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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호주땅에서 육만년 동안이나 기록된 법없이 살아오던 애보리진 원주민의 세계에 시커먼 먹구름이 덮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이백삼십오년 전의 일이었다.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부자나라라고 한국이 가난했던 초등학교 때 배웠을 때만해도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결과라는 것을 알기엔 내가 너무 어린나이였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멋진 제복 - 흰바지에 붉은색이나 검정색 상의와 위엄 있어 보이는 모자를 쓰고 호주 땅에 닿은 식민지 개척자들의 눈에 비친 원주민들은 검은 피부를 드러낸 벌거벗고 흉측한 모습이었으니 인간이하 동물 취급을 했으리라. 동물세계만이 아니라 인간세계에서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했고 그 덕분에 현재 내가 호주라는 나라의 체재 안에서 잘먹고 잘살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우리 가족이 호주에 이민 온 지 삼십오 년이 되어간다. 그 당시 나와 남편을 인터뷰했던 이민담당 서기관이 비자를 내주며‘호주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나라’라고 했을 때만해도 일종의 개척정신으로 호주에 오면 무언가 이루어 낼 것 같은 기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무지가 용감을 키운다했던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애보리진 원주민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만 알았을 뿐 딱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들에 대해 매스컴에서 이슈가 될 때마다 그런가보다 하며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왔다. 어린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왔으니 우선 정착하고 학교에 보내는 일에 신경을 쓰며 그냥 내 식대로 바쁘게만 살아왔을 뿐이었다. 최근에 끝내 모르고 지날 뻔 했던 원주민에 대한 통한의 역사를 늦었지만 어느 정도 자세히 알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바위처럼 무거워진 마음으로 그들을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다.딸이 교편을 잡고 있는 학교에 애보리진 교육관들이 와서 그들의 소리를 세시간에 걸쳐 선생들에게 강의해 주었는데 그 내용을 딸에게 듣고 이 세상에서 인간이 제일 잔인한 동물이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이제까지 내가 뿌리 내리고 사는 이 나라의 역사를 백인의 입장에서만 알았으나 원주민의 입장에서도 보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간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땅의 원주민에 대해서 백인들이 저질렀던 만행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 넘치게 많다. 아서 필립 제독이 이끌고 온 첫번째 함대는 11척의 배로 이루어져 있었고 첫번째 죄수선엔 남자들만 타고 있었는데 호주땅에 닿자 그들이 원주민 여자들을 취한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을 1/2, 1/4, 1/8..로 융화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니 기함을 하고도 남는다. 평화롭게 자기네들의 삶을 살아가던 애보리진 여자들이 얼마나 망측하게 당하고 있었을까. 또한 그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원주민 말살 작전으로 그들이 마시는 물에 독을 풀고 그들에게 천연두균이 감염된 담요를 주었다고 한다. 그들의 문화와 이름과 정체성을 빼앗았고 언어를 쓰지 못하게 했으며 몇 십년에 걸쳐 학살을 자행했다.  뉴카슬대학의 한 역사학자가 올해 새로이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가해자들은 원주민들의 목을 쇠사슬로 엮은 채로 땔감나무를 주워오게 했으며 나무에 등유를 부어 불을 붙힌 다음 원주민들을 그대로 불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최악으로 잔혹한 만행도 저질렀으며, 가해자들은 점점 더 계획적이고 잔인해졌다고 한다.  과학적 증거에 의하면 이들이 겪은 트라우마는 여덟 세대에 걸쳐 DNA에 녹아 들어 있다고 한다.‘빼앗긴 세대(Stolen Generations)’라던지 실화를 영화로 만든‘토끼막이 울타리’등은 백인들이 약자인 애보리진 원주민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문명화교육을 목적으로 아이들을 마치 길바닥에서 어슬렁거리는 주인 없는 개들을 낚아채듯이 마구잡이로 데려가 입양이나 기숙사에 강제 수용해서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들은 신체적, 정신적, 성적학대를 당하고 훗날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나의 어린 손주들이 거리에서 강제로 잡혀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감히 상상하니 할머니로서 내가 까무라쳐 죽을 것 같은데 그 아이들 부모들의 뼈아픈 고통을 어찌 상상인들 제대로 할 수 있으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런 일들이 백인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것이다. 유튜브에서‘1월26일’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아서 필립 제독이 록스(The Rocks)에 영국 국기를 꽂은 날을 기념하는 호주의 날 1월26일을 데이빗 베니욱이라는 울릉공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민요가수 겸 작곡가가 부르는 이 노래는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왜 비극의 날을 경축하느냐는 가사를 반복해 부르면서 배경에 나오는 동영상엔 애보리진 원주민 남자들이 목에 굵은 쇠사슬을 감고 옆 사람들과 같은 쇠사슬로 이어져 있는 사진과 ‘침략, 살인, 강간, 도둑질이 시작된 이 날을 경축합시다’라고 비꼬아 만든 포스터가 나온다. 원주민들에게 침략의 이 날을 구태여 호주의 날로 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나는 이제 원주민들을 보는 시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한국말로 하면 호주원주민, 애보리진 등으로 칭하지만 영어로 이들을 칭할 때는 딸의 학교에 왔던 강사에 의하면 애보리지널(Aboriginal) 이라고 부르는 게 적합하다고 한다. 흔히 애보리지니(Aborigin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사람들을 조센징이라고 비하해 부른 것처럼 비하하는 말이라고 한다. 교육부는 2023년의 목표가 애보리진 학생들의 고등학교 졸업률을 50% 증가 시키는데 있다고 한다. 마약과 알코올에서 벗어나 공부를 하고 일자리를 얻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수명을 10년 늘릴 수 있다니 이들에게도 어두운 터널 끝에 빛이 보인다고 할까.    2007년이 되어서야 연방정부 차원에서 ‘빼앗긴 세대’에 대한 사죄를 했다. 보수파들의 반발이 있었고 시행하는데 진통을 겪었지만 당시 케빈 러드 총리는 사과를 관철했다. 양파껍질 벗기 듯 앞으로 당면한 커다란 문제를 논하기엔 내 깜냥으론 너무 부족하지만 적어도 관심을 가지고 마음으로나마 성원을 할 뿐이다. 인간의 탐욕과 잔혹함의 그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치가 떨린다. 식민지개척자들은 꼭 그런 방법으로 이 거대한 땅을 삼켜야 했을까.  권영규(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장)

01/09/2022
문학지평

