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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처소엔 다양한 나무들이 있다. 아름드리 유칼립투스를 비롯해서 목련, 꽃 사과, 귤, 매화, 꽃 단풍, 뽕나무, 플라타나스, 대나무 등등이다.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바로 오죽(烏竹)이다. 이곳 시내와 산중에 오가다 보면 무더기 황죽(黃竹)은 가끔 볼 수가 있는데 오죽은 드물게 눈에 띈다. 헝클어지고 구부정한 황죽에 비해 오죽은 곧게 자라면서 그 결이 매우 단단해서 그 어떤 기개감이 느껴진다. 오죽을 더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올해는 초봄에 갑자기 더위가 와서 계절의 감각에 혼란이 올 정도였는데 얼마전에 죽순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아직은 여름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마당 한 켠 울타리 근처 척박한 땅에서 지속되는 가뭄 속에서도 이곳저곳에서 죽순들이 씩씩하게 올라오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의 강한 생명력을 엿볼 수가 있다. 일년에 단 한 번 그것도 한달 이내에 15m 정도 자라고 나서 성장을 멈추고 있다가 50년에서 70년 지내다가 단 한 번의 꽃을 피우고는 사라지는 특성을 갖고 있는 이 대나무는 이름 그대로 나무인지 식물인지 구글에 알아봤더니 식물이라는 이외의 답변을 들었다. 나무로 인정을 받으려면 몸체의 부피가 점점 켜져야 된다는데 대나무는 죽순이 올라올 때 그대로의 크기로 위로만 자라기 때문이란다. 그 결이 워낙 단단하다 보니 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서 그의 체면을 살려준 듯하다. 나무인 듯 식물이고 식물인 듯 나무라 하니 전청조 만큼이나 그의 가름이 아리송하다. 그런 대나무 여서 인지 상당한 특징도 갖고 있다. 매란국죽(梅蘭菊竹)의 4군자(四君子)에 자주 등장하듯이 꼿꼿한 선비의 변함없는 지조에 비견된다. 그러면서도 속은 텅텅 비우는 무욕의 청렴성을 엿보게 하는 특성도 있다. 항상 푸른 잎과 탄탄한 뿌리로 인해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외줄기의 높은 키도 그 특성에 더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한 여러가지 상징성을 가진 대나무 중에서도 본인이 유독 관심을 갖는 것은 대나무 마디이다. 어릴 땐 마디 간격이 매우 좁다가 커질수록 그 간극이 점점 넓어진다. 줄자로 재어 보았더니 거의 1cm에서 2cm 정도였다. 마디는 생장의 기점이며 그 마디를 기반으로 또다른 성장을 도모한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고비고비 맺어진 인생의 그 마디는 어떻게 생겼으며 그 지점을 어떻게 바라보며 지금에 이르렀을까? 소년과 청년 등의 성장의 매듭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여러 유형의 육체적 정신적 고락을 느끼면서 여기까지 왔다. 마디 없는 대나무가 없듯이 고뇌를 겪지 않은 인생도 없다. 단지 그 마디 마디의 고비를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방향의 새로운 마디를 형성했는가에 따라서 지금에 이뤄진 최종의 그것에서 행, 불행의 분기점이 된다. 문제는 “오직 지금 여기”이다. 과거에 맺었던 여러 종류의 매듭도, 다가올 여러가지의 마디들도 함께 잊어버리자. 다만 오늘 이 시각에 주어진 찰나적 삶에 감사하며 마음을 모으자. 그러면 지나간 아픔의 마디와 다가올 불안한 상념의 매듭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산 고산 윤선도는 그의 시조 오우가(五友歌)에서 대나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읊조렸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계절 내내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비우면서 단단해진 대나무, 그 나무의 높은 키를 바라보면서 내 인생의 마음속 마디 마디를 응시해 본다.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23/11/2023
금요단상 - 기후 스님

한 달에 첫 번째 일요일 하루만 비웠던 블루마운틴 처소를 한 달 동안 비우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정법사를 지키고 있는 설우 주지가 9월 한 달간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이제 겨우 여린 싹이 올라온 무, 배추, 옥수수 등등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물가에 두고 가는 아기처럼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당한 양의 감자 싹은 전혀 보이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싹이 올라오겠지’ 하면서 정법사로 내려갔다. 사찰에서의 일상생활은 늘 행해왔던 일이긴 하나, 이른 아침(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기도드리는 것이 마음속 부담으로 느껴졌다.원래 성정이 게으르고 약골 체질인 데다가 흰머리가 많이 보이는 세월의 무게 때문이었다.비가 오지 않고 갑자기 날씨가 더워지면서 산중의 채소들이 걱정이 되었다. 지인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운틴에 올라가서 갖가지 채소들에 물을 듬뿍 주기로 언약은 했으나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럭저럭 한 달이 지나고, 10월 2일에 산에 올라와서 보니 옥수수 및 채소들은 그나마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나, 감자 싹은 전혀 보이지 않고 엉뚱한 잡초만 밭을 뒤덮고 있었다. 가뭄이 계속될 때 감자를 너무 얕게 묻은 것이 마음에 걸리곤 했는데 올라와서 보니 생각 그대로였다.몇 개를 파 보았더니 싹이 트려다 그대로 말라 있었다. 감자를 심은 날 오후에 식품점에 가서 크고 잘생긴 감자 25kg을 저울에 달아 갖고 와서 해지기 전에 모두 심는다고 너무 서두른 것이 문제였다. 무슨 씨앗이든지 지름의 1.5배 정도 깊이로 묻어야 한다는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면서도 허겁지겁 너무 얕게 묻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짐작한 그대로였다. 잡초를 뽑아내고 감자를 새로 심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모든 농작물은 수분이 있어야 생장이 가능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빛과 토양, 공기와 수분 등은 바로 생명 그 자체와 동일하다.일찍부터 생명의 본질과 그것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서 깊은 사색을 한 이가 있었다. 에모토 마사루라는 일본인이 바로 그다. 그는 10여 년간 생명의 파동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연구하다가 물의 신비성과 마주하게 된다.