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 되었다. 비가 유난히 많았던 긴 겨울이 지나고, 자카란다 보랏빛 창연한 요즘은 산책로를 따라 걷기에 좋은 날씨이다. 하루에 만보는 걷는 게 기본이라며 주위에 제법 성공 사례들을 자랑하는데, 나는 애를 써야 7-8000보를 걷는데 그치곤 한다. 그것도 어쩌다 골프를 치거나 일부러 바다나 산을 찾을 때이고 평소엔 두세번 사무실이나 집 주변을 걷는 것이 고작이다. 오늘은 사무실 앞에서 점심을 먹고 날씨도 화창해, 상가를 따라 이어진 주택가까지 넓게 사이클을 그려 주변을 걸었다. 1. 현상금 광고소방서를 지나 낯 익은 집들을 지나가는데, 언뜻 어느 집 앞 펜스에 현상금이 붙은 개를 찾는 사진 광고가 큼지막하게 눈에 들어온다.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Missing Dog이라 쓰고, 그 밑엔 현상금이 무려 $2500이나 된다고 써 놓았다. 개 이름은 ‘칠리’이고 입이 뾰족하고 코가 새까맣고 둥글고 오똑하고, 동그란 눈이 맑은 자그마한 포메라니언 종이다. 하얗고 황갈색 긴털이 샤워를 자주하고 털을 잘 빗어 줬는지 가지런하고 사진인데도 빛이 나는 듯하다. 개에 관한 정보를 담은 A1 정도의 큰 사이즈의 칼러 광고는 흰 바탕에 라미네이팅을 해서 반듯하고 비가 와도 젖거나 훼손 되지 않고 계속 보존될 수 있도록 세세한 신경을 썼다. 7월에 잃어 버렸다고 하니 벌써 4개월이나 되었다. 사람을 찾아도 그 정도 현상금을 붙이는 게 흔하진 않을텐데, 동네 집 앞 내붙은, 광고 한 장으로도 얼마나 개를 사랑하는 주인인지 짐작이 간다. 웬만한 사람보다 값이 더 나가는 드문 개이다. 좋은 종자인 것도 맞지만 사랑많은 주인을 만나니 주가가 오른 것이다. 2. 잃어 버린 개우리도 개를 잃어버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앞 마당에 풀어 놓고 있다가 누가 찾아와서 게이트를 잠시 여는 사이 빠져나가 며칠 만에 동네 카운슬이나 RSPCA에서 연락이 와서 찾은 적이 있었다. 오래 집에서 같이 살았는데도 우리 개들은 집을 찾지를 못하곤 했다. 작은 개는 집 부근에서는 다시 돌아 오곤했는데, 빈틈이 보여 뛰어 나간 때는, 너무 빨리 뛰어서 결국 잡지 못하고 동네 방네, 개 이름을 부르며 늘 다니던 산책로까지 먼 길을 돌아 다녀야 했다. 뛰쳐나간 개를 향해 나면서부터 먹이고 산책하고 했는데, 집도 못찾아오는 멍청이 같은 놈이라고 푸념을 해도 길을 뛰어들다 차에 치지는 않았을까? 앞만보고 뛰어 가다 길을 완전히 잃어 버리고 배를 굶고 있진 않을까? 추울 텐데 어디 피할 데는 있을지..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내일 이라도 연락이 오겠지.. 요행을 바라며 밤을 보내 적이 몇번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며칠 내에 연락이 와서 다시 개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집에서 10km이상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락이 오거나, 개를 발견한 사람이 잘 챙겨서 동네 동물병원(Vet)에 보내 칩에 있는 정보로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며칠동안 개를 재워주고 보살펴준 돈을 내고, 주인인 것을 확인하는 몇가지 절차를 거쳐야 개를 찾을 수 있지만 반가움은 말할 수 없다. 지금은 아내가 다리를 다쳐 무릎도 아프고, 우리가 긴 여행을 다녀오는 사이 아들이 돌 볼 사람을 찾아 보내 집에는 개가 없다. 오늘처럼 개를 찾는 광고를 보면, 불현듯 개들이 보고 싶다. 나와 산책을 다니던 덩치 큰 ‘장군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집에서 자라 정이 많이 들었다. 아내는 가끔 개 얘기를 하다가, 멈칫, 보고 싶은 마음에 울컥하곤 한다. 아내는 만약 내가 죽으면, 그 때는 다시 개를 키울 것 같다고 한다. 3. ‘돌아온 랫시’우리가 어릴 때 즐겨 보던 ‘돌아온 랫시’는 한 가족이 다른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다른 개들의 공격을 받아 개를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다가, 희망을 잃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잃어버린 개가 6개월 만에 4천킬로 떨어진 거리를 횡단하여 주인을 만나게 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시리즈 드라마였다. 사진 광고를 만든 개 주인은, 4개월이 되었지만, 이런 기적 같은 재회를 꿈꾸며 동네마다 포스터를 붙였을 것이다. 불쑥 야곱이, 끔찍이 사랑하던 아들 요셉을 잃어 버리고 얼마나 그를 기다리고 보고 싶어 했을까? 생각이 든다. 나중에 이집트에 내려가, 막내 ‘베냐민’ 마저 볼모로 잡혀가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버지 야곱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이 봄에, 이태원에서 숨진 어린 청년들을 마음에 뭍는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돌아온 탕자를 맨발로 뛰어나와 그를 껴안고 볼에 입 맞추고, 상속자의 반지를 끼워주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다시 내 앞에 돌아 오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그대로 캡처해 놓은 듯하다. 새 봄에, 잃어 버린 아들이 돌아 오기만을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정원일(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