풍성한 녹음과도 같은! 그 좋던 옛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그토록 명랑하던 나는 어디로 갔나. 갈바람에 우수수 나뭇잎을 빼앗긴 나목처럼 밤새 추웠다. 전기 장판으로 뜨겁게 달군 바닥은 따뜻했으나 방안 공기는 코끝이 시리도록 냉랭했다. 잠을 자면서 들여 마신 차가운 공기는 가슴속에서도 허한 바람이 되었다. 수면 중의 나는 천애 고아인 듯, 세상에서 버려진 듯 슬프고도 고독했다.  자는건지 마는건지 하였으나 간간이 나의 코고는 소리에 스스로 흠칫 놀랐던 것을 보면 분명 불면의 밤은 아니었다. 어젯밤은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초입에 서 있었다. 서늘한 아침 공기와 찬란한 태양 그리고 파랗고 높은 하늘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하모니이다. 오늘까지만 가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늦단풍이 그리워졌다. 지금 보지않으면 영영 못볼것 같은 망상은 무슨 연유일까. 근래 몇몇 크고 작은 병원 출입과 신종 바이러스의 위협이 나를 자신없게 만들었다. 내년에도 내게 가을이 올까? 인생의 시각으로 치면 저녁6시, 계절로는 가을의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나. 푸른빛의 끝자락에서 이대로 발을 땅에 심고 싶은 욕망이 일렁임을 고백하고 싶다. 나의 부끄러움에 단 한사람 만이라도 고개를 끄덕여 준다면야 나는 구차하지 않을 것 같다.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마운트 윌슨(Mt Wilson)으로 떠났다. 도심 보다는 일찍 잎을 떨구는 그곳에 가까스로 나를 맞이해줄 나뭇잎이 붙어 있어야 할텐데 조바심을 앞세우고 바람과 하늘을 가르며 도로를 달렸다. 다행히도 도로의 나무들은 정식 코스가 나오기 전의 에피타이져 인양 드문드문 집단을 이룬 단풍의 현란함으로 맛보기를 보였다. 순간 보였다 슬쩍 사라지는 그것은 하늘이 허락한 마술사의 손놀림을 보는 것 같았다. 한순간의 색채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나의 눈은 긴장을 멈출 수 없었고 벌어진 입은 짙은 탄성을 토해냈다. 사철 나무의 푸르름 사이로 빛나는 보석처럼 박힌 오색창연한 빛깔들은 매혹적이다 못해 관능적이었다. 진초록의 젊음을 버리고 저토록 아름다운 잎들을 미련없이 떨구어 버리는 나무에게서 거룩함을 보았다. 나뭇잎 만큼이나 많은 오욕칠정을 한점 남김없이 떨쳐 버리고 흙으로 돌아감에 일말의 댓가나 감사함도 바라지 않는 무상무념의 우직함에 나도 그러하기를 소망해본다.  여러 차례를 다녀왔음에도 이토록 넓은 대지 위의 어느 곳에 단풍 산이 있다는 말인가. 공간능력이 둔한 내가 불안해 할때쯤이면 위안처럼 이정표가 보인다. 끝간데 없는 도로의 한 지점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회를 해서 산이라 불리우는 평지를 달렸다. 마침내 아찔한 기역자로 꺾인 언덕, 명색이 산허리를 돌때는 긴장감이든다. 하늘을 찌르는 고목들로 빛이 차단된 조붓한 산길을 뚫고 달리자 타잔이 타고 놀았을 법한 밧줄같은 나무줄기가 늘어진 어둑신한 산에 도착했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분리된 세상인양 고풍스러운 그곳은 단풍의 색깔도 다양했다. 빨강 주황 노랑 자주 진분홍 연분홍 녹슨색 그리고 간간이 늘푸른 사철나무도 미운 오리새끼처럼 끼어있다. 온통 물든 나무의 한구석에는 끈질기게 초록의 한자락을 붙잡고 있는 가련한 나무도 있었다. 아직도 청춘을 버리지 못한 애절함이랄까.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빨강과 오렌지로 잎을 물들인 나무 밑에 섰다. 늙으면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시쳇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입고있는 인생의 계절 옷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감추려는 카멜레온의 속성일까. 나도 슬슬 빨간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목이 되기 직전의 화려함은 공수래 공수거의 위안이다. 알고보면 인과의 진리는 보편적이다. 사진 속의 나는 단풍나무 아래서 숱많은 검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웃고 있었다. 뒷배경을 내어준 갈잎들 사이로 머리카락이 제각각 흩날리고 있는 것을 보니 가을바람도 함께 찍힌 모양이다.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여 왔던 곳으로 가는 바람이어라. 살짝 쳐든 얼굴을 받치고 있는 나의 모가지는 가을을 타고 있었다.오랠수록 좋다는 옛 사람들이 이제 이런 저런 사정으로 사라지거나 멀어졌다.나뭇잎처럼.무슨 까닭일까 누구의 잘못일까….혀로 베인 상처 때문에, 레이저 같은 눈빛 때문에, 그냥 때가 되었기 때문에?이제 가까스로 붙어있는 나뭇잎은 사실일까 그림일까?옛님들과 나.불변의 진리는 영원한것은 없다 하니가끔은 옛날 사진을 보듯 그때가 좋았네 그리워 하며자연의 이치에 원망이나 죄책감 일랑은 느끼지 않았으면 하오.우리는 자연스레 자연이 되어갈 뿐….가을 산을 뒤로하고 낙조의 배웅을 받으며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이항아/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04/08/2022
문학지평

‘엄마, 은퇴하면 이것이 도움이 될지도 몰라’ 하면서 내게 건넨 것이 있다. 생소한 이 상자는 몇 달 동안 닫혀 있었다. 은퇴 후 커피 대신 민들레차를 즐겨 마시며 백수 생활에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 문득 내용물이 궁금해졌다. 겉표지는 화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1500개의 퍼즐 조각들이 드디어 상자 속에서 해방되어 하나씩 책상 위에 앉기 시작하려는 순간이다.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일단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막상 작은 조각 더미들을 접하고 보니 어리둥절 할 밖에. 우선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것들을 찾아본다. 한 면이 직선이라 골라내기 쉬워 퍼즐하는 재미를 살짝 맛봤다. 겉그림에 맞춰 짜깁기하듯 직사각형 테두리를 힘겹게 완성하고 나서 그제야 어찌해 볼 마음이 생긴다. 스트라스필드에 사무실을 얻고 텅 빈 공간에 커다란 책상 하나를 먼저 들여놓던 날도 이런 마음이었다. 그 후 이 책상은 삼 십여년 동안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렸고 이제 집으로 옮겨져, 나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그림의 전체 윤곽이 잡혔으니, 다음으로 검붉은 색을 모두 골라낸 뒤 왼쪽 하단부터 위로 쭉 뻗은 나무를 채워나갈 요량이다. 고흐가 이 세상을 떠나기 13개월 전, 정신병원에 있을 때 밤하늘에 심취해서 그렸다는 이 그림은 나무가 마치 하늘을 뚫을 듯 우뚝 서 있다. 모아놓은 퍼즐 조각들은 색으로는 구분하기 힘드므로 붓터치 방향이나 모양으로 겨우 하나씩 채워 나가려는데 도대체 진도가 안나간다. 비슷비슷한 조각들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과정에 머리가 아파온다. 이럴땐 잠깐 쉬어가는 방법을 터득했었으니, 민들레차를 마시며 창 밖 푸른 나무들을 감상한다. 커피가 이 역할을 했던 때가 있었다.사무실에서 책상에 이어 컴퓨터, 팩스 등을 마련하며 일을 시작하는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겼다. 은행으로부터 부도 처리된 수표가 우편으로 날라 왔다.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민생활에 노련함이 묻어나는 나이 지긋한 한 고객이 회사 설립을 의뢰하면서 건넨 것이었다.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많은 말로 희망을 주던 그 고객은 결국 이민 새내기에게 믿는 도끼가 되었다. 우리 사무실에서 미리 지불한 진행비용은 자그마치 이주일치 사무실 임대료에 해당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한 달치가 날라 갔다고 느낄 만큼 컸다. 그것도 모자라 은행 수수료까지 얹어졌으니 발 등 찍히는 순간임을 절감했다. 사방으로 수소문 해 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순간 수표는 휴지조각이 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 당혹감은 배신감이기 전에 사업에 대한 무지함이었다. 비즈니스 초년생이 비싼 수업료를 내며 겪은 그 혹독한 경험을 달래 주었던 것이 커피 한 잔이었다.그날 겨우 몸을 추스리며 카페에 들어서는데 가득한 커피향이 먼저 온몸을 감싸 안아준다. 말 수 적은 청년이 정성을 다 쏟아 만든 커피 한 잔을 내게 내미는 모습에 ‘그래,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지’ 울컥하며 저런 사람의 이름조차 잊기로 한다. 거기에 머무는 십 여분이 나를 지옥에서 천당으로 옮겨놓는다. 그 후 사무실에서 힘든 일이 생기면 바로 카페로 달려가는 버릇이 생겼음에랴.이제 휘몰아치는 형상의 나무를 다 채웠으니 밤하늘을 수놓은 나선형의 별들 차례다. 짙거나 옅은 노란색을 찾아 모으며 소용돌이로 묘사된 고흐의 마음도 상상해본다. 그림에서 나무 옆 하단엔 대조적으로 고요하고 평온한 마을이 있다. 끝으로 이 부분을 끼워나가는 내 마음도 차분해진다. 이 마음은 민들레차와 맞닿아 있다. 완성을 앞 둔 마지막 한 조각은 채워넣는 손의 촉감조차 감미롭게 하고, 성취감에서 얻은 기쁨은 극에 달한다. 치열하게 일하던 그 책상 위에서 스물 아홉해 후면 퍼즐놀이 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숨 쉬기가 쉬웠었을까? 은퇴 전에는 커피로 달래가며 숨도 안 쉬고 일했고, 은퇴 후에는 아예 내게 불면을 일으키는 커피를 멀리하고 민들레차와 함께 더 좋은 숨을 쉬니 삶의 질이 좋아진다. 하지만 고흐는 고통 한가운데에서 세상을 마감했으니 내 입장에서 보면 쓰디쓴 커피만 마시다 멈춘 셈이다. 고비를 잘 넘기고 민들레차까지 즐기며 살다 떠났다면 고흐의 그림은 어떻게 변했을까. 상자 속 그 많던 조각들을 모두 채워 완성하며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고흐에게 민들레차 한 잔을 바친다. 차수희/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21/07/2022
