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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난주 토요일(9월 11일), 30도에 근접한 쾌청한 날이었다. 뉴스에 본다이비치 사진이 올라왔다. 해수욕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마 경찰들이 모래사장을 순찰하던 한 달 전과는 판이한 풍경이다. 조금 억울했고 많이 부러웠다. 그곳은 나의 LGA(지자체)도 아니고, 5Km를 훨씬 벗어나 있다. 나는 불루마운튼과 본다이비치 사이에 끼어 있는 수인(囚人)이다. 산에도 바다에도 못 간다. 그래서 지혜로움(智)과 어짐(仁)이 자꾸 희박해 진다. ‘공황장애’가 뭔지도 조금 이해가 된다.그러다가 신문 기사를 통해서 100세를 넘기신 김형석 교수의 질문을 받았다. ‘목사님은 공자를 읽어 보셨습니까?’ 곰곰이 생각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봤고, 오가며 이리저리 단편적으로 읽었지만, 완독은 못했다. 그래서 전자책을 다운했는데, 저자 황희경이 쓴 서문에 ‘샤쩡여우(夏曾佑)” 이야기가 나온다. 1912년 스위스에서 귀국한 20대 제자 ‘천인커(陳寅恪)’에게 말한다. “자네는 외국에서 좋은 학문을 많이 배우고 돌아왔으니 정말 축하할 일이네. 난 중국 책만 읽을 수 있고 외국 책은 읽지 못해. 하지만 난 중국 책을 다 읽어 버렸어. 이제 더 볼만한 책이 없다네.” 20대의 천인커는 그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70세 되기까지는. 왜냐하면 중국의 옛 책(고전)은 수십 종에 불과했고, 맘만 먹으면 깡그리 다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2.산과 바다는 커녕, 근처 카페도 못 가는 록다운 때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밥 먹는 일이 주된 업이다. 국수가 먹고 싶어 넷플릭스로 ‘파스타’란 한국 드라마를 봤다. 11년 전 방영된 드라마인데, 공효진과 이선근이 주연이다. 여기서 공효진은 ‘공블리’란 별명을 얻었다. 공이라는 성에다가 사랑스럽다는 ‘러블리’를 붙인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내를 ‘김블리’라 부른다. 록다운 기간 뿐 아니라, 결혼 후 지금까지 하루 3끼를 꼬박 제공해 줬기 때문이다. 국수, 밥, 짜장면, 탕수육, 심지어 라면까지 만들어 준다. 하여튼, 록다운 기간 동안 넷플릭스와 친하게 지내는데, 사실 그게 다 그거다. 드라마나 영화의 특징은 ‘바보상자 신드롬’이다. 재미는 그때 뿐이고, 남는 것은 별로 없다. 괜히 시간만 지나간다. 그래서 이 참에 공자의 논어를 제대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거두절미하고, 공자의 제자가 물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해 줬다. “괜찮기는 하나, 가난한 가운데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 배운 것도 바로 ‘자족’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3.나는 자족하기 위해 문화생활을 한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하늘의 태양과 달과 구름을 보고, 향기 날리는 꽃 사진을 찍으며, 내 생각을 온라인으로 띄운다. 그러면서 선문답을 시작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머니”다. 그러나 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새 가장 뜨거운 곳이 증권시장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10배 이상의 이익을 얻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열면 “어떻게 주식투자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가득하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나를 ‘존리’에게 이끌었다. 3만 원에 사서 440만 원에 팔았다는 주식투자의 전설. #유퀴즈에 나와서 유재석의 질문을 받았다. “부자는 뭡니까?” “음… 부자는 내가 돈으로부터 독립하는 거예요…” 나는 ‘유레카!’를 불렀다. 유튜브를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었다. 결국 부자는 ‘자족하는 사람’이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삶.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돈에 눌려 사는 것이 아닌, 주어진 환경에서 자족하며 사는 삶이 최고다. 비록 그 환경이 처참하기 그지없는 ‘지하 감옥’이라 할지라도.4.나이아가라 폭포의 캐나다 쪽 해양공원에는 범고래 ‘키스카’가 산다. 그가 수조관 벽에 자신의 몸을 마구 부딪치는 모습이 영상에 떴다. 내부고발자는 이렇게 말한다. ‘해양공원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범고래 키스카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것을 관찰했다. 이 잔인함은 끝나야 한다”. 범고래는 높은 지능, 뛰어난 신체 능력,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을 가진, 바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다. 영어로는 “Killer Whale”. 길이 9.8미터, 몸무게는 10톤에 근접한다. 물론 그보다 더 엄청나게 큰 ‘대왕고래’도 있다. 27미터 길이에 160톤까지 나간다. 그럼에도 별다른 무기가 없는 범고래가 최고의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지능과 사회성을 가지게 진화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무위키는 전한다.5.우리는 지금 최고로 삼엄한 록다운을 경험 중이다. 죽을 지경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종말의 공포”가 휩쓸고 있는 현 상황에서, 록다운은 오히려 축복의 기간이다. 우리가 소원하던 모든 것(돈,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가 끊겨져도, 거뜬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 비법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몇 개 안 되는 고전(Classic Books)에서 찾는다. 자족하는 삶을 가르쳐 주는 논어를 보고, 성경도 읽는다. 그 중에는 내 아버님 말씀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30대쯤부터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자유롭게 살아, 재미있게 살아!” 60 중반을 넘기면서 비로서 그 말뜻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0월 말이면 열릴 ‘해방의 날’을 기다린다. 그때쯤 이면 “돈 밖에 모르는 이 잔인한 세상”에서, 좀 더 불혹(不惑)하고, 지천명(知天命)하며, 자족(自足)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소망을 가지고. 그 때쯤이면 본다이비치도 가고, 불루마운튼도 가고, 비행기타고 한국도 갈 수 있다는 소망을 가득히 품으면서..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16/09/2021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1.록다운 8주 차. 집에 갇혀서 하는 일은 먹는 일이다. 누가 말했듯이 ‘돌 밥’이다. 돌아서면 밥, 또 돌아서면 밥.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일단 커피 한잔을 끓이고, 어제 만들었던 마늘 빵을 한쪽 먹었다. TV를 틀었다. SBS 세계 뉴스 시간인데, 그리스 편이다. 벌써 몇 달째 불타오르고 있다. 그리스어(Greek)는 모르지만 알파벳은 읽을 수 있다. ‘Avgaria’. 생소한 지명이지만 주민들의 비명은 뉴스를 타고 여기까지 들린다. ‘이건 완전 재앙이에요. 우리는 버림받았어요. 소방차는 볼 수도 없고, 우리 차들도 다 타버렸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점점 다가오는 엄청난 열기를 느껴요. 우린 여기서 타 죽는 걸까요?” 산불이 번지고 있는 곳은 민주주의의 요람 아테네 근방이다. 이미 언덕 위 파르테논 신전은 산불 연기로 가득하다. 산불이 더욱 심한 곳은 에게해 건너편 터키다. 지중해에 면해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들을 중심으로 북쪽과 대륙 내부로 계속 번지고 있다. 심지어 동토의 땅이라 기억하는 러시아의 시베리아도 100여 군데가 타고 있다. 독일은 홍수로 진흙탕이 되었다. 그 넘쳐나는 물을 밑으로 부어 버리면 좋겠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러시아 공산주의가 무너지더니, 이제는 서구 문명과 민주주의의 요람마저 불타고 있다. 그러면 뭐가 남는 거지?2.등 뒤 부엌에서 아내는 야심 찬 일을 시작했다. 메밀국수를 한 소쿠리 삶았다. 메밀은 살이 안 찐다는 생각에 겨자를 맘껏 풀어서, 아기공룡처럼 목으로 불꽃을 발하면서 배부르게 먹었다. 그렇게 아침 시간이 일단 지나갔다. 거실에는 나만 남아 이 글을 쓰고 있었다. 사방은 고요하다. 그러다가 뒤쪽에서 사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했다. 소리가 좀 더 커지더니, 뭔가 굴러가면서 쨍그랑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명확한 그림이 그려졌다. 어젯밤 음료를 마시고 닦아 놓은 샴페인 잔!. 달려가 보니 과연 그랬다. 비싼 건 아닌데, 식구 중 누가 선물 받아온 잔이다. 목이 길고 잔 자체도 길고 좁다. 밑에 둥근 받침은 있지만, 무게 중심이 위에 있어서 잔을 닦을 때나 말릴 때 주의해서 세워 놔야 한다. 록다운 시절이라 샴페인 터뜨릴 계제는 아니기에, 음료수를 따라 마시고 닦아서 건조대에 조심스럽게 세워 놨었는데, 오늘 아침에 자리가 옮겨졌던 것 같고, 그 후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5분이 지나갔는데, 조금씩 움직이면서 결국은 타일 바닥으로 떨어지고 깨져버렸다.3.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어제 그 잔을 쓰지 않았다면 오늘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 잔을 안전한 곳에 옮겨 놓았어도 그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터였다. 현재 지구의 가장 큰 문제는 ‘기후변화’다. 그것을 원인으로 일어나는 결과가 산불, 홍수 그리고 코비드-19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이 원인과 결과를 부인하지 못한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외치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한 귀로 흘려 보냈었다. 