거에는 토착 세력의 텃세가 엄연했는데, 이제는 그것을 내려놓고 외부로부터 오는 다른 문화와 배경의 사람들도 다 같이 일정한 권한이 있음을 인정하는 이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같은 이민자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제도인지 모른다. 이렇게 현대 사상이 사회 일반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렇게 원본의 존재를 부정하며 현재의 기능과 역할만 강조하는 ‘상사’의 시대만을 주창하게 되면, 인간은 곧 혼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면 지켜야할 윤리와 도덕의 절대적 기준(원본)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발전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완벽하지는 못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삭제해 버리면 인간 각자가 기준이 되고, 절대 선이 된다. 그러면 문화적이어야 할 인간은 곧 바로 잔인성과 가학적 폭력성을 합리화하게 되고, 그 힘을 제재할 어떤 구실도 잃게 된다. 모두가 다 선이고, 모두가 다 법이 되면 누가 누구를 어떻게 통제한다는 말인가? 이런 혼란의 시대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한 분’ 구주 예수를 온전한 마음으로 따르며 그분을 기준으로 삼는 신앙을 잘 지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인간이 다 존중받아 마땅한 위엄과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위에 홀로 영광 받으시며,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다면 이 흔들리는 시대 가운데서도 넉넉한 평강(平康)으로 규모 있는 삶을 영위해 갈 수 있지 않을까? 할렐루야! 김호남 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사진설명: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11/02/2021
김호남 박사의 목양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