문학지평

쿠지 비치에서 본다이 비치로 가는 해안 길은 시드니사이더에게 인기 있는 걷기 코스 중 하나이다. 처음 이 길을 걸을 때 고급 주택이 들어설 법한 위치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을 한참이나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좋은 곳에 눕고 싶은 것은 같은 마음일까.시집 온 첫 설 날 외며느리인 나는 한복에 키 높이 고무신을 신고 조상님께 인사를 다녔다. 낙향한 시삼촌이 선산을 저당 잡히는 바람에 두 번씩이나 시아버지께서 사들였다고 했다. 웃 대 어른들은 양지바르고  바람이 자는 곳에 나란히 누워 계셨다. 시할아버지는 골바람이 불어 나도 모르게 이가 부딪히는 곳에 비스듬히 누워 계셨다. 시어머니는 두 해 전에 자리를 펴신 시아버지 옆자리 대신 능선의 끝자락이 자신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름난 풍수지리학자와 고향 사람인, 풍수에 해박한 회사 직원을 대동하여 본인이 갈 자리를 진작에 점을 찍어 두셨다. 시어머니는 팔 년간 신장암으로 투병하셨다. ‘천국 문이 열리는 유월에 내가 하늘나라로 갈 거라고 점쟁이가 말했어’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마지막으로 내가 병실 문 앞에서 의사와 이야기하는 짧은 순간을 기다려 주지 않고 시어머니는 서둘러 떠나셨다. ‘객사시키지 말아달라’는 평소의 유언을 받들어 집에서 오일장을 치렀다.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묏자리를 보았던 회사 직원을 하루 전날 장지로 보냈다. 두툼한 봉투를 고향마을 지관에게 전해드리고 유언하신 대로 묘를 쓸 수 있도록 터를 닦아 달라고 부탁했다. 장지에 이르렀을 때는 큰 포크레인이 산자락을 들쑤셔 놓았다. 땅을 파고 다지기를 하느라 나지막한 산의 끝자락이 주는 아늑하고 고즈넉한 풍광은 온데간데없었다. 명당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그 자리는  깊이 팔 수가 없었다. 땅속에 큰 암반이 있었다. 하관을 할 때 나는 너무 울어서 기절했다. 나의 울음은 시어머니에 대한 애도에서 시작되어 시어머니가 가고 싶었던 그 터가 얕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워 더 큰 울음으로 이어졌다. 시숙부님들은 시어머니 묘를 산줄기의 끝자락에 썼기 때문에 자신들이 갈  자리가 없어졌다고 지관에게 언성을 높였다. 대대로 가업을 이어온 지관은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처럼 엄숙하고 능숙하게 장례를 집행하였다. 고인의 유언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모든 말을 잠재웠다.좋은 묏자리가 자손을 번창하게 만든다고 종교처럼 믿었던 시어머니. 명당은 산줄기의 끝자락에 많이 있다고 한다. 밭 명당이란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큰 열매를 맺기 위해 작은 열매를 솎아내기라도 하듯 시어머니는 자신의 무덤을 마지막으로 그 줄기를 끊어내어 다른 사람이 묘를 쓰지 못하게 하셨다. 아버님 옆자리로 가셨다면 숙부님들을 위해서 자리를 넉넉히 남겨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시댁 친척 중 누구도 내가 풍수를 보았던 직원을 전날 장지에 보낸 것을 모른다. 심지어는 남편조차도. 서른을 갓 넘긴 세상 물정 모르던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를  내었는지 모르겠다. 시어머니는 산줄기를 홀로 힘겹게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았다.  지관에게 모든 장례 절차를 맡겼다면 시아버지 곁에 쌍봉으로 정답게 누웠을 텐데. 유언대로 홀로 산 끝자락에 누울 자리를 펴게 해 드린 것이 과연 시어머니께 잘한 것일까!코로나 거리 제한이 풀리자 다시 쿠지 본다이 산책길을 찾았다. 이번에는 공동묘지 사이에 난 길을 걸었다. 비석에는 한결같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하늘나라에 간 연대기가 적혀 있었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요새처럼 만든 무덤이 시선을 끌었다. 사이사이 이름 없이 비석만 세워진 무덤을 지났다. 2022라고 큰 글자로 새긴 무덤 앞에 발이 멈췄다. 이럴 수가! 19세기에 만든 공동 묘지에 최근에 만든 묘가 있다니. 둘러보니 군데군데 빈 터가 있었다. 친정아버지는 환갑이 되던 해에 도시 인근에 있는 공원묘지를 구입하셨다. 좌청룡 우백호 혈 자리에 박힌 명당이라는 감언에 그 당시 아파트 한 채 가격을 지불하셨다. 선산 부근에 송전탑이 세워져서 풍수가 이전 같지 않다고 하셨다. 날이 갈수록 숲이 우거지니 몇 안 되는 자식이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도시 부근을 선택하신 것 같았다. 친정아버지께서  잡아 두신 공원묘지에 민비석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삼십여 년 넘게 손수 잡초를 뽑고 관리한 아버지의 빈묘는 잔디만 무심하게 푸르다.  나이가 더 들고 시한부 삶을 살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빈 무덤을 미리 차지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한 때  헛된 풍수의 신비를  끌어안고  살았던 것 같다. 풍수가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거리를 더 가까워지게 만드는 것 인데도 말이다.송조안(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23/06/2022
문학지평

다음날도 어제처럼 달린다. 길 따라 끝없이 쳐진 철조망 줄이 이 황무지에 누구의 작업일까 궁금했다. 옆 정보자의 말, 평생 사막에서 텐트치고 먹고 자고 다음날도 철조망을 치는 직업이 있단다. 야생짐승과 차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외롭고 힘든 작업이겠지만 임금이 어마어마하다니 황야의 무법자처럼 도전해보실 분이 계실지. 몇 달씩 길을 따라 오지에서 쇠줄만 치는 작업이며, 인간이라고는 접할 수 없는 사막에서 텐트생활을 하며 눈뜨면 반복되는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하는 방랑자의 삶이다. 그 직업의 고독함을 즐길 줄 모르는 자는 절대 도전할 수 없는 일. 사막의 외로움을 벗 삼고 뱀이나 야생동물, 그리고 개미 등과도 친해야만 버틸 수 있는 작업이다. 개미 이야기가 나오니 떠오르는 게 있다. 이상한 점은 퀸즐랜드까지 여행할 때는 웅장한 터마이트(흰개미) 집 천지였으나 이곳 브로큰힐에서는 터마이트 집은 한 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 지층 형성 상 브로큰힐이 18억 년 전 해저의 마그마 분출로 어마어마한 용암이 흘러나와 이룬 해저 퇴적층이 현재로 굳은 언덕으로 되어 그럴지 모르겠다는 개인적인 상상도 해본다. 달리고 달려 남 호주 국경과 브로큰힐의 사막 서쪽 끝에 이를 즈음 실버톤에 도착한다. 이곳은 예술가들의 열망과 영화제작자들의 아웃 백을 담기 위한 열정, 그리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던 곳으로, 그런 애착이 없었더라면 유령마을이 될 뻔한 곳이었다. 한 때는 광산 도시로 융성했던 도로의 흔적과 대여섯 개의 갤러리, 그리고 펍도 있다. 실버톤은 영화 Razorback, Mission Impossible ll, Mad Max 2 and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의 배경이 된 진정한 오지이다.석양 무렵에 문디 문디 룩아웃(Mundi Mundi)에서 오지를 즐기는 이국적인 매력을 즐기실 분은 꼭 한 번 찾으시기를. 어쨌든 이 오지까지 조형물을 설치한 예술가의 노력은 인간의 위대함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돈 안 되는 이곳에 자신의 조형물 설치를 위해 헌신하신 미술가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드린다.조금 가다 붉은 황톳길 위에 겨우 발을 붙인 조그만 녹슨 양철집에 모두 놀란다. 이런 황무지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일지 귀신일지 궁금해 다가가니 ‘존 디논의 갤러리’라는 간판까지 보인다. 사막의 무법자도 아니고 사막이 끝나는 마지막 점에 외로이 서 있는 화랑이라니!실버톤 도시에서 생각하듯 멋진 화랑을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호주는 곳곳에 정말 작고 초라해 이게 화랑인가 싶을 정도의 초라하지만 진정 그림을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화랑이 많이 있다. 손수 만든 몇 가지 그림과 소품만을 늘어놓고 느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림이 팔려도 그만 안 팔려도 그만, 욕심 없는 느긋한 그들의 삶이 진정 부럽기조차 하다. ‘존 디논 갤러리’로 달려 들어가니 인간 존 디논이 야생화를 그리며 서 있다. 화려한 야생화를 그리고 있는 예술가는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아저씨다. 그는 어쩌다 양철로 만든 집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을까? 