인간이 형성되는 최초의 시기인 수정란 때는 99%가 물이고, 막 태어났을 땐 90%, 완전히 성장하면 70%, 생명이 끝나는 때는 약 50%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인간은 바로 물’이라는 등식에 접근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70%를 이루고 있는 물을 깨끗하게 하며 안정감있게 흐르도록 하게 하면 가능하다는 전제에 이른다. 건강을 해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속의 물, 즉 혈액이 고여 그것이 썩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 원인은 감정, 색깔의 흐름이 크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눈 결정은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는 귀중한 정보를 얻은 후 ‘물의 결정도 각각 다른 얼굴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그는 고성능 현미경을 구해서 일반 냉장고에서 물을 얼려 두 달 동안 연구한 끝에 한 장의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깨끗한 육각형 다이아몬드형의 안정된 결정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돗물이 아닌 순수한 자연수에 한해서였다. 그때부터 여러 곳의 물이 각각 다른 결정체를 나타내 보이는 것에 착안해 물도 파동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이후 인간의 감정이 물에 어떤 영향을 전달하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까지로 발전한다. 뿐만 아니라 소리와 문자 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을 담은 병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자를 비췄을 땐 조화로운 육각형 모습을 보여준 반면, ‘망할 놈’ ‘넌 안돼’라는 부정적인 글귀엔 찌그러진 형태를 보여준 것이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며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파동으로써 상대와 자신에게 동시에 영향을 준다. 어떤 말을 하면서 살아가는지가 몸의 70%를 이루고 있는 물의 성질을 바꾸고 그 변화는 바로 우리 몸에 나타난다.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은 마음도 건강하다. 지금은 세상이 뒤틀렸다. 그것은 마음이 뒤틀렸기 때문이다. 전쟁의 불꽃이 곳곳에서 번쩍이고 불신과 증오가 괴성으로 들썩이는 인간 삶의 현장, 모든 인류가 함께 희구하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은 정녕 이상 세계로만 남아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답변은 물에 있으며 그 물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과 지혜와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씨를 가꾸는 일이다.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19/10/2023
금요단상 - 기후 스님

얼마전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분이 나를 만나서 내가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염라대왕이 지금까지 잡아 가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찡그린 얼굴로 푸념을 한 일이 있었다. 그분은 올해 97세의 고령으로 혼자서 지내고 있는 분이다. 사는 것이 그만큼 괴롭고 힘이 든다는 뜻일 것이다. 연세가 들면 대부분이 자는 잠에 이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도 그 말속에 숨겨져 있다.생로병사의 기본적인 자연 현상의 과정에서 발생되는 우비고뇌(憂悲苦惱)의 여러가지 고통을 호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위로가 되는 좋은 말씀이 있으니 바로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이다. 보배처럼 소중한 지혜의 말씀이란 뜻이다. 이글은 중국 명나라 초기에 묘협(妙協)이라는 승려가 지은 것으로 글은 짧지만 뜻은 깊다. 10개의 문단으로 이뤄진 그 말씀 중에 첫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병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병이 없을 수가 없다. 만일에 병이 없어서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고 가정을 해보면 저절로 쓴 웃음이 나온다. 자연으로 생겨진 모든 물체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변화가 있고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본래 없던 곳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제자리로 돌아갈 뿐이다. 그런 뜻을 대부분은 이해는 하고 있지만 병고로 인한 고통만큼은 최소화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 되다 보니 고뇌는 배가 되는 것이다. 모든 병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그 원인과 예방, 치료약도 많다고 주야로 선전을 하지만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는다. 묘협은 그 부분에 착안해서 병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시각을 강조한다. 모든 병은 자연스런 현상의 한 부분으로 가볍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문구는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나니라. 여기선 한 발 더 앞서 나간다. 병을 약으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노화로 인한 병들도 불편은 하지만 이해되는 부분이 있으나 그전에 생기는 온갖 병들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을 해 볼 수가 있다. 대부분의 병의 원인은 탐욕에서 생긴다. 물질, 이성, 명예, 식욕, 도박이 그것이다. 의식주의 넉넉함으로 안정을 바라고 싶은 기본적이 희망이 과도하게 부풀러 지게 되면 그것이 탐욕으로 커지게 되어 나중엔 풍선처럼 터지고 만다. 그래서 생겨진 파탄과 병들에 대해서 원인규명을 잘해서 반복하지 않게 된다면 병이 바로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화타(華陀)라는 유명한 의사가 있었다. 못고치는 병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한 분이었다. 그러나 자기 어머니는 늘 아프다고 했다. 어느날 그의 아들이 장기간 출타 중에 화타의 제자가 스승의 어머님을 진맥을 하고나서 세 첩의 약을 지어 드렸다. 그는 평소에 스승의 처방에 못 마땅해하고 있었던 처지였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좋아서 크게 자랑을 하였다. ‘이제 병이 다 나아서 살 것만 같다’고… 그러자 화타가 크게 한 숨을 내쉬면서 이제 큰 일이 났군 이라고 하였다. 얼마 뒤 그의 어머니는 모진 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있던 병이 없어져서 너무나 좋다고 지나치게 나대다가 지독한 병에 걸려서 백약이 무효가 된 것이다. 몸과 마음의 병을 함께 다스리며 병고로써 양약이 되도록 고차원의 인술을 베푼 화타의 효심에 신출내기 제자가 그만 큰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송구스럽고 부끄러운 나머지 고산 준령에 들어가서 깊은 명상과 가없는 노력으로 인하여 스승에 버금가는 명의가 되었다고 하니 그 또한 병고로써 양약을 삼게 된 지혜로운 의사라고 할만하다.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07/09/2023