특히 부자 나라들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 경고를 무시했고, 화석연료를 무진장 소비하도록 부추겼다. 자동차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공장 굴뚝은 이산화탄소를 무한대로 뿜어 대며 지구 온도를 올려 댔다. 아마존 밀림을 태워 그 땅에서 재배한 옥수수로 소를 먹이고, 그 소를 잡아먹으며 인간 체중을 늘려갔다. 그 결과 지구의 허파였던 아마존은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더 뿜어내는 독가스 공장이 되었고, 1800년에 10억이었던 세계 인구가 이제는 79억이 되었다. 진정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의 번식 능력에 감탄할 뿐이며, 그 무게를 버텨주는 지구가 대견할 뿐이다.호주 역시, 청정국가인 양 점잖은 양처럼 뒷짐 지고 있지만 사실 중국/미국/한국과 더불어 ‘기후 깡패’의 일원이다. UN 보고서에 의하면 호주의 기온은 1910년보다 1.4도가 상승했다. 만약 2도까지 올라가면 지구상 생명의 절반은 사라진다. 결국 인간도 멸종할 수밖에 없으며 남는 것은 바퀴벌레와 그 동류인 바닷가재뿐이다. 먹어주는 사람이 없는 그 상황을 바닷가재는 좋아할까?4.So what?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과연 인간은 지구 종말을 피할 수 있을까? 원천적으로는 없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멸망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계 지도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만든 것이 ‘넷 제로 (Net Zero)’다.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가 균형을 맞추게 하자는 것이다.호주 정부는 2050년까지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한국도 그랬다. 하지만 호주 정부는 공식 선언을 하지 안았다. 과연 그렇게 될까? 우리가 앵거스 비프와 태즈메이니아 연어를 좀 덜 먹고, 쓰레기를 줄이며, 차 타기보다 걷고, 공정한 소비를 하고, SNS를 덜 쓰고, 온라인 구매를 절제하고, 몇 벌의 소박한 옷으로 살면서, 검소한 가구를 오래 쓰며, 적당한 규모의 집에서 살 수 있겠는가?동굴인간(Cave-man)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작은 것에 자족하며, 이웃과 환경과 지구를 생각하며 살자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의 인간 문명은 태생적/본능적으로 뻥튀기 지향적이다. 검소와 절제와 이웃 배려에는 대단히 소극적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후손들이라 그런가? 우리는 입다 만 옷을 길거리 통에다 넣는다. 의도는 좋다. 남는 옷을 이웃에게 기부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수거해 간 옷은 호주에서 재소비가 다 안 된다. 대부분은 아프리카로 보내진다. 거기서도 60% 이상은 다시 버려지고 바닷가에 산처럼 버려진다.그렇게 아프리카는 서구의 쓰레기장이 돼가고 있다. 결국 시작은 나와 당신의 몫이다. 이기심과 탐욕을 버려야 한다. 지구 재앙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당대의 존망에 관한 일이다. 이제라도 우리가 정신차리고 힘쓰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얼마 전 산책하러 나갔다. 열심히 걸으며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앞에 전깃줄이 보였다. 그 중간에 작고 검은 물체가 걸려 있었다. 신발은 아니었다. 자세히 올려다보니 박쥐 한 마리였다. 아니 웬 박쥐? 앞뒤 집 문을 두들기며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아세요. 언제부터 박쥐가 여기 나오기 시작했나요?” 박쥐 한 마리는 보통 2~3개의 코비드 바이러스를 지니고 산다. 혹시 그 박쥐가 코비드20이나, 21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5.이 글을 쓰는 동안 11AM의 스타, 주총리가 등장했다. 345명의 감염자를 보고하면서, 내가 사는 근방인 베이사이드, 버우드, 스트라스필드도 추가 록다운 LGA로 선포했다. 뒤이어 나온 정신과 의사가 말한다. “이번 팬데믹은 여러분 일생에 가장 힘든 위기입니다. 정신 잡고 살아야 합니다. 운동도 하고 우울증에 걸리지 말고…” 록다운 8주 차 동안 집에 갇혀서 하는 일은 먹고 노는 일이다.얼마나 더 연장될지 누구도 모른다. 이젠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보지만 ‘슬기로운 록다운생활’을 통해 ‘넷 제로’의 각론을 실천해 나갈 때다. 물론 힘들다. 그러나 이미 교훈을 받았다. 유리잔이 깨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후처리에는 얼마나 큰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가? 일단 빗자루로 큰 것을 쓸어 담아야 하고, 진공청소기로 몇 번을 반복해서 바닥을 쓸어 담아야 한다. 정말 하기 싫지만, 한 조각의 유리가 남아서 나와 아기의 맨발을 찔러 대면 진짜 큰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이제는 슬기롭게 살아야 할 때다. 지금까지 바벨탑으로 쌓아 올렸던 것들을, 내가 먼저 해체하는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다 죽는다.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12/08/2021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1.오늘도 걸었다. 어제도 걸었다. 그 전날도 걸었다. 내일도 걸을 것이다. 다음 주 코비드 록다운이 풀릴 때까지 걸을 것이다. 그것 외에는 밖에 나갈 일이 없다. 1년 반 전에 그토록 많이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걷고 있다. 그때는 지겨웠지만 지금은 감사하며 걷는다. 물이 있고 석양이 있으며 내 시선의 소실점이 되는 커피 공장 굴뚝이 있다. 그곳에서는 나의 후각을 자극하는 커피 향이 사이렌의 노래처럼 흘러나온다. 나는 오디세이가 아니기에, 그 향기가 내 온몸을 충분히 감싸도록 기꺼이 내어 준다. 커피는 마실 때 보다 원두를 갈고 볶을 때가 더 좋다. 목으로 넘기는 미각보다는 후각으로 마시는 커피가 더 좋다.2.아주 오래전, 나는 아라비아반도의 동쪽 끝 시장길을 걷고 있었다. 한국 건설회사들의 현장과 아람코 석유회사가 맞닿아 있는 길이었다. 혼미하도록 강렬한 커피 향이 내 코를 파고들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진원지로 여겨지는 잡화 상점으로 들어갔다. 자기들이 마시려고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저도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향기가 정말 죽이네요!” 나그네를 기꺼이 대접하는 베드윈의 후예는, 햇빛에 거칠어진 얼굴에 자애로운 웃음을 함빡 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잔 따라주었다. 맛은 그저 그랬다. 크지 않는 잔을 반쯤 기울였을 때는 진흙 같은 잔류물도 보였다. 원두커피를 볶고 갈아서 그냥 끓인 커피였다. 맛은 그랬지만 그 향기는 내 머릿속에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 추억을 잊지 못하고, 시드니 뉴타운이나 어번에 가서도 터키쉬 커피를 시킨다. 맛은 여전히 그렇고 그렇다. 그때 내 머리에 각인된 그 향기를 그 어디서도 소환해 낼 수가 없다. 커피 공장 굴뚝에서 흘러퍼지는 향기에서 반쯤을 맡아낼 뿐이다.3.코로나-19에 감염되면 후각과 미각을 상실케 된다. 한 지인은 코비드에서 몸은 회복되었지만 후각과 미각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음식을 먹어도, 커피를 볶아도 전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건조할까? 그럴 때는 뇌를 달래보는 수밖에 없다. 미각/후각을 인지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맛을 기억하는 원래의 경로는 이렇다. 향기의 정보가 코와 입을 거쳐 머리로 올라갔다가, 다시 가슴으로 내려와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긴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이 과정 중 입/코에서 뇌로 올라가는 과정을 생략해도 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직접 내려오게 하면 된다.그래서 추억은 소중하다. 좋은 추억은 현실을 향기롭게 만든다. 그 오래전, 아라비아 상인이 피워낸 향기를 다시 소환하는 것처럼.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한적함이 필요하다. 바쁘면 안 된다. 작디작은 뇌세포 하나 속에 깃들여진 냄새의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쩔 수 없이 한가해진 록다운 기간은 삶의 본질을 소환해 볼 수 있는 기막힌 기회다.4.나는 사진을 찍는다. 매일 산책을 하면서 몇 걸음 걸었는가는 스마트폰을 보면 된다. 그 산책의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는 찍어 온 사진을 통해서 본다. 내 책상에는 두 개의 화면이 있다. 노트북 컴퓨터를 대형 모니터에 연결해 놓았다. 큰 화면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작업은 건조하다. 이 글을 쓰는 일도 지적 노동이다. 옆에 있는 작은 화면에서는 유튜브가 돌아가거나, 내가 찍어온 사진들이 1분마다 장면을 바꿔가며 보여 준다. 그렇게 나는 큰 화면을 통해서는 현실을 살고, 작은 화면을 통해서는 추억을 소환하며 기대를 현실화한다. 음악을 들으며 연주회장에 있음을 추억하고, 이국의 영상을 보면서 여행의 발자국을 떼며, 사진을 통해서는 지나칠 때 보지 못했던 디테일을 본다. 바쁘게 걸어가는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다. 내가 보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들. 그것들을 다시 발견하며, 현재의 고달프고 건조한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5.지금 우리가 올려다보는 밤 하늘의 별빛들은 실상이 아니다. 수 억 년 전에 존재했던 빛들의 그림자다. 그러면서 질문한다. 실체는 무엇인가? 무엇이 진실인가? 내가 경험한 그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중에 확인하게 되는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인가? 아주 오래전 플라톤이 말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동굴 속의 그림자일 뿐. 왜? 우리의 몸과 시선이 동굴 안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 결국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그림자다. 몸과 눈을 돌려야 한다. 