며칠씩 지나가는 길손도 못 보는 이곳에서 그리는 그림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도대체 왜 이런 고독한 삶을 선택했을까? 인간 이상으로 아니 성자처럼 보이는 평범한 아저씨로 보이지만 그는 진정 고독한 사막의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 가격 또한 만만치 않은 게 그림 값에 외로움을 견디는 값까지 추가해야 할 것만 같았다. 사는 사람, 파는 사람도 신경을 쓰지 않는 고독한 공간에 흐르는 고독이 그리 고독해보이지 않는 미묘함은 왜일까. 쓸쓸한 예술가를 위하여 사진 한 컷을! 순순히 응하는 존 디논을 가운데 두고 동양 여자 둘이 포즈를 잡았다. 싫지 않은 듯 반가운 얼굴로 순순히 응하는 사막의 순진한 미술가의 눈이 참으로 맑았다. 브로큰힐의 숙소로 돌아갈 즈음 불타는 낙조가 천지를 황홀하게 물들였다. 어린 손자가 빨강 김칫국 같아 무서워 싫다던 말이 떠오른다. 오지의 낙조는 공기가 맑아 끓어오르는 황혼이 붉다 못해 지옥 불 같았다. 내 카메라로는 아름답다 못해 처절한 낙조를 담을 자신이 없었다. 오지에 와서 자연의 괴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점점 검붉게 타는 동내를 뒤로 하고 우리는 달린다. 오지여 안녕!!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른 윌케니아,라는 작은 마을은 애버리진들을 강제로 모아 살게 한 곳이다. 먼지가 푸석거리는 누렇고 벌건 사막 속의 윌케니아는 온통 애버리진만 기거하는 동네였다. 푸른 시드니 쪽에서 터전을 빼앗기고 허접한 오지로 밀려온 그들을 보니 몰락한 자들의 막연한 슬픔이 엄습해왔다. 잠깐 주유소가 나타나니 사람 사는 곳이라 반가워 차를 멈추었다. 이 동네에서 내려 시골 좀 둘러보려는 요량으로. 삽시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애버리진 아이들은 우리 차를 향해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반갑다는 소리인 듯 얼굴은 천진해보였다. 어쨌거나 그 아이들은 피폐한 오지에서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묘한 존재였다. 우리  중 누군가가 말했다.“별로 기분이 안 좋아요. 문 열지 말고 빨리 가요.”문명에서 소외된 원시성이 풍기는 그 마을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지났다. 그들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대신한 미안함의 발로였을까? 아니다, 사실 그들과 가까이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긴 하나 오지 여행 중 그런 기회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나는 이론적으로만 그들의 처우에 대해 분개하고 흥분하며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비겁하고 옹졸한 내 능력으로 가끔 눈에 뜨이는 그들에게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본 동양 족에게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폴짝거리며 쫓아오는 그들을 뒤로 한 채 우리 차는 비실거리며 도망쳤다. 지금도 가끔 그 때의 일이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다. 최상급 고기는 더보(Dubbo), 최고급 포도주는 머지(Mudgee)에서시드니로 오는 길에 꼭 들려야 할 곳은 더보와 머지. NSW 주의 최상급 육질이라더니 소문처럼 더보의 고기는 신선하고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머물게 된 숙소에서 고기를 앞에 놓고 분석하기 바빴다. 결론은 소, 양들이 무공해의 푸르른 목초지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채식 주의자에게 한 방 맞을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더보 주위의 대목장 지대의 광활한 풍요로움은 호주 최대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고기 맛을 다시 언급하면 소들 화내며 떼로 몰려올지도 모르니 이쯤 해두자.또 하나 이 지역에서 꼭 들려야할 곳은 더보 NSW 주 최대 ‘더보 동물원’이다. 해리왕자와 메건이 하필 왜 이 더운 더보에 갔을까 의아스러웠다. 역시 호주에서 가장 아프리카적인 곳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보 동물원엔 사파리가 있어 버스를 타고 구경하는 것 외에도 전동카트를 타고 동물원을 돌거나 개인차를 가지고 동물원을 돌만큼 광활하다. 또한 동물과 친하고 싶은 분을 위해 숙소인 방갈로가 동물원 안에 있어 그곳에서 숙식을 하며 새벽에는 동물 밥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숙소가 값이 엄청 비싸다는 것쯤은 참고하시길, 더보에서 별보기 등 프로그램도 있다. 단 미리 신청해야한다. 코비드 때문에 숫자를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밤별을 보고 사파리 동물구경을 하라 권하고 싶다. 여기서 석회암동굴이 있는 웰링턴이라는 곳도 강추한다. 예술가라면 그곳에서 <가시나무새>로 유명한 콜린 맥컬로우의 기를 받아보시는 것도 권한다.더보에서 1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머지(Mudgee)에서 시드니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을 지내기로 했다. 문명세계와 가까워진다는 또 다른 즐거움과 더불어 귀가하기 전 머지 와인 산지에서의 하룻밤은 상큼한 유혹이었다. 머지 와인과 더보의 쇠고기, 양고기 바비큐로  머지 펜션에서의 정찬은 평생 잊을 수 없을 황홀하고 멋진 추억이 되었다. 고생과 긴장 속에 호주 오지를 돌고 온 문명인(?)에게 고기 한 점 와인 한 방울, 머지 베이커리의 곡식 빵은 신의 물방울이자 목동들의 노력의 축제였다.오지를 다녀오니 만사가 감사할 따름이라며 여자 둘이 신이 났다. 게다가 돌아갈 집이 있으니 더욱 행복했다. 오지에서 한 방울씩 아껴 씻던 뜨거운 샤워물의 짜릿한 행복감은 내 인생의 퍼즐에서 제일 큰 조각이 될 것이다. 우편함 사진 첨부           머지에서 시드니로 들어서며 막연한 그리움과 즐거움을 주는 예술품에 반해 빙그레 미소 짓는다. 사열 받는 프랑스 장난감 병정처럼 늘어선 각양각색의 기쁨이 가득한 우편함들이다. 빨 노 파 초록색으로 단장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며 모여선 꼬마병정들의 사랑스러움에 넋을 놓는다. 사람 냄새가 퐁퐁 솟는 우편함이 늘어선 걸 보며 우리는 행복해 한다. 역시 인간이 사는 곳은 아기자기 아름답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접촉을 바라는 마음에 인간사회의 포근함과 따듯함이 절로 솟아난다. 제주도에 갔을 때 어느 폐교에서 우편함을 설치해놓고 느리게 가는 손 편지를 쓰는 운동을 벌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날로그시대의 종말을 아쉬워하며 그들은 아직도 손 편지를 기다리고 손 편지를 넣으며 과거를 체험하고 있었다. 한국에선 이미 다 사라진 우편함이, 여기 호주에선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며 회상에 잠긴다. 왜 이렇게 모여 있는 걸까? 그렇지, 농장 사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이 우편함 덕분에 집배원 아저씨는 수십 마일씩 달려야하는 수고를 면제받는다. 느림을 맛보고 살았던 시절의 여유로움과 낭만을 시드니 외곽에서 느낀다. 아직 이런 오지의 고립된 삶을 즐기는 자연인들이 많은 호주가 그저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아름다운 바다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오지를 가느냐고 사람들은 물었다. 나 자신도 반신반의하면서 떠났던 브로큰힐, 언덕이 깨어져나간 듯 줄지어 서 있는 곳. 죽은 듯 보이는 오지 사막에서 치열하게 생명이 살아 숨 쉼을 체험한 순간은 놀랍고 경이로웠다. 그 사막의 거친 마른 나무, 거친 돌, 누런 풀, 마른 흙 속에서도 삶의 향기가 꼬물거리며 용솟음치고 있었다. 누런 풀 속에 보호색으로 변장하고 치열하게 숨어사는 산양이랑 캥거루의 강인한 생명력이 감동스럽고 존경스러웠다. 마른 흙과 돌덩이도 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는 지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그래, 사막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 지구상에 공존할 것이다. 인간이 사막을 황폐시키지 않는 한,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작가소개 :그림 작가 백경선생은 청산에 묻혀 그림이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인 자유로운 영혼. 이마리 작가와 호주의 붉은 흙을 좋아하는 성향이 맞아 3 회로 연재될 브로큰힐 여행 글에 그림으로 살아있는 자연의 혼을 불어 넣어주기로 단합하다. 센트럴코스트에 묻혀 사는 이마리 작가는 청소년 역사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동학소년과 녹두꽃>에 이어 삼대 째 이어지는 독립군이야기 집필에 열을 쏟고 있으니 멋진 독립군의 탄생이 목하 기대된다.