금요단상 - 기후 스님

얼마전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분이 나를 만나서 내가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염라대왕이 지금까지 잡아 가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찡그린 얼굴로 푸념을 한 일이 있었다. 그분은 올해 97세의 고령으로 혼자서 지내고 있는 분이다. 사는 것이 그만큼 괴롭고 힘이 든다는 뜻일 것이다. 연세가 들면 대부분이 자는 잠에 이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도 그 말속에 숨겨져 있다.생로병사의 기본적인 자연 현상의 과정에서 발생되는 우비고뇌(憂悲苦惱)의 여러가지 고통을 호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위로가 되는 좋은 말씀이 있으니 바로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이다. 보배처럼 소중한 지혜의 말씀이란 뜻이다. 이글은 중국 명나라 초기에 묘협(妙協)이라는 승려가 지은 것으로 글은 짧지만 뜻은 깊다. 10개의 문단으로 이뤄진 그 말씀 중에 첫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병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병이 없을 수가 없다. 만일에 병이 없어서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고 가정을 해보면 저절로 쓴 웃음이 나온다. 자연으로 생겨진 모든 물체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변화가 있고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본래 없던 곳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제자리로 돌아갈 뿐이다. 그런 뜻을 대부분은 이해는 하고 있지만 병고로 인한 고통만큼은 최소화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 되다 보니 고뇌는 배가 되는 것이다. 모든 병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그 원인과 예방, 치료약도 많다고 주야로 선전을 하지만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는다. 묘협은 그 부분에 착안해서 병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시각을 강조한다. 모든 병은 자연스런 현상의 한 부분으로 가볍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문구는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나니라. 여기선 한 발 더 앞서 나간다. 병을 약으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노화로 인한 병들도 불편은 하지만 이해되는 부분이 있으나 그전에 생기는 온갖 병들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을 해 볼 수가 있다. 대부분의 병의 원인은 탐욕에서 생긴다. 물질, 이성, 명예, 식욕, 도박이 그것이다. 의식주의 넉넉함으로 안정을 바라고 싶은 기본적이 희망이 과도하게 부풀러 지게 되면 그것이 탐욕으로 커지게 되어 나중엔 풍선처럼 터지고 만다. 그래서 생겨진 파탄과 병들에 대해서 원인규명을 잘해서 반복하지 않게 된다면 병이 바로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화타(華陀)라는 유명한 의사가 있었다. 못고치는 병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한 분이었다. 그러나 자기 어머니는 늘 아프다고 했다. 어느날 그의 아들이 장기간 출타 중에 화타의 제자가 스승의 어머님을 진맥을 하고나서 세 첩의 약을 지어 드렸다. 그는 평소에 스승의 처방에 못 마땅해하고 있었던 처지였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좋아서 크게 자랑을 하였다. ‘이제 병이 다 나아서 살 것만 같다’고… 그러자 화타가 크게 한 숨을 내쉬면서 이제 큰 일이 났군 이라고 하였다. 얼마 뒤 그의 어머니는 모진 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있던 병이 없어져서 너무나 좋다고 지나치게 나대다가 지독한 병에 걸려서 백약이 무효가 된 것이다. 몸과 마음의 병을 함께 다스리며 병고로써 양약이 되도록 고차원의 인술을 베푼 화타의 효심에 신출내기 제자가 그만 큰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송구스럽고 부끄러운 나머지 고산 준령에 들어가서 깊은 명상과 가없는 노력으로 인하여 스승에 버금가는 명의가 되었다고 하니 그 또한 병고로써 양약을 삼게 된 지혜로운 의사라고 할만하다.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07/09/2023
금요단상 - 기후 스님

올해 겨울은 제법 겨울 값을 한 듯하다. 추위가 좀 더 일찍 찾아온 탓도 있었겠지만 640 여 미터의 고지대의 외딴 집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 듯하다. 어서 빨리 따뜻한 봄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속에서 불쑥불쑥 올라왔다. 7월이 지나가면 봄이 오겠지? 몹시 더울 때면 그래도 난 겨울이 더 좋다며 호들갑을 떨다가 막상 추위가 오래 지속되면 따뜻한 봄을 기다리게 되는 변덕쟁이 중생의 인생살이인 듯하다.  8월이 되자 아침, 저녁은 좀 쌀쌀해도 낮 기온은 상당히 많이 올라갔다. 이때가 되면 나의 손길은 무척 빨라지게 된다. 무우, 배추, 상추, 옥수수, 호박, 도라지 등등 심을 것이 너무 많아서 이다. 거기에 비해 텃밭이 좀 부족해서 땅을 좀 더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내 가슴속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곳은 약간 경사지고 여러 해를 거듭하면서 외부 흙을 많이 반입한 곳이라 땅파기가 매우 수월하다. 7월 초순부터 오전 10시쯤 되면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내려간다. 부드러운 흙을 일념으로 파면서 아래쪽으로 밭을 키워 나간다. 땅심이 매우 깊어서 큰 힘이 들지 않는데다가 내 생각대로 더 넓어져 있는 밭을 바라보는 내 마음 속에선 은근한 미소가 나와진다. 희망이 현실화된 그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만족감의 정서적 표출이리라.  