동굴 입구를 향해 한 걸음씩 나가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동굴 경계에는 ‘한계 Limit’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한계는 ‘접근 금지’란 말이 아니다. Doorway(현관)이란 말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편안한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 충분한 휴식 후 다시 세상으로 뛰어나가기 위해 다시 거쳐야 하는 현관이다. 정신질환을 다루는 병원에서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 혹은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임시 거처를 말할 때 Doorway란 말을 쓴다. 그곳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나옴을 전제로 한다.지금 코비드 록다운은 ‘현관’이다. 필요하면 평안의 집으로 들어가라. 참되고 좋은 것을 추억하여 행복해지라. 머지않아 록다운이 풀릴 것이다. 그때 잘 쉰 사람만이 힘차게 세상을 향해 뛰어나갈 수 있다.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08/07/2021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1. 좌절된 여행길 한 지인이 태즈메이니아 호바트를 간다. 멋진 자동차 여행 계획을 세웠다. 가는 도중은 지상 최고의 아름다운 명소가 가득하다. 호주에서 제일 높은 2,228미터의 코지어스코산과 호수 및 스키장이 있고, 피싱타운으로 유명한 버마구이가 있으며, 멜번에 도착해서는 진한 향기의 커피가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가? 사람과 함께 차도 날라주는 밤 배(night ferry) ‘스피릿 오브 태즈메이니아’ 호 갑판에서 올려다보는 남십자성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사랑하는 사람을 뒤에서 지그시 안고 양팔을 올려 주면서, 함께 바라보는 수평선 끝에는 데본포트 항구의 불빛이 반짝반짝. 모로코의 카사블랑카가 이보다 더 좋을까? 새벽 배에서 내려서는 풍요로운 들판에서 뛰노는 소와 양을 쫓아 차를 달린다. 높고 낮은 구릉을 넘고 넘으면 크레이들마운틴 앞에 선다. 타닌의 갈색으로 물든 비둘기호수를 한 바퀴 돌아볼 때쯤이면 속세의 검은 때는 이미 다 빠져 있다. 남극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거대한 앨버트로스를 따라 조금 더 달리다 보면, 호주 최고의 청정도시 호바트를 내려다보는 웰링턴산 정상에 도착한다. 그러면 이미 신선이 되어 있을 터. 그런데 멜번에 다시 코비드 록다운이 걸렸다는 긴급 뉴스가 들려왔다. 감염자 가족 4명이 NSW 남쪽 해안 도시까지 진출했었다는 공포의 비보까지 들려왔다. 정말 멜번은 불쌍하다. 다른 도시들에 비해 4번이나 더 많이 록다운이 걸렸다. 한 주 록다운을 하면 10억 불 + 멘탈 헬스 비용이 들어간다. 14일 동안 추가 감염자가 나오질 않아야 겨우 록다운이 해제된다. 유독 멜번이 그렇게 고생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20~39세의 젊은이들이 많고, 아주 사교적이라서 그래요. 함께 모여서 뭘 하는 것을 진짜 좋아해요. 식당이나 바에 가고, 아이스크림도 함께 먹어요. 멜번 도심이 그리 크지 않은데, 그 한곳에 모여서 복작복작하다 보니, 다른 도시들에 비해 코비드 감염확률이 높은 거지요.” 그렇게 멜번에 닥친 또 다른 코비드 재앙 때문에, 일생일대의 멋진 자동차 여행을 계획했던 지인은, 그냥 비행기를 타고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2. 세계화 재앙. 현재의 코비드 재앙은 세계화의 결과물이다. 얼마 전만 해도 ‘세계화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쳤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풍요로운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힘써 만든 상품과 문화를 세계 각국에 내다 팔았다.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최첨단 고급 물건들을 수입해서 도시와 집을 치장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위해 수많은 비행기와 선박들, 사업가들이 하늘과 바다를 누볐고, 일상에 지친 보통 사람들까지도 모험정신을 일깨우며 땅끝까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덜컥 코비드가 발발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 실크로드를 역주행하면서 전 세계를 감염시켰다. 그 결과는 세계화의 반대, 록다운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통 금지는 물론, 개인은 자기 숙소에 감금되다시피 묶여 버렸다. 결국 이번 코비드 재앙의 원인은 세계화다. 세계화 상황이 아니었으면, 코로나바이러스도 중국 우한에서 극성을 떨다가 집단면역이 이뤄지면서 잦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된다. 극도로 발달한 세계화 때문이다. 이런 세계적 팬데믹의 시작은 1918년에 일어난 스페인 독감이다. 시작은 미국인데, 대량 참사가 일어난 것은 유럽이고,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이 죽었다. 그중에는 한국인 14만 명도 포함되어 있다. 3.1운동이 일어나던 그즈음, 한국은 이미 세계화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3. 그렇다면 세계화를 포기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세계화는 인간의 본능이며 숙명이다.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는 온 세상에 충만하도록 방랑하며 탐험했고, 정착했다. 그런 세계화에는 명암이 공존한다. 인간 탐욕이 빚어내는 정복 전쟁의 비극과 팬데믹 재앙의 어두운 면이 있지만, 흑암 속에 살던 인간을 빛으로 끌어내는 밝은 면도 있다. 우리의 조국이 무지와 가난의 어둠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는, 서방 선교사들이 찾아옴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영국의 토마스, 호주의 존 데이비스 등이다. 이들은 모두 20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작은 고향에서 안주하기를 거부했다. 세계 복음화의 깃발을 들고 땅끝인 조선으로 달려왔다. 그들이 타고 왔던 배에서 몇 달 동안 바라봐야만 했던 북극성은 어떤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 특히 존 데이비스는 1889년 8월 멜번을 떠나 10월 4일 부산항을 거쳐 인천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5개월을 지내며 한국어를 공부했고, 다시 20일 동안 도보여행으로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 험한 여정에서 천연두에 걸렸고, 폐렴까지 걸려서 3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얼마나 허망한가? 먼지와 비참으로 가득한 조선에 무엇하러 와서 젊은 피를 쏟다가 죽었단 말인가? 그 이유는 단 하나, 복된 소식을 땅끝까지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죽음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 그의 뒤를 이어 멜번에 위치한 빅토리아 장로교회에서 70여 명의 선교사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조선의 척박한 땅을 위해 썩어지는 밀알이 된 20~30대 청년들로 인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결국 세계화는 인간의 본능이며 숙명이다. 지구 땅끝까지 가야하고, 대기권을 벗어나고 은하계로 진출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어떤 세계화에 헌신하느냐의 선택이다. 이생의 자랑을 위한 탐욕적인 세계화인지, 아니면 가난과 속박의 굴레를 벗겨내는 세계화인지.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03/06/2021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1. 지난 2월자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바이러스의 신비'를 다루면서 질문한다. “Are we born to Wander? 우리는 방랑자로 태어났는가?” 코비드 때문에 1년 집콕 생활을 하다보니 제기되는 근원적 질문이다. 그로부터 2달이 지나 백신이 투여되면서, 이젠 조금씩 ‘여행 버블’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매스컴에서 ‘버블 버블’ 하길래 ‘부글거리는 거품’ 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NZ 여행이 풀리면서 비로소 알았다. “비격리 여행권역”. 지난 19일(월) 하루만도 수천 명이 타스만 바다를 건너갔다. 난 아직 해외여행을 할 형편이 안되니, 일단 주변 여행에 나섰다. 2. 먼저 영화관에 가서 ‘노매드’를 봤다. 이번 주말이 있을 아카데미 영화상의 유력한 후보작이다. ‘미나리’의 경쟁작이니까 봐야했고, 기괴한 시리즈 드라마 ‘Fargo’에서 활달한 경찰관으로 나왔던 주연 여배우의 변화된 모습을 보기 위해서도 갔다. 평생을 살던 동네에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직장도 폐쇄됨으로 유랑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미나리’와 비슷하게 담담하면서도 결이 조금 달랐다. 쓸쓸하게 공감가는 영화였다. 나 역시 ‘노매드’이니까. 3. 맨리 여행을 나섰다. 얼마 전 받은 시니어 오팔카드로 무장했다. $2,50만 주면 온종일 어디든지 갈 수 있음을 확인해보고자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고는, 서큘라키에서 갈아탔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서 그런지 전부 호주인 직장인들이다. 페리로 통근할 수 있는 삶을 약간 부러워하면서,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기를 눌렀다. 도착한 맨리 부두와 중심거리는 횡했다. 해변 길은 지역주민들과 개들의 산책로였고, 모래사장은 근처 사는 청년들의 비치발리볼 놀이터였다. 파도 타는 사람들도 전부 주민들이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인가 싶었다. 외로운 방랑객이 되어 약간은 어색한 가운데 케밥을 잘라 먹다가 다시 발길을 돌렸다. 사실 여기까지 배 타고 온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둥근 해와 보름달이 한 하늘에 있는 특이한 광경을 배 위에서 보기 위함이었다. 당당하게 오팔카드를 들이댔는데 삑 소리가 났다. 당황하여 기계 화면을 쳐다보니 카드에 돈이 없단다. 