23/12/2021
문학지평

코바의 태양은 저녁 시간인데도 놀이에 빠져 집에 갈 시간을 잊은 소년처럼 천지를 붉게 물들이며 뒹굴어댔다. 팔레트의 붉은 물감이 오래토록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파란 하늘을 자두 빛에서 라벤더 색깔로 바꾸어가며 화려한 유희를 벌이기도 했다. 코바 캠퍼장의 무인 코티지에 도착한 우리는 이미 시든 상추가 되어 일몰을 카메라에 담을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짐을 풀었다. 제발 더위라는 악마의 그늘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5박 6일의 여정에 4인분의 식량과 옷가지 등의 짐은 사륜구동의 천정에 올라가 있으니 차 지붕에서 트렁크 짐을 내리기 바쁘다. 사막에서 만약을 대비하여 시드니에서 구비한 25리터의 기름통 두 개와 생수통이 차 트렁크를 점령해야만 했기에. 코티지는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와 손바닥만 한 남루한 공간이었지만 온종일 사막의 땡볕에서 허우적거리던 허약한 동굴 인들에게는 천상낙원이었다. 이 오지에 있는 건물이라고는 오로지 이 캠프 사이트뿐이라 시드니에서 아예 6일간 4인분의 식량을 장전하고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4인의 먹보들은 서로 자기가 준비한 식품을 나열하며 생색내기 바쁘다. 원래 식성 좋은 4인방이 오지에서 굶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야지랑을 떤다.“인간은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야!”“와, 안 먹어도 헛배 부른 자, 그대는 굶는 게 어때?”남편이 내 숟가락을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잠시의 실랑이 중에 남은 2인방이 열심히 비빔밥을 축낸다. “아차, 저런 게 어부지리이것다.”우리 2인방도 달려들어 허겁지겁 비빔밥을 흡입한다. 만나가 따로 있나? 점심으로 먹고 남은 음식을 모아 만든 비빔밥 한 끼가 바로 천상에서 내려온 만나려니. 벌게진 얼굴로 숟가락질하는 아귀 같은 게걸스러움에 우리는 마침내 깔깔거리고 만다. 아무리 먹보귀신들이라도 무사 운전을 축하하며 와인 축배 드는 것을 놓칠 수는 없지. 오지에서 맛보는 와인 맛이 꿀맛이다. 40도 이상 되는 길을 온종일 달린 터라 아껴 홀짝거리는 와인 한 잔에 벌써 반쯤 눈이 감긴다. 소박한 행복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다.온종일 달구어진 샤워 물은 천연 온수가 되어 40도는 넘을 듯 뜨겁다. 물론 물이 귀한 이곳은 집집마다 우기에 빗물을 모아 빗물 통에서 나오는 이 물이 생명수다. 당연히 설거지도 작은 그릇에 모아 그릇을 함께 통 목욕시킨다. 낡은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양철지붕을 식힐 정도는 아니라 온열 에어컨이 돌아가는 듯 4인방의 얼굴 모두 벌겋게 달아올랐다. 열이 높은지 에어컨이 노인의 가래기침처럼 길길 거린다. 남편이 걸터앉은 낡은 이층 침대의 난간이 위태롭게 덜렁거린다. 살을 좀 더 뺄걸 그랬다며 침대보다는 자신을 탓하는 남자가 갑자기 존경스럽다. 오지에 있어 준 이 집의 낡고 작은 물건 하나에도 소중함과 감사함이 넘쳐나니 광야에서 도를 닦던 성자들의 고충이 생각난다. 불만장이인 나도 오지에 남아 꿀과 메뚜기를 먹고 살면 좀 착해지려나.잠자기 전 밖을 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우리 차 주위로 온통 캠퍼 밴들이 가득하다. 나도 호주 캠퍼 밴 방랑객들처럼 달랑 캠퍼 밴 한 대에 몸을 밑기고  길 아닌 길을 헤매는 환상에 빠져 든다. 동화작가 폴 제닝스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꿈꾸면서. ‘그때 ‘물 소녀’가 자신의 몸인 물을 한 방울씩 먹여 사막에 온 소년을 살리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스토리가 전개되던 사막은 넓고 황량하기 그지없었지. 지금 이곳 코바처럼.’리빙 데저트, 사막은 살아 있었어.죽음 같은 반 건조 사막.다음날 아침 새벽부터 더위가 푹푹 익어가고 있었다. 코바 구경을 하고 최종 목적지 브로큰힐을 향해 떠나야한다. 더워지기 전에 먼 길을 달려야하기 때문이다. 코바는 브로큰힐의 명성을 잇는 주변 도시로, 석탄 실은 기차가 그곳에서부터 동부 시드니까지 달렸던 거다. 지금은 쇠락한 시골 사막지대지만 호주의 거대한 탄광지대였던 명성답게 붉은 황토 흙에 철제장식으로 된 낡은 기차 전시물이 성황이었던 당시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오지까지 진출한 인간의 선각자 정신이 오늘을 이루게 한 게 아닐까?브로큰힐코바를 뒤로 하고 차는 최종 목적지인 브로큰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브로큰힐은 호주 최초의 광산 도시로 1800년대 유럽, 특히 독일, 영국 등 심지어는 필리핀에서까지 원정 온 노동자들이 개발한 광산촌으로, 아니 큰 도시가 될 정도로 한 때는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다. 이곳이 오지가 끝나는 지역이다. 그러니 브로큰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끊어진 언덕, 부러진 언덕, 고장 난 언덕, 부서진 언덕...등 적당한 어휘를 생각해 보시라.호주는 어디를 가나 낡은 전통을 귀히 여겨 앤티크가 즐비하며 그것을 즐기는 게 관광의 제일 큰 목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과거를 알아야 발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두어 가끔씩 정체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중 하나가 어느 동네를 가나 전국적인 체인으로 운영하는 비니스(Vinnies)라는 자선 목적의 중고 가게다. 물건이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을뿐더러 물건을 사주면 기부하는 셈이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브로큰힐 비니스에는 엔티크 제품들, 특히 영제 중고 그릇이 가득한 걸 보니 역시 브로큰힐이 과거 풍요로웠던 광산 붐의 도시임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도 그때 득템한 작은 소스 그릇 다섯 개가 브로큰힐을 기억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 있는 애장품으로 남았다. 호주를 여행하는 분이라면 도시마다 마을마다 있는 비니스를 들러볼 것을 권한다. 그곳에 가면 한 눈에 그 마을의 수준을 알 수 있기에 다른 정보가 필요치 않더라는 것이다. 참고로 동서가 ‘비니스회장’이라 멤버로 가입하려면 사전에 그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ㅋㅋ 비니스 마니아라서 여행 때 꼭 들려야한대서 우리가 여행 중 붙여준 호칭). 브로큰힐이 가까워오자 펼쳐진 광야에 ‘The Living Desert’ 라는 간판이 보였다. 완전 죽은 사막 같은 곳이 살아있는 사막이라니 의아할 수밖에. 그러나 중간에 멈추어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을 때야 ‘살아있는 사막’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한 길 앞을 모르는 이 우둔한 인간이여!생태계 사슬이 이어지는 사막은 죽은 듯 살아있더라.어디서 무엇을 먹고 사는지 모를 파리 떼의 습격이라니! 손톱 크기 정도는 되는 왕파리 떼의 습격 때문에 보초를 서서 쫓아주기 전에는 도저히 라면을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청바지까지 뚫고 들어와 물어대는 아픔이란! 