오후 3시 쯤에 다시 나가서 호미질을 하다 보면 텃밭 앞 가로등에 불이 켜질 때까지 일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루를 마감하는 산중의 호젓한 분위기가 그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땅거미를 드리운다. 뭇 새들이 잘 곳을 찾아 짹짹거리며 날개 짓을 부지런히 하고 개를 앞세워 산책하던 주민들의 발걸음이 한결 더 빨라진다. 멀리 보여지는 산색이 희미하게 보이면서 철거덕 거리며 지나가는 기차 소리도 쉴 때를 기다리는 듯 들려온다. 이럴때 옛 말이 생각난다. 새들이 편안하게 잘 쉬려면 좋은 나무숲을 선택해야 되고 사람이 지혜롭게 살아가려면 현명한 부모와 좋은 친구를 만나야 된다고. 저녁을 먹고나서 잠자리에 누워 오늘 한 일을 생각으로 그려본다. 부드러운 흙으로 평평하게 만들어진 더 넓은 텃밭, 내일은 왼쪽 울타리 쪽으로 그 일을 계속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빨리 내일이 왔으면 하는 마음을 갖으면서 꿀 잠을 청한다.  흙 또한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굼벵이와 지렁이 등등 수많은 생명들이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한량없는 종류의 작물들을 길러내어 우리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고 있다. 마치 우리를 낳아서 길러준 어머니의 자애로운 품속이 그를 닮았고 서로서로에게 이익을 나눠주고 받으며 살고 있는 인생살이의 현실이 또한 그와 같다. 그래서 흙이야 말로 생명이며 뭇 생명의 안식처이다. 그러한 큰 음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의 일상, 자연과 인간에게 거듭되는 고마움도 오히려 부족하다. 그런데도 우린 왜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불평불안한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지혜롭게 살다 간 고인의 뜻을 한번 새겨보자. 어느 날 먼 곳에서 그분을 만나러 온 도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참다운 삶의 모습입니까?”  “평상심이 그것이니라” “어떤 것이 평상심입니까?”  “배고프면 밥 먹고 고단하면 쉬는 것이니라”  “그런 것은 3살 먹은 애기도 하고 있습니다”  “ 그렇지요,  3살 먹은 애기도 하고 있지만 80이 된 노인도 느껴서 실천하지 못한다오” 자연과 인생을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보고 자기 마음 씀씀이에 대한 보다 세밀한 통찰력의 부실함 때문이 아닐까?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10/08/2023
금요단상 - 기후 스님

코로나로 인해서 몇 년간 하늘 길이 막혔다. 그 시간이 길어지게 되자 언제나 그전처럼 자유로운 길이 열리게 될까 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지냈다. 그 뜻이 이뤄지게 된 올해 초부터 너도 나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흐름을 타고 세계 130여 개의 나라를 여행했다는 나와 친분이 있는 승려가 4 번 째의 호주 여행을 위해서 이곳에 온다는 연락이 왔다. 이른 아침 그 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공항으로 나갔다. 한 참을 기다리다가 그와 만났다. 내일 모레면 80을 바라보는 그 나이에 110 Kg의 많은 짐을 갖고 나타났다. 큰 가방 2개와 작은 것 2 개 또 들고 다닐 정도의 걸망 3 개였다. 무엇이 이렇게 많으냐고 물었다. 남비, 솥단지, 주걱, 국자, 칼, 도마, 밑반찬 10 여 종류, 햇반 수십 개, 씻은 생쌀, 찹쌀, 누룽지, 영양제 5종류, 소금, 설탕 등이라고 웃으며 말해 주었다. 요즘은 각국 현지에서도 우리나라 식품이 많이 준비되어 있지만 여러가지의 혹독한 질병들을 수차례 앓은 나머지 지금은 기(氣)와 음식으로 특별하게 치료하는 기인(奇人)을 만난 이후 그분이 권장한 음식만 선택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세계 문화유산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영산재 작법의 전수인 활동을 하다 보니 목을 많이 쓰는 의식이 많아서 크게 피곤을 느끼게 되면 해외로 나가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습관되어 그렇게 되었단다. 이번엔 40일 동안의 여행인데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은 60일 내지 70일 정도 다녔다 했다. 상황이 이러니 그이와 동행할 사람은 조계종 승려 중엔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1990년대 인도, 스리랑카 등 5 개국 여행을 갔을 때 오직 작은 걸망 하나만 갖고 나섰던 나의 입장에선 그의 체력과 패기 등등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만 가져도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가 꼭 필요한 이도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의 행태와 내용도 이와 비슷하리라. 우린 각기 다른 모습과 상이한 조건 속에서 하나의 생명을 부지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생명은 하나인데 삶의 태도는 왜 그렇게도 다를까? 종자가 다르고(인因) 거름 및 북돋우기 등등의 도움이 다르니(연緣) 그 결과(과果)도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구조이다. 게다가 조상대대의 유전적 인자까지도 영향을 받아서 ‘나’ 라고 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태어났으니 다름이야 말로 자연적 현상이며 인과의 법칙에 부합되는 철칙이 되는 것이다.금강경 오가해(五家解)라는 유명한 경전에 보면 도홍이백춘자청(桃紅李白春自青)이라는 선구(禪句)가 나온다. ‘복숭아 꽃은 붉고 오얏 꽃은 희며 봄 풀은 푸르더라’는 뜻이다. 똑 같은 봄이라는 계절에 피어 내는 색깔은 모두 다르다는 의미이다. 생명의 하나됨의 고귀한 평등성에서 인연으로 인한 차별성을 표현하는 멋진 시구(詩句)이다. 우린 지금 다르다는 관념의 농간에 휘둘리어 크게 몸살을 앓고 있다. 옛 도인이 참된 진리를 깨닫고 보니 산은 높은 대로 물은 깊은 대로 그대로가 진리적 실체이며 삶의 전부라고 말씀하셨다. 눈이 어두운 범부는 높은 산을 뭉개서 수평선을 만들려고 갖은 잔꾀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렵고 삶은 고됨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있다. 보름 달이 천 개나 되는 호수에 잠겨 있다. 잔꾀 많은 원숭이 떼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달이 탐이 나서 건지려고 손에 손을 맞잡고 물 속에 들어갔다. 들어가면 없어지고 나오면 보인다. 계속 그 몸짓을 하다가 나중엔 쓰러진다. 고륜본불락청천 (孤輪本不落青天)이니 둥근 달은 본래 청천에서 떨어진 적이 없거늘 다름의 그림자만 보고 서로 편가름을 하여 서로 피 터지게 싸우다가 둘 다 지쳐 쓰러지며 낭패를 당한다.높은 산과 깊은 물을 그대로 바라보며 등산도 하고 해수욕을 하면 참으로 좋으련만…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08/06/2023
금요단상 - 기후 스님