고속 페리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그저 생각없이 먼저 오는 배를 탔는데, 그 때문에 $9이 추가로 떨어져 나간 것이고, 다시 고속 페리를 타려면 $9이 필요한데, 그만한 잔액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나에게 직원이 다가와서 설명을 해 주더니 저쪽 가서 노란색 배를 타란다. 퇴역을 앞둔 완행 페리. 나를 비롯한 대기 승객들 모두가 난민처럼 보였다. 올 때 봤던 승객들과 비교하니까 그렇다. 빈부와 인종을 날카롭게 구분해 버린 코비드의 위력을 다시 실감했다. 출렁이는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를 타고 가다보니 결국 일몰 시각에 맞추질 못했다. 매우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았다. 진분홍 석양에 물든 하버브리지는 장관이었다. 지는 해를 빠른 속도로 따라가 불루마운튼을 넘어가면 황량하지만 익숙한 아웃백이 있을 터였다. 4. 로얄이스터쇼에 갔다. 소, 돼지, 닭 사이를 다니며 구경하던 수만의 인파는 저녁이 되자 둘로 갈라졌다. 초등학생 이하는 부모와 함께 스타디움에 가 앉았고, 하이스쿨 이상 20세 초반의 젊은이들은 놀이기구들에 몰렸다. 여기나 저기나 완전 해방구였다. 지난 1년 동안 강요되었던 사회적 거리두기의 원한을 최대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들인지, 앞 사람 머리가 내 코앞에 바짝 밀착될 정도로 밀려다녔다. 나도 마음은 젊은 터라 놀이기구 쪽으로 가 봤다. 발랄하고 미끈한 젊은이들 한가운데서, 난 갈 곳을 잃었다. 시선 둘 곳도, 존재의 위치감각도 다 잃어버린 채 남십자성 밑에 홀로 서 있었다. 5. 와라감바 댐으로 갔다. 바람 한 점 없고 높은 구름만 조금 떠 있는 아주 좋은 날이었다. 방학을 맞이하여 애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 노인들, 연인들이 소수 있었다. 평온 그 자체였다. 수위를 검색해 보니 98%였다. 문제는 이 수위가 100%에 달했을 때다. 수문을 열 수밖에 없었고, 네피안/혹스베리 강 하류는 범람했다. 집이 떠내려가고, 말과 소도 둥둥. 물에 갇힌 차 속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000 번호를 누르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다. 70년 만의 홍수라니까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하겠지만, 피해 입은 당사자들의 삶이 다시 회복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떠나간 생명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그렇다고 완전한 끝은 아니다. 죽음은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여행길의 시작이다. 6. 인간은 그렇게 홀로 여행하는 방랑자다. 빈손 들고 홀로 왔다가, 그 손에 힘이 빠지면 홀로 돌아간다. 문제는 그사이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있다. 열심히 모으고 챙기는 것은 앞뒤와 맞지 않다. 빈손 인생답게 살아야 한다. 생기는 대로 나눠주면서 ‘노매드’로 사는 것이 맞다. “여행이 이성적 행동은 아니지만 우리 속에 유전인자로 존재한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에 공감하는 나는 다시 작은 여행 가방을 챙긴다. 3월 말에 끝난 여권도 우체국가서 거금 $301 + 사진 $20 주고 10년짜리로 갱신했다. 만반의 준비는 했지만 아직은 멀리 갈 수 없어 일단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온다. 가볼 곳은 무궁무진하다. 라켐바/어번을 가면 중동 여행을 할 수 있고, 노던비치를 가면 영국여행을 할 수 있다. 의욕이 없어서 못 가고, 건강이 여의치 못해서 못 갈 뿐이지 ‘코비드 사이를 뚫고 코를 디밀 곳’은 무한하다. 우리네 인생이 짧을 뿐이다. 7. 만약 모든 것이 여의치 못하면 집에서 책을 편다. 내 컴퓨터 모니터 밑에는 벌써 몇 년 동안 붙어 있는 구절이 있다. 1801년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가서 18년을 지내던 정약용의 일기다. “나는 지금 구덩이에 빠졌다. 하지만 평지려니 하고 지낸다. 이런 평상심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독서의 힘이다. 책을 읽으며 허물어지는 마음을 하루하루 다잡는다”. 그는 그 오도가도 못 하는 유배생활 속에서 ‘목민심서’를 비롯한 조선 후기 최고의 지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나도 어쩌다 보니 문명의 유배자가 되어, 동쪽에 있는 서양 나라에 살게 되었다. 300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은 후진국이었다. 개화된 문명은 해가 뜨는 동쪽에서 왔다. 그 상태가 역전된 것은 서구인들 속에 잠재되었던 노매드 정신을 발휘해 대양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온 세상을 제패한 그들은 이제 우주를 향해 거보를 내 딛는다. 테슬라나 아마존이 그러고 있다. 나에게 우주 여행은 아직 먼 후의 일이기에, 코비드 1년이 지난 지금, 난 조금씩 열려지는 주변 세계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전에 못 보았던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간다. 작은 책도 하나 들고서 간다. 그렇게 떠돌다가 기진하면 다른 세상으로 훌쩍 넘어가면 된다. 난 이 세상의 ‘노매드’니까.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22/04/2021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1. 팬데믹 작년 3월 말, 시드니는 모든 것이 셧다운되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호주는 코비드 영향권에서 조금 비껴난듯 싶다. 악수를 할 수 있고, 가정에서도 공회당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연말이면 거의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의 말은 다르다. 신문에 난 기사 몇 개를 인용한다. “이제 넥스트 팬데믹은 각국에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수준의 안보 위협으로 떠올랐다. 위험한 바이러스는 50만종, 밝혀낸 것 0.2%뿐.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상처에 밴드를 붙이는 수준에 불과하다. 인간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기후변화로 야생 생태계를 침범하고 생물 종(種) 다양성을 파괴하면서, 야생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들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숙주인 인간으로 옮겨 타고 있다. 바이러스는 통상 새로운 숙주를 만나면 더 가혹하게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점점 더 자주, 강도 높게 인류를 휩쓸 수 있다.” 결국 인간이 문제다. 인간은 대단히 모순된 삶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망가뜨리면서 자신 혼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이기적 존재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바이러스 핵폭탄이 터질 수 있다. 몇 년 전 사스(SARS)로 인한 사망자 수는 774명, 메르스 858명, 에볼라 11,325명인데,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3월 10일 현재 2,628,752명이다. 다시 한번 강력한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어떻게 될까? 해법은 우리에게 있고, 지금부터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2. 미나리 팬데믹이 창궐했던 지난 1년, 우리집에는 정원이 만들어졌다. 그 수확물 중의 하나가 ‘미나리’다. 물만 주면 잘 자라나는 그 ‘미나리’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두 달 전인가 영화를 봤다. 화면 질이 별로 였다. 조금 보다가 졸았는데, 깨 보니 끝나가고 있었다. 다시 봐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미국과 유럽에서 엄청난 상들을 휩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엊그제 좋은 화질로 다시 봤다. 여전히 그저 그런 영화였다. 음악이 좋고, 차분한 진행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할머니와 엮어가는 이민정착 스토리는 진부했다.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몇배 극적인 이민자의 삶이 내 주위에는 수없이 많다. 만약 우리들의 이민 역사를 아이삭 정 감독 + 호주인 라클란 촬영감독 + 배우 윤여정과 천재 꼬마 앨런 김 등을 붙여서 영화로 만든다면, ‘미나리’메 못 미친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제작비도 단 2백만불 밖에 안 들었다. 그 정도면 집 팔고 은행 융자 얻어서, 자신의 이민 역사를 영화화 하여 100배의 수익과, 세계적 명성을 얻어볼만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나의 마음을 정해야 했다. 영화 ‘미나리’가 그 많은 상을 받을 만한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를. 3. 이민자 가족 ‘미나리’의 핵심은 ‘이민간 가족’이다. 배경이 되는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비록 얼굴이 편편한 한국계가 중심되어 만든 영화지만, 엄연히 ‘미국 영화’다. 이미 영화 ‘기생충’으로, 한국인이 만든 영화 수준에 대한 사전학습이 되어 있었던 상태다. 문화적으로는 생소한 결이지만, 자기들 땅으로 들어와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보려는 또다른 이민자 삶을 높이 평가한 결과다. 그래서 그들은 맛갈나게 영어를 구사하며 인터뷰를 소화하는 할머니 윤여정에게 열광한다. 우리는 그 반대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할머니는 진부하게 익숙한 할머니다. 이민간 자식을 찾아오며 고추가루/멸치 봉다리를 주섬주섬 끄집어 내는 할머니. 살벌한 세관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해온 허름한 가방 속에서 왕밤 하나를 꺼내, 이빨과 혀로 살을 발라내 손주 입에 넣어 주려는 할머니. 우리는 그 할머니가 때로는 지겹다. ‘그랜마 스멜’이 나고,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심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교회에서, 딸이 드린 100불짜리 헌금 지폐를 몰래 집어내 숨기는 할머니의 몰상식에는 창피할 뿐이다. 