발을 동동 구르고 한 사람은 연신 파리를 쫓아주어야만 한 사람이라도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라면을 흡입하고 도망치듯 다시 차로 올랐다. 그런데 일행 중 누군가가 이야기하다가 대형파리를 흡입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단백질 섭취라고 신나는 체하면서 은근히 주눅이 든  당사자는 캑캑거리며 죽을 지경이니 나조차 위속에 파리라도 들어간 듯 속이 거북했다. 이 파리 녀석들 때문에 호주 오지 노인들은 입을 작게 벌려 우물거리며 말해 영어가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우리 팀도 되도록 대화를 삼가고 눈짓 손짓으로 대화를 했다. 그 큰 파리를 흡입하면 오지에서 온전히 살아 돌아가지 못할 듯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나마 벌레방지 스프레이로 무장을 했기에 망정이지. 오지 규칙 제 1호. 남편은 놓고 가도 벌레방지 스프레이는 꼭 가져가라.도대체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저 사막에서 어떻게 파리가 번식하는 것일까? 달리는 내내 의심은 계속된다. 그러고 보니 죽은 듯만 보이는 건초가 무수한 생명을 살리고 있음을 실감했다. 위성지도를 보니 부연 은하수처럼 보이는 길. 그것 때문에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바짝 마른 건초 속에 우기의 수분을 숨겨두고 최소한의 수분만을 쓰고 있는 거다. ‘저게 ’와디‘야!, 황토 흙 사이로 난 희미한 색의 골은 우기에 물이 흘렀던 거야!’나는 갑자기 아는 척 호들갑을 떨었다. 브로큰힐에 갈 때 배웠던 걸 벌써 돌아오는 길에 써먹었으니. 이제야 조금씩 의문이 풀린다. 고양이만큼 큰 시꺼먼 까마귀 떼가 모인 곳엔 여지없이 죽은 동물의 창자를 벌여놓은 채 까마귀 떼가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남기고간 그 찌꺼기를 먹는 왕벌만한 쉬파리 떼들. 길에 흐르는 피딱지 위로 정신없이 오가는 개미떼. ‘사막은 나름 신비하게도 공생하며 엄연히 살아있었다.’우주의 광활한 질서 속에서 약육강식이라는 생존 사이클을 돌리는 활발한 공생 공장이었다. ‘서로 먹히고 내어주는 사슬 속에서.’점점 어린왕자에서 아름다운 사막이라던 말에 공감이 가는 순간이었다.내륙 마니아 백경 그림작가 작가소개 :그림 작가 백경선생은 청산에 묻혀 그림이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인 자유로운 영혼. 이마리 작가와 호주의 붉은 흙을 좋아하는 성향이 맞아 3 회로 연재될 브로큰힐 여행 글에 그림으로 살아있는 자연의 혼을 불어 넣어주기로 단합하다. 센트럴코스트에 묻혀 사는 이마리 작가는 청소년 역사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동학소년과 녹두꽃>에 이어 삼대 째 이어지는 독립군이야기 집필에 열을 쏟고 있으니 멋진 독립군의 탄생이 목하 기대된다.

08/12/2021
문학지평

 이마리 글, 백경 그림초록색 선은 시드니에서 브로큰힐까지 가는 여정이며 회색 실선은 돌아온 여정의 표시. 아웃백은 원래 패밀리식당이 아니라 호주 내륙의 반사막 지역을 말한다. 사진에서 흰 점으로 표시된 브로큰힐 앞의 골짜기는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거대한 와디(wadi)이다.언덕마저 사라진 평평한 사막삶은 단조로운 인생의 연속이라며 여행가들은 호시탐탐 진기한 다른 삶을 찾아 떠나는 야릇한 방랑자이다. 그 낯선 곳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또 다른 낯설기를 자처하면서 정처 없이 떠난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비움의 여행이거나, 가끔씩은 욕심껏 많은 것을 채워오기에 바쁜 욕심쟁이가 되기도 한다. 미지를 향한 여정은 분명 가슴 설레지만 돌아올 집이 있기에 여행가는 더욱 행복하다. 그래서 우리는 떨리는 가슴으로 브로큰힐을 향한 오지 여행길에 올랐다.이제 그 추억이 빛바랜 무광 액자로 내 인생에 한 조각 퍼즐로 들어앉으려 한다. 조각난 퍼즐의 먼지를 터는 지금 이 순간을 지나간 과거처럼 그리워하자. 인생은 랜덤의 연속이거늘 우리는 어느 순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까. 호주 시드니에 사는 사람들조차 잠시 문명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막이라는 곳을 느껴보고 싶어 했다. 어린왕자 책속의 지리학자처럼 서재에만 머무르기보다는 넓은 호주 대륙을 체험해 보고픈 욕망을 품고. “영원히 시들지 않을 듯 트래블 플래너의 꿈을 꾸는 남의편(ㅋㅋ)이여 파이팅! 길이 있기에 우리는 떠나노라.”물론 시드니 관광코스에는 사막체험이 있어 저비스 베이의 하얀 모래 위에서 낙타타기, 모래썰매 체험을 해보는 것만도 큰 행운이다. 그러나 이런 재미 다 팽개치고 호주 오지의 고생을 찾아 떠나기로 한 때는 태양의 고도가 제일 높은 1월로 찌는 듯 무더운 날씨였다.  호주 동부 시드니(Sydney)에서 출발하여 브로큰힐(Broken Hill)을 왕복하는 2400km의 대장전이라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두 번 왕복이 조금 못 미치는 거리이다. 이만하면 한국의 거리감과 호주라는 대륙의 거리감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네 명이 교대로 온종일 달려야만 겨우 첫날 밤 예정 숙소인 코바에 어둡기 전에 닿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더보(Dubbo)까지는 초록색이지만 코바(Cobar)부터는 완전 누렇고 평평한 사막지대로 사람이 사는 곳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한참 더 가면 아들레이드가 나오나 이 지도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브로큰힐은 NSW주의 서쪽 끝에 위치한 도시로 브로큰힐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느낌이 벌써 심상치 않다. 우리는 여행에 들뜬 마음을 눌러보려는 듯 투덜거린다.“언덕마저 끊어진 곳이라니 볼 것 없는 누런 사막이겠지. 가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삭막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이 느낌!”“맞아. 우리 왜 그 오지에 가는 거야?” 패트롤 2통과 마실 물 2박스가 맨 먼저 차 트렁크에서 위용을 자랑하며 버티고 앉았다. 가는 도중 주유할 곳 없는 사막에서 두 종류의 리퀴드는 생명줄이라고 수 명의 여행가들에게 조언을 받았으니까. 땡볕에 고장이 날 경우에 대비하여 차주는 차를 조이고 기름 치는 등 철저 점검을 마친 후, 동승자들도 몸을 털며 가벼운 체조를 해본다. “앗싸, 이제 광야를 달리는 거다!” 서부 퍼스에서는 12월, 1월 등의 여름(호주는 북반구에 위치해 남반구의 한국과는 완전 반대 기후) 성수기에 양철지붕 위에 달걀을 놓으면 프라이가 된다 하니 사막의 1월은 그야말로 불볕이었다. “그래도 겨울여행은 사막 추위 때문에 움찔하지 못하니 더위가 낫지!” 라며 두 커플이 완전 의기투합이 되었다. 평소에는 별로 닮은 점이 없다고 자처하는 시동생 내외가 우리 부부와 완전 찰떡궁합인 때가 있으니 바로 여행이라는 마약 앞에 설 때이다. 끝내고 돌아서는 순간 입맛을 다시며 다시 지도 옆을 서성거리는 그런 중독증 말이다. 진정한 오지체험은 로드 킬 브로큰힐까지의 여정 중 도로에 즐비한 로드 킬이야말로 고개를 돌리게 할 정도로 공포 그 자체였다. 운전 중 로드 킬을 만나도 절대 눈을 돌리거나 핸들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받았음에도 덩치 큰 사체를 피하고 나면 공포와 애처로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빈번하게 널브러진 사체를 접하면서 점점 그런 감정이 무디어지고 있었다. 