내가 머물고 있는 처소엔 여러가지 한국 물품들이 있다. 실내엔 호롱불 등잔, 엿장수 가위, 고려 때의 청동 수저, 갓, 인두, 다리미, 떡살, 대꼬바리, 탈, 박바가지, 저울, 고서적 등등이 있다. 바깥엔 도라지, 들깨, 풍산 무우, 고랭지 배추, 부추, 매운 고추, 아삭이, 오죽, 미나리, 쑥, 아주까리, 초롱박, 토종 강냉이 등이 잘 자라고 있다. 25 여 년 전 이 곳에 정식으로 살게 된 어느 날 어떤 노인 부부가 와서 차 한 잔을 나누면서 얘기하던 중 초창기에 이곳으로 아들 따라와서 살게 된 사연을 장시간 듣게 되었다. 그때 부인되는 분이 말하길 아들 내외가 직장에 가고 나면 온 종일 현관에 나와서 둘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국에서 있었던 지나간 얘기들을 나누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고 했다. 그러다가 비행기가 떠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저것만 타면 한국에 가는데 하면서 지금까지 견딘다고 했다. 그땐 눈물을 글썽이면서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을 가슴 아리게 본 이후 한국에 가게 되었는데 부산에 있는 큰 골동품 가게에 가서 여러가지 옛것들을 구입하게 되었다. 베틀, 멍석, 풍구대 등등은 다 썩어서 없어진 지 오래 되었고 큰 장독대 3 개와 위에 적은 것들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저 비행기만 타면 한국에 갈 수 있는데 하면서 고개를 떨구셨던 그 노부부의 모습에서 진한 향수애와 함께 고적(孤寂)의 외로움을 바라보게 되면서 여러 종류의 고물들을 반입하게 된 것이다. 호롱불 등잔을 바라보면 그때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한 되들이 석유 한 병이면 한 달을 써야 된다며 심지를 낮추셨던 할머니의 손길, 베틀 아래에서 자다가 잠결에 일어나다 베틀에 머리를 다친 일 등등이 산 안개처럼 스멀스멀 올라온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것은 생각으로도 가능하지만 그때에 사용했던 어떤 물품이 있으면 더욱 더 생생하게 현장감 있게 되살아나게 된다. 대마초를 심어서 삼베옷을 만들고 누에를 키워서 명주 바지 저고리를 숯불 다리미로 다려 입게 되는 모든 과정을 직접 보게 된 우리들 세대, 거기에서 아끼지 않을 수 없는 잔소리와 혀를 차게 되는 안타까운 한숨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수박을 먹고나서 버린 껍질에 붉은 부분이 보이게 되면 다시 주워서 먹게 하고 일일 달력 한 장을 네 등분으로 잘라서 휴지를 쓰게 했던 성철 큰 스님의 일화가 유명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인간은 보고 듣고 교육받은 만큼 그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된다. 우리의 마음은 크고 넓기가 우주보다 더하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이 일상화되었던 농경사회, 또한 외부에 의한 정보력이 거의 없었던 그때의 단조로웠던 일상에서 당시의 여러 경험들은 돌에 새겨진 글자처럼 오래오래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옛 얘기와 지난 물품들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끼게 되어있다. 그것이 심하면 꼰대니 라떼로 전략된다. 제행무상은 만고의 법칙이다. 그 중에서도 보편타당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존재는 고유의 가치가 있어서 귀중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족할 때였기에 아껴야 된다는 인색의 범주를 벗어나서 넉넉할 때라도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전향되어야 한다. 마켓에 가면 자기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게 진열된 갖가지의 식료품들, 식당에선 자신의 식성대로 주문할 수 있도록 준비한 무수한 손길 등등 우린 그분들의 정성과 노고에 깊은 고마움을 느낄 수 있어야 되겠다. 이런 마음가짐을 불교에선 연기론의 철저한 이해라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 체계는 창조론도 우연론도 아니며 오직 연기론이라고 부처님께선 말씀하셨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게 되면 이것도 소멸된다. 이것이 연기론의 기본 법칙이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과 정신체계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변화 발전되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자연과 우주, 농부와 과학자 등등 갖은 분야에서 애쓰고 있는 여러분들의 노력 때문에 우리들은 이렇게 평화스럽게 잘 살아가고 있다. 무슨 모임만 있게 되면 나는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무용담을 늘어 놓는 자기중심적 과거회귀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지금 세대는 복이 많아서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며 덕담을 상대에게 전할 때 꼰대에서 어른으로 대접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그 어떤 현장이 주어지게 되면 말이 길어지고 그 속엔 자기 중심적인 의식 세계가 자리잡고 있었음을 느낀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될 것이다.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06/04/2023
금요단상 - 기후 스님

수일 전에 썸머 힐에 있는 양로원을 다녀왔다. 그동안 몇몇 지인들이 그 곳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코로나 등등으로 그저 안부만 묻곤 하였다. 이 달 초에 아흔이 넘은 또 다른 어른이 그곳에 입주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 직접 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들리는 바엔 아는 이가 다섯 분이라 해서 간단한 선물을 다섯 봉지에 준비해서 갖고 갔었는데 그중 한 분은 얼마 전에 별세하셨단다. 90년대 전후 불광사라는 사찰의 신도회장을 역임했던 그 분은 노년엔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소식만 듣고 있었는데 편안하게 가셨 다니 다행이었다. 그 곳에 계신 대부분이 그렇지만 거동이 많이 불편하고 청력과 기억력이 감퇴되어 의사 소통이 매우 힘든 상태에서 30여분간 한 방에서 머물다가 나왔다. 양로원을 방문하고 나올 때 마다 일행 중 대부분은 풀 죽은 모습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혼잣말을 하곤 한다. “나도 조금 있다가 저렇게 되어 이곳에 오게 될 것인가?” 자문자답의 그 말에 대한 각자의 속대답은 과연 어떠할까? 본인의 속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나는 장차 이런 곳에 오지 않게 될 것’ 이었다. 