할머니는 그토록 역설적인 존재다.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정작 아프거나 돌아가시면 눈물 펑펑 쏟으면서, 결국 그 할머니를 닮아, 그 할머니가 되어가는 우리들. 세상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가족’이다. 사회적 부정부패의 진원지는 가족 이기주의이며, 참혹한 전쟁의 진원지는 민족 이기주의일 때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가족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조부모와 부모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어리고 젊은 이민 2,3세대들이지만, 그들 역시 부모가 되고, 할머니/할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가족은 서로의 자리를 바꿔갈 뿐이다. 특히 이민 생활은 가족과 지지고 볶다가 한 그릇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삶이 전부다. 4. 에필로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뇌졸증에 걸려 창고를 태워 먹은 할머니. ‘나 같은 할망구, 내가 없어져야 애들이 잘 살지’하는 마음으로 길을 떠난다. 그 때 7살 먹은 손자가 할머니를 쫓아 달려간다. 심장에 구멍이 있기에, 뛰면 안되는 아이다. 그런데도 달린다. 점점 더 빨리 달린다. 무려 25초 동안, 달리는 그의 모습을 호주 출신 촬영감독이 클로즈업 시킨다. 그 장면을 보며 감동이 밀려왔다. 할머니 앞을 가로막으며 그 꼬마가 외치는 말, ‘할머니 어디가요? 이쪽이 아니예요. 우리 집은 저쪽 이예요. 할머니 가지 마세요. 우리랑 같이 집에 가요!” 그러면서 서로 손을 잡는다. 할머니는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풍 맞은 오른쪽으로 기우뚱 기우뚱하며 걷는다. 그리고는 바퀴 달린 이동식 주택 거실에서 5식구가 함께 잔다. 그 장면을 되새기며 글을 쓰는 동안 내 눈에 눈물이 홍건해졌다. 그 눈물로 우리의 이민 ‘미나리’는 자란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난 미나리를 심으리라! 영화 ‘미나리’가 진부하다면, 내 마음이 진부해진 까닭이다. 이민 삶에 찌들려, 감정이 메마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세상에 소중한 것이 뭔지를 모르는 무정함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 ‘미나리’에 대한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회개한다.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달라고. 이미 돌아가신 애들 할머니를 향하여, 오늘도 자생하는 미나리가 흥청대는 개울 옆 길을 홀로 걷고 계시는 애들 할아버지를 향하여.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11/03/2021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1. phenomenon 현상 지난 월요일, 나는 ‘밤을 잊은 그대’였다. 이승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 주일 전으로 역주행해야 한다. 지난주 화요일, Australia Day 논쟁 때문에 호주 매스컴이 조금 시끄러울 때, 나는 한국발 신문기사도 검색하고 있었다. 이승윤이라는 청년에 눈길이 끌렸다. 전날 25일 JTBC에서 방영하는 ‘싱어게인’ 무명가수전에서 선풍적 인기몰이를 한 32세의 청년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아버지가 이재철 목사님이라는데 내 관심이 꽂혔다. “도대체 뭐지?”라는 마음으로 유튜브를 돌렸다. 신세계가 열렸다. 유희열 심사위원장을 포함한 9명 전원의 극찬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하나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코비드-19가 작년에 이은 ‘특이한 현상’이라면, 이승윤 역시 그랬다.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나에게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에 관한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 역주행했다. 홍대 앞 언더그라운드 공연장과 부산 등지에서 ‘체 게바라’처럼 살며 노래하고 공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만이 아니었다. 그의 도발적 매력에 칠순 할머니의 덕후질도 가세했다. 댓글 2개를 소개한다. “저는 시골의 70 이 가까워져 오는 할머니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가 이승윤 가수를 보고, 우와 내가 재력이 된다면 완전히 음악만 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지요. 충격 그 자체였지요”. “오늘 낮에 이 노래를 틀자마자 4살 아이가 달려와 꼭 안더니 제 눈을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놀래서 왜 그래 물었더니 ‘잊어지고 헤어지는 거잖아’라는 거예요. 뭐였을까요? 이 노래가 가진 힘이었을까요?” 사실 이런 현상에 가장 놀란 사람은 이승윤 자신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만 15년 이상 뒹굴면서 자신의 실력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다. 우물 안 개구리 같았지만, 청춘의 혼돈스러운 진흙탕 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나가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던 결과다. 2. Algorithm 알고리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날 이승윤으로 이끌었다. 이 알고리즘은 시간마다 다르고, 경우마다 다르다. 내가 별 생각 없이 신문을 뒤적이거나, 유튜브를 켰을 때 내 앞에 떡 나타난다. 시작은 거의 우연에 가까웠지만 나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며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한다. 술, 마약, 섹스, 권력 앞에 노출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한다. 그럴 때 그 사람이 어떤 반응을 하느냐는 성격과 품성에 달려 있고, 무엇보다도 자라나오면서 받은 가정교육에 많이 근거한다. 나를 이승윤에게 이끈 것은 그의 아버지 이재철 목사였던 것처럼, 나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꽂히는 곳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곳이 내 인생의 놀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3. Mikrokosmos 소우주 어제 아마존의 CEO 베이 조스 기사가 떴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며, 최고의 혁신기업인이다. 코비드-19의 절망적 현상 속에서 오히려 기업의 가치는 높아졌고, 최고의 실적을 일궈낸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CEO의 자리를 내놨다. ‘나는 에너지가 넘친다. 다시 Day 1”. 지금까지 일궈 놓은 지상 최고의 기업으로는 아직도 ‘배고프다’는 그다. ‘아마존은 혁신 때문에 존재한다”라는 베이 조스를 바라보며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평가한다. ‘아마존에서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 개혁의 아이콘인 베이 조스의 제2기를 기대한다는 말이다. 온 세계가 그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과거 성공 이력과 더불어 차기 관심 분야 때문이다. 두 가지다. 본격적 우주 사업과,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에 관한 관심이다. ‘여전히 헝그리’한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우주산업에 대한 도전은 이해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세계는 ‘사람’에게 있다. 베이 조스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종업원 125만 명을 먹여 살려야 하고, 70억이 훨씬 넘어가는 세계 인구 중 불행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심적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은, 깨끗한 부자의 당연한 관심거리다. 우주와 한 사람에 관한 관심. 매크로와 마이크로의 기막힌 조화를 아는 멋진 개혁 아이콘이다. 4. God’s Algorism 신적 알고리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지난 월요일 밤, 기대를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쯤 깼다. 참았던 궁금함을 담아 급히 유튜브를 열어봤다. 이승윤이 BTS의 ‘소우주’를 어떻게 불렀으며, 과연 6강에 올랐을까? 여전히 이승윤은 파격이었다. 기타도 화려한 액션도 없이, 매우 절제된 모습으로 노래를 불렀다. 여전히 예리한 유희열 심사위원장은 이승윤의 진가를 알아봤고, 넉넉하게 본선으로 진출했다. 그가 이번에 부른 노래는 BTS의 ‘소우주’다. 가사는 이렇다.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 한 사람에 하나의 별 /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 70억 가지의 world.” BTS가 세계적 현상이 된 것은, 소외된 한 사람에 대한 지극한 관심 때문이다. 내가 연구한 이승윤의 성공비결도 ‘어려운 삶을 사는 이웃에 대한 관심’이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이승윤은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나름 이렇게 해석했다. 중요한 것은 신앙 하는 것 보다, 신앙에 근거하여 이웃을 위한 자신의 삶을 살아 내는 것이라고. 그는 기도를 녹여내서 노래를 만들었고, 불러 댔다. 신적 알고리즘에 의해 그는 세상 무대에 섰고, 그 노래로 70대 할머니부터 4세까지의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우려내고 있다. 이승윤은 계속해서 나의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훌륭했지만, 그분의 영향력은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아들이 나타났다. 하나님 이야기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려는 이승윤이야말로, 현 세상이 필요로 하는 멋진 전도자라고 해석한다. 물론 아직 가공 중인 다이아몬드 원석이지만.