급기야는 그 동물들이 시도했던 도전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왜일까? 그들 중 더러는 길 건너는데 성공해 안전하게 착륙했을 것이고, 더러는 눈앞에서 창자까지 펼쳐진 채로 아귀다툼하는 시커먼 까마귀들의 밥이 되고 있었다. 어느새 그 처절한 잔해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저건 약육강식과 자연 순환의 먹이사슬일 따름이야.’사막의 동물들은 자동차라는 거대한 문명의 희생양이 되면서도 줄곧 도로를 건너는 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2차선 도로에 띄엄띄엄 무한대로 이어지는 죽음의 사체들이 그걸 말해주었다. 그것은 험난한 바다에 떠도는 일엽편주 피난민보트와 다를 게 없었다. 보트에서 떨어져 나뒹구는 군상들은 물이나 먹이를 찾아 목숨을 걸고 미지의 신세계로 이동하려다 더러는 부모와 자식을 놓친 비운의 낙오자들이었다. 앞의 죽음을 보면서도 길을 건너는 행렬을 멈출 수 없음은 도로 건너편 막연한 환상의 섬에 닿기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하필 그 지역에서 운전대를 잡았던 겁쟁이 이 운짱도 수백 킬로미터 로드 킬에 차츰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도로 위의 희생양을 보면서 인류의 도전과 역사가 되풀이되는 교훈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현인인 체 중얼거리기까지 했다.‘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려면 희생이 따르지. 항상 더 큰 도전이 필요해.’널브러진 다섯 마리의 크고 작은 돼지가족의 몰살 장면은 동승자 모두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온 돼지 가족이 당한 참사 앞에 신경을 끈 채 차라리 운전대를 잡은 나는 달리기에만 몰두할 수 있어 어쩌면 운 좋은 운짱이었다. 다리를 벌러덩 위로 벌린 채 등으로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어미 곁을 스쳐갔다. 여태 뜨거운 김이 운무처럼 솟아올라 햇살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제발 편히 잠들기를.’ 브로큰힐까지 달리는 내내 제일 큰 문제는 로드 킬을 피해야하는 운전기술이었다. 120km가 넘는 빠른 속도로 달리다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거대한 동물을 피하려면 중앙선을 침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반대편에서 쏜살같이 나타나는 차량을 종잡을 수가 없기에 정면에서 오는 차량에 신경을 쓰면서 사체를 피해가야 한다. 그래서 이중 방어운전의 자세가 필요했다. 어쨌거나 동물의 충돌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사륜구동 보닛 아래 부분에 돌출한 기다란 쇠막대기 – 무지한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잘 모르지만- 를 붙이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되었다. 차량도 많지 않고 변화 없는 일직선 도로가 운전하기 편할 것 같지만 실은 집중력을 무지하게 요구했다. 그러니 나 같은 겁쟁이 운짱에게는 옆에서 수다를 떨어주는 동승자가 구세주였다. 너무 긴장한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사방에 초록 풀도 푸른 나무도 없이 누런 억센 잡풀만 무성한 들판을 양쪽에 두고 차는 하염없이 달린다. 발목정도 오는 길이의 누런 잡초인 사막의 유일한 건초 스피니펙스(spinifex)가 나타난다. 그래도 오지의 유일한 이 억센 잡초 덕분에 야생 캥거루와 산양이 살아간다니 신비의 풀이기도 하다. “원주민이 이 건초 가루를 내 무기 만드는데 끈끈한 풀로 썼다니!”그 질긴 풀은 사막의 왕자다. 죽음 같이 누런 사막에서 마침 눈에 띈 산양이 플라스틱 같은 그 줄기를 열심히 흡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발견한 생명체를 보며 의아함 반 경이로움 반으로 소리를 질렀다.. 물이 없는 곳에 생명체가 나타났다는 경이로움도 잠시 와디가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지도에 하얗게 보이는 ‘와디(wadi)’라는 곳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물이 흘렀던 곳이지만 건기에는 마른 골짜기가 된 곳이다. 이런 사막에도 한 번 씩은 비가 온다는 증거일 테니, 오지에서도 생명이 살아가도록 설계된 자연의 질서가 경이로울 따름이다.“이런 가는 물줄기가 다른 생명을 살린다는 족적이구려!”“그렇지. 자연의 공생인 거지.”“아, 공생!” 도로와 사체에 익숙해져 운전에 자신감이 붙을 무렵 차가 끼익, 스키드자국을 내며 쏜살같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작은 송아지만큼 큰 캥거루 사체 앞에서 급정거했지만 거의 차를 들이박을 뻔했다. 소중한 세 인간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죄목으로 남편에게 항의도 못한 채 나는 운전대를 뺏기고 말았다. 난 씩씩거렸다.“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저 덩치 큰 캥거루 녀석 때문이라고!” 나는 잠깐 고개를 핸들에 박고 사체를 못 본 척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헐떡거리는 캥거루 배에서 흘러나온 창자가 부연 수증기를 내뿜는 게 어른거렸다. 고개를 돌리며 나는 정신 나간 주술사마냥 중얼거리고 있었다.“괜찮아. 조금만 견뎌. 건조한 땡볕이 너를 차라리 미라로 만들어줄지도…….”그러나 삽시간에 시커먼 고양이만이나 한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날아들었다. 어떻게 신통한 저녁거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걸까. 남편이 말했다.“자연의 섭리지. 먹이사슬에 순응하는 거야.”자연과학을 한 그의 메마른 답에 나는 다른 답을 찾아 반항하고 싶어진다. 좀 더 인간적인 답을 찾지 못한 채 의도적으로 재촉만 한다. “밖에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달려요. 시간이 금인데.”그에게 운전대를 뺏긴데 대한 최대한의 보복이다. 갑자기 어린 시절 멋모르고 고무줄넘기하며 불렀던 노래가 떠오르는 건 웬 일일까. 어쩌면 사체를 건너왔기 때문인가.“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흘러가라 우리는 전진한다.”어린 시절 멋모르고 부르던 소녀들 노래가 으스스한 전장 노래였음을, 무심코 달려온 이 길이 피난민 보트의 행렬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과연 이렇게라도 인간과 자연은 나름의 순환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비움의 여행이고 싶었는데 어느새 나는 사유하는 욕심쟁이가 된다. 어디선가 바람처럼 숨소리처럼 속삭임이 채근한다.“오지가 너를 부른다. 어서 달려가 보렴.” 두 작가소개 :그림 작가 백경선생은 청산에 묻혀 그림이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인 자유로운 영혼. 이마리 작가와 호주의 붉은 흙을 좋아하는 성향이 맞아 3회로 연재될 브로큰힐 여행 글에 살아있는 자연의 혼을 불어 넣어주기로 단합하다. 센트럴코스트에 묻혀 사는 이마리 작가는 청소년 역사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동학소년과 녹두꽃>에 이어 삼대 째 이어지는 독립군이야기 집필에 열을 쏟고 있으니 멋진 독립군의 탄생이 넌지시 기대된다. 