과연 지금의 내 생각이 미래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를 기준으로 앞날을 예측함엔 상당한 오차가 생길 수가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보편타당한 생존의 법칙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그 시설에 모여 있는 대부분의 어른들도 자기 발로 거뜬히 걸어 다녔을 땐 우리들과 똑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본인 역시 건강할 때 스스로가 타인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수행만 잘 하게 되면 고약한 병엔 걸리지 않을 것이라…’ 그러다가 호주에 와서 장기간 살게 되면서 위암에 걸리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스스로의 마음 씀씀이와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니 말이다. 결국 2005년 2월 한국으로 건너가서 상당 기간 병원 신세를 졌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수술 전후의 정신과 육체적 고통은 당해본 이만 아는 이심전심의 경지다. 그 반대급부로 정신만 잘 차리고 보면 얻는 것도 상당하다. 하나를 잃게 되면 또 다른 하나를 얻게 되는 이치가 고통 속에 숨어 있다. 이른바 일실일득(一矢一得)의 조화의 이치이다. 그 가능성의 획득은 반조의 작용에서 나온다. 막힌 거울의 반사 작용을 이용해서 자신의 얼굴에 붙어 있는 눈곱을 털어 내 듯이 고통을 행복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려면 스스로의 마음을 순도 높게 바라보는 침잠의 시간이 필요하다. 밖으로 향하는 생각은 많은 정보로 인해 분별을 불러오고 그 속엔 언제나 불안과 불만으로 인한 갈등이 생겨난다. 반면에 자신을 향한 침잠의 시간속엔 통일된 정서로 인해 참자기와 만나게 된다. 그때가 비로서 고통의 에너지가 즐거움과 행복의 느낌으로 전환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비 안 새는 집과 사랑스러운 가족이 있으며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이 역전마다 즐비하게 널려 있으니…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즐겼던 옛 선사들은 말한다. 이 세상의 가장 큰 행복은 그 무엇이던가? ‘배고프면 밥 먹고 고단하면 쉬는 것이니라’ 우린 너무나 많은 것과 큰 것을 바란다. 거기엔 항상 불만과 불안함이 동반된다. 노후에 양로원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들의 생명체이며 우리 주변에서 함께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바로 내 생명을 보전해 주는 고귀한 존재들이다. 밥 한 술을 내 힘으로 먹을 수 있는 이 순간에 합장하고 감사드림이 바로 그 때문이다.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16/02/2023
금요단상 - 기후 스님

올해는 토끼 해이다. 그것도 검은색 토끼라고 한다. 흰색과 재색은 많이 보았는데 검은색은 본 적이 없으나 그런 것도 있다고 한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올해는 황금 돼지 해니 백말 띠니 하면서 새롭게 출발해 보려는 다짐을 한다. 그것도 연초 뿐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약속은 희미해져 가고 타성에 젖은 일상으로 되돌아 가서 그럭저럭 세월을 녹인다. 토끼의 특징은 귀가 크고 뒷다리가 길며 눈이 좀 붉은 것이다. 큰 귀는 듣기를 좋아하고 앞다리가 짧은 건 험난한 오르막을 잘 갈 수 있으며 붉은 눈은 영리함이 어려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지고마는 것은 빠름에 대한 자만심으로 인해서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경우를 그린 것 같고 별주부전에서 용왕에게 불려 가서 죽을 뻔한 고비를 묘하게 넘긴 것은 옅은 꾀를 씀으로써 살아나오게 되는 삶의 슬기를 제시한 듯하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서도 성공과 실패, 선과 악 등등의 이분법적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토끼가 그렇듯 우리들도 장단점을 함께 갖고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서 친소(親疏)가 생겨나고 밉고 고운 감정이 일어난다. 그 중심엔 언제나 ‘ 나 ’ 라고 하는 중심 세력이 자리하고 있다. 본인의 생각 흐름을 자상하게 살펴보니 나와 친한 사람들은 장점을 들춰내고 미운 이들은 단점을 부각시키려 한다. 그것의 판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 라는 관념의 실체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그것은 고정불변의 보편적 가치로 되어 있는 실체적 진실일까? 아니면 자기라는 허상에 사로 잡혀 있는 가변적 허상일까?  불교에서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일상에서 제시되는 나는 물질(색, 色)과 정신(오온, 五蘊)의 집합체이다. 이 몸은 부모가 낳아준 것이라 내 것이라고 할 수가 없으며 정신 또한 보고 들은 정보에 의해서 형성된 일시적 가치관이라 언제나 변화의 연속 선상에 있다. 그래서 모든 법은 고정된 실체가 없어서 항상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연속’이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크게 착각을 하고 있기에 변치 않는 나를 결정하고 나의 주장과 견해가 가장 옳다고 하는 거듭된 잘못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중생계의 현실이라고 가르친다. 그런 이해를 기반으로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그 반대의 경우의 ‘패거리’가 형성된다. 사람은 누구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살아온 시공(時空)이 같지 않고 그 속에서 보고 들은 내용도 여러 풍습과 정보력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또 바라보는 시각과 위치에 따라서 동일하게 보일 수 없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 상황을 불경에선 ‘중맹모상(衆盲摸象)’ 이라는 비유로 표현한다. 여러 장님들이 코끼리의 한 부분만 더듬어 보고 코끼리는 이렇게 생긴 동물이라고 잘못된 단정을 한다는 뜻이다. 인간들이 각자 자기 견해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착각 현상을 꾸짖은 은유적 가르침이다. 근래에 한국 사회에서 표출되고 굳어져 가고 있는 찬반의 집단의 폐해는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 밑바닥엔 적대감과 분노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런 마음이 작동하게 되면 내편이면 그 어떤 허물도 미화시키려는 의식이 발동된다. 