  04/02/2021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1. 최근 호 TIME 표지는 바탕이 하얗다. 가운데 굵고 검은 글씨로 2020이라고 쓰고 그 위에 붉은 물감으로 “X”표를 그었다. 그 밑에 작은 설명이 있다. “The Worst Year Ever”. 이렇게 읽었다. “우리가 살아본 세월 중 가장 최악의 해”. ‘스테파니 자카렉’이라는 칼럼니스트 이름도 작게 쓰여져 있다. 그녀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뒤져 봐도 나이는 나오지 않는다. 뉴욕에서 대학을 나오고 그곳에서 영화평론가로 일해 온 사람인데 대략 1970년 전후 생이라고 생각된다. 그 나이의 뉴요커로서는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150년 동안 미국 땅에서 일어난 참사로는 이번 코로나 사태만 한 것이 없다. 영국과의 독립전쟁, 프랑스/스페인/멕시코와의 영토전쟁, 그리고 1861년에 일어나 군인만 62만 명이 죽은 남북전쟁이 있지만 고래(古來)적 이야기다. 그 이후에는 자기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2001년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그녀는 그 참상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본 뉴요커다. 그때 2,997명이 죽었다. 그 일에 충격받은 미국인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쫓아가 복수의 혈전을 펼쳤다. 그때 사망한 미국 군인이 6,758명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는 그와 비교할 수도 없다. 최근에 미국 한복판에서 일어난 참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9일 하루 만에 3천 명이 죽었다. 전체 사망자는 31만 4천 명이 넘어간다. 이번 겨울을 지나면서 50만 명까지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런 상황 한복판에서, 그것도 최첨단 뉴스를 다루는 TIME 지에 근무하는 그녀에게 “우리 생애 최악의 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20년’이란 말은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2. 그러나 호주는 좀 다르다. 이제는 주 경계를 풀었고, 비행기들이 다니기 시작한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공항에서 포옹하고, 가지 못했던 휴가와 파티를 즐기기 위해 숙소와 식당 부킹 사이트가 대단히 바쁘다. 시내 교통상황은 코로나 이전 상태로 돌아가 러시아워가 짜증을 유발한다. 9개월 전에는 교회당 문을 닫아걸고 1.5미터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몸을 피하더니, 이제는 안 돌아오면 오면 짐을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게 나라마다 사람마다 형편이 다르다. 물론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호주 역시 코로나로 인해 908명의 사망자가 생겼다. 그 가족들에게는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2020년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인간이 인간의 죽음을 되 돌릴 수는 없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1백65만 여명이 죽었는데,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는 5천만 명이 죽었다. 그래도 인류 문명은 계속 발전했고, 미국은 지난 백 년간 최고 강국의 자리를 전혀 내놓고 있지 않다. 그렇게 인류 역사는 흘러가고, 동시에 사람은 병들고 죽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안고 산다. 사실 그 상처 때문에 남은 사람들의 삶은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내 왼팔에 있는 흉터가 그 증거다. 어릴 적 맞은 종두 주사 자국이다. 일부러 흉터를 내어 예방 주사를 맞지 않았다면 천연두에 걸려서 죽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소아마비도 걸렸었다. 부모님의 지극 정성과 당시 의학기술로 인해 치유된 다리를 가지고 평생 살고 있다. 그렇게 죽지 않을 정도의 흉터와 불행은 남은 삶을 오히려 건강하게 만든다. 3. 불행의 크기는 주관적이며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크기가 가장 큰 법이다. 그러니 각자 삶의 고통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왜 인간은 고통을 당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살다 보면 갑과 을의 위치를 오가며 살지만,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 그 죽음에서 삶이 탄생하고, 그 삶은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누리다가, 또 죽는다. 그렇게 빤한 인생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영원에 접속되기 위함이다. 그래서 나는 2021년이라는 숫자를 쓰고 그 위에 붉은 X자를 다시 긋는다. 물론 방향은 90도 비튼다. 좌로나 우로나 상관없다. 그러면 십자가가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그분은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을 영원한 삶으로 바꿔 놓으신 분이다. 그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다음 주에 온다. 그래서 큰 소리로 외친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2021!”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17/12/2020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김성주목사 1.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꽃의 계절, 화양연화’의 계절이 왔다. 샛노란 유채꽃으로 온 세상이 뒤덮인 카놀라 길(Canola Trail)을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왕복 8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절망은 없다. 자카란다 계절이 돌아왔다. 노란색 유채꽃은 보라색 자카란다가 피기 전, 낙화하여 무릎을 꿇는다. 보랏빛은 황제의 색이기 때문이다. 로마제국 당시 12,000개의 바다 달팽이를 부숴야 겨우 1.4g을 채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보라색 옷을 입는다는 말은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보라색을 입을 수 있다. 집 근처에도 몇 그루가 있다. 그래도 난 하버브리지 옆 라벤더베이나 키리빌리로 갈 것이다. 그 부자 동네에 내 집은 없지만, 보라색으로 물든 길을 지나간다고 누가 뭐라고 할 건가? 키리빌리에 관저가 있는 호주 총리 역시 나를 막지 못한다. 난 이 자유의 나라에서. 그 길을 거닐며 내 옷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게 할 것이다. 2. 다음 주 화요일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다. 트럼프와 바이든이 경합한다. 누가 이 시대 최고 강대국 대통령의 옷을 입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매스컴과 여론조사기관들이 자신들의 예상을 내놓지만, 2016년 선거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중국과 북한에 대한 정책이 달라진다. 당연히 한국과 호주는 심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영원하지 않다. 길어봐야 4년 혹은 8년이다. 그동안 미국이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 미국을 이끄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이기 때문이다. 헌법을 수호하는 정점에 연방대법원이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대단한 관심을 끌었던 기관이다. 미국 최고의 사법 기관으로,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권고와 동의 하에 연방대법원장과 8명의 대법관이 임명된다. 일단 임명되면 ‘선한 행동을 하는 동안’ 죽을 때까지 종신직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18일 긴즈버그 대법관이 세상을 떠났다. 트럼프는 그 후임으로 보수의 아이콘인 48세 에이미 코니 배럿의 임명절차를 강행하여 지난 10월 26일 임명했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동안 무려 3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었고, 연방대법원의 이념 구도를 보수 6, 진보 3으로 바꿔 놨다. 그렇게 트럼프는 재선 이후의 제왕적 꽃 길을 철저하게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신임 대법 판사가 존중하는 것은 자신을 임명한 트럼프의 당리가 아니다. 그녀는 원전주의(Originalism)를 따른다. 미국 헌법을 작성한 ‘건국 아버지들’의 뜻과 목적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사상이다. 이 사상에 대립 되는 것은 ‘살아 있는 헌법(The Living Constitution)’이다. 헌법을 존중하지만, 변화한 현실을 고려하여 헌법을 새롭게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주의다. 미국은 이 두 사상의 각축을 통해 발전해 왔다. 그래서 나온 것이, ‘수정 헌법’이다. 1787년에 만들어진 7조 21항의 헌법을 기초로, 1791년 10개의 수정 헌법이 나왔고, 27조까지 더해졌다. 미국은 이 헌법을 기초로 운용된다. 근본을 지키며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 헌법이다. 미국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한 대통령의 꿈이 아니다. 이 헌법에 기초한 연방주의다. 50개의 주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당리당략이 각자이지만, 그들 모두는 헌법의 권위 아래 들어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 헌법 준수를 위해 검찰이 있고, 경찰과 군대, 그리고 FBI와 CIA가 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각 개인의 자유다. 심지어는 공화당이 배출한 대통령에 대해서도, 공화당원이 공공연히 반대할 자유를 인정한다. 공화당 상원의원 수잔 콜린스가 그 예다. 이번 배럿 대법관을 임명할 때 필요한 것은 100명으로 이뤄진 상원의원의 과반수 표결이다. 현재 공화당원 수가 53명이니, 53:47이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52:48이 나왔다. 공화당 4선 의원 수잔 콜린스가 반란표를 던진 것이다. 그녀의 반란은 유서가 깊다. 지난 2016년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 때에는 ‘트럼프는 대통령에 필수적인 자질이 결핍되었다’라고 주장했고, 2018년 10월에는 트럼프가 지명한 브렛 캐노버 연방판사를 향해서도 입장을 유보했었고, 이번 배럿 후보의 인준 투표를 대선 이후로 미루자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임명 반대표를 던졌다. 그런 분이 여전히 공화당에서 4선 의원으로 일하며, 미국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국토안보부’ 담당 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사사건건 트럼프가 하는 일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자유 때문이다. 그런 자유가 있으므로 미국은 세계 최강의 자리를 계속 지켜 나갈 것이다. 로마제국을 천년 동안 떠받힌 것이 ‘법’이듯이, 미국 역시 건국의 아버지들이 만들어 놓은 헌법을 제대로 지키는 동안 견고할 것이다. 3. 선진국은 다른 것이 아니다. 정의와 자유의 법을 만들어, 모든 국민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나라다. 대통령도 어떤 조직도 헌법 위에 설 수는 없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며,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그토록 아름답던 유채꽃과 자카란다도 순식간에 지며, 권력이 10년을 가지 못한다. 한 나라가 천년을 가려면 좋은 법을 만들어, 법대로 지켜야 한다. 그 중 영원한 법은 ‘하나님의 법’이다. 호주 헌법을 보면 제일 앞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에 겸손히 의지한다’란 말이 나온다. 지극히 세속적인 현시대에도 호주가 가장 좋은 나라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있는 헌법 덕분이다. 그리고 그 헌법의 공정한 실행을 믿고 감시하는 국민 때문이다. 난 그들의 일원이 되어 기어코 키리빌리 총리 관저 앞을 거닐 것이다. 자카란다 나무 밑에 서서 보라색 꽃비를 맞을 것이다.