24/11/2021
문학지평

수필 반쪽 사랑 삽화(박조향 그림)“엄마, 율이가 할머니 보고 싶데.”“으응? 율이가?”핸드폰 화면 가득 뽀얀 아가의 얼굴.“에구구 내 강아지 반가워라. 훌쩍 자랐네. 누굴 닮아 이렇게 잘 생겼노.”흥분한 할매의 폭풍 수다에 반응이 없다.“엄마 얘가 잠 잘 시간인데 아무리 자려고 애써도 잠이 안 와서 눈물이 난데.”“세상에나 우리 왕자님이 시인이네. 표현이 너무 시적이잖아.”“엄마, 나는 이 아이 땜에 살 수가 없어. 매사 이런 식이야. 고칠 수 없고, 구할 수 없고,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집요하게 날 괴롭히는 거야.”딸의 싸늘한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져 섬찟하다. 천사같이 말간 손주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할머니 보고 싶다고 불러놓고 아무 말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5년 전 율이는 쌍둥이 중 동생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딸은 늦은 나이인데다 쌍둥이를 갖게 되어 여러 가지 위험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무사히 자연분만을 성공시킨 닥터의 모습이 개선장군 같았다. 신생아실 침대에 누워있는 아가들은 마치 면봉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 작고 가여워서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산모는 피가 거꾸로 돌아 혈압이 180을 넘어 밤새도록 비상이었다. 독한 약을 투여했으므로 모유 수유를 금했다. 심장 문제가 심각하여 다시는 임신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받았다.내 딸이 죽다 살아났는데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를 주문처럼 되뇌기만 했다. 딸은 어려서부터 꿈꾸던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여 첫 작품을 개봉하고, 육아에 전념했다. 나는 작고 연약하게 태어난 아가들이 정상아가 될때까지 백방으로 갖은 노력을 다하는 딸의 모습을 멀리서 안타깝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살얼음을 디딘 나날이었다.엄마 하나, 아빠하나. 그런데 한 번에 태어난 아이는 둘, 이란성 쌍둥이 선과 율.  그래서 선이는 늘 엄마의 반쪽만 차지하고, 율이도 항상 아빠의 반쪽만 차지할 수 있는 게 불만이었지. 차라리 일란성 쌍둥이였으면 언제나 아빠 엄마의 무릎에 안겨있는 아가를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려니 하고 덤덤할 수 있지 않았을까?  타고난 운명! 엄마 아빠는 죽을힘을 다해 선, 율을 사랑 하는데 아가들은 반만 느끼나보다.서로 엄마 아빠를 독차지하겠다고 쌍으로 울어댄다. 전쟁터에서도 세월은 흘러 아가들의 돌잔치를 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의 희생과 노력으로 아이들은 살이 포동포동한 예쁜 정상아가 되어 있어서 대견스럽고 감사했다. 기진맥진해진 딸을 위해 두문불출하고 뒤늦게 딸의 산후조리에 최선을 다했다.“엄마가 있으니까 너무 좋다. 엄마, 호주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될까?”  딸이 애처로워 무려 넉 달이나 연장체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50여 년 전 내 아이 삼 남매의 산후조리를 친정엄마가 얼마나 정성껏 해주셨는지 산모가 아주 건강해졌던 생각이 난다. 나도 내 딸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은데 마음뿐이다. 투석환자인 나는 호주 의료진의 관리하에 있어 시드니를 떠날 수 없다.율이 문제에 대한 딸의 소견은 분리 불안인 것 같다고 한다. 신생아 때부터 모유 수유도 못하고 아기가 백일이 될 때까지 신생아 전문가가 돌보았다. 그녀가 떠난 후 입주 도우미가 돌이 되도록 율이를 데리고 잤다. 그 후 4개월간 외할머니인 내가 데리고 자다가 호주로 떠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빠는 직업상 밤 촬영, 지방 출장으로 수시로 집을 비우게 되어 아이가 자다가 바스락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서 더듬는다고 한다.딸의 한숨 소리에 애간장이 녹는다.“엄마, 쟤 아직도 울어.”딸도 우는 것 같다. 태평양 너머로 딸의 통곡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안타까움에 가슴만 쥐어뜯고 있었다.“엄마, 글쎄 유치원 선생이 율이가 뭘 잘못했는지 친구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는 거야. 나이도 한참 어린 게 사과를 안 한다며, ‘그런 건 집에서 가르쳐야 되는 거 아닌가요?’ 라니 그의 입을 찢어놓고 싶었어.”“에구구, 잘 참았다. 함부로 지껄이는 거 병이니까 신경 쓰지 마라. 율이는 왜 사과 안 했대?”“부끄러워서 그랬대.”율이는 본래 말이 없는 아이. 뭐든지 나서서 잘 하는 선이에 비해 늘 엄마 뒤에 숨어버리던 율이다. 이제 겨우 만 네 살 아이의 수난이라니! 자유롭게 뛰어다니기 좋아하고, 읽지도 못하는 책장 계속 넘기던 율이가 기특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책을 보내주며 말했다.“해양학 박사 동문이 특별히 어린이를 위한 해양학 동화를 출간 했기에 얼른 구입했어. 과학적인 내용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쉽고 흥미 있게 소개하고 있어 아주 재미있더라. 율이 책 좋아하니 계속 읽어주렴.”한참 동안이나 딸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별의별 얘길 다 했다. 조금은 건방지고 지나치게 깔끔한 딸이 평생 그런 모욕을 당하긴 처음이었을 거다. 아빠 엄마의 황금기에 태어나 강남 한복판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살던 애라 부모 따라 이민 와서 몰락해가는 과정에서도 교회봉사를 잘 해서 칭찬이 자자했다. 청년사역에 봉사하기 위해 몇 년 동안 한국에 나가 반 지하에서 적응하며 서민들의 생활을 아름답게 애기해줘 참으로 고마웠다.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주변 거래하는 상인들의 칭찬에 이 어미는 안심하고 뿌듯했다. 세탁소 주인이 나에게 꽃 화분을 보여주었다. 늘 일만 하느라 꽃구경 못 하는 자기를 위해 따님이 사주었다고 고마워해 내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한 딸이다. 이렇게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범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치고 실천하는 딸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게 어미로서 너무 안타까웠다.지난 5년간 음악치료, 미술치료, 놀이 치료 등 별의별 상담을 다 해보았으니 지칠 만도 하지. 외할머니의 역활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미안하고 괴로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밤새도록 울며 기도하다가 비몽사몽간에 하얀 옷자락을 끌면서 누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형상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예수님이 우리 율이를 품 안에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예수님이 찾고 있는 게 율이 엄마라는 걸 직감으로 알았다. 이튿날 아침 딸에게 전화로 울면서 얘기해 주었다.  “예수님께서 널 찾으시더라. 우리 율이를 품어주시니 이젠 네 힘으로 하려고 애쓰지 말고 주님께 맡기자. 아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우리 대장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자.”‘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나를 돕는 구원이 어디서 오나.      이제로부터 영원 무궁히 주 나를 지켜주시리’<작가소개>박조향 선생은 국전에서 수상을 비롯 수 차례 전시회를 개최한 응용미술가로 평생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아온 진정한 예술가이다. 자신의 삽화를 곁들인 수필집 <라일락향기>를 출간했으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성서와 문학, 좋은 수필에 수필을 기고했으며 시드니 문학, 한호 일보, 한국신문 등에 수 차례 수필을 연재 기고한 재원이기도 하다. 현재 워이워이에서 예술활동을 하며 행복한 노후를 그림처럼 즐기는 선생의 다음 예술작품을 목하 기대해본다.

10/11/2021
문학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