동지애를 느끼면서 자지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확증편향(确證偏向)’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불행하게도 국민 통합을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사이비 정치권이 도리어 앞장서서 그런 패거리 악성 문화를 조장한다. 우선은 자신들의 집단이 그런 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과 금력의 단 맛을 누려 보자는 얄팍한 속셈이 그들의 가슴속에 누룽지처럼 깔려 있어서 그렇다. 가짜 뉴스가 도리어 위세를 떨치고 패거리 수치가 높으면 그것이 진실인냥 포장되는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그 원천엔 언제나 돈이라는 금력이 두더지처럼 숨어 있다. 올해는 귀가 유난히 큰 토끼해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좀 더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잠자코 들어줄 수 있는 여유로 닫힌 마음을 열어 볼 수 없을까? ‘나는’ 으로 시작되는 굳어진 자기 관념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상대의 그 의견도 들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거기엔 상당한 인내가 요구된다.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자기만의 주장에 대해서 그것이 행여나 그릇될 수도 있다는 1%의 가능성에 대해서 문을 열어 두고 그 말을 경청한 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을 때, 가정이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확증편향의 폐해가 줄어들지 않을까? 계묘년 토끼해를 맞이해서 귀가 큰 토끼를 닮아 내 뜻과 반대되는 의견도 좀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올해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다.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19/01/2023
금요단상 - 기후 스님

이제 달력이 한 장만 남았다. 사라진 11개의 세월속에서 난 블루 마운틴에서 무엇을 느끼면서 지내왔던가? 연말 정산의 결과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언행과 생각이 옳을 것이라는 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그로 인해서 많은 불편과 고통이 수반된다. 그러나 우린 좀처럼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중심은 크게 4부류로 나눠진다. 자기 견해에 대한 주장(我見), 상대보다는 내가 더 우월하다는 아만(我慢), 자신을 더 사랑하는 집착(我愛), 자신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아치(我痴). 이런 의식이 바탕이 되어 우리들의 삶은 계속 이어져 나간다. 이 속에서 갈등의 싹이 트고 누군가와 맞서게 된다. 이로 인해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전에는 연말 연시를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문구를 많이 썼다. 잘못된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맞이 하라는 뜻이다. ‘상대가 틀렸다’라는 지난날의 고정관념을 2023년에는 ‘내가 틀렸습니다‘라는 변화된 생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생각이 요구된다. 중생들의 삶은 언제나 고달프기 마련이다. 생각과 취미 등등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되고 욕심만큼 채워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이따금씩 미움과 분노 등의 정화되지 못한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이때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단 3번만이라도 생각해 보라. 이를 제시한 사람은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라는 스웨덴 출신의 수행자이다. 그는 만 26세에 다국적 기업의 재무 담당 최고 책임자가 되어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성공과 행복이 다르다는 것을 알만큼 영민했고 고액 연봉과 해변의 집, 차와 운전기사가 있음에도 왜 끊임없이 불안한지 의문을 품는다. 그러다 어느 날 앞으로 나아가야 될 때가 됐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울리자 전 재산을 모두 나눠준 뒤 홀로 길을 떠난다. 그가 찾아간 곳은 부처님 당시처럼 생활하는 태국의 숲속 밀림 사원, 17년 동안 그는 돈을 만지거나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도 멀리 했으며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 한끼만 식사했다. 숲속 사원의 계율은 왜 이리 엄격할까 이유가 있다. 삶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의지를 좌절시키기위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런 연습이 쌓이면 삶이 불확실해질 때도 흔들리지 않으며 앞날을 모를 때도 내면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전형적인 전개라면 뼈를 깎는 수행 끝에 파란 눈의 스승이 되어 가르침을 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더 극적으로 펼쳐진다. 금욕 생활마저 편안해지자 그는 환속을 결심하고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영혼의 짝을 만나 결혼 생활을 하다가 루게릭 병을 진단받고 좌절하는 과정도 겪는다. 그가 17 년 동안 승려로 살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머리 속에 떠오른 모든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12월 달력을 바라보며 두서번쯤 생각해 볼 말이다.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01/12/2022
금요단상 - 기후 스님