  29/10/2020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1. 위기는 항상 기회를 불러 온다. 위기의 끝판왕인 죽음도 그렇다. 죽어야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때가 올 때까지는 이 세상의 위기를 논한다. 현재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다. 이 위기를 기회로 선용한 기업들은 엄청난 세불리기를 하고 있다. 위기의 때를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 무장해재를 당해 두 손 묶여 있는 상황이라 그들의 독주는 더욱 돋보인다. 넷플릭스, 애플, 테슬라, 애프터페이(Afterpay), 카카오 등이다. 지난 연말 대비 주식값이 두배 이상, 심하면 10배까지 올랐다. 이런 기업들의 특징은 비대면 위기 상황에 창조적으로 대처했다는데 있다. 한국의 BTS 경우,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아니었다면 ‘빌보드 핫100’에 2주 연속 1위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로 국내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오히려 ‘세계화의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2. 나는 그런 세계화 혁신의 최전선에 살고 있지 않다. 지난 20년 넘도록 세상의 변방으로 자처하는 호주 한 구석에 산다. 이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이 컬럼을 쓰고 있다. 마감 시간에 쫓기며 앉아 있는 나를 아내가 부른다. 호주 청정해역에서 자라난 홍합을 삶았으니 와서 먹으란다. 커다란 양푼에 가득 담겨있다. 바다 소금기가 풍만하게 배인 홍합 속살을 빠른 속도로 먹어 치웠다. 좀 더 다르게 먹어 보고 싶어서 그 위에 올리브유를 흠씬 뿌렸다. 하나씩 올리브오일로 코팅하여 집어 먹으며, 수퍼에서 파는 북유럽산 훈제 홍합이 생각났다. 맛은 그게 더 구수하지만 건강에는 이것이 더 좋다는 아내의 말에 수긍하며, 담백한 자연향을 입안 가득 담고 와서 다시 이 글을 쓴다. 아내는 아내대로 홍합을 건져낸 국물로 미역국을 끓인다. 그렇게 홍합은 한번 죽음으로 여러 사람을 살린다. 어제는 할로겐 전구를 바꿨다. 지은 지 20년, 우리가 이사온지 13년 된 집이라 거실 천정에는 할로겐 전구가 달려있다. 하나에 50와트짜리다. 10개를 켜면 500와트, 그 엄청난 부담감에 특별한 때가 아니면 어둡게 살았다. 그런데 정부가 보조하여 단 $33만 내면 숫자에 상관없이 LED로 갈아 준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했더니 바로 그 다음 날 전기 기술자를 보내 줬다. 사다리 두 개를 가지고 열심히 전구를 바꿔준다. 작업하는 이를 따라 다니며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한 두 마디 건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봇물처럼 자기 인생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이번 주 처음 나왔단다. 원래는 로보트 전문 기술자인데, 3개월전 일이 사라졌단다. 마지막 직장은 헌터밸리에 있는 석탄광산. 지하 100-200m를 내려가 자동기기를 다루던 젊은 가장이다. 3개월을 놀다가 이제는 일을 해야겠기에, ‘이런 일’이라도 하려고 나섰단다. 자신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에 매우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전처럼 벌지는 못하지만 현재의 경제 위기를 이겨나가는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김에 코로나로 인해 확찐 몸도 좀 줄여 보려 한단다. 사다리에 올라가 팔을 들고 전구를 갈 때 드러난 뱃살이 그 증거인양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의 직업을 물어보는 그에게 미니스터라고 했다. 잠시 그의 눈이 흔들리는 것 같아서, 다시 파스터라고 했다. 그 때야 얼굴이 펴지면서 말한다. ‘대화를 접어야 하나 잠시 걱정했다’고. 나를 장관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말해 줬다. 장관이나 목사나 다 섬기는 직업이라고. 서로에게 편안한 대화를 계속하다가 일은 끝났다. 그 동안 우리 집 건물의 위기를 해결코자 왔던 플러머나 전기공 등 중에서는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이런 일을 많이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고, 인공지능이라는 동일한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되었다. 13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불을 다 켜 봤다. 이전의 차가운 빛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불빛이었다. 집이 달라 보였다. 코로나로 인해 얼어 붙은 경제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살아 있어 우리 집을 돌봐주고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성실한 기술자가 와서 잘 해 줬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현관 천정에 한 전구는 켜지지 않았다. 설치하면서 점검하지 않았던 불찰이다. 고민 좀 했다. 그냥 놔둘까? 그러다가 정중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집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전등 하나가 안켜지는군요. 이대로도 괜찮지만, 혹시 가능하시면 고쳐 주시면 좋겠는데…” 바로 답이 왔다. 시간 내서 가겠다고. 그렇게 어제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잘 지나갔다. 3. 세상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을 향해 때도 없이 위기가 들이닥친다. 그렇다고 항상 어렵지만은 않다. 야곱은 130년 험한 인생을 살았지만, 말년 17년을 아주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았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면 좋겠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으니까. 이쯤에서 인생을 보는 눈이 둘로 갈라진다. 죽음이 끝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을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제작된 기계로 본다. 그러나 아니다. 인생은 잠시요, 죽음 후에 영원한 삶이 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심하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막장 바이러스를 이미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변방인 호주 한 구석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나의 삶이 전혀 억울하지 않다. 오히려 감사하다. 세상을 보고 싶으면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된다.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를 보면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보다가 다시 부엌으로 내려간다. 홍합을 까먹고, 정원으로 나가 새와 꽃과 하늘과 바람 속에 들어간다. 그 정원의 청지기는 아내다. 많은 시간을 내어 야채를 심어 키우고, 꽃과 선인장을 돌본다. 그러면 그들은 정직하게 먹을 것을 내 놓는다. “날 잡아 잡수세요! 내 생존의 의무와 기쁨입니다.” 나는 거기서 나오는 무공해 신선한 야채들을 먹는다. 태국에서 건너온 안남미 쌀밥에, 한국에서 온 초고장을 비벼 먹는다. 그렇게 나는 이미 세계화의 한 가운데 있다.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맛보며 살고 있다. 그렇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인생 최대의 위기라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 나의 창조주를 만날 것이다. 그 분은 나를 영접하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상속해 주실 것이다. 나는 한갓 바다의 홍합이나 정원의 쑥갓과는 다르다. 우연히 생겨나 진화한 유전자의 기계는 더더욱 아니다. 난 ‘부자 아버지의 찬스’를 써서, 이 위기를 기회의 플랫폼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24/09/2020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1. 코비드-19가 거세게 확산 중이다. 2차 유행이 멜번과 시드니를 뒤 흔들고 있다. 지난 연말 산불이 온 사방을 태우고 있을 때 많이 어려웠다. 세상 끝이 오는 것 같았다. 그 보다 더 ‘쎈 놈’이 올 줄을 누가 알았던가? 유람선 루비 프린세스가 시드니항에 들어오면서 비상이 걸린 3월 말, 난 컬럼을 쓰면서 이런 제목을 붙였었다. “코로나바이러스, 곧 끝납니다.” 에볼라나 메르스처럼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4개월 동안 기승을 부리던 산불의 위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팬데믹, 즉 전세계적 위기다. 호주를 강타한 지 이미 5개월이 넘어간다. 이번 주 다시 NSW 산불 소식이 들려온다. 이제는 산불과 코비드의 협공을 받으며 남은 2020년을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지난 달 칼럼에서는 단테의 ‘인페르노(지옥)’편을 인용했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렇게 올해는 우리네 인생에서 흑역사로 남는다. 2.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코비드 팬데믹에 겹쳐, 중국의 황하와 양쯔강이 100년만의 홍수를 경험하고,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130년만의 살인 폭염이 찾아와도, 세상은 그리 쉽사리 망하지 않는다. 지구 표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땅과 하늘은 여전히 견고하다. 요새 그 땅의 위대함을 새삼 발견하고 있다. 집 밖 외출이 제한되니 집 안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데, 아내는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티로폼 박스를 모아왔다. 15리터씩 파는 고가의 흙을 사다가 채우고 야채 씨를 심었다. 40종이 넘는다. 그렇게 나는 농부의 남편이 되었다. 정말 흙(땅)은 위대하다. 흙에는 규소 28%를 비롯해서 무수한 광물들이 섞여 있다. 그 사이를 함량 47%의 산소가 헤집고 돌아다니며 영양을 섞어 줄 때, 흙에 품겨진 씨앗은 싹을 틔우고 푸르게 자란다. 신선한 산소를 공기 중에 뿜어주고, 먹을 것을 내주며,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땅을 마구 파헤쳐 거대 도시를 만들었다. 100층짜리 철골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올리며, 마당을 돌로 덮어 버렸다. 당연히 땅은 숨 쉬지 못하고, 박쥐는 갈 곳을 잃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는 경고한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라고. 원래 흙에서 왔고,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인생인데, 돈과 야욕으로 지어진 도시에 너무 매달려 살지 말라고. 3. 시사 주간지 TIME에서 매일 전해 주는 코로나-19 소식을 들었다. 한 단어가 날아와 꽂혔다. 현 사회를 정의하는 ‘Apathy(냉담)’이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와 연대하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았다. 1969년 인류 최초로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홀로 하지 않았다. 선두 자리를 경쟁하지 않으며 묵묵히 뒤 따랐던 버즈 알드린이 있었고, 그 둘을 내려 보내며 홀로 달 착륙선을 지켰던 마이클 콜린스가 있었다. 그 세명 뒤에는 40만명이 넘는 나사의 과학자들이 있었고, TV를 보고 있던 수억의 미국인과 온 세계가 있었다. 나 역시 온 대한민국 국민들과 함께 흑백TV로 그 광경을 보며 감격했다. 그 때로 말하자면 20인치 브라운관 흑백 TV 하나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김일 장영철 천규덕의 레슬링을 보던 때다. 그 때만 해도 ‘함께’ 라는 단어가 사회와 가정에 존재했었다. (잘 기억나지 않으면 ‘응답하라 1997, 1994, 1988’을 보라.) 그러나 코비드-19를 거치면서 드러난 것은 ‘냉담’이다. 3,000년 동안 ‘함께’ 해 왔던 것들을, 단 ‘30’년 만에 갈아 치워버렸다. 자신에게 위험이 닥쳐오기 전에는 타인의 죽음과 고통에 별 반응하지 않는다. 타인의 불행에 동감하지 못하고, 자신이 처하게 될 위험에도 불감증이다. 그렇게 좀비화된 인류를 코로나바이러스는 고발한다. 한 집에서 함께 살고, 교회당이나 비행기나 쇼핑 센터 안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악한 것에 감염될 수 있다는 역공격으로 이 시대를 고발한다. 4. 그래도 세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다시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상황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냉담도가 증가한다는 말이다. 찔러도 피가 나지 않고, 피가 나도 그냥 돌아다니는 좀비의 세계가 된다. 현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위험이다. 계속 찾아올 변종 바이러스나, 자연의 반격이 아니다. 비인간화되고, 냉담화되는, 좀비의 세상이 되는 것이 가장 큰 위기다. 이제라도 정신차려야 한다.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외치던, 1969년 만화의 주인공 “요괴인간 벰 베라 베로”처럼 몸부림 쳐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단테의 를 펼쳤다. 은 3부로 되어 있다. 단테는 당연히 천국에 먼저 가고자 했다. 그러나 지옥을 먼저 살펴 봐야만 했다. 그 장면을 보자. “1300년 봄 35세의 단테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언덕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음란한) 표범, (오만한) 사자, (탐욕의) 암늑대가 길을 가로막는다. 그때 안내자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말해준다. 저 아름다운 언덕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 즉 저승 세계를 거쳐 가야 한다고. 그리하여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저승 여행길을 떠난다. 하나의 시를 읊으면서. “..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 지금 이 세상은 ‘준(準)지옥’이다. 그러나 여전히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려있다. 그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코로나-19에서 ‘선한 것’을 찾아 내야 한다. 도망갈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찾아내야 한다. 흙이 있는 땅을 밟고서.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20/08/2020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

1. 톰 행크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배우다. ‘다빈치코드’를 쓴 작가 댄 브라운의 소설 3권을 영화화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해 졌다. 그가 지난 3월 호주 퀸즐랜드로 영화 촬영을 왔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다. 2주간의 격리치료를 마친 후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얼마 후 호주에 소식을 전해왔다. 2주간 잘 치료해 준 의료인진들에게 감사하며, 한 소년에게는 타이프라이터를 선물로 보내왔다. 그 소년의 이름은 코로나다. 이름 때문에 놀림 받는 그 소년의 소식을 듣고는 이렇게 편지를 썼다.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코로나라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다. 코로나는 왕관을 의미하지. 이 타자기로 나에게 다시 편지를 써 주길 바란다.” 그 편지 끝을, 자신이 음성으로 연기한 ‘토이 스토리’에 나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코로나, 너는 내 친구야”. 이제 온 세상은 코로나바이러스와 친구가 되었다. 나쁜 친구이지만 사이 좋게 지내야 하는 친구다. 호주와 한국은 이미 제2차 유행이 시작되었다. 엊그제 자정을 기해서 NSW주는 빅토리아주 경계를 봉쇄했다. 하늘길은 물론 찻길, 뱃길도 막았다. 아이들 방학을 맞이하여 주 경계를 넘어가 있던 사람들이 성급히 밤길을 달려 돌아갔다. 멜본은 9일부터 6주간의 록다운이 다시 시작됐고 시드니도 다시 경계 태세를 강화한다. 식당과 카페, 운동경기와 교회당 모임이 조금 풀리나 했는데 다시 불안하다. 예방 백신은 1~2년이 걸려야 나올 전망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바이러스와 잘 지내야 한다. 다시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전 사회로 돌아가는듯 살아야 한다. 각자의 사는 곳에서, 주어진 물자와 환경을 잘 선용하며 살아야 한다. 3개월 격리 후 조금 느슨해진 마음으로 시위도 하고, 해변과 펍과 경기장으로 달려가 즐긴 결과가 2차 유행이라는 것을 학습했으니, 이젠 자가격리를 생활화하며 살 수 밖에 없다. 2. 톰 행크스가 주연한 댄 브라운 원작의 영화는 세 개다. ‘다빈치코드’, ‘천사와 악마’ 그리고 2016년에 발표된 ‘인페르노(Inferno)’다. 지옥이란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조브리스트라는 천재 생물학자는 현 문명에 대해 부정적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수를 줄이는 것만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인류의 반을 멸망시킬 바이러스를 만들었고, 동과 서의 교두보인 이스탄불의 거대한 지하 저수조에 숨겼다. 그 곳은 거꾸로 된 메두사 머리 위에 세워진 기둥으로 지탱되는 곳이다. 때마침 아름다운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그 곳이 바야흐로 지옥의 문이 되려는 순간, 우리의 용감한 톰 행크스가 몸을 던져 세상을 지켜낸다. 제목인 ‘인페르노’는 1320년 단테가 쓴 신곡의 지옥편에 나온다. 당시 유럽은 정말 지옥 같았다. 런던의 한 연대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316년은 옥수수 등 곡물의 대품귀 현상이 발생한 때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고양이, 말, 개를 먹었다. 심지어 어린이를 유괴하여 인육을 먹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 경제 공황 속에서 흑사병이 발생했고, 유럽 인구의 절반이 사라져 버렸다. 당시 세계 인구는 4억5천만 정도였는데 1억명이 죽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세계인구는 계속 늘어 1518년에는 5억명이 되더니 위의 영화를 찍을 2015년에는 73억이 되었고 현재는 78억명의 인구를 자랑한다. 이런 인구증가 추세의 천정이 있을까? 바이러스가 인류를 그냥 놔 둘까? 사실 바이러스는 별 것 아니다. 인류 앞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죽음의 사자들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3. 단테는 ‘인페르노(지옥)’편을 쓰면서 이런 말을 한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 말을 들으면서 확실한 것은, 아직 우리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점령한 오늘날도 미래를 향한 희망은 오늘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당신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어차피 인간은 개인적으로나 우주적으로나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 남은 기간 동안 뭘 하며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이웃 나라나 이웃 동네로 가는 길이 막혀가는 지금,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잘 모르겠으면, 건전한 유투브 영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든가, 아니면 책을 펴면 된다. 당신 생각의 마중물이 된다. 나는 ‘시를 잊은 나에게’란 책에서 한 시를 읽었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엊그제 식구들과 넬슨베이를 다녀왔다. 아나베이의 바다 사막을 걸었고, 토마리 산에 올라 석양을 봤다. 긴 등대 길과, 바다에 면한 깊은 숲을 걸었다. 온 식구가 함께 이렇게 다녀오는 것은 정말 오랜 만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지금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때라고. 그 곳은 마치 ‘봄의 정원’과 같다. 온갖 아름다운이 그 곳에 있다. 나의 이기적인 삶을 살아내느라, 함께 있었지만 함께 있지 않았던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사람이 많다고 좋은 것 아니요, 가진 것이 많아서 좋은 것도 아니다. 한 존재를 향해 마음으로 느끼는 감사와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 마음으로 한 마디 좋은 말을 하고, 한 방향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그게 지옥이다. 하나님과 단절되고, 사랑을 주고 받을 사람이 없는 곳이 지옥이다. 천국과 지옥은 내 앞에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나와 당신의 몫이다.

  09/07/2020
  금요단상 - 김성주 목사