안개가 잔뜩 끼어 있던 어느 날 오후에 어떤 지인이 내 처소를 방문했다. 그는 얼마전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다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같이 사업을 했던 사람의 근황에 대한 최근의 소식도 함께 전해주었다. 나도 그 분을 알고 있는 터라 처음엔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다가 나중엔 그이의 허물을 보기 시작했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그런 얘기가 길게 늘어졌다.나는 이런 저런 그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그분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격한 넋두리를 늘어 놓던 중 그가 나의 눈치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얼굴에 약간의 홍조를 띠우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스님, 내가 좀 심하게 긴 말을 한 듯합니다. 산중에서 조용하게 수도하고 있는 분에게 쓰잘데없는 세상 얘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그는 차를 두세 잔 연거푸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이 마치 안개처럼 그의 갈 길을 헤메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사람은 그 누구나 사는 과정에서 허물이란 멍에를 짊어지고 살게 되어 있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가 인정하는 참 잘못도 있겠지만 그 대부분은 틀어진 관계 속에서 자기 중심적으로 바라보면서 평가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친할 땐 장(長)점을, 그 반대의 경우가 되면 단(短)점을 더 많이 드러 내려고 한다. 같은 사람, 같은 내용을 대상으로 칭찬을 허물로 바라보게 하는 그 핵심 세력은 과연 무엇일까? 흔히 말하듯 이 세계는 나와 남이 함께 공존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게 되길 우리 모두는 희망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만이라는 자기 중심적 사고나, 내가 더 낫다는 우월의식에 사로 잡히게 되면 우리들이 희망하는 세계와는 정반대가 되는 상황이 전개되기 마련이다. 그에 따라 시비가 생기고 미움과 증오로 발전되어 심하게 되면 살상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은 상대의 단점 보다는 장점을 들춰내서 말해 줄 수 있는 지혜로움이 요구된다.옛말에 ‘마음이란 세계는 워낙 오묘해서 칭찬이란 좋은 말을 자주 사용하면 그 지혜롭고 아름다운 마음이 우주를 덮고도 남지만 흉, 허물을 많이 보게 되면 그 옹졸해진 마음이 바늘 구멍에도 못 들어가게 된다.’ 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마음씨는 동반자적 세력을 내포하고 있다. 내가 다른 이의 장점을 말해주게 되면 내 마음속의 좋은 장점도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어 있다. 타인의 허물을 말하면서 즐거워하는 그늘진 세계에서 벗어 나려면 상대방의 좋은 면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밝은 마음의 한 마디의 생각이 중요하다.법구경(法句經) 이란 짧은 경전의 말씀이 생각난다.‘생선을 싼 종이엔 비린내가 나지만 향을 담은 그릇엔 향내음이 배어 있다.’기후 스님 (시드니 정법사 회주)

27/10/2022
금요단상 - 기후 스님

올해 겨울은 제법 쌀쌀한 날씨가 여러 날 지속되었다. 그래서인지 봄이 어서 왔으면 하는 기다림이 불쑥불쑥 마음에서 일어났다. 지난주에 마운틴에서 내려와 시내를 지나다 보니 자목련과 백목련이 따뜻한 봄기운을 안고 우리 곁에 와있었다. 그런 꽃소식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요즈음 영결식장에 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각각의 다른 사연들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채로 이승의 삶을 마감하는 그분들의 평소 영상들을 쳐다보면서 다시 한번 생명성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3일 전인 지난 9일에 영결식을 맞이하게 된 그분은 평소에 금강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독송을 많이 하다가 이 세상을 갑자기 혼자서 떠났다. 그분의 마지막 영혼은 어떤 상태로 이생을 마감했을까? 본인은 그분의 영정사진 앞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고별인사를 했다. 금강경엔 여러 개의 나구란 게송(4구게송)이 나온다. 5글자로 된 네 구절의 시적인 표현으로 가장 핵심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하라이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일체의 현상은 그 모두가 꿈과 같고 꼭두각시, 물거품, 그림자와 같으며 또 아침이슬, 또한 갯불과 같나니 마땅히 그와 같이 직시하며 살아야 하느니라. 앞서 이야기한 여러 현상은 그 모두가 일시적으로 있는 듯해 보이지만 영구불변한 실체는 아니어서 허망하다는 의미이다. 특히 꿈은 그 대표가 될 수 있다. 우린 잠 속에서 일어난 여러 현상들을 꿈이라고 말한다. 그 속에서도 나와 대상이 분명하게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도 느낀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나면 스스로가 그 꿈속 내용을 음미하다가 혼자 미소를 지으면서 꿈속 일들이라 모두 내려놓게 된다. 그것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만일 잠을 계속 이어간다면 꿈속의 일에 지속적으로 끌려다니면서 고락의 감정을 느끼며 방황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 현실도 꿈속과 똑같다고 하는 말씀을 금강경에서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꿈속과 지금의 일상은 전혀 별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온갖 것에 집착하면서 갖은 고통을 당하면서 사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게 된다. 꿈속만 꿈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도 바로 꿈속의 상황과 동일하다고 깨달은 서산대사의 말씀을 들어보자. 어느 날 대사께서 어떤 처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주인과 어떤 나그네가 재미있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주인몽설객(主人夢說客) 객몽설주인(客夢說主人) 금설이몽객(今說二夢客) 역시몽중인(亦是夢中人)이라고 하였다. 주인은 손님에게 자기 꿈 얘기를 하고, 나그네는 주인에게 또 그러하네. 지금 꿈 얘기하고 있는 두 양반 역시 꿈속에서 꿈 이야기 하고 있다네. 우리들 일상의 삶이 바로 꿈속의 일과 똑같다고 자각한다고 하면 우리 모두의 삶의 태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열쇠는 미몽에서 깨어나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것은 누가 흔들어서 깨워 주든지 아니면 스스로가 잠을 깨는 것이다. 그것을 불교에서 깨달음이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현상 법칙에 잘못 이끌리어 그것이 지존의 가치인 양 탐닉하다가 갖은 고뇌를 만나게 되는 중생계의 현장, 영원불변의 참 진리를 깨달으신 성현들은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꾸짖는다. ‘슬기로운 사람들은 쌀로 밥을 짓지만 무지인의 소행은 모래로 밥을 만들려고 한다’고…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kgy8856@gmail.com 

11/08/